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난 이럴 줄은 몰랐다.

어디 소설에서 보면 환생하면 다 재능과

개연성(외모)를 타고 태어나는 줄 알았다.


근데 나는 지금 무슨 꼴이냐?


이세계에 사는 동네 농부 밑에서 자라,

평생 농사만 짓다가 이젠 노예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인간의 노예도 아니라는 게 최악이다.


“그럼 작업 시작한다, 안전 좋아!”

“안전, 좋아! 좋아!”


우리는 힘차게 구호를 외친 뒤 작업에 투입됐다.

벌써 5년째 하고 있는 이 지긋지긋한 광부

일도 이제는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캉! 카앙! 나는 벽을 향해 힘껏 곡괭이를

휘둘렀다. 이 광산에서 나오는 마석을 캐는

작업은 몇 번을 해도 짜증만 났다.


참고로 마석 원석은 더럽게 단단하다.

어지간히 내리치는 걸로는 깨지지 않아서,

정말 있는 힘껏 몇 번이고 내리찍어야 겨우

캘 수 있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이 속도로 언제 끝내고

밥 먹으러 가냐! 일해라, 인간들아!”


촤악! 웨어울프가 채찍을 내리쳤다.


말은 저렇게 해도 저 녀석, 생각보다 나쁜

놈은 아니다. 감독관 중에선 제일 나았다.


“하, 허리 아파. 또 언제 끝내고 밥 먹냐?”

“오늘 저녁엔 고기가 좀 나온다던데.”

“진짜냐?! 와씨, 어쩐 일로 고기를 다 줘?”


나는 동료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정신없이 일하다가, 작업 종료를 알리는

호각 소리를 듣자마자 달려갔다.


“야, 늑돌아! 오늘 저녁 고기냐?”

“감독관이라고 부르라고!……근데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들었냐? 오늘 저녁 양파다.”

“아이 씨팔!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쓰지!

하여간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몰라요.”


이렇게 투덜거렸지만, 결국 난 저녁밥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다.


오래 살고 싶으면 뭘 주든 군말 없이 잘

먹어야 했다. 안 그럼 진짜 죽는다.


참, 죽으면 어떻게 되냐고……? 

이 광산과 우리의 주인은 흡혈귀다.

그렇다. 죽으면 시체조차 가공되어 그들의

밥상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시체까지 알뜰하게 써먹는단 말이지, 참나.’


아무튼 밥을 다 먹으면 3시간 정도 쉬는

시간을 줬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고, 그 중

1시간은 휴식 시간, 9시에는 취침이다.


날 제외한 대부분의 노예는 이 시간에도

그냥 잤다. 안 그러면 피곤해서 내일의

고된 노동을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광산에서도 가장 오래 살아남은

최고참, 이미 작업 요령이나 어떻게 해야 좀

짬짬이 쉴 수 있는지는 파악해 둔 상태다.


그래서 남는 체력으로 뭘 하냐고?


“와씨, 형님. 또 글 써요?”


내 옆에서 누워 자려던 존이 말했다.

이런, 불빛 때문에 깼나. 좀 미안하다.


“어엉. 이게 내 유일한 취미 아니냐.”

“체력도 좋으셔, 크크.”

“시끄러워, 인마. 잠이나 자.”


존이 몸을 돌려 누웠다.

그보다 오늘은 또 무슨 내용으로 써볼까.


“…….”


끄적끄적, 나는 연필로 종이를 채웠다.

죽기 전, 나는 소설가였다.

인기는 없었다. 몇몇 취향 독특한 독자들이

날 찾긴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대단한 재능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글쓰는 게 좋았고, 그래서 썼다.

돈이나 인기도 바랐지만, 그저 글을 쓰는

동안엔 현실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어차피 아무도 안 읽어주지만.’


내 동료들도 딱히 재미가 있진 않다고 했다.

가끔 몇몇이 시간 때우기 용으로 읽긴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뭐, 애초에 이세계 사람과 나의 취향이

비슷할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근데, 응?”


뭔가 이상하다.

어째서인지 종이가 몇 장 부족했다.

