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 ……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 



갑작스런 이별 통보. 


평정을 유지하지 못한 채 연신 흔들리는 동공. 


그 사이로 보이는 서럽게 울고 있는 너. 



" 왜… 왜,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어? 내 사랑이 너무 모자랐나? 내가, 내가… . " 



" … 아니야. 오히려 너무 완벽했어. 그렇기에, 그래서… . " 



흐르지 못하는 눈물을 차마 막지 못한 그녀의 얼굴에선 그칠 줄 모르는 눈물이 몇 분이고 계속되었다. 


꾸역꾸역 울음을 참으려고 해도, 그렇게나 슬퍼하고 있잖아. 그러면서 도대체 왜… . 



" 나라는 사람은, 너에게 아직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니까. "



"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말해줘. 내가 질린거야? 내가 너무 너를 힘들게 했어? 내가 미안해. 제발 이별만은… . "



" 제발, 제발 사과하지 말아줘. 네가 잘못한 건 단 하나도 없다고! " 


" 내가, 내가 너무 열등해서 그래. 너라는 사람에게 무엇 하나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이 매번 너에게 받기만 했어. " 


" 난 단지 네가 있어서 행복했는데. 사랑받고 있다 생각해서 너무나도 행복했는데. 그런데, 그런데… . " 



" 도대체 왜 네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나에게 지금까지 사랑을 줬잖아. 우리 행복했잖아? " 


"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쭉 행복할 일만 남았는데 도대체 왜 뭐가 문제라서 헤어지자 하는 건데? " 



" …… 너는, 끝까지 완벽한 사람이구나. " 



이제 눈물을 억제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이 볼을 타고 멈출 세 없이 그녀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마지막인 것 마냥 해맑게 미소짓는 그녀. 


그렇게 웃지마. 제발 이런 때에 웃지 말라고. 그런 소릴 내게 하지 말라고. 


우리 사랑하잖아. 그러면 헤어지면 안되는 거잖아. 


서로가 사랑하기에 붙어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너는, 너는 도대체 왜… . 



" … 내가, 싫어졌구나. 차라리 그렇다고 말해줘. 그러면, 그러면 조금이라도… . "


" 덜 아파할 수 있으니까. " 



" 내가 널 도대체 어떻게 싫어해.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하는데. 아, 아아. " 


" 있잖아. 나는 널 사랑하기에 지금 네게 헤어지자고 말하는 거야. "


" 사랑은 말이야,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 거래. " 



" 그럼 우리가 틀린 것은 단 하나도 없잖아. 너도 날 사랑하고, 나도 널 이렇게 사랑하는데 도대체 왜? " 


" 왜 이별이라는 말을 꺼내는 건데? " 



" … 사실 말야. 그런 네 친구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어. " 


" 너는 왜 나 같은 애랑 사귀는지 모르겠대. 나는 너에 비해서- " 



" 그만, 그만해 제발. 그딴 개자식들이 우리 사이를 제대로 알고 있을리가 없잖아. "


" 사랑하면 돈이고 뭐고 그게 다 뭐가 중요한데.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있어? 아니잖아. " 


" 돈이 없으면 사랑을 못해? 아니잖아. 도대체 네가 뭐가 부족한데. 남들 얘기를 왜 듣는데. " 


" 네 남자친구는 나잖아. 그럼 나만 믿어주면 되는 거 아니야? 왜, 왜 그딴 새끼들 말을 듣는 건데… . " 



" … 본인은 모르는 게 있대. 제 3자 입장에서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 


" 그 얘기를 듣고, 몇 날 며칠을 계속 생각했어. 잠도 제대로 오지 않더라. " 


" 바로 핸드폰만 봐도 너는 내게 사랑한다 말해주고 있는데. 잘자라며 말하고 있는데. " 


" 난 왜 인지 계속 그런 생각이 들더라. 만약, 만약에 네 여자친구가 내가 아닌 다른 여자애 였으면. " 


" 너는 조금 더 행복했을까. 이런 슬픔도 겪지 않았을까 하고. " 



" 씨발, 제발 그만 좀 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너인데 왜 너는 그런 생각을 하냐고. " 


" 내게는 너라는 사람이 내 전부인데 왜 너는 날… . " 



" … 미안해. 진짜, 진짜 미안해… 내가, 내가 조금 더 완벽해지면 그때 돌아올게. " 



" 제발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 난 지금 너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 


" 네가 주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왜 넌, 도대체 왜, 왜? " 



" …… 나같은 사람이 네 여자친구라 미안해. 언젠가, 내게 당당하게 다시 나타날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줄래? " 


" 미안하고… 사랑해. " 



" 못 기다려. 못 기다린다고! 지금 나는, 야. 가지마. 자기야, 가지마… . " 




너와 만나기 전 불과 20분 전의 주홍빛 노을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토록 비참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온갖 서러움이 몰려온다. 


