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아픈건 싫어."


당연한 명제였다. 인간, 생물 모든 존재를 통틀어 고통을 즐기는 자는 없듯이.



"응"



그녀는 은망울 꽃처럼 예쁜 머리를 나에게 기대며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벗이 되기위해 백작가로 들어오게 된 아이였다. 특별히 그녀가 권위로 날 찍어누르는 일은 없고, 어차피 오래 살지도 못하는 그녀지만.



그녀의 유일한 이해자도 나였다.


"나 있잖아, 문득 생각해 봤는데. 아프기 전에 그냥 죽고싶더라"

나는 대답 대신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흡사 명주실 처럼 매끄러운 촉감이 느껴졌다.



담담한 어조로 그녀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잖아. 나 어차피 시한부 판명났고. 조만간 죽을거고. 솔직히 단명하는 것도 억울한데, 아프기까지 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

"......"



그저 묵묵히 빗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빗었다.

어차피 뭉친 부분도 없고 매끄럽게 차르륵 떨어지는 그 머리카락은 빗어도 별 의미가 없었다.


몸은 여위어가는 와중에 마치 그녀에게 가야할 건강을 뺏기라도 한 양.

그저 머리카락만이 건강한 빛으로 윤기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주변에서는 살아야 한다. 어쩐다. 내 의견은 고려조차 안하고 있거든. 이기적이기 짝이 없어"

나는 그녀의 바짝 마른 입술을 쳐다봤다.


"너는 나한테 안그럴거지?"

두 눈이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부정하면 아마 소리를 지르거나 그에 준하는 짜증을 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대답했다.


"응. 나라면 안그럴거야"

"내가 못된소리 하면 화 안낼거야?"

"안내"

"내가 죽여달라고 말한다면?"



그녀의 눈빛이 마치 송곳을 연상케 하듯 나에게 꽂혔다. 답변을 조금 고민한다.

그래. 이게 좋지않을까.


"어떤게 덜 아픈 방법일지. 생각해 볼 테니까 기다려 달라고 할거야"



그 애의 눈빛이 흔들렸다.


"진짜?"

"응"



"나때문에 감옥도 가고, 귀족살해죄는 사형인데도?"

"고문 받기 전에 나도 빨리 죽으면 되겠네"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울 것 처럼 얼굴을 일그러 뜨렸다가. 이내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내 손을 잡아왔다.



"으응... 그래도 역시 너가 죽는건 싫다."

장작개비처럼 바짝 마른 것 같아도 우아하고 예쁜 손. 생각보다는 보들보들하고 뽀얀 예쁜 손.



"남들이 다 잊어도. 너는, 너 만큼은 나 잊으면 안돼"

"응"



"나보다 친한 친구 사귀면 안돼. 봄 마다 내 무덤에 내가 좋아하던 노란 유채꽃 올려주는 것도 잊으면 안돼"

"응"


간절하게 꽉 잡힌 손이 조금 아파왔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 애가 배시시 웃었다.

창백한 낯에 저리 봄 꽃처럼 해사한 미소를 띄우는 건 오직 나 뿐이었다.

그래서 다른 남자들은 나를 질투해 왔었지만 나로서는 웃기는 노릇이었다. 너네가 뭔데.


백작가의 외동 딸 아이리 델루나는 시한부에 까탈스럽기 짝이 없었다.


소중한 외동딸에게 하녀나 시종만을 붙여줄 수도 없을 뿐더러. 같은 급의 영식이나 영애들을 붙여두기엔 그녀의 성격이 까탈스러워 그 성격 탓에 무리였다.


그래서 먼 친척의 찢어지게 가난해서 생계조차 곤란하던 가정의 아이를 후견인이랍시고 돈주고 사오듯 한 것이다.


물론 나도 백작가에서 쫒겨나면 당장 곰팡이 핀 빵도 구할 수 있을 지 장담못하는 그런 와중에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행동한 것도 사실이었고. 


아이리는 건강한 나를 질투하기도, 괴롭히기도 하고. 짜증도 냈지만. 결국에는 어차피 아픈 애였다.


제 아무리 고귀하다는 백작가의 외동딸 이라지만.

시한부에 까탈스럽기 까지 한 아이리의 비위를 맞춰줄 만큼 손익 계산이 잘 안돌아가는 그녀 또래의 친구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나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백작부부는 다사다난해 사랑하는 외동 딸에게 잘자라는 굿나잇 키스 한번 해주기가 어려울 정도로 바빴고.

결과적으로 나는 그녀의 세계이자, 친구 그리고 가족이였다.



