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얀순의 예상대로 그날 라이브의 반응은 매우 폭발적이었다. 


라이브를 보고 있던 30만 명에는 단순히 숨겨둔 일반인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에 놀라는 팬들도 있었고, 그와 상관없이 계속 좋아요를 누르며 호응하는 팬들도 있었으며, 이와중에 황급히 노트북을 키고 기사를 쓰기 시작한 연예부 기자들도 있었다.


['천만 팔로워' SNS스타, 일반인 남자친구 공개...충격!]

[모델 김얀순의 고백...'저 남자친구 생겼어요']

[팔로잉 0명이던 그녀가 최근 팔로잉한 한 사람은 누구?]


이에 질세라 사회 이슈들을 다루던 많은 유튜버들도 사이버 렉카 본능을 발동하여 황급히 영상을 제작해 나갔고, 네이버의 인기 검색어 차트는 '김얀순 남자친구', 'hyojayanbunbun', '김얀순'이 다양한 검색어들을 끌어내리고 우뚝 솟아올랐다.

지금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또다른 당사자 얀붕에겐 느닷없이 벼락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겠지만 이로써 세간과 대중들에게 김얀붕이라는 이름이 그녀의 남자친구라는 인식이 뿌리박히게 된 것이다. 


"이제 안 놓칠 거야...쪽♡"


성황리에 라이브를 종료한 얀순은 전처럼 또다시 그릇된 팬심으로 불타오르던 그의 인스타 계정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는 프로필 사진 속의 그에게 입맞춤을 나누며 편안하게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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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장난이 도를 넘었다.

꺼진 라이브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착잡한 마음으로 화면을 껐다. 그러나 곧바로 며칠 전처럼 폰은 쉴 틈 없이 웅웅거리며 화면이 켜지며 수상한 DM들을 마구 받아들이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렇게 시달려야 하는 거지? 


그냥 건방지게 DM을 주고받아서?

핑계를 대며 식사 약속을 거절해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건낸 사과를 단칼에 물리쳐서?


점점 그녀를 알게 되겠다 싶다가도 계속해서 그녀는 이렇게 내 상식을 벗어난 행동으로 나를 곤란하게, 고통스럽게 만든다. 

마치 애완동물에게 감정적으로 구는 변덕스런 주인처럼, 잘 대해주고 마음을 쏟는 것 같다가도 이렇게 잔혹하고 무책임하게 밟아버린다. 


최친구 : 야 ㅅㅂ 혹시 지금 네이버에 김얀붕이 너임???

나 : 왜  

최친구 : 아니 

최친구 : 사람이 묻잖아ㅅㅂ 찐이냐???


친구놈이 기사를 보고 알았는지 계속 집요하게 카톡으로 묻기 시작했다. 하긴 그놈도 나처럼 김얀순 덕질에 시간을 많이 투자한 녀석이었으니 당연히 이런 반응이 나오겠지. 내가 지금 아니라고 해봤자 당장 쏟아져나오는 기사들 때문에 그의 대답을 회피하는 건 힘들었다.  


나 : 그래 ㅄ아 

최친구 : 홀리쉣

최친구 : 야 잠만


그는 감탄사를 내뱉고는 잠시 잠잠하다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한참 망설이다 마지못해 받은 나는 "야, 씨발! 어떻게 사겼냐고!?" 라는 녀석의 사자후를 듣는 것으로 통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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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서 진짜 김얀순한테 연락이 왔다고?"

"그래 개새끼야. 왜 이렇게 못 믿어?"

"아니 씨발아, 너같으면 이걸 믿겠냐. 하...혹시 너 집에 금덩어리 1톤 있는 거 아냐?"


나와 그녀가 아는 사이가 되기까지의 자초지종을 들은 친구놈은 못 믿겠다는 어투로 나에게 불평을 늘여놓기 시작했다. 

시발 나도 그녀한테 당하는 피해자라고, 최근에 김얀순 때문에 자살까지 고민했다고까지 얘기하고 싶었지만 너무 드라마같은 이야기라 현실감이 느껴지지도 않을 뿐더러 가뜩이나 나에게 증오감을 느끼고 있을 병적인 팬들을 생각하면 함부로 남에게 털어놓기가 꺼려졌다.     

    

전화를 끊은 뒤 나는 몇백 통이나 와있는 DM과 문자들에 학을 뗐다. 어떻게 평일 오전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 남에게 SNS 테러나 저지를까?


"씨발..."


머리가 지끈지끈해진 나는 일단 원흉을 제공한 그녀에게 DM을 보냈다. 

 

hyojayanbunbun : 얀순아

hyojayanbunbun : 내가 잘못한 것도 있고 한데

hyojayanbunbun : 장난이 너무 지나치잖아 

hyojayanbunbun : 어떻게 된 거야


기존과 다르게 강한 어조로 그녀에게 DM을 보내고 답을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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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잘 잤다♬ 음?"


긴장이 풀려서일까? 그녀는 한참동안 낮잠을 자다가 초저녁이 다 되어서야 잠에서 깼다. 아직 숙취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동안 응어리졌던 감정이 해소되어 오락가락하던 정신은 오히려 가벼웠다. 