등 한번 돌리지 않고 애타게 너를 부르고 있는 나를 무시하며 너는 내게서 멀어진다. 


가지말라고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아파하면 사랑이 아니잖아.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명 사랑인데.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데. 


왜 이토록 서로를 아프게 하냐고. 나는 너라는 사람이 필요했을 뿐인데. 


어느덧 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아. 이런 감정이구나. 


가슴에 구멍이 뚫린 느낌이다. 


망가진 인형과도 같았다. 


머릿속엔 너와의 추억이 아직도 아른거리는데,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비참하기 짝이 없구나. 



노을이 진 채 마지막으로 환한 빛을 밝히고 있던 태양이 사라졌다. 



너도 내게서 사라졌다. 


그 밝았던 빛과 함께. 


빛 한줄기 없던 세상이란 이토록 어두웠던가. 


내게 있어서 너라는 빛이 사라졌기에 그런 걸까. 





















쉽게 말하면 집안이 유복했다. 


부족할 것 하나 없이 살아왔고, 여자친구도 있던 내게 이 이상의 행복이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그 모든 것이 가증스러웠다. 


내가 조금 힘든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상황이 달랐을까?




연인 사이는 대등할 것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너는 이게 마음에 걸렸구나. 아직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랑하면 그런 것 따윈 필요 없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가 널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데. 


너는 아니었구나. 이런 내가 부담스러웠을까. 


매번 기념일을 챙겨주며 선물을 주던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런 때에도 부담스럽다고 생각했을까. 


너와 함께 있는 게 즐겁고 행복하기 그지 없어서 매번 네게 사랑한다 말하고, 너에게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런 나와, 자신을 비교한 거니. 


내가, 그래서 싫어진 거니. 


모르겠어. 하나도 모르겠다고. 


넌 나를 사랑한 게 맞니.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잖아. 


왜, 왜 나를 떠나는 건데. 





그딴 개소리를 짓거린 친구에게 왜 그런 소릴 했냐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되려 들려오는 사과.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한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화풀이를 하고 싶었는데, 씨발 그게 뭐가 문제냐고 나한테 지랄이라도 해주길 바랬건만, 왜 사과를 하는 건데. 


제 분에 못 이겨 교실 창문을 부숴버렸다. 


살갗이 찢어져 핏방울이 떨어진다. 바닥엔 피로 이루어진 웅덩이.


모두가 당황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이 학교엔 이제 너라는 사람이 없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데. 


내가 왜 학교를 다녀야 할까. 니들은 왜 그딴 눈으로 날 바라보는데. 


니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기분을 아냐고. 


화풀이 할 곳 하나 없이 착하게만 살아온 내 기분을 니들이 아냐고. 


모르겠다 이제. 




교무실로 끌려갔다. 


부모님을 불러와야 한다고 한댄다. 


지랄도 병이지. 창문 값만 주고 끝내면 되잖아. 




부모님과 싸웠다. 


몇 년 만에 싸운지 모르겠다. 


감정이 요동쳤다. 나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너라는 사람이 사라졌을 뿐 인데, 난 이토록 망가지는구나. 






봄이 끝나가려 한다. 화사하게 피었던 꽃들이 전부 시들거나 떨어졌다. 


아직 피어있는 꽃이 눈에 차마 들어오지 않는다. 


내게 있어선 너라는 사람이 제일 예뻤는데. 




여름이 끝날 때까지 단 한번도 덥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모르겠어. 왜 이토록 차갑기만 한 걸까. 겨울이 벌써 온 걸까. 




가을. 유난히도 쌀쌀한 날들이었다. 


발에 밟히는 낙엽이 부스러지는 소리가 싫었다. 


내 심정이 이럴까. 




겨울이 시작되었다. 


고등학생의 마지막 겨울. 전학 가버린 너는 뭘 하고 있을까. 


하늘엔 첫눈이 내려. 내 곁엔 아무도 없어. 여긴 네 자리니까. 


너는, 누구와 함께 있니. 


혹시 너도 날 생각하고 있을까. 


그 화사하게 밝게 내리는 눈과 새하얀 세상이 전부 다 까맣게 보였다. 


모르겠어 이제. 


작년만 해도 새하얀 첫눈을 너와 함께 맞이해 기뻤는데. 


너와는 영원할 거라 바보 같은 생각도 했었는데. 


