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 품속엔 그녀가 있다.


아직 서로의 머리에 남은 물기가 다 마르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평소처럼 내 품속에서 매혹적이다가도 마치 저 하늘처럼 티 없이 맑은 눈을 반짝이며 몸을 잔뜩 웅크리고있었다.


"얀붕아, 나 손잡아줘~"


"응."


"헤헤....얀붕이 나 뽀뽀해줘♡"


손을 꽉 맞잡은채 복숭아처럼 탐스럽고 사과처럼 붉은 입술을 나에게 내미는 그녀.


"으응...."


'쪽♡'


입맞춤 한번에 그녀는 얼굴 가득 홍조를 띄우며 이불 속에서 어린 아이처럼 꿈틀거리다가도, 나를 터트릴듯 꼭 안았다. 마치 부모의 품을 떠나기 싫어하는 어린 아이처럼.


창문 가득 들어온 밝은 아침 햇살과 차가운 공기가그녀의 곱고 윤기가 도는 머릿결과 살결, 그리고 벽에 걸린 큼지막한 가족사진과 두 사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한번 훑고 지나갔다. 그 미세한 감촉은 피부를 타고 서서히 그 남자와 그녀의 체온에 녹아들었다.


'스윽.....'


"얀붕아, 나 밥 하고 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응, 얼마든지"


그녀는 마치 벌레가 허물을 벗고 잠에서 깨듯 이불을 털어벌인 뒤 종종걸음으로 주방을 향해 뛰어갔다. 때론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다가도 저런 어른스러움에 침대 위에 걸터앉아있는 남자는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참, 내가 저런 여자친구를 만난것도 인생에 다시없을 행운이라니까.'


본래 인간의 특성이랄까, 소중한것들을 막상 처음엔 알아보지 못하다 조금 늦었다싶은 시간대에 확실히 알기 마련이다.


아직 몸뚱아리가 현재 그들의 반의 반밖에 안될 땐 그저 서로가 서로를 유약하게보고 이끌어갈려 했건만, 정작 또 하나의 소중한것이 사라지자 평소 가까이하던 둘의 사이가 오히려 더욱 돈독해지니 이 또한 참으로 아이러니랴.


"잘먹겠습니다!"


"맛있게 먹어, 얀붕아!"


차가운 쇠숫가락이 따뜻한 밥과 국의 온도를 받아드리며 그들 각자의 입으로 음식의 맛을 전했다. 두 사람 모두 책상을 경계로 마주앉아 가슴 한켠에서 느껴지는 어느 공허함을 채워주기 위해 서로 좋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참, 얀순아. 우리 오랜만에 나가볼까?"


"응...?"


갑작스러운 제안에 숫가락질을 하던 그녀는 크고 동그란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갑자기 왜? 어디로 가...?"


마치 이 공간을 떠나기 싫다는 듯, 어딘가 불안한 목소리로 묻는 그녀.


그런 반응은 이미 예상했다는듯 그는 입을 열었다.


"얀순이랑 나 너무 집에서만 틀어박혀있었잖아. 가끔 나가서 햇빛도 쬐고 바람도 쐬야 건강을....."


"그래도, 그래도 이 집이랑 마당은 엄청 넓잖아. 그리고 우리 평생 여기있어도 될만큼 돈도 많은데......굳이 나가야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과거 찬란하고 행복했던 많은 기억과 오랜 추억이 깃든 이 공간을, 혹시 영영 돌아오지 못할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그녀는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음.....그럼 얀순이는 여기 있고, 나 혼자 잠시 나갔ㄷ....."


"아...안돼!!!!!"


그녀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겠다는 말 한마디에, 그녀는 마치 도토리를 발견한 깊은 산속 어미다람쥐마냥 뛰어올라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듯, 조금 세어나가 흐르는 눈물 몇방울로 오히려 더욱 빛을 바라는 눈망울로 그를 바라본다.


그는 씩 웃으며 그녀를 따스한 품속에 안은 뒤, 손으로 그녀의 고운 머릿결을 살살 쓰다듬었다.


"아이고, 농담입니다 농담~. 내가 어떻게 얀순이 너를 버리고 떠나겠니....."


"안돼, 안돼.....차라리 나랑 같이가자....혼자가면 절대 안돼...."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훌쩍거리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는 한동안 그 자세 그대로 몸을 고정하고는 역할극에서 흔히 사용되는 인형들처럼 잠시 눈을 감은채, 그들만의 세계로 잠시 눈을 감으며 몸을  흔들어주었다.




잠시 뒤,



"얀순아, 준비 다 됐지?"


"응! 이제 나가자~"


그날 이후 한동안 스스로를 구속하다 오래간만에 세상 밖으로 나가는 날 답게 하늘은 구름한점 없이 맑으며 덥거나 건조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춥지도 않은 그런 날이니 마치 음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천지 만물이 평안할것이라는 말이 실현되는 기분이라더라


하늘에 떠있는 햇살보다 서로를 더 아름답게 여기는 두 남녀는 그렇게 손을 꼭 맞잡으며 밖으로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