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붕이는 요정들이 날뛰고 있다는 홍마관 방향으로 향했다.


철저하게 저택의 경비를 맡아야할 메이링은 온데간데 없이 정문은 텅 비어있었다.


홍마관 안쪽에는 요정들이 자리잡은 체 화단을 어지러뜨리고 있었다.




"이번엔 여길 얼려보자!" 


"자, 벌레들아 여기가 너희들의 새로운 집이야!"


치르노는 작은 연못을 물고기까지 통째로 얼린 뒤 스케이트를 타고, 라바는 인분을 여기저기 흩뿌려 날벌레들과 축제를 벌이는 듯 했다.


대요정은 치르노와 스케이트를 타거나 반딧불이를 따라 빛을 내며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들의 작은 연회도 잠시, 텍붕이가 그곳에 등장하자 제일 먼저 반응한 건 대요정이었다.



"아... 텍붕이네요."


치르노는 흠칫하며 대요정의 안색을 살폈다. 평소라면 텍붕이를 보자마자 겁에 질려 벌벌 떨어 기절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대요정의 표정은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제 발로 걸어왔구나, 하며 복수의 대상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요정의 감정은 기상과도 같아 평소처럼 평온하다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장난꾸러기 소녀와도 같지만,


지금처럼 이상기후와 같은 계절이변이 벌어진다면, 뒤틀린 날씨처럼 그녀들의 심성도 뒤틀린다.


특히 대요정처럼 평소에 잠잠하던 요정이라면 더더욱 그 변동 폭이 크다.


대요정은 텍붕이를 향해 말했다.


"알아요, 저흴 막으러 온 거겠죠, 하지만 명심해두는 게 좋을 거에요, 여기서 저를 죽인다고 해도 저는 다시 살아날 거에요."


대요정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증오서린 눈으로 텍붕이를 바라보았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 살아나서 당신에게 복수할 거에요."


대요정은 어떠한 여지도 없이 텍붕이를 향해 탄막을 쏘아냈다.



두 사람의 기량 차는 누가 봐도 확연했다. 바로 곁에서 바라보고 있는 라바와 치르노조차 대요정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연히 요정들 중에서도 모범생이었던 그녀가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녀는 오직 눈앞에 있는 텍붕이가 너무나도 미웠다.



대요정은 있는 힘껏 텍붕이에게 달려든다.


마치 야생의 소동물처럼 그의 품에 달려들어 주먹을 날리고, 할퀴고, 깨문다.


하지만 그런 공격은 텍붕이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그건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공격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행동이었다.


그 증거로 전투에 임하는 대요정은 울고 있었다, 입을 앙다문 채 텍붕이가 어떠한 반격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 것을 계속해서 때리며 자신의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왜! 왜! 왜! 왜! 왜! 왜! 왜!"


그녀가 손을 뻗을 때마다 떨어지는 눈물은 꽃이 되어 떨어져간다.


텍붕이는 그저 묵묵히 그녀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주었다.


어떠한 반격도 하지 않고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지만, 


자신을 포함, 모든 것을 파괴하고 상처입히는 텍붕이의 힘이 대요정의 손을 붉게 물들였다.



"왜... 아무것도 안 하는 거에요..."


대요정은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손을 멈추고 텍붕이의 앞에 서있었다.


"왜... 아프게 했던 거에요."


텍붕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나 좋아했으면서, 대체 왜..."


대요정은 전의를 상실한 듯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텍붕이가 할 수 있던 것은 그저 그녀를 감싸안아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요정은 텍붕이의 품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대요정이 울다 지친 사이, 텍붕이는 치르노와 라바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싸울 마음은 없는 건지 지친 대요정을 걱정하는 눈치로 바라볼 뿐,


텍붕이를 경계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



"그만두라고 할 거야?"


라바가 말했다. 


"우리는 요정이야, 자연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들은 자연이 바뀌면 그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어."


"맞아, 요정인 이상 내 몸이나 마찬가지인 자연을 거스를 수는 없어, 우린 이럴 수밖에 없었다고."


텍붕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장난을 해야만 하는 건지 물었다.


그 질문에 라바가 말했다.


"눈이 내릴 때 너의 집에만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빈다고 해서 너에게만 눈이 내리지 않을까?"


텍붕이는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것인지 물었다.


치르노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이건 거스를 수 없는 거야, 인간들이 배가 고플 때 밥을 먹는 것처럼."


"맞아, 거슬렀을 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걸, 만약 거스른다면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고."


텍붕이는 고민했다. 이대로 그녀들의 말을 받아들여 장난을 치게 내버려 둘 것인지,


요청에 따라 그녀들의 장난을 멈추게 할 것 인지. 


하지만 텍붕이가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그 고민은 허사가 되었다.


"정말 양심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인간이네요."



하늘 위에서 바람을 일으키던 사나에가 요정들의 장난이 멈춘 것을 보곤 내려와 있었다.


사나에는 텍붕이를 경멸하듯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까지 제멋대로 굴어왔으면서 무슨 권리로 그만하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요?"