다 부질없구나. 나도 이제 널 잊어야 할까. 


아니, 잊을 수 있을까.




봄이 찾아왔다. 


졸업식. 흩날리는 벚꽃. 한없이 밝은 색으로 물든 세상. 


왜 내 주변만 이토록 어두운지 모르겠어. 


그 틀에서 빠져나오기가 너무 힘드네. 


…… 아, 그렇구나. 나는 아직 너라는 사람이 있는 세상에 갇혀 살고 있었구나. 


아니, 나를 그곳에 스스로를 가뒀구나. 


너라는 사람을 이제 나도 보내줘야 할 때구나. 


사랑한 만큼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너와 만나지 못한 시간이 정확히 1년을 채운 날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알고 있었기에 정정했다. 


너와 헤어진지 1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 오늘 빠지는 사람 없지? " 



" 나 집이 멀어서 그냥 집에 간다. " 



" 또 거짓말하네. 너 원룸 잡은거 다 안다. " 



" 누가 말한 거야 도대체? "



대학 생활은 즐겁다고 말하면 즐거웠고,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렇지 않았다. 


자기 생각하기 나름이란 소리다. 원만한 인간 관계. 적당히 맞춰가는 학점.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히 싫은 점이 있었다면. 



" 응? 내가 말했어. 앗, 이거 혹시 말하면 안되는 거였어? " 



저 여자애가 문제다. 


술자리를 싫어하는 것도 전부 같은 과 여자애들이 항상 포함되어 있었기에 가지 않았던 것인데. 


그 날 이후로 여자를 멀리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걸 다시는 반복하기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성을 자연스레 멀리하기 시작했다. 혹여 쓸모없는 감정이 생긴다면 나는 또 상처 받고 말 테니까. 


그럼에도 그 허물을 자연스레 부숴오던 한 여자애가 있었다. 



" 하아…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 



" 그렇게 됐으니, 이따 저녁7시 까지 빠지지 말고 오라고. 특히 너 임마. " 



" 아 알았다 알았어. " 



몇 달간 겨우 지켜왔던 나만의 법칙이 오늘로써 깨지는 구나. 


뭐 됐다. 대학에 연애를 목적으로 오는 골 빈 새끼들도 있는데. 


나라고 계속 자리를 피하면 겉돌게 뻔하겠지. 


슬슬 나도 잊어야 할까. 이 기억 한 켠 에서 지워지지 않고 계속 아른거리는 그녀를. 






" 아니 그래서, 과대 진짜 돈 줘서 한 거라고? " 


" 한다고 바로 시킬 줄은 몰랐지 나도. " 



시끌벅적한 술집. 일부러 바깥쪽 구석에 앉았건만, 어째서인지 이 여자애는 자꾸 내 옆으로 달라붙는다. 



" 너는 안마셔? 술 약해? " 



" 너 때문에 안마신다. 저기 여자애들 많은데 왜 하필 여기 앉았어? " 



" 으으음… 그냥? " 



" 에휴. 너도 참 사람 좋다. " 



" 그거 칭찬이지? 응? " 



헤실헤실 웃으며 잔을 드는 모습에 괜스레 잔을 부딪혀 버린다. 


어차피 저쪽 테이블은 지들끼리 잘 놀고 있으니 우리끼리 뭘 한들 신경도 안 쓰겠지. 


쓰다. 술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취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싫었다. 


단지 취했을 때 그 한없이 멍청해지는 내 뇌를 좋아했다. 


아무 걱정도 없잖아. 


한 순간이라 할 지어도.


" 아 맞다. 나 궁금한 거 있어. " 



" 뭔데? " 



술이 쓴 건지 방금까지 표정을 구기고 있던 애가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해맑게 미소를 그린다. 


나로썬 잘 모르겠다. 이렇게 밝고 이쁜 여자애가 왜 자꾸 내게 달라붙는지. 


아까도 친구들이 몇 번이고 자기 옆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던 것 같은데. 다 뿌리치고 오지 않았나. 



" 너 여자친구 있지. 그래서 맨날 술자리 피하는 거야? " 



" …… . " 



뭘까,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감정은. 


기억 한 켠에 고이 숨겨두었던 상자가 제멋대로 열린 느낌이었다. 


잊고 싶은데, 아니 잊기 싫은데. 도대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 … 아, 미안. 괜한 걸 물었나? " 



" 없어. " 



" 응? " 



" 여친. 없다고. " 



싸늘하게 식어있던 내 표정을 바라보던 그녀가 사과를 건네었고, 


나는 지금 머릿속을 괴롭히는 이 생각들이 싫어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되려 들려오는 대답 때문에 나는 오히려 표정을 더 구길 수 밖에 없었다. 



