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https://arca.live/b/monmusu/6235268

원래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내려 했는데 어쩌다가 새드엔딩됨

누가 부탁해서 구상만 했던 거 써서 올려봤어

원본에서 ~박물관으로 향했어 뒤로 이어지는 내용임





하지만 소년이 박물관에서 목도한 건 왠지 모를 불안감에 설마 하면서 제발 아니길 바란 바로 그 모습이었지 


박물관에서 공개된 그녀는 커다란 홀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철창 안에 동물원의 짐승마냥 갇혀 있었어.


검은색 철창 한가운데에서 쇠사슬에 묶인 하피는 공포에 질려 그 통통한 몸을 웅크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고


철창 벽면을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생물일 그녀를 보기 위해 아우성치며


그녀에게 손을 뻗고, 막대기로 그녀를 콕콕 찌르려 하며, 관심을 끌겠다며 큰 고함을 질러서 그녀를 놀라게 했지.


그녀의 몸에 가득한 새빨갛고 긴 자국들을 본 소년은 빌어먹을 학자들이 돈에 미쳐 그녀를 박물관에 팔았다는 걸 알고는 괴성을 지르며 철창을 붙잡고 울부짖었어.


그를 알아본 하피는 삐약삐약 울면서 몇 주만에 보는 반가운 소년을 향해 아장아장 뛰어갔지만, 소년은 금세 달려든 경비들에게 제압당해 쫓겨나고 말았지.


비록 소년과는 다시 떨어졌지만 자신을 버리고 사라진 줄만 알았던 소년이 다시 돌아오자 몇 주간 우울에 빠져 지내던 하피는 포기하고 싶었던 삶을 다시 살고 싶다는 희망이 생겼어.


그러고는 비록 머리가 나빠 소년에게 장난어린 꾸중도 많이 들은 그녀였지만, 철창 속에서 탈출해 소년과 재회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생각한 결과 하나의 묘안을 낼 수 있었지.


그날부터 하피는 식음을 전폐하고 그냥 철창 가운데서 하루 종일 미동도 없이 누워 있기만 했어. 먹보에다 활달했던 그녀였기에 처음엔 너무 힘들었지만 소년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버텼지.


아무리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생물이라지만 하루 종일 정신이라도 나간 듯이 바닥에 누워 아무 반응도 안하는 그녀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결국 하피의 넘쳐나던 인기는 점차 시들해졌어.


그녀의 이상질환을 안 고치면 박물관 매출이 계속 줄어들 것을 걱정한 박물관 관장은 결국 하인을 시켜 그녀를 데리고 유명한 하피 전용 동물병원에 갔다오라고 했고


소년과 수십 번도 넘게 산책해봐서 아무리 댕청한 그녀라도 훤히 꿰고 있던 그 뒷골목을 하인이 지나던 순간, 그의 등에 업혀 있던 하피는 그의 목을 강하게 깨물어 하인에게서 탈출해 좁은 하수구로 도망쳤지.


악악 소리를 지르며 분노하는 하인을 뒤로 하고 하피는 하수구 속을 따라 도망쳤어. 냄새나고 오물로 가득한 그곳이었지만 소년을 이제 곧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하피는 행복에 젖어 하수구를 기어갔고


결국 그 끝에서,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던 자신과 소년의 작은 집에서, 그녀를 보는 순간 죽은 가족이라도 다시 만난 듯 오열하면서 달려오는 그토록 그리웠던 소년을 다시 만날 수 있었어.


그 험난한 여정과 위험을 끝내고 다시 소년의 품에 안긴 하피는 태어난 그 어떤 순간보다도 행복하고 기쁜 상태였지.


다시는 서로를 잃고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소년과 하피는 결국 소년의 말대로 하피에게서 하피의 티를 전부 지워버리기로 했어.


소년은 그녀에게서 하피의 티를 모두 벗기기 위해 칼과 가위로 그녀의 모든 황홀하게 아름다운 깃털들을 자르고 뽑아내었고, 깃털이 사라지는 건 아프고 슬펐지만 소년과 영원히라도 함께 하고 싶던 하피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지.


몇 시간이 지나 소년이 있는 돈을 다 털어 산 여아용 옷과 화장품으로 꾸민 하피는 더 이상 런던의 모두가 눈독을 들이는 도도새 하피가 아니었어.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의 작고 통통하고 귀여운 인간 소녀가 되어 있었지.


그런 그녀를 본 소년은 기뻐하며 그녀를 꽉 품에 끌어안은 채, 펄펄 날뛰는 박물관 관장이 고용한 사냥꾼들로 꽉 찬 거리를 유유히 빠져나가 세상 어디론가 가는 커다란 범선에 함께 몸을 실었지.


그 후로 소년과 하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그 누구도 몰라.


범선이 폭풍우 속에 침몰해 다 죽었다거나, 조그만 무인도에 정착해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거나 하는 루머들만이 떠돌았지.


하지만 그것과 가장 비슷해 보이는 한 이야기에 따르면, 수십 년이 지난 후 런던 한가운데의 큰 저택에 한 부유한 상인이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살았는데, 그들의 집에는 어딘가 예쁜 하피를 닮은 듯한 작고 귀여운 소녀가 함께 살았다고 해. 


자신을 닮은 작고 귀여운 소년, 그리고 그들이 맨날 안고 다니던 조그만한 예쁜 아기들과 함께 그 상인이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지키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그 소녀 말이야.







해피엔딩이어도 기뻐서 슬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