사나에는 이전 데이트에서 멋대로 행동하며 끝에는 자신을 때려눕혔던 텍붕이를 떠올렸다.


"뭔가요 이제와서 착한 척이라도 하려는 건가요? 눈 뜨고 못 봐줄만큼 안 어울리니까 그만두는 게 어때요."



"늘 하던 것처럼 찢고 부숴서 죽이지 그래요? 그 편이 훨씬 당신다우니까."


텍붕이는 사나에의 매도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자신의 그릇된 욕망이 초래한 결과이니 반박 따윈 할 수 없다.


그저 오래 전 자신을 되돌아보며, 후회할 뿐이다.


사나에는 텍붕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시시한 듯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지면으로 내려왔다.


"뭐, 신앙은 충분히 모을만큼 모았으니까 요정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관심없어요."



텍붕이 앞에 선 사나에의 기운은 도무지 그녀의 것이라고 볼 수 없을만큼 이질적이었다.


인간이지만 신의 성질을 띄는 현인신인 그녀는 여타 신들과도 같이 자신에게 신앙이 쌓일 수록 강해지기에,


바람을 일으켜 요정의 소행인 것처럼 속여 사람들과 요괴에게서 신앙을 모았다.


하지만 신의 성질이니 힘이니 하더라도 그녀는 살아있는 인간이고 고작 성인도 되지 않은 나이다.


이처럼 막대한 원망과 공포로 모인 신앙을 감당할만큼 능숙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사나에의 몸은 지금 고통에 몸부림칠 게 분명했다.


그녀는 승부가 시작했음에도 가만히 있는 텍붕이를 향해 비웃듯 말했다.



"왜 그러죠? 당신이 좋아하는 죽고 죽이는 싸움이에요, 사양하지 말고 덤벼요."


거대한 힘과 신앙에 섞인 원망에 사로잡힌 듯 사나에는 성격이 뒤바뀐 것처럼 호전적으로 변모했다.


텍붕이를 압도하는 힘을 지녔다는 것에 우쭐해진 사나에는 호기롭게 웃으며 텍붕이에게 선공하라며 손짓했다.


텍붕이는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빠르게 사나에에게 쌓인 신앙을 흩어질 수 있게 제압하기로 마음먹었다.



"크으으윽!"


싸우기로 마음 먹은 이상, 텍붕이에게는 더이상의 미혹은 없었다.


텍붕이는 지축이 울릴만큼 강력한 도약과 함께 사나에의 빈틈투성이인 중심부를 공격했다.


묵직한 충격에 사나에는 정원 한 가운데에서 정문까지 내동댕이쳐졌다.



하지만 그 정도 공격 따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사나에는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일어났다.


"제가 착각했었네요, 당신이 이렇게까지 약할 줄 알았다면 이렇게까지 일을 벌리지 않아도 충분했을 텐데."


사나에는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웃으며 사방에 폭풍우를 불러일으켰다. 



바람에 흩날리는 흙먼지와 돌조각이 마구잡이로 텍붕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텍붕이는 다리를 휘둘러 몰아치는 바람을 꺾고 사나에에게 달려들었다.



다시 한 번 더 사나에에게 일격을 꽂아넣었지만, 조금 전의 타격과는 다르게  손에 느낌이 전혀오지 않았다.


사나에는 한쪽 팔로 가볍게 텍붕이의 일격을 막아낸 상태였다.


"그런 공격에 당할 리가 없잖아요!"


사나에는 텍붕이 저 멀리 집어던졌다.



공중에 몸이 뜬 텍붕이는 나이프를 여러 갈래로 던져 피할 수 없는 사각에서 그녀를 공격했다.



칼날이 땅에 튕겨 그녀의 뒷덜미를 노리고 날아가는 순간, 텍붕이는 성공을 예감했지만 


사나에는 그 칼이 몸에 닿기 전에 미소지으며 텍붕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후면에서 칼날을 밀어내는 풍압이 폭발해 나이프를 날려버렸다. 


"그런 허튼 수작 따위에 당할 거라 생각해요?"


사나에는 우두커니 서서 텍붕이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고는 그가 착지하자 다가가며 말했다.


"당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당신을 쫓아다니며 싸우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고 분석했어요, 그런 얕은 수 따윈 통하지 않아요."


텍붕이는 주먹을 꽉 쥐며 그녀가 이 싸움을 위해 얼마나 시간을 쏟았는지 느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찬사와 최대한의 배려로 전력을 다해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질리지도 않고 똑같은 공격만, 제가 우스운 건가요?"


공격을 흘려낸 사나에는 계속해서 같은 공격만 하는 텍붕이를 비난했다.


하지만 텍붕이에게 이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텍붕이가 길고 긴 인고의 시간 동안 수련한 것은 화려한 탄막을 뿌리거나 나이프를 던지고 레이저를 발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세를 취하고 정권을 뻗는, 무도로서의 기본 중의 기본.