" … 그럼, 난 어때? " 



" 뭐? " 



" … 있지. 나 진지하게 하는 소린데. 사실 여자친구 있으면 어쩌지 걱정했거든. " 


" 근데, 없다고 하니까 말하는 거야. 나 너 좋아해. " 



" …… . " 



잘 모르겠다. 


왜 내게 이런 소리를 꺼내고 있는 건지. 


왜 내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지. 


당황한 듯 너를 뚫어져라 쳐다보자, 너는 곧장 고개를 돌려버린다. 



" … 미안. 너무 갑작스러웠나? 사실 좋아한 지 꽤 됐는데, 단 둘이 남을 일이 없어서… . " 



그야 그렇겠지. 내가 그런 상황을 피해왔으니까.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난 아직도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으니까.



" 왜 나를 좋아하는데? " 



" 기억나? 우리 처음 MT 갔을 때… . " 



… 아. 분명 그런 일이 있었지. 


선배가 이쁜 후배가 한 명 들어왔다고 억지로 작업 치려 하던 걸 남친 행세를 해서 도와준 적이 있었다. 


물론 이후에 동기들에게 해명하느라 힘들었지만, 덕분에 친구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는 계기였기도 했다. 


… 아직도 그 선배는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지만. 



" 아니 그러니까, 그건 그냥 상황이 그랬잖아. " 



" 그래도 아무도 선배한테 말 못하고 있었는데, 그때 네가 날 도와줬잖아? " 



" … 다른 누군가가 말렸겠지. 어쨌든, 미안하지만 난 받아줄 수 없어. " 



" 아까 여친 있냐고 물었던 그거 때문이야? " 



" … 야. 해도 될 말이 있고 안될 말이 있지. " 



어느샌가 내가 너를 마주하고 있던 시선이 차가워졌단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 표정에도 불구하고 너는 아랑곳 않고 내게 눈을 맞춰왔다. 


또렷이, 아주 정확하게. 



" 있잖아. 내가 이런 얘기를 하기도 뭐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사람은 사람으로 지워야 한다 생각해. " 



" 야, 씨발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 " 



언성이 조금 커졌던 탓일까. 옆 테이블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을 흔들고, 한숨과 함께 너를 바라봤다. 



" … 선 넘지 마. 고작 그딴 일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말이 안되잖아. 너 나 안지 뭐 얼마나 됐다고? "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줄 알았기에 오기 싫었는데. 


나는 다시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었구나. 


그렇게 싫었는데. 



술 집 바깥으로 나오는 나를 붙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일부터 캠퍼스 생활이 조금 꼬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분위기 망쳤다고 또 한 소리 듣겠네. 


뭐, 이번 일로 다음부터 불러주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에, 한 명이 더 나왔다. 



" … 넌 왜 나왔어? " 



" 나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애들한테는 잘 말했으니 걱정 마. " 



" … 야. 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신경 좀 꺼. " 



괜히 신경이 곤두선다. 


나를 챙겨주는 척 하면서도 자꾸 내 기분을 망치고 있지 않은가. 


정작 나에 대한 배려가 없다. 왜 사람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 … 하다 못해, 얘기 정도는 들려줄 수 있는 거 아니야? " 



" 내가 도대체 왜 너한테… . " 



…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그 여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일말의 기대감, 그리고 아직도 한 켠엔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남아있는 불안감과 상처. 


혹여 내가 너에게 털어놓는다면, 나는 조금 편해질 수 있을까. 


언제 까지고 홀로 앓고 있을 수는 없잖아. 


같은 여자인 너로써는 그녀의 심정을 알 수 있을까. 


그렇다면… 만약 그렇다면. 




장소를 옮겨, 근처 술집에서 단 둘이 마주한 너에게 나는 내 얘기를 털어놓았다. 


평소에 보이던 그 장난기는 단 하나도 없이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어주던 그녀는


내 얘기가 끝났을 때가 되고 나서야 목소리를 흘려냈다. 



" 서로 많이 사랑했네. 근데 가끔은 그렇기에 모르는 것도 있는 법이야. " 


" 서로를 너무 사랑하면 자기가 아닌 타인을 먼저 바라보기 우선이거든. " 


" 너희 둘 다 그랬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없던 거고. " 


" 결국 끝까지 너를 위했던 여자친구는… . " 



말 끝을 흐리는 너를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그제서야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구나. 의외로 간단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네가 없어서 이토록 불행했는데. 


너는 네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행복을 찾기를 바랬던 거구나. 


자기가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만나면 분명 나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 테니, 그게 날 위한 것이라고. 