다만 그녀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한 그의 DM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샤워실로 들어갔다. 


hyojayanbunbun : 얀순아

hyojayanbunbun : 나한테 뭘 바라는거야

hyojayanbunbun : 대체 뭘 원하냐고

hyojayanbunbun : 미친거 아냐?

hyojayanbunbun : 씨발 진짜 뭐하자는 거냐고   

ysun97kim : 뭐긴 내가 말한거 그대로징 (☞゚ヮ゚)☞ ♡

ysun97kim : 뉴스도 떴자나ㅎㅎ


그녀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채우며 그의 DM에 느긋한 어투로 답변했다. 지금 얀순에게 이런 그의 날선 DM은 오히려 어린 강아지가 캉캉거리며 짖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지금 얀붕이가 다급하게 왼손으로 자판을 누르며 화내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녀는 앙칼진 그에게 사랑스러움마저 느끼는 상태였다.   


ysun97kim : 나 아직 숙취때문에 얼얼햏ㅎ 

ysun97kim : 화내지말구 잘 생각해바

ysun97kim : 걍 찐으로 사귀는 것도 좋을듯!! 😉👉💏

hyojayanbunbun : 하 진짜ㅆㅂ


아마 그는 슬슬 다급함마저 느끼고 있을 테지, 벌써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연예 뉴스를 다루는 곳에서는 '김얀순의 남자친구' 얘기로 화제가 쏠린 상태였으니 가뜩이나 이미 며칠 동안 쓸데없는 관심을 받았던 그로서는 이런 그녀의 거짓말에 진절머리가 나는게 분명했다.

게다가 단순히 팔로잉을 했다는 걸 넘어서 연애 중이라는 거짓말까지 터뜨리며 얻은 주목이라 그 날선 협박의 수위와 숫자는 보나마나 더 심하면 심했지, 약해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금 얀순은 이런 그의 곤란한 사정따위는 전혀 알 필요도, 알 마음도 없이 그저 그를 독차지한다는 것에 마음이 쏠린 상태였고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선택을 정정할 마음조차 없었다. 오히려 당장 그녀는 욕조의 물이 차가운 것에 짜증이 더 나는 상황이었다. 

 


어느덧 물을 다 받은 얀순은 '씨발 미친년아', '차단한다'라며 거칠게 화를 내는 그에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주 태연하게 그에게 영상통화를 걸며 편안하게 욕조에 몸을 담갔다.


"늦게 받으며언~ 화낼 거야~♬"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숙취에 몸을 비틀비틀 흔들며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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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년.

정신이 나간게 분명하다.


손톱을 뜯으며 병원 뒤편의 공원에서 머리를 감싸쥐었다. 가만히 앉아서 한맺힌 DM과 메세지들을 보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 무작정 튀어나왔지만, 계속해서 걸려오는 그녀의 영통에 모처럼 새로 산 폰을 던질 뻔했다.


ysun97kim : 왜 안 받아ㅎㅎ

ysun97kim : 부끄러워서 그랭?

ysun97kim : 아님 내일 직접 볼까? 


"씨발년..."


그동안 그녀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것들이 모조리 날아가버렸다. 단순히 장난이었겠지, 근처에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겠지, 잘못했다고 느껴서 진심으로 사과하는 거겠지, 라며 내 나름대로 합리화하던 것들이 전부 무용지물이 됐다는 소리다.


결국 나는 그녀의 영상통화를 받았다. 


"아, 받았다♩♬ 우리 얀붕이...♡ 밖이야?"


반쯤 예상한 대로 그녀는 정상적인 몰골로 영상통화를 걸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김이 펄펄 올라오는 욕조에 누워서 나에게 손인사를 건내고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인적이 드문 곳으로 자리를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추운데 왜 밖에 있어~? 감기 걸리겠다♡"     

"..."

"아! 퇴원하면 나랑 같이 목욕할래? 여기 엄청 좋아~."

"...지금 무슨 짓이야."


두루뭉술하게 말을 돌리려던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가슴을 어필하듯 자세를 고쳐잡으며 자기 할 말만 할 뿐이었다.


"아, 맞다♡ 나 요새 관리하고 있거드은!? 봐봐, 나 몸 좀 어떤 것 같아?"

"미친년..."

"왜에에~!? 이거 때문에 나 좋아했었잖아♡ 아니야?"


변덕스럽고 자기 할 말만 하는 그녀지만 확실히 전세계의 아티스트와 사진가들에게 인정받는 그녀답게 매끈하고 우아한 몸매를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다만 이미 그녀에게 진절머리가 난 나에겐 별로 중요치 않은 이야기였다.



지금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 지금 순간에도 시시각각으로 병적인 사랑을 갈망하던 이들이 보내는 원한 섞인 DM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런 혼란스런 상황을 벗어나고픈 마음에 욕이 튀어나왔다.


"김얀순, 진짜 씨발 어떻게 할 거냐고."

"얀붕아아~."

