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드래곤이라는 종족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지상의 왕자, 최강의 종족, 보물 수집가.. 이웃집에 드래곤 가족이 살고 있음에도 나에게 그런 강대한 용족의 이미지는 잘 연상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보물에 집착하는 탐욕의 화신이라는 것만은 아주 잘 알 것 같다.


"오빠아아~ 루이 이거 갖고싶어~ 우아아앙~~ㅠㅠ"


"루이야... 이거 오빠가 되게 고생해서 만든 건데..."


"루이 줘어~ 줘어~~"
내가 며칠을 집중해 만든 레고를 달라고 떼를 쓰는 이 드래곤 소녀.. 루이를 보면 역시 드래곤은 드래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가락지의 제왕'에 나오는 드워프와 인간들에게서 보물을 강탈해 자기 레어에 쌓아놓는게 취미인 악룡 스마우그의 모습과 허구한 날 내 장난감을 빼앗으려 드는 루이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작은 등에 돋은 위압적인 날개와 비단같은 머리결 사이로 난 큼지막한 뿔을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루이야. 이거는 진짜 못 주는ㄷ..."


"으아아아앙~~ 오빠아~ 루이 이거 갖고싶단말이야ㅠㅠㅠ"


"이눔시끼! 루이야, 오빠가 나빴지?"


"켁! 엄마.... 아프잖아."
아까보다 더 크게 울어대는 루이를 어떻게 달래야 하나 고민하던 와중 내 등에서 짝 소리와 함께 충격이 가해딘다. 등뒤를 돌아보니 우리 엄마가 화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깟 장난감 하나를 양보 못해서 그렇게 실랑이니? 다 큰 녀석이 이렇게 귀여운 애를 울려놓고 있으면 어쩌자는거야?"


"그깟 장난감이라니. 그리고 얘가 뺏어간 장난감이 한두개가 아닌데..."
어릴 적 내가 좋아하던 가면레인저 장난감을 뺏어갈때도 루이는 이런 꼬맹이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루이는 그 어린이 모습을 무기로 플래닛 워즈의 주인공 함선, 부품이 천개에 달해 만들기도 고생인 밀리언 팔콘을 달라며 떼를 쓴다.

집에 돈도 많으면서 왜 굳이 내 장난감만 뺏어가는지 모르겠다. 어린 소녀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들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지만 내가 손땀 흘려가며 끼우고 맞춘 장난감은 귀신같이 찾아내서 가져가겠다 난리를 피운다. 밀리언 팔콘도 나같은 학생에게는 꽤나 부담되는 가격인데 말이다. 그녀에게는 껌값이겠지만....


"뭐, 그래서 안주겠다고?"


"아니... 하아. 루이야~ 이리 와."


"웅..."
내 오만상을 본 엄마가 다시 등짝 스매싱의 준비자세에 들어가는 통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밀리언 팔콘을 포기하기로 했다. 자신을 부르는 나의 목소리에 루이는 울상을 그치고 이쪽을 바라본다. 그녀의 발랄한 성격에 어울리는 연분홍색 머리칼이 물결처럼 찰랑거려 화사한 빛을 내뿜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거 줄게. 오빠가 엄청 고생고생해서 만든거니까 소중히 해야된다?"


"응! 오빠 고마워! 사랑해♡"
떼쓰며 울 때는 그 뿔을 잡아다가 땅바닥에 거꾸로 꽂아버리고 싶은 꼬맹이지만 지금처럼 활짝 웃으면 이렇게 예쁜 아이가 없다. 맨날 내 장난감을 뺏어가니 미울 만도 하지만 이런 진심으로 기쁜듯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미워할수가 없는 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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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이것만 끼우면..."
졸업한 고3의 백수력을 가감없이 보여주겠다는 듯 나는 밀리언 팔콘과 라이벌 구도에 있는 플래닛 디스트로이어 레고를 잠도 자지 않고 이틀 만에 조립해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현관 쪽에서 들려오는 어린 여자아이가 목놓아 우는 소리에 나는 손에 집고 있던 마지막 레고 피스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오늘은 또 뭘 찾았길래 저 난리야.. 설마 이걸 뺏으러 온 건 아니겠지..."