…… 기다려 달라고 내게 했던 말은 거짓일까. 


너는 그저, 내게서 헤어지는 것이 목적이었을 뿐일까. 


그래서 전학도 간 거야? 그래서 전부 차단하고 아무 말 없이 떠난 거냐고. 



아무 말도 없이 서로의 잔을 기울였다. 


모르겠어. 완전히 취하면 내 진심이 나올까. 


적어도 취한 상태에선 너라는 사람을 다른 시선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묵묵히 계속 잔을 받아주는 내 앞의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 진짜, 사람은 사람으로 잊어야 하는 걸까. 


너는 내게 언제까지 기다림이라는 큰 고통을 떠넘기는 건데. 


나는 도대체 어쩌라고. 



" … 있잖아. 많이 힘들고 괴로운 걸 알아. 그러니까. " 


" 가끔은, 내게 기대도 괜찮아. " 



조용히 들려온 너의 그 목소리가 어딘가 막혀있던 나를 뚫어주었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어느덧 내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나를 따스하게 안아준다. 


모르겠어. 내가 사람의 온정을 받아도 될까. 


아직 내 마음속엔 너라는 사람이 존재하는데. 난 언제까지 고민을 해야 할까. 



" 괜찮아. 지금은 슬퍼해도 괜찮으니까. " 



술에 취한 걸까. 


잘 모르겠어. 


이제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이 긴 시간 동안 너는 내게 연락 한번도 없었잖아. 


얼굴조차 비추지 않았잖아. 


아아, 너는 날 잊었을까. 


나도 이제 널 잊어야 할까. 



따뜻했다. 


이러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몇 년 동안이나 높게 쌓여있던 장벽이 일 순간에 허물어졌다. 


대학이란 이토록 즐거웠구나. 


더 이상 마음속으로만 앓지 말자고 다짐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그저 고통일 뿐 이니까. 


지금이 불행하면 행복한 미래도 없으니까. 


그리고. 



" 응, 그래도 거절했어.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 


" 또? 너 자꾸 그러면 친구 사라진다. " 


" 뭐 어때? 난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 



그런가. 그렇구나.



" … 우리도, 언제 까지고 이런 관계일 수는 없겠지. " 


" …… 어? " 


" 사귀자. 우리. "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길 빌어. 


이토록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해맑게 웃고 있잖아. 


사람은 확실하지 않은 행복보다, 바로 찾을 수 있는 행복을 찾아야 하잖아. 


아직도 확신이 서질 않아. 나라는 사람이 도대체 뭘 원하는지. 


그리고 모르겠어. 


나는 쓰레기일까. 그게 아니라면… . 




" 너무, 너무 늦잖아… . " 



어느덧 내 품에 안겨 얼굴을 파묻는 그녀.


… 그래. 네가 그토록 원하던 애인이 생겼네. 


어쩌면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넌 날 기억하기는 하니. 


아직도 너는 날 사랑하기는 하니. 


나는, 지금 좋아하는 사람과, 날 좋아해주는 사람이 생겼어. 


사랑… 은, 잘 모르겠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게 정녕 정답일까. 


오히려 네가 덧씌워져 보이는데. 












" 요리도 할 줄 알아? " 


" 응! 어때? 가끔 와서 반찬이라도 해줄까? " 


" … 뭐 여기가 너네 집이야? " 






" 히, 그러고 보니 우리 지금 처음으로 손잡았네. " 


" … 그런 건 딱히 말하지 않아도 괜찮잖아. " 


" 아 왜애, 너는 너무 애정 표현이 적어. " 






" … 싫어? " 


" 고작 볼에 뽀뽀한 걸로 뭐 그런 걸 물어? 누가 보면… . " 


" 우씨, 그래서 싫었냐고. 뭐 그리 말이 길어? " 


" … 나쁘진 않네. " 






" 프하. … 그거 알아? 나 첫 키스 인데. " 


" …… . " 


" 너 지금 굉장히 이상한 상상했지? 뭐 나라고 막 어?! " 


" 프흡. 지금 그런 걸 말할 분위기야? " 


" … 이, 이이!! " 






" …… 있잖아. 그러고 보니 사랑한다고 단 한번도 말해주지 않았네. " 


" 왜? 듣고 싶어? " 


" 당연한 걸 물어봐 왜? 넌 내가 싫어? " 


" 아니, 그런 건 아닌데… . " 


" … 너, 사실은 날 좋아하지도 않는 거야? " 


" … 사랑해. " 


" 므 뭐, 뭐라고? 안 들렸는데? " 


" …… 장난치면 다신 안 해준다. " 


" 으웅, 아, 그래도 한번만 더해주면 안돼? 난 진짜 사랑해. " 


" …… . " 










행복한 삶이란 이런 거였나. 


