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붕이가 카센의 자택에 머무른지 어언 한 달 째, 


늘  파란을 일으키고 다니던 텍붕이는 자신의 힘과 짐승같은 욕망을 다소 누그러뜨리는 것에 익숙해졌다.


싸움 도중 발작처럼 찾아오는 파괴충동은 아직까지 느낀 적이 없지만,


일상에서 샘솟는 승부욕이나 호승심 정도는 스스로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상향에 이변이 일어났다.



환상향의 잡몹, 최약체로 취급받던 요정들이 느닷없이 강해져 평소 자신을 무시하던 요괴나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한 여름에 눈이 내리거나, 한 겨울에 꽃이 피는 등 이러한 이상기후는 자연 그 자체인 요정들에겐 미쳐 날뛰게 만드는 마약이나 마찬가지였다.



환상향은 여름이었지만, 호수가 얼어붙고 낙엽이 지는 등 해괴한 날씨로 인해 


요괴들이 단체로 겨울잠을 자고 농지에 뿌려둔 씨앗까지 시드는 바람에 난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변에 하쿠레이의 무녀는 방에 누운 채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유로 인해 현재 환상향의 대부분의 장소에서 요정들의 장난이 횡행하고 있었다.


요괴와 인간들은 이 이변을 해결해줄 사람을 찾아 모리야 신사의 사나에, 홍마관의 사쿠야 등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들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헤에, 이변이요? 그거 좋네요, 아무도 해결하지 않으면 다들 신을 찾아서 강한 신앙이 모일 테니까."


오히려 사나에는 이변이 계속되도록 요정들을 쓰러뜨리려는 이들을 방해하기 위해 막아섰다.


홍마관의 사쿠야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사정은 알겠지만, 홍마관에 총력을 다하라는 주인의 명령이 있어 도와드릴 수가 없네요."


레이무 이외 이변을 해결할만한 이들마저 이변 해결에 대한 의사가 없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카센의 자택의 현관을 두드렸다.



"맹우! 여기 있지!"


문을 두드린 것은 니토리였다. 


그녀는 텍붕이를 찾기 위해 안개 속을 헤메고 짐승들에게서 도망치며 겨우겨우 카센의 자택에 도착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카센과 텍붕이가 현관으로 나갔다.



"아, 늪의 갓파로군요 여긴 무슨 일인가요."


"도, 도와줘!"


니토리는 텍붕이를 향해 간절하게 외쳤다.


텍붕이는 자신을 보며 도와달라는 니토리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니토리는 이상기후로 인한 계절이변으로 요정들이 날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의 말을 다 들은 카센은 니토리에게 물었다.


"신사의 무녀나 다른 사람들은요?"


"레이무라면 요정 같은 건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고, 사나에는 오히려 요정들 편에 서버렸어!"



이변을 해결해야할 무녀가 가만히 있는다는 말에 카센은 잠시 고민하더니 텍붕이에게 물었다.


"텍붕은 어떻게 할..."


카센은 곁에서 느껴지는 심상찮은 기운에 조심스레 텍붕이의 얼굴을 살폈다.



텍붕이의 표정은 요정들의 이변을 오락거리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요정들을 모조리 도륙할 것 같은 표정에 카센은 불안해졌다.


"자, 잠깐! 요정들이 조금 지나친 장난을 하는 것 같지만 그건 이변이라서 그런 거야! 죽이면 안 돼!"


텍붕이는 카센의 다급한 목소리에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힘조절은 익숙해졌다고.



자택 마당에서 텍붕이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변의 끼인 안개가 그의 몸에서 흐르는 열기에 아지랑이처럼 증발하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텍붕이는 굉음과 함께 안개를 날려버리며 마당에서 사라졌다.



요괴의 숲 상공, 하늘에 떠있는 텍붕이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신나보였다.


지금껏 무작정 휘두르던 힘을 스스로 조절하는 것에 자신이 생겼기에 


힘조절의 대상이 되어줄만한 것이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 요정들의 난동은 텍붕이에겐 호재나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일격에 쓰러져 눈앞에서 아스라이 사라지는 그녀들을


오랫동안 상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군침이 싹 도는 텍붕이었다.


그때, 텍붕이의 눈에 무언가 보였다.



흥분한 텍붕이의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릴리 자매였다. 


텍붕이는 곧장 기와 마력으로 발밑에 미세한 발판을 만들어내어


그녀들을 향해 도약했다. 


릴리 자매와 텍붕이 사이의 거리는 약 300m 가량이었지만 텍붕이는 단 한 순간에


그녀들이 있는 현무의 늪에 커다란 크레이터를 세기며 착지했다.




"히, 히이익!" "테, 텍붕이..."


한창 갓파들의 늪을 어지르던 릴리 자매는 하늘에서 떨어진 텍붕이를 보고 뒷걸음질쳤다.


그녀들이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한 인간이 죽지 않는 몸을 가진 요정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요정들이 사라지고나면 남은 잔해를 팔아치웠다는 이야기.