뭐지? 분명 쓰다만 소설이 있었는데.


“또 어디서 잃어버린 거야……종이도 귀한데.”


이 종이랑 연필은 감독관인 웨어울프에게

부탁해 받아온 것이다. 이런 광산에선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에이, 모르겠다.”


오늘은 영 아닌 것 같다.

귀한 종이도 잃어버렸고, 오늘따라 피곤했다.

뭐― 어차피 독자라고 할 사람도 없다.

쓰고 싶으면 쓰고,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다.

그렇더라도 누구 하나 재촉하는 사람이 없다.


‘마감에 쫓길 일이 없다는 건 좋네…….’


나는 종이를 덮고, 바닥에 누웠다.


노예 사냥꾼한테 잡혔을 땐 죽는 줄만 알았다.

이세계 환생했다지만 전생하고 조금도 다르지

않은 스펙에, 내겐 재능도 없었다.


마법도 있고 오러도 있는 세계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쪽에도 재능이 없었다.

그냥 평범한 농민A. NPC로 나와도 누구

하나 기억해주지 않을 그런 놈이 바로 나다.


하다못해 얼굴이라도 잘생기게 환생했으면

좋았을 텐데, 얼굴도 그냥 농부A다.

……빌어먹을 인생. 5살 때부터 농사짓다가

붙잡혀 노예가 되었고, 그 뒤로도 쭉 이렇게

일만 하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일만 열심히 하다가 죽겠지.

참, 이럴 거면 환생하질 말던가.


‘좆같네 시발…….’


하렘……먼치킨물 찍고 싶었다고…….

나는 흘러내리는 한줄기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야, 너 대체 무슨 사고를 친 거야!?”

“호에?”


오늘도 열심히 일하던 도중에, 감독관인

웨어울프가 와서 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이 미친놈아, 너 뭔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잠깐만, 내가? 뭘? 무슨 일인데?”

“주인님이 널 호출하셨다고, 직접 지명해서!!”


와, 씨발 잠깐만.

이게 가슴 철렁한다는 느낌이구나, 워우.

근데 나? 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일단 얼른 가! 야, 무슨 일 생겨도 나는

모르는 거다? 나까지 엮지 마!”

“알겠어, 알겠다고……혹시 내가 못 돌아오면

우리 애들은 잘 부탁한다.”

“꼭 살아 돌아와라, 꼭!”


거봐, 생각보다 괜찮은 놈이라니까?

나는 웨어울프의 어깨를 툭툭 친 후, 광산을

떠나 성으로 향했다.


성. 우리의 주인인 흡혈귀들이 사는 곳이다.

사실 나는 5년이나 여기 살았지만, 이곳에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우리 주인 얼굴을 본 적도 없다.


‘드디어 잡아먹을 생각인가?’


5년이나 부려 먹었으니 슬슬 먹어버리자고

생각했나? 그냥 이대로 도망쳐버릴까?

하지만 생각해보니 여긴 섬이었다.

달아나봤자 3일 안에 잡혀서 처형당하겠지.


“제발 아무 일도 아니기를…….”


그래, 어쩌면 단순한 착오일 수도 있잖아?

사소한 오해나 그런 거. 아마 그런 거겠지.

난 아무 잘못도 없다. 일도 열심히 했다.


“정지. 신원을 확인하겠다.”

“네, 네.”


성 앞에 대기하고 있던 경비병들이 내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만졌다.


“앨리스 님은 2층 응접실에 계신다. 딴 길로

새지 말고 즉각 응접실로 가도록, 알겠나?”

“넵!”


나는 경비병들을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갔다.


‘유럽 여행 갔을 때 생각나네…….’


화려하다. 그저 화려하다, 그 외에 다른 단어로

이 광경을 표현할 수 없는 게 내 한계였다.


금색과 붉은색만이 존재했다. 벽도 바닥도

붉었고, 가구의 테두리에는 금이 발라져 있어

유독 눈에 띄었다.


마석으로 번 돈으로 사온 거겠지.

마석 장사가 잘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장사가 안되면 우린 또 어디로 팔려나갈지

모르니 주인의 성공을 빌 수밖에 없다.