확실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어렴풋이 알 수는 있었다. 


난 지금, 즐거워하고 있구나.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다고. 



" 와… 데뷔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음원 쓸어갔네. " 


" 뭐가? 뭐 보는데? " 



그녀가 바라보고 있던 핸드폰 스크린을 옆으로 기울이자 내 시선에도 들어온 한 영상. 


그리고, 난 그녀의 핸드폰을 다급히 빼앗았다. 


…… 그렇구나. 



시간이 지났어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이 사람이 한때 나와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이라고.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뭘까. 


기뻐해야 할까? 그게 아니라면 슬퍼해야 할까. 


결국 너는 성공했구나. 이렇게, 이렇게 모두의 앞에 서있으며, 그 위에 있잖아. 


네가 아이돌이 된 것엔 내가 뭐라고 할 수 없겠지. 


네가 좋아서 선택한 직업일 테니까. 


그래. 지금 봐봐. 


너라는 사람이 뭔데 도대체. 


이렇게 변할 수 있잖아. 


이렇게 아름답게 빛날 수 있잖아. 


그때 너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내게 왜 그런 소릴 했을까.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다.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야. 


정말… 정말. 




나는 지금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 갑자기 왜 그래? 설마 팬이야? " 


" … 아니 그럴리가, 그냥… 그런 게 있어. " 


" 뭐야 갑자기. 으으응… 몸매는 그래도 나랑 비슷하지 않아? " 


" 갑자기 뭘 질투하고 그래? 어차피 아이돌인데. " 


" 으, 아무래도 가슴이 문제인가… . " 


" … 너 지금, 되게 이상한 말 한 거 알아? " 


" 뭐, 어? 아, 어어어 아냐! 아니라고! " 


" 푸흐, 귀엽긴. " 



새빨갛게 볼을 붉히고 있는 그녀. 


… 차라리 마음 한 켠이 후련하다. 


너라는 사람이 잘 살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난 안심할 수 있었다. 


날 이토록 힘들게 만들어 놓고, 아. 아니지. 


그래. 다 내 잘못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정말로?




 



" 맞다. 벌써 내일 모레면 너 생일이네? " 


" 헐, 기억해주고 있었어? 의외로 기분 좋네 이거. " 



… 카톡이나 페북에 전부 뜨지만, 모른 척 해주자. 


그래 뭐, 기뻐하면 됐지. 


멀리 있는 너도 기뻐하고 있잖아. 화면 너머로는 행복해 보였으니까. 


목표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네가 있는 그 위치가 목표이지 않을까. 


이미 넌 높은곳에 있으니.




… 서로라는 사람이 아닌 다른 것에 행복을 찾는 건 이제 그만 질투해야겠지. 


나도,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해준 그녀가 있으니까. 


너도… . 














생일 선물은 뭐가 좋을까? 


도통 모르겠다. 예전 여자친구는 뭘 줘도 기뻐했는데. 


… 거짓일지 몰라도. 



첫 선물이라 그런지 괜히 신경 쓰이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거리를 거닐었다.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혹여 장신구는 괜찮을까 하고 이리저리 동공을 굴리게 된다. 


그리고, 검은 캡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마스크로 얼굴을 전부 가리고 있는 여성. 


여성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리고, 나도 멈추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서로를 알고 있다는 사실 또한. 



각자 제 갈 길을 걷기 바쁜 인파들 사이에서 우린 명확히 서로를 바라보며 그 사이에 서 있었다. 


몇 초, 아니 1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서로의 걸음이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주변에서는 방해라는 듯이 어깨를 치고 지나갈 뿐 이었다. 


그리고, 서로를 감싸고 있던 알 수 없는 공기를 한 순간에 망가뜨린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눈물이었다. 




멈춰있던 몸을 먼저 움직였다.


천천히, 그렇지만 정확하게 다가갔다. 


너에게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록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 쳐 진짜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단지, 제일 강하게 든 의문. 



" …… 왜 이제야 나타나서, 웃기는 커녕 우는 거야… . " 


" 울지 마. 오랜만에 만났는데. 울기는 왜 울어… . " 



너에 대해 쌓여있던 분노라는 감정은 금방 이라도 녹아들었다. 


마치 너의 눈물과 같이 흐르듯, 전부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가 헤어진 날과 같았다. 다시는 보기 싫었던 눈물. 


마음속에 애써 숨겨보려 했던 상처는 다시 가슴 밖으로 나와 나를 아프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울고 있던 너에게 모진 말을 할 수는 없었다. 