두 자매는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가까이 오지마!" "도, 도와주세요..."



확실히 그녀들은 평소보다 강하다. 


봄이 아니면 들짐승조차 어쩌지 못할 정도로 가녀린 그녀들이 여름인 지금 갓파들을 늪에서 몰아내고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몸의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


봄이 한창일 때에도 그녀들은 텍붕이의 몸에 작은 흠집하나 내는 것조차 불가했으니까.



"브, 블랙...?"


텍붕이가 화이트를 향해 한 걸음 내딛은 순간 사방의 환경이 바뀌었다.


봄처럼 화창했던 주변은 어느세 새카맣게 가득 메워져 자신과 텍붕이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것은 어둠을 조종하는 정도의 능력과, 모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텍붕이가 


자신이 오직 싸움에 몰두할 수 있도록 방해되는 지형지물 그리고 시간까지 배제해버린 결과였다.


텍붕이는 잔뜩 겁먹은 화이트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싫어.... 싫어! 저리 가!"


릴리는 다가오는 텍붕이를 향해 포화를 퍼부었다.



하지만 텍붕이의 몸엔 먼지만이 쌓일 뿐이었다.


텍붕이는 아무런 감흥조차 느낄 수 없는 화이트의 공격에 지루해진 표정으로 점점 더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리 가라니까!"


어두운 공진 속에서 봄빛의 꽃잎들이 빗발친다.


그 탄막은 닿으면 꽃이 피듯 화려한 폭염을 만개했다.


화이트의 탄막은 어두운 공진 속을 환히 비추는 불꽃놀이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피해도 고작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텍붕이는 눈부신 섬광 속에서 유유히 걸어나와 화이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전력을 다해 자신에겐 필살기나 마찬가지였던 스펠을 썼지만,


쓰러뜨리기는 커녕 천천히 걷는 것마저 멈출 수가 없었다는 사실에 화이트는 절망했다.


"아....아아..."



텍붕이가 릴리의 한 치 앞에서 손을 뻗자 동물의 내장이 짓뭉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커억, 쿨럭, 컥..."


단 일격에 장기 대부분이 먹통이 된 릴리는 구역질을 했다.


요정이라도 사람의 몸인지라 비워내는 동시에 호흡할 수는 없는지


화이트는 꿀럭거리며 계속해서 체액을 뱉어내다 숨이 가빠져와 바닥을 긁으며 급기야 실금하기 시작했다.



화이트가 죽어가는 모습에 텍붕이는 시간을 멈춘 채 그녀의 몸을 바로 뉘이고 비틀린 장기를 제자리로 보내놓은 뒤


숨을 쉴 수 있게 위와 식도에 남은 것들을 토해내게 했다.


이윽고 다시금 시간이 흐르자 릴리는 콜록거리며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옷이 축축하게 젖은 것도 모르고 화이트는 발버둥치듯 텍붕이에게 연신 죄송하다고 빌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제발... 제발 때리지 말아주세요..."


그 말을 듣고 텍붕이는 주먹을 쥐었다. 누군가를 때리기 위해 쥔 것이 아니었다.


카센의 밑에서 수련하는 것은 전투에 관련한 것이라면 앞뒤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것을 고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잊은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텍붕이는 릴리 자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향했다.


카센의 자택, 텍붕이는 고개를 푹 떨군 체 카센의 앞에 서 있었다.




"본성을 바꿀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건가요."


텍붕이는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다.


수련의 성과를 느끼고 시험하기 위해 뛰쳐나갔던 것과 전의를 상실한 릴리에게 호기심으로 일격을 가했던 것 등


카센에게 본인이 느꼈던 추악한 모습에 대해 말해주었다.


카센은 여지껏 볼 수 없었던 진중한 표정으로 텍붕이의 말을 듣고서 말했다.



"텍붕, 지금껏 당신이 해왔던 일은 쓸모없지 않습니다, 당신이 하려는 것은 근원을 뒤집는 것이에요."


"그것은 단 한 순간에 이뤄낼 수 없어요, 억지로 이뤄내려고 한다면 불이 붙은 산에 바람을 일으키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니 전부 태워버립시다."


"완전히 다 타버려 재가 된 산에 새싹이 돋아 다시 울창한 숲이 될 때까지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괜찮습니다."


"당신이 하려는 일은 그런 거니까."


텍붕이는 그늘진 얼굴로 카센에게 바뀔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텍붕이의 등을 감싸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당신의 스승이, 제가 여기 있겠습니다."


텍붕이는 아무 말없이 그렇게 몇 분을 가만히 있었다.


카센은 차를 타서 텍붕이에게 주었다.


"조금은 진정이 됐나요?"


그렇다고 텍붕이가 말하자 카센은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이변을 해결하러 갈까요, 힘조절이나 수련의 성과가 아니라 해결사로서 이변을 처리해봅시다."


텍붕이는 차가식기 전에 돌아오겠다며 다시 자택을 떠났다.


떠나가는 텍붕이를 보며 카센은 미소를 지었다.


"이거 냉차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