"차단할거니까 니 맘대로 ㅎ"

"얀붕아." 

   

통화를 끊으려하자 그녀가 갑작스레 웃음기를 싹 털어내고 무표정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본래 차가웠던 그녀의 인상이 훤히 드러날 정도라 잠시 멍하니 그녀의 말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진짜 이대로 나랑 연락이 끊어졌으면 좋겠어?"

"...그래."

"좋아, 우리 얀붕이가 원하는대로 해줄게. 대신에."

"...?"

"우리 변호사님들도 그만 손 떼라고 해야겠네? 이제 나랑 상관없이 남남이니까?"

"뭐?"


얀순이는 정색하던 표정을 다시 아까 전처럼 풀고 방긋 웃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녀의 얼굴에서 밝은 인상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너한테 차였다고 펑펑 울면서 기자회견도 할 거야. 그러고 나서 바로 비행기 타고 해외 스케줄까지 싹 해치워야겠다~."

"..."

"어때? 이러면 얀붕이 너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겠어?"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나를 남친이랍시고 떠벌릴 때부터 이미 나는 그녀에게서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당장 통화 중에 그녀의 입에선 단 한 번도 지금 나에게 득달같이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병적인 팬들'은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지금도 고소가 두렵지 않은 팬들이 달려드는 마당에 그녀의 말대로 변호사가 손을 떼고 그녀가 헤어졌다고 말한다면 나는 분명 '김얀순의 남자친구'에서 '천하의 김얀순을 걷어찬 인간 쓰레기'로 전락할 것이다. 물론 방어할 수단은 더 약해진 채로.

이미 그녀는 사회적으로 나를 말살시킬 수단까지 갖춘 상태나 다름없었다. 


"..."

"에이, 얀붕이가 나한테 헤어질 리가 없으니까 한 소리지~. 뭘 겁먹고 그래~."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거야."

"아 맞다! 나 내일 다시 병문안 갈건데, 이번엔 맛좋은 전복죽이랑 뼈에 좋은거 사들고 갈 테니까 꼭! '공원 벤치'에 앉아서 기다려야 해?! 안 하면 나 삐질거야~? 그럼 끊을게~, 우리 얀붕이♡ 쪽"


그녀는 싱글생글 웃으며 자기 할 말만 늘여놓고선 폰의 화면에 입을 맞추고 통화를 종료했다.  


"..."


통화가 끝나자마자 근처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목이 막혀 컥컥대는 소리만 나온다.  

숨을 가쁘게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뱉는다.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눈물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저 환자복으로 떨구기만 했다.    

그날 가까스로 병실로 돌아온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하염없이 한참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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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딨지...?"


병원 앞에 마련된 작은 공원, 밖에 나가지 못해 갑갑해하는 환자들이 숨을 돌리는 장소이자 온갖 이야기들이 떠도는 한가로운 공간이었다. 

저번과 달리 이번엔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혼자서 병문안을 온 그녀는 양손 가득 짐을 든 채로 헤매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분명히 그가 여기 있을 텐데?


"아."


때마침 그녀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그 시선이 집중된 곳에는 추운 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느라 그랬는지 잔뜩 위축된 상태로 허공을 바라보던 그가 있었다. 


"얀붕아아~~♡"

"..."


얀순이가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통통통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갔다. 그는 그제서야 그녀의 인기척을 눈치채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이 그녀의 정체를 몰라서 망정이지, 만일 그녀의 이름과 얼굴을 알았다면 엄청난 난리가 났을 것이다.



얀순의 정체는 다름아닌 천만 팔로워를 거느린 유명 SNS 모델, 각종 매체들을 통해 대중들에게도 충분히 그 차갑고 신비주의적인 이미지가 박힌 연예인이었다. 정작 본인은 요즘 그런 이미지에 크게 관심이 없지만. 

   

"얀붕아~, 어제 말한 대로 전복죽하구! 뼈에 좋은 과일하고 요구르트 사 왔어! 깁스 풀면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응."

"많이 춥지? 잠깐 사진 하나만 찍고 들어갈까♬"


얀순은 멍한 표정의 남친을 자기 옆에 세워두고선 가방 안에서 폰을 꺼냈다. 슈퍼스타답지 않은 소박한 폰이었지만, 그녀와 남친의 셀카를 찍는 데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녀는 남친 김얀붕의 환자복이 보이지 않게 교묘하게 화면을 조절하고, 싱긋 웃으며 그에게 몸을 기댔다.


"자~ 하나, 둘, 쪽♡"


찰칵. 


얀순은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셀카를 찍는 척 하다가 그의 볼에 입을 맞추며 셔터를 눌렀다. 남친이 살짝 움찔하긴 했지만 사진은 꽤나 잘 나왔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잘 나온, 다정한 커플이 찍힌 훈훈한 셀카였다. 


"이런 건 같이 공유해야지~."


그녀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사진에 '우리 얀붕이, 아프지 말구 건강하자♡'라는 설명과 남친의 인스타 계정이었던 'hyojayanbunbun'을 해시태그로 추가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본계정 'kYANs'에 그 사진 한 장을 업로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