아이리는 나의 손에 열이 올라 따끈한 이마를 비벼대며 약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죽기싫어..."


눈물젖은 목소리로 오직 나에게만 어리광을 부리듯 말한다.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이 백작가 외동딸의 자존심이라는 것 이었다.



"무서워......"


여느 사람과 똑같은 그녀는 부유한 삶과 한 떨기 백합처럼 예쁘게 피어난 외모. 그 두가지를 기반한 밝은 미래가 약속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절할 운명이었다.



아카데미에서는 또 어땠는가.

그녀의 많은 추종자들이 그녀를 따랐고 그 속에서 피어있는 그녀는 그야말로 절벽위의 꽃.


아마도 그녀는 모든 이들의 뇌리에 잊히지 않는 한 여름의 백일몽. 물 속에 풍덩 빠져 익사한 꽃처럼 위태로운 모두의 첫사랑이었다.


그야말로 비련의 여주인공.


아마도 그녀가 죽기 전까지 손에 쥐고있던 그 모든 것을 나는 평생이 가도록 이 두 손에 거머쥐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그녀가 죽으면 쫒겨나 길거리에서 일자리나 알아보아야 할 것이고.

백작가에는 어느 것 하나도 내 것이라는 게 없었다.


그런 상념에 잠겨있던 찰나 그녀는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나 대신에 승마도 해보고, 예쁘고 멋진 옷들도 잔뜩 입어보고"


그녀가 작게 한숨쉬며 말했다.


"어차피 곧 죽을 내가 연애는 못해주니까... 알지?"

"어차피 바라지도 않았는걸."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도 여자친구 사귀면 꼭 데려와서, 나한테도 보여줘야해? 근데, 왠 되먹지도 않은 여자 데려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서 내가 그년 멱살 잡을 수도 있어"



나도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 참 무섭네. 무서워서 연애도 못하겠다야"

"그리고, 그리고... 결혼할 때는 신부 드레스는 봄 꽃들을 잔뜩 치장한 예쁘고 화려한 웨딩드레스로 해줘. 내가 그걸 제일 좋아하거든"


"야, 야, 결혼은 내가 할텐데 왜 너가 결혼하는 것 처럼 말하냐?"



그래도 뭐 좋다.


나는 그런거 할 돈도 없다. 그래도 그녀의 꿈이니 뭐. 알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열이 올라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럼 첫날 밤 예습도 미리 해두는게 좋을텐데... 나도 처녀로 죽고싶지는 않고..."

"......미치겠네 적당히 해"



"아마도 마지막 소원. 뭐라고 안할테니까"


그렇게 말하면 또 거절할 수가 없는 나도 참 구제불능이였다.

"그래, 까짓거 해줄게. 근데 걸리면 나는 네가 죽인거야"


그녀는 해맑게 웃었다.


"그건 그것대로 조금 로맨틱할 지도 모르겠네... 저 세상에서도 다시 만날거 아냐"

"미친년..."



"그리고 혹시 잘 풀려서 안걸리면 말이야. 행복하게 살아야해"



행복, 행복이라... 입맛이 썼다.

나는 모든 이야기 중에서 그것만큼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행히 그 생애 마지막의 일탈행위는 사용인들의 무관심의 도움으로 걸리지도 않았고.

그 이후로도 위험한 줄타기 같던 두 사람의 불장난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해,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


그 여름을 넘기지도 못하고  그녀는 꽃이 되었다.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나는.

백작가를 나서기 위한 짐을 싸기 위해 펼친 가방 속에서 보고야 만 것이다.


그 빈 가방 속에는 역설적으로 한 떨기의 꽃과의 추억이, 나를 향한 꽃의 사랑이,

나의 끝나버린 첫 사랑이 그리고 아련한 꿈처럼 허망하게 사라진 백일몽의 기억이 불완전 연소된 채 한가득 담겨있었다.



너를 떠나보낸 그 후로

너는 마치 찰나처럼 스쳐간 사람이였는데.


이상하리만치도 나는


연신 콜록이며 나를 괴롭히는 열병처럼.

너를 앓는 일이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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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얀데레야! 할 수도 있을텐데.


생각을 바꿔서 정말 돌아버릴 정도로 사랑했다면.

집착과 소유욕이 아닌 다른 형태로 어차피 내가 죽는건 확정이라 결혼은 못해주겠고.


이기심을 뛰어 넘어서 사랑하기 때문에 나 없이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그러면서도 나 이상의 존재는 없길 바라는 마음에 몸을 내줄 정도로 사랑했고.


첫 사랑이자 첫 경험이었을 텐데 아마도 평생 기억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