" …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다. 잘 살고 있어서 다행이다… 다행이야. " 



" 히, 히끅, 나, 나 나 지금… 널, 널… . "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너의 감정은 알 수 없었다. 


너는 오랜만에 만난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거니. 


왜 눈물로 나를 맞이하는 거야. 


그건 슬픔에서 나오는 눈물일까. 


그게 아니라면 기쁨에서 나오는 눈물일까. 



" 미안해. 미안했어, 흐읍, 내가… . " 



" … 뭘 이제와서 사과해. 괜찮아, 다 괜찮아졌어 이제. " 



시내 한복판에서, 우린 때 아닌 감정에 대한 위로를 하고 있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단지, 너라는 사람을 다시 만나서 기뻤다는 것과, 안도감.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이 하나. 



" 나, 나 이후로 엄청 힘들었어. 너 없는 하루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 


" 머릿속에서 너라는 사람이 지워지질 않아. 사라지질 않아. 매일 매일이 괴로웠어. " 


" 웃으려 해도 미소가 나오질 않더라. 괜찮다고 날 위로해봐도 괜찮지 않더라. " 


" 자꾸만 네 추억이 아른거려서… 너무 힘들어서. 당장이라도 널 보러 가고 싶어서. " 




알아. 전부 알아. 


나도 그랬으니까. 


우리가 사랑했었으니까. 


너와 내가 느낀 감정과 심정 모두 똑같았을 테니까. 


한 순간이라도 너는 나를 잊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기에 나는 멋대로 너를 잊으려 했다. 


분명 서로가 서로를 잊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역시 아니었구나. 


내가 널 어떻게 잊겠어. 



하지만, 이제는 기억 속에서 널 잊어도 괜찮을 것 같아. 


이렇게, 이렇게 행복해 보이잖아. 


나도, 행복을 다시 찾았으니까… . 




" … 있지. 아직도 날 기다리고 있었어? " 



머리가 띵했다. 


두 눈만 연신 깜빡였다. 


혹시, 너는 내게 아직 그 사랑이란 감정을 품고 있는 거니. 


만약, 그게 맞다면, 나는… 나는. 




" …… 아직 날 사랑해? " 



" 당연하잖아. 있지? 나 엄청 노력했어. " 


" 네 앞에 다시 나타날 땐 반드시 부끄럽지 않게 떳떳한 나를 보여주겠다고. " 


" 매일 매일이 힘들어도 기다리고 있는 너를 생각하며 아픈 만큼 힘냈어. " 


" 그렇게 오디션에 합격하고, 아이돌이 되었을 때 모두의 앞에 섰어. " 


" 그 많은 학창 시절 친구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 


" 그리고 들려오는 환호. 그리고 난 그제서야 확실히 알 수 있더라. " 


" 이제, 이제는 네 앞에 서도 괜찮겠다고. 모두가 날 이렇게 바라봐주니까. " 


" 내게 부족한 건 이제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 


" 나 사실 지금, 1시간 뒤면 다음 스케줄 때문에 가봐야 해.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기까지 몰래 왔어. " 


" 네 페북에서 봤던 대학교 근처니까. 드디어 떳떳하게 널 볼 수 있겠다고. " 


" 다시 너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겠다 싶었으니까. 너무, 너무나도 기뻤어. " 


" 그리고 널 이렇게 봤잖아. 세상에서 제일 보고 싶던 너를 찾았다고. " 


" 사랑해. 그날부터 너만 생각하고 살았어. 그러니... " 




네 말을 끊을 수조차, 끊을 용기조차 없었다. 


네가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나는 다른 여자와… . 


그렇구나. 나는 쓰레기였구나. 


분명 다음에 돌아온다고 하고 간 그녀를 기다리지 못한 것은 내 실수였구나. 


이럴거면, 이럴거면 헤어지자 하지 말지. 


왜, 왜. 



" … 왜, 왜 대답이 없어? 사랑한다니까? 기다려준 거 아니야? 지금까지, 응? 말이라도 해봐. 응? " 



" …… 미안해. 나 지금 여자친구가 있어. " 


" 그래도… 지금이라도 헤… . " 




내 품에서 떨어진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기 하나 없이, 하늘엔 이토록 태양이 빛나고 있는데 그에 반사되는 빛조차 없이. 


온통 새까만 색의 그 눈동자로. 