끝없는 시간을 반복한 만큼 텍붕이에게 이보다 더 완성된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역병과도 같은 어두운 기운이 스멀거리며 뻗어나와 텍붕이를 급습했다.


그것을 보마자마 텍붕이는 황급히 사나에에게서 떨어졌지만, 두 팔에 달라붙은 기운은


빠르게 텍붕이의 팔을 좀먹어가고 있었다.



"크으으윽! 또..."


다시 한 번 더, 텍붕이는 그녀에게 정권을 뻗었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텍붕이의 전력이자,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처음엔 공격을 흘려내던 사나에도 어느 순간부터 텍붕이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그야 당연하다.


인간에게 허용된 시간 그 이상을 단 한 가지에 쏟아부은 인간이 모든 것을 바쳐 완성한 것을


이제 막 싸움에 눈을 뜬 사나에가 헤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힘의 간격은 컸다. 


사나에의 공격 한 번 한 번이 텍붕이에겐 더없이 치명적이었다.



그럼에도 텍붕이는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몸이 으스러지고 부서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눈앞의 있는 소녀가 과거의 자신처럼 보이기에,


그 수렁과도 같은 곳에 빠져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완전히 만신창이가 됐네요, 괜찮아요 이제 곧 끝내줄 테니까."


격렬한 난투 속에서 텍붕이와 사나에는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최후의 최후까지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사나에의 말대로 이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었다.


텍붕이는 이제 자신에게 허락된 공격은 단 한 번, 이것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 지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텍붕이는 그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전투와 부상에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지도 않았고, 


미친듯이 끓어오르는 고양감과 흥분도 없었다.


눈앞의 있는 소녀를 완벽하게 제압해내기 위해,


남은 모든 것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얄궂게도 텍붕이의 공격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 순간, 주마등처럼 이전의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에 스쳤다.



하지만 그 머나먼 주마등이 전부 흐르기도 전에 사나에의 공격이 먼저 텍붕이의 몸에 닿았다.


사나에의 손톱이 텍붕이의 배를 갈라내었다.


근육이 찢겨 그 사이로 장기의 말단이 흘러내린다. 


사나에는 힘없이 쓰러지는 텍붕이를 보았다.


이윽고 푸른 잔디를 붉게 물들여가는 모습을 보며 뭐라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이 솟구쳤다.


"드디어... 드디어 해냈어! 텍붕이를...."


기쁨, 행복, 신남, 감정이 솟구친 사나에는 방방 뛰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미소로 가득 찬 얼굴은 이내 피로와 역겨움으로 가득 찼다.


사나에는 난생 처음 바닥에 흩뿌려진 피와 살점 그리고 텍붕이의 흘러내린 장기를 보곤 구역질을 했다.


"우웩, 우웩..."


속에 쌓인 것을 내뱉은 사나에는 눈물을 닦아내며 일어섰다.


"...돌아가자, 이제 다 끝난 거야..."


사나에가 등을 돌려갈 때, 오싹한 공포와 함께 그녀의 머릿속에 의문이 스쳐지나갔다.


무엇이?


뭐가 끝났다는 거야?



자신의 눈으로 죽음을 목격했을 터인 텍붕이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 몸은 여전히 찢어지고, 여기저기 흘러내려 있었지만, 움직이는 것은 분명했다.


사나에는 다시 일어선 텍붕이를 보며 아연실색했다.


"어, 어떻게 아직도... 분명히 죽었는데!"


사나에의 물음에 텍붕이는 피를 뱉어내며 대답했다.


기억해냈다.



사나에는 텍붕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금 일어서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은 처음이었기에, 


사나에는 자신이 텍붕이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도 잊고 공포에 떨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난 여전히 살아있다, 텍붕이의 말에 사나에는 이를 악 물고 그를 공격했다. 



하지만 공포에 경직된 사나에의 공격은 아무리 빈사 상태의 텍붕이라도 막아내기 충분했다.


오히려 간격조차 잊은 체 무리해서 앞으로 나온 사나에를 텍붕이 공격했다.



"꺄아아악!"


그녀의 몸이 저만치 떠올라 나가떨어졌다.


완전히 탈진된 사나에는 초주검처럼 보이는 텍붕이의 모습에 벌벌 떨었다.


"마, 말도 안 돼... 대체 정체가 뭐야, 정말 인간인가..?"


텍붕이는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나도 모른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텍붕이의 혼신을 다 한 일격에 사나에는 완전히 쓰러져버렸다.


사나에가 쓰러지자 그녀의 몸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라 하늘로 흩어졌다.


하늘이 다시금 맑아지고 사나에에게서 느껴지던 이질적이 기운이 점점 옅어지자 텍붕이는 안심했다. 



사나에를 오두막에 옮긴 텍붕이는 그녀를 눕혀놓고는 자신도 정신을 잃듯 쓰러지고 말았다.


점점 점멸을 반복하는 자신의 두 눈이 영원히 감기지 않기를 빌며, 텍붕이는 그대로 잠에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