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얀붕이는 그녀가 재벌인 줄도 몰랐다.

그저 부러울 정도로 끝내주는 인맥이 있는 줄로만 알았을 뿐.


"우와... 얀순아, 진짜 네 아는 지인이 이거 공짜로 주는 거야?"


고가의 미술품처럼 우아하고 고혹적인 그녀가

고급스레 웃으며 대꾸했다.


"응, 여기 운영하시는 매니저님이랑 우리 부모님이랑 아는 사이라서

오늘 너 데려온다고 내가 부탁하니까 특별히 허락하신 거야~"


촌에서 서울로 올라와 변변치 못하게 살던 얀붕이에게는

그것이 분에 넘치는 횡재였다. 얀붕이는 살면서 또 언제 해볼까 하는

고급 식당의 코스 요리 행진을 넋 놓고 어벙벙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하얗고 융단처럼 고운 얀순, 그녀의 손의 들린 식기가 그의

앞에 놓였다. '아차!' 하고 있었던 얀붕이에게 그녀가 미소지으며 말한다.


"서빙하시는 분들이 갖다 주는 대로 그냥 조금씩 먹으면 돼 ㅎㅎ"


얀붕이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내 종업원들이 차례대로

음식을 내어오자 어디서 그런 인품과 예의를 배웠는지, 얀순이는

매 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해서 말했다.

그녀는 자기 입으로는 얀붕이처럼 서민 가정에서 힘들게 자라

서울에 간신히 자리를 잡은 사람이라고 얘기는 하지만,

도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품위 있게 행동했다.

얀붕이는 생각했다.

'그녀가 참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구나.'


......,


얀붕은 고민에 빠졌다. 고시원에서 살고 있던 그였지만,

부모님이 어떤 사정이 생겨 그가 돈을 보내 줬으나 

고시원 비용을 내야 할 때에 내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얀붕이는 답답한 마음에 알바천국에서 일급으로 받을 수 있는

일을 알아보았으나, 이미 남은 기한이 너무도 적었다.

부모님의 일이었기 때문에 차마 누군가를 욕할 수도 없고,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울리는 카톡


"얀붕아~ 똑똑~ 계세요~"


언제나 그녀에게서 먼저 날라오는 선톡.

그는 전화기를 확인하고 그녀의 문자에 답장했다.


"응, 왜."


잠시후


"ㅜㅜ 얀붕이 답장 왜 이렇게 차가워? 평소보다 심한데? 무슨 일 있어?"


라는 답장이 왔다.

원래 사람이 골치 아픈 상황이 겹치면

사고회로에 마저 문제가 생기는 걸까? 반은 진담이었고,

반은 답답한 속을 토로하는 격으로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얀순아... 나... 아니... 너..."


얀순아 라는 뒤의 문장의 시작을 수십 번도 더 고치고 지우기를 반복,


"얀순아, 나 지금 많이 힘든데... 진짜 이런 부탁하는 게 죽기보다 쪽팔리고

미안한 일인 거 아는데, 나 30만원만 꿔주면 안 될까? 내가 지금 당장

상황이 급해서 그래. 나 다음 달 월급 나오면 바로..."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우선 저 문단을 보냈다.

얀붕이가 뒤에 이어지는 말을 쓰고 있는 찰나에 그녀에게서

답장이 날라왔다.


"계좌번호랑 은행 말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부탁을 들어주는 게

더 이상한 일인데 그녀가 너무도 쉽게 들어줬다. 얀붕이는

이게 웬 횡재람? 하는 마음으로 밑져야 본전을 중얼거리며 보냈다.


"봉하은행 2008523-...."


그가 답장을 보내고 약 30초 후에 휴대전화에서 알람이 울려왔다.

은행 어플의 알람이었다. 얀붕은 그 알람 소리에 심장이 요동칠 정도로

기뻤다. 그가 알람을 확인하자 '송금인 이얀순'이 적혀있었다.

얀붕이는 기쁨과 미안함의 마음이 공존하는 복잡한 심정으로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여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문뜩 어떤 생각이 들었다.


'어라? 근데 아까 그 금액 300,000보다 0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그는 다시 휴대폰을 들어 은행 어플에 들어가 송금된 금액을 확인했다.


'30,000,000원 입금. 송금인 이얀순'


얀붕이는 눈을 의심했다. 그가 부탁했던 액수는 300,000원이었다.

그가 손을 벌벌 떨며 그녀에게 문자했다.


"얀순아... 너 돈 잘못 보내준 것 같은데...?"


그의 문자가 가고 잠시 후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응 3천 만원. 왜 얀붕아? 더 필요해? 편하게 말해도 괜찮아~ㅎㅎ"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난 이렇게 많은 돈을 부탁한 건 아니었어, 나는 그냥..."


답장을 체 보내기도 전에 그녀로부터 문자가 왔다.


"부담스럽다느니, 필요 없다느니 난 안 들어.

얀붕아, 그동안 속여서 미안한데 나 서민 출신 아니야.

나 솔직히 너 혼자 골골 대면서 고생하는 거 볼 때 마다

진짜 너 안 볼 때 내 머리채 잡고 쥐어 뜯었거든? 

이건 그냥 가볍게 내가 너 하나 먹여 살리는 건 일도 아니란 거 

보여 준 거고, 이왕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했으니 앞으로 더 공공연하게

너 내 남자로 데리고 살아도 되는 거지?"


얀붕이는 그 문자에 현실감 마저 아득해졌다.

그러나 그녀의 뒤 이은 문자는 그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난 너에게 나한테 복종하라느니, 네 존엄을 짓밟고 어쩌고 하는 거

오히려 싫어, 그런 거. 근데, 내가 요구하는 건 딱 하나야. 

앞으로 카페 여종업원이든, 아무튼 씨발 걸레 같은 년들이랑

한 마디도 섞지 마. 전까지는 어떻게든 참아줬는데, 이제는 안돼. 알겠어?

니가 해줘야 될 유일한 일은, 오로지 나만 바라보고, 나만 사랑하고,

영원히 내 곁에 있는 거야. 설마 다른 선택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얀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