팔려만 나가면 다행이지.

여차하면 진짜 다 반찬이 될 수도 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간 후, 곧장 응접실로

갔다. 어딘지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방 앞에 웬 메이드가 서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같은 노예지만, 메이드들은 우리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한다……고 들었다.

뭐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니 뭐라 말 못 하겠다.


“앨리스 님이 기다리십니다.”

“고, 고맙습니다.”


메이드가 문을 열어주었고, 난 안으로 들어갔다.

응접실도 바깥만큼이나 화려했다.


“좀 늦었군.”


방 가운데에 있는 소파 의자와 테이블 너머를

보자마자, 나는 얼른 바닥에 엎드렸다.

눈을 마주친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여자는 위험하다.


“앉아라. 거기 서 있지 말고.”

“아,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내가 정말 의자에

앉으려고 했다간 이 무엄한 놈이! 라고

소리치며 나를 반으로 갈라 죽일 수도 있다.


“제가 감히 지엄하고 위대하시며 고결하신

앨리스 님과 마주보고 앉을 순 없습니다.”

“후후, 그래? 그럼 그러고 있던가.”


휴, 아마 이게 정답이었겠지.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가 널 왜 불렀는지 알겠나?”


씨발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대답했다간 바로 오늘 저녁

반찬이 되어 식탁 위에 올라갈 것이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을까?

작업하다가 슬슬 눈치껏 일한 거?

아니면 존이 입던 팬티를 훔쳐 입은 거?

감독관이랑 친구 먹은 거? 


‘근데 그런 걸로 날 일일이 부를 리 없잖아.’


그런 사소한 죄는 감독관을 시켜서 처벌하면

된다. 일부러 여기까지 부를 일은 아니다.

그럼 왜 나를 여기 부른 걸까. 진짜 모르겠다.


“제, 제 무지를 용서해주십시오. 저의 저능한

두뇌로는 도저히 저의 잘못을 헤아릴 수

없으니, 부디 노여워하지 마시옵소서.”

“그래, 잘못. 너는 분명 잘못을 저질렀지.”


고개 들어. 나는 그 명령에 따라 고개를 들었다.


그래 젠장. 죽기 전에 눈 호강은 하는구나.

앨리스는 예뻤다. 정정. 미친 듯이 아름다웠다.

흡혈귀들이 다 예쁘고 잘 생겼다는 소리는

들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제일 눈에 띄는 건 눈동자였다.

평범한 인간과 달리, 붉은 눈동자에 무슨 

독특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나이는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지만, 흡혈귀는

원래 다 그랬다. 나이를 먹질 않으니 대체

얼마나 나이가 많은지 가늠할 수가 없다.


검붉은 드레스는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길었다. 불편해 보이지만 굳이 지적하진 않는다.


마지막으로 얼굴과 머리카락. 대체 뭐라고

묘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소설가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묘사에는 재능이 없었다.


“뭘 그리 빤히 보는 거지?”

“죄, 죄송합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기분 나쁘다고 말하면서 죽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약자다, 툭 치면 죽는단 말이다.


“네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제발,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빌었다.

비굴하다고? 상관없다. 오늘의 굴욕을 감내하고

내일을 살아가는 게 훨씬 낫다.


“너의 죄는 바로 여기 있다.”


슬쩍, 나는 그녀를 훔쳐보았다.

앨리스가 낯익은 종이 뭉치를 들고 있었다.


“어?”

“뭔지 알아보는 모양이군.”


그거, 그건 내가 쓴 소설이잖아.

그게 왜 저기 있지? 어디서 저걸 가져온 거야?

이해가 안 된다. 머리가 따라가질 못한다.


“압수품 중에 이런 게 섞여 있더군. 흥미가

생겨 읽어봤는데……정말이지…….”

“죄,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나는 머리를 땅에 처박으며 외쳤다.


내용이 불쾌했나? 망할, 괜히 야한 내용을 

넣은 게 화근이었나! 대체 어디가 문제였지?!

죽는다. 이대로 가면 나는 죽고 만다.