" …… 여자, 친구? " 


" 있잖아. 장난 치는 거야? 농담이라면 재미 없는데. 이상하다… . " 


"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아, 아아… 그렇구나. " 


" 내가 그때 너무 급하게 갔구나. 응. 아아, 그랬던 거였어. " 


" 그때 날 보며 뭐라고 했어? 꺼지라고 했어? 너 같은 건 싫다고 했어? "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잖아? 난, 난 그때 널 그렇게 붙잡았는데. 왜 너는 이제 와서… . " 



" 알고 있어. 그래서 확실하게 다시 물어본 거야. 그렇게 날 붙잡을 정도면 기다려 주겠다는 소리 아니야? 응? " 



" …그건, " 



" 변명밖에 할 소리가 없어? 내가 듣고 싶어 하는 소리는 따로 있는데? " 


" 드디어 완벽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네 곁에 있어도 전혀 부끄러울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


" 제일 큰 문제가 있었네. 네가 날 버릴 줄 몰랐어. 아하, 아하하하. " 



입꼬리조차 올라가지 않았던 그녀의 표정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 


이토록 사람이 어두운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내가, 내가 널 이렇게 만든걸까. 




" …… 또 내가 부족한 게 뭐야? 난 다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너라는 사람이 없어졌네. " 


" 네가 없으면 전부 필요 없는데. 이딴 아이돌 따위 사실은 전혀 하기 싫은데. " 


" 혹시라도 네가 봐주길 바랬는데. 날 그저 웃으며 바라봐주길 바랬는데, 나만 바라봐주길 바랬는데. " 


" 아… 아아, 아. " 






" …… 난 아직 널 사랑해. 하지만… 넌 이미 너무 높이 올라가 버렸어. " 


" 그리고, 지금 난 나를 사랑해 주고 있는 사람에게 말이라도… . "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 무채색의 짙은 눈동자가 바로 내 눈 앞에 있었다. 


이토록 어두운 동공이 도대체 어디 있을까. 




" … 그렇구나. 내가 너무 높이 간 거야 이제? 내가 과거에 느낀 감정을 네가 느끼고 있구나. " 


" 아아, 아아아 내가 실수했네. 응. 응… . " 



그녀는 자신의 모자와,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곧장 인파가 가득한 길거리에서 웅성이며 몰려드는 사람들. 



" 자, 잠깐만 너 지금… . " 




" 아이돌, 그까짓 거 그만 두면 되잖아. 그럼 넌 다시 날 바라봐 주겠지? " 



" 아… 그렇구나. 사랑해주는 사람… . "



" 제일 중요한 걸 잊고 있었네. " 



" 내가 그토록 느꼈던 열등감을 이제 전부 없앴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내가 틀렸어. " 



" 내가 너에게 준 사랑이 부족했구나. 다른 사람보다 너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했구나? " 



" 그래. 응. 전부 다 알겠어. " 



" 이토록 해결하기 쉬운 줄 알았더라면, 그날 너에게서 떠나지 않는 거였는데. " 



"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모자라다고 느꼈던 건 사랑이구나. 그렇지? 응? " 



" 내가 널 덜 사랑해서 그런 거였어. 그리고 넌 나를 더 사랑했으니까. " 



" 아아, 아, 그런 거였어. " 





" 부족하지 않을 사랑을 네게 줄게. "



" 남들과 비교해 전혀 뒤쳐지지 않을 사랑을 줄게. " 



" 지금 널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한 사랑을 너에게 줄게. " 




" 내 전부를 줄 테니까. " 





" 날, 사랑해줘. " 







네가 그토록 느꼈던 열등감이란 게 도대체 뭘까. 


너는 지금까지 무얼 위해서 날 아프게 하고, 널 아프게 하며 살아왔던 걸까. 


나는 단지, 당시의 네가 곁에 있어주길 원했을 뿐 인데. 


그때 너의 사랑으로도 난 충분했는데. 


난 행복했는데. 




사랑에 열등감은 없어. 


그건 수치로 표할 수 없이 중요한 감정이니까. 


그저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있는데.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그런 열등감은 필요 없어. 




그러니, 그러니까. 





" … 내가 널 어떻게 미워해. 사랑해. 정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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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은 알고 있었어. 그때 내 핸드폰을 볼 때. 그래도… 조금은 슬프네. " 


" 고백도 네가 하고, 헤어지자는 말도 네가 하는구나. " 


" 원래 알던 사랑. 아니 첫사랑이니까 이해해 줄 수 있어. 조금 많이 슬프긴 해도… . " 


" 모르겠네 잘. 눈물이 멈추질 않네. " 


" 알고 있었는데.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 


" … 그렇구나. " 



" 지금 네 여자친구가, 나보다 너를 더 사랑하고 있는 거구나. " 






" 그래도 만약에, 내가 너를 더 사랑하게 된다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