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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고 키우면 좋은 어른으로 자라날까?


 답은 '아니다'였다.










 대학교 1학년, 얀챈에 글을 쓰고 있으니 얀붕이라고 하자. 이름으로 특정할수도 없고 특정당하기도 싫다. 인터넷에 내 한 줌 부스러기를 티끌만큼이라도 남겨놓는다면 그건 더욱 더 싫다.


 스펙을 쌓는다느니, 어쩐다느니 뭐 좋다. 좋은 이야기다. 나도 처음엔 그런 이유로 봉사활동에 참가했고, 대학교 1학년 중 상당 부분을 봉사활동에 투자해 왔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이력서에 한줄이라도 더 적기 위해서다.


 모금, 단체활동, 김장이나 연탄나르기. 뭐든 좋다. 동아리에선 선배님들이 그런 행사를 하나 둘씩 물어와 주고 우리 1학년 후배들은 그것들을 잘 받아 먹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몸으로 익히고, 또 다음 해에는 우리가 봉사활동을 주도하게 되겠지. 그런 어스름히 예상이 가는 이야기다. 약간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기업이 주목할 수 있게 지속적으로 일관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어쨌거나 우리의 표면적인 이유는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추가하기 위해'서니까.



 나는 그 중에서 특별한 봉사활동을 하나 더 맡기로 했다. 저소득층 집안의 고학력 중학생에게 공부 과외를 시켜주는 일이었다. 물론 봉사활동이니 돈은 받지 않고 무료로. 다른 대학생들이 돈을 받으며 거액의 개인과외를 할 때 나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소개받은 아이는 이전에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아이였다. 아이가 사는 곳이 대학교에서 워낙 가깝기도 했고, 이 주변에서 제일 못 사는 동네여서 자주 봉사활동을 오기도 했었으니까. 가장 기억에 남는 거라면 이 동네에서 단체 김장을 했을 때였다. 나는 힘 쓰는 일을 맡았다.



 김치를 날랐었나? 연탄을 날랐었나? 그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내가 아이와 재회했을 때 느낀 감정은 '어, 어디서 본 적 있는데?' 정도였으니 말이다.

 낯을 가리는 아이였다. 영특했고, 겁이 많았다. 나를 처음 보고는 곁눈질로 피하는 것이 느껴졌다.


 딴에 봉사활동을 계속하며 얻은게 친화력이라 아이와 친해지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아이가 사는 동네에서 나 같은 젊은 대학생과 만날 수 있는 경우는 드믈었으니까. 듣기로는 이전까지 학원도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사교육 없이 현재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거라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수능을 거쳐온 경험자로써 이렇게 생각한다. 사교육 없이 성적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중학생 때 까지만이라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사교육과 선행학습으로 먼저 앞서 간 친구들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건 쫓아갈 수 없을 만큼 벌어지고 만다. 그게 현실이다.

 아주 가끔 정말 특출난 머리의 소유자라면 아무런 추가교육 없이 교과서만으로 수능을 잘 치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대부분은 아니다. 99%를 넘는 학생들이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고, 이 학생 역시 그럴 것이다.


 "쌤, 무슨 생각해요?"


 나는 아이의 눈을 진실되게 바라봤다. 그래서 열심히 가르쳤다.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를 도와줬고, 취약계층인 만큼 집안일도 어느 정도 도와줬다. 수소문해서 학년에 맞는 학습지를 구해다 주기도 했다.


 내게 있어 손해면 손해였지 이득되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뻤다. 봉사활동이니까. 봉사활동이라는 것에 재미를 붙일 시기였다. 나 하나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기뻤다. 그래서 나는 학업과 봉사활동을 병행하며, 이 아이에게 투자했다.

 보살펴줬다.


 그런데 내가 예상한대로 자라나지 않았다.


 식물이라면 잘 자라났을텐데. 식물이 아니었다. 내가 마냥 공부만 가르쳤다면 몰랐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어느 순간 나는, 이 아이에게 너무 깊이 관여해 버렸다.


 "쌤, 어디 가는데요."


 내가 이 학생에게 가지고 있던 얄팍한 생각만큼 가벼운 주제가 아니었다.


 이 아이에게 있어서 나라는 존재는 자신의 입장을 완전히 바꿀만한,

 지금까지의 자신과는 완전히 반대의 세상을 엿볼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쌤, 아니. 오빠. 나 좀 봐요."


 관심은, 무겁다.

 사랑은, 더욱 무겁다.


 내가 아이에게 보낸 작은 관심이 무거운 사랑이 되어 내게 쏟아지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이 학생은 더이상 나와 처음 만났던 학생이 아니었다.


 나를 통해 세상을 보고, 나를 통해 일반적인 일상을 경험하고, 나를 통해 평범한 사회를 겪었다.

 부모가 없는 고아의 생활도

 교과서가 너덜너덜해질때까지 공부하던 순간도

 단전도

 단수도

 나와 관계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두 없어지고 있었다.


 내게 있어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순간이 그녀에게 있어서 하나의 빛이었다.

 고작 몇 만원의 전기세, 수도세

 고작 몇 권의 학습지

 웃는 얼굴로 마주앉아 같이 저녁을 도란도란 먹을 수 있는 상대.


 경험해보지 않은 인간이라면 몰라도, 이미 경험해본 이상 헤어나올 수 없다.


 일상이 뭔지 깨달은 이상, 다시 비일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것이다.



 "오빠 사랑해요. 저 버리지 마요."



 사람에게 관심을 준다고 올바른 어른으로 자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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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야근만 안하면 좀 더 쓸수 있는데

20~30분으론 2천~30천자밖에 못뽑는데 내일도 출근해야돼

야근하기시러출근하기시러일왜케많아흐에에에에에에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