“하나 묻겠다. 제대로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앨리스가 종이뭉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꿀꺽, 나는 침을 삼켰다.

어쩌면 이게 내 유언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2화는 어디 있는 거냐?”

“네?”

“2화 말이다, 여기엔 1화밖에 없더군.”


앨리스가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아니, 감질나게 여기서 끊다니 괘씸하다!

그래서 빌리는 어떻게 된 거지? 고블린 무리와

마주한 다음 어떻게 된 거지?!”

“그, 저기, 그게.”

“2화 내용이 궁금해서 며칠째 잠도 못 자고

이러고 있단 말이다! 이런 걸 너희만 숨겨두고

보다니, 괘씸하긴! 용서할 수가 없다!”


아니 시발 그걸 왜 읽어요.


그보다 2화라니, 그딴 건 구상도 안 했다.

나는 주로 단편 소설만 썼고, 그중에서도

1화만 쓰고 튀는 걸 정말 좋아했다.


누군가가 내 소설을 읽고 2화가 어디있냐고

울부짖는 걸 볼 때마다 오싹오싹한 희열을

느꼈다. 그렇다, 나는 1화 빌런이었다.


“자, 어서 2화를 내놓거라!”

“……아직……안 썼습니다.”

“뭐야!?”


앨리스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2화가 없다니 대체 어찌 된 영문이냐!?

말도 안 돼, 이토록 재미있는 소설에 2화가

없다니! 너는 대체 뭘 하느라 2화도 안 쓰고

여태껏 이러고 있었단 말이냐!”


아니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는데 글 쓸 시간이

얼마나 나겠냐, 양심 어디?

하지만 나는 이런 소리를 입 밖에 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너, 직책이 뭐지?”

“그냥 광산 일꾼입니다.”

“좋아, 너는 해고다.”


갑자기? 너무 뜬금없는데?


“대신 오늘부터 내 저택에서 일해 줘야겠다.”

“무슨 일을……?”

“당연히 글을 써야지! 하루에 한 편, 그걸

매일 써서 내게 가져다 바치도록.”


미치겠네, 이걸 군만두를 먹인다고?

흡혈귀가 직접 먹이는 군만두라니 영광인가?


“왜, 못 하겠어?”

“그…….”

“못하겠다면 뭐 어쩔 수 없지. 죽이는 수밖에.”


앨리스가 다가오자마자 나는 뒤로 기어갔다.


“히익! 아, 아닙니다!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 당연히 써야지.”


좆됐네 씨발. 2화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참, 당연한 소리지만 하루에 한 편이 나오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

“네?”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도 죽인다. 물론

분량이 너무 부족해도 죽일 거다. 최소한 하루

5천자를 반드시 쓰도록. 12시까지다.”


미친, 하루에 5천자를 쉬지 않고 쓰라고?

심지어 내용이 마음에 안 들면 죽어?


“네가 소설을 제대로 쓰는 동안엔, 나는 너를

귀한 손님처럼 대접할 것이다. 식사부터

여자까지, 원하는 건 뭐든지 제공하마.”

“저기…….”

“참, 이 소설은 우리 언니들도 마음에 든다고

했는데, 언니들한테도 검수받아야 할 것이다.

한 명이라도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가 나오면

역시 너는 죽는다.”


난이도 무엇? 미친 건가 씨발?

그냥 못하겠다 그러고 뒤질까?


“그리고 네가 네 역할을 다 하지 못하면

그 죄는 다른 노예에게도 묻겠다. 광산에서

일하는 노예들도 다 함께 죽일 것이다.”

“아니 그건 너무하잖아요!”

“불만이더냐?”


나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이 일엔 내 목만 걸려있는 게 아니다.

잘못하면 노예들이 몰살당한다……!


“그럼, 그래. 작가님이라고 불러줄까?”


앨리스가 킥킷 웃으며 말했다.


“어서 2화를 내놓거라, 나의 작은 작가여.”


이리하여.

나는 흡혈귀의 나작소가 되었다.














1화 빌런이 참교육당하는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1화만 쓰고 갈 거다

그게 이곳 장챈 완장의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