루이는 내가 처음 장난감을 사왔을때는 전혀 관심이 없다. 꼭 낑낑대며 조립해 놓은 걸 어떻게든 뺏어가려고 안달이 난다. 이녀석도 밀리언 팔콘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인가...


"내꺼어~~ 내꺼어~ㅠㅠㅠ"


"또 오빠가 장난감 숨겼어? 나쁜 오빠다, 그치? 갖고싶은거 말해봐. 아줌마가 확 뺏어 줄게."
이웃집하고는 부모님끼리 친하셔서 평일휴일을 가리지 않고 매일 찾아오는 루이에게 우리 엄마는 껌뻑 넘어가셨다. 애교없는 아들내미보다 깜찍한 여자아이가 귀여운 것은 이해하지만 외동아들의 멘탈이 실시간으로 깎여나가는 것도 생각해주셨음 한다.


"루이야, 왜 그렇게 울고 있어?"


"루이 줘ㅠㅠ 내꺼야아아ㅠㅠ"
나를 보자마자 더 목 놓아 울며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리고는 내거~하고 더 크게 울러재끼기 시작한다. 플래닛 디스트로이어 말고는 더 뻿어갈것도 없을텐데 뭘 가져가려고 이러나 싶어 한숨부터 나온다...
뭐든지 빨리 쥐어주고 보내야 덜 속상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뭐가 갖고싶냐 루이에게 물었다.


"으... 오빠가 그냥 다 줄게. 뭐 가져가고 싶은데?"


"흐아아앙~ 웅...?"


"루이야. 일단 들어와서 갖고 싶은거 뭐든지 가져가. 현관에서 그러지 말고, 응?"
이렇게 쬐끄만 애가 현관앞에서 목놓아 우니 동네사람들이 무슨 일 있나 들여보기 시작한다. 그 시선이 신경쓰이는지 엄마는 집안으로 들어와서 갖고싶은건 뭐든지 가져가라고 루이에게 말한다.


"히끅... 진짜요? 진짜 뭐든지 갖고가도 괜찮아요?"


"그럼~ 아줌마가 뭐든지 가져가게 해줄게."


"그래. 아무거나 다 가져가. 뭣하면 오빠 간도 빼줄게."


".....♡"
엄마와 나의 말을 들은 루이가 감쪽같이 울음을 그치더니 어린아이같은 외모와 맞지 않는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엔 큼지막해서 사랑스러웠던 눈이 가늘게 째지며 내게 그 시선을 고정해 온다.


"저....루이야?"
루이의 어린아이다운 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갑자기 위아래로 길쭉해지더니 파충류의 세로동공으로 모습을 바꿨다. 입맛을 다시며 포식자의 눈으로 내게 다가오는 루이의 낯선 일면에 내가 당황하며 뒷걸음을 치려한 그때.


"♡♡♡♡♡♡♡♡"

"우왓!?"
루이가 선수를 쳐 내 팔을 확 잡고서는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황홀한 듯이 콧소리를 내며 내 볼을 한번 핥고는 반항할 수 없는 완력으로 나를 꼭 끌어안는 그녀. 내가 본 적 없는 루이의 모습에 놀란 나는 내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감각에 한번 더 놀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루이는 나를 바라보며 귀엽다는 듯 내 볼에 입을 맞추며 엄마에게 말했다.


"뭐든지 준다고 약속하셨죠? 오빠는 이제 내거야♡ 내 보물 1호♡♡"


"으아아악!! 루이야. 이거 무섭거든? 그러니까 내려줘!!"


"오빠가 갖고싶은거 다 준다며? 나는 오빠가 제일 갖고싶었어. 나랑 결혼하자♡"

제일 갖고싶은게 나였냐!? 어디로 날아가는거야아아~~





디씨시절에 맨 처음으로 썼던 글의 리마스터 버젼인 것

몇개월 전의 념글을 보고 삘받아서 쓴 거였는데 이제는 못보는게 아쉽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