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고유스킬 ‘고양이 목숨(8/9)’이 발동합니다.]

 

[당신의 여덟 번째 사인은 ‘밧줄 자살’입니다]

 

[스킬 ‘목매다는 비극’을 획득하셨습니다]

 

[…동기화 진행 40% 중. 동기화 진행 중]

 

고양이의 목숨은 아홉 번이라는 말이 있다. 여덟 번 까지는 죽지 않는 불사신이라는 말.

평범했던 첫 번째 삶에서는 이 속설이 당연히 헛소리가 생각했으나….

 

‘드디어 마지막 하나만 남았다….’

 

그래, 나는 죽고 나서 죽고, 죽고, 또 죽었다. 도합 여덟 번이나 삶을 마감했지.

2020년 지구의 원래 세계에서 한번, 그 이후로 일곱 번은 모두 다른 세계에서.

 

―정확히 말하면 난 내가 생전에 보고 즐긴 일곱 개의 창작물 속의 세계로 전생했던 것이다.

 

생전 정보와 현대의 지식을 최대한 이용해 팔자가 피는 순간, 나는 매번 살해당했다.

 

아내들에게. 

 

맞다, 아내들에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일이지만, 난 그 시점엔 정말 사랑했던 집사람에게 목숨을 잃었다. 일곱 번의 삶 동안 일곱 번 모두.

 

[동기화 완료. 축하합니다! 메인 퀘스트 ‘일곱 번의 환생’이 종료되었습니다]

 

내 눈앞에서 흐릿한 글자가 아른거린다.

상태창, 개씹창.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을 정체모를 존재.

이게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했겠지만…환생의 원흉이기도 하다. 

 

어쩌면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성좌의 장난 아닐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환생, 이제 하나 남은 거라고 봐도 좋나?”

 

나에게 이 망할 상태창이 부여한 고유 스킬은 ‘고양이 목숨’. 

8번 죽을 때마다 환생하는 능력이다.

내가 무(無)의 공간을 향해 소리를 치자 새로운 글자가 내 눈앞에 떠오른다.

 

[메인 퀘스트 ‘일곱 번의 환생’의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 < Y/N >]

 

되도 않는 선택지라 헛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당연히 Y, Yes 아니겠는가.

내 생각을 읽자마자, 상태창의 글자가 목이 잘린 뱀이라도 된 마냥 요동친다.

 

[일곱 번의 환생 동안 당신과 인연을 맺은 일곱 명의 인연들을 이 공간에 소환합니다]

 

[…동기화 진행 중 13%. 동기화 진행 중 26%]

 

“뭐? 잠깐만, 그 여자들은 이제 보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어!”

 

나와 인연을 맺은 일곱 명의 인연을 소환한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그 일곱 명의 쌍년들을 소환한다고? 이 공간에?

 

[동기화 진행 중 91%. 동기화 완료]

 

“하, 하하. 농담이지? 약속과는 다르잖아, 씨발!!!”

 

[사용자의 무운을 빕니다]

 

이 텅 빈 공간을 점점 빛이 가득 메우더니 일곱 형체들은 윤곽을 잡아간다.

 

첫 타자는 금발을 올려 묶은 녹안(綠眼)의 숙녀.

불사조가 불꽃에 타는 형상을 형상화한 화려한 드레스와 미망인들이 쓰는 베일을 걸치고 있다.

 

“러셀 님…왜 당신께서 이곳에? 부군께서 살아계신다고요? 말, 말도 안 됩니다! 잿더미가 되셨는데….”

로맨스 판타지 소설 『그 악역영애를 죽여라』의 메인 빌런, 카르멘 블레이즈.

 

-원작대로라면 원작 주인공과 황태자가 합심해서 죽었어야할 악역영애나, 내가 상태창이 낸 퀘스트에 따라 집사로서 이 말괄량이를 갱생해보였다.

 

신분을 극복한 결혼식 무도회에서 어째서인지 특기인 정령술로 나를 불태워버렸다.

 

두 번째 형체는 냉기가 쌩쌩 도는, 청은발의 여인으로 변했다. 20세, 약관의 나이. 

흰 두루미를 연상시키는 날개옷에 칼날 뒤가 비쳐 보이는 빙검(氷劍)을 든 채로 조용히 걸어 나왔다. 

 

“…강하진? 너, 정말로 강하진이야? 믿을 수 없어. 왜, 왜 벌써?”

 

헌터 아카데미물 『아카데미의 F급 헌터가 되었다』의 히로인 중 하나인 설루리. 

 

-빙결(氷結)에 관한 이능을 다루는 S급 각성자로 아카데미를 졸업하자마자 대한민국 9위 [빙염여제]라는 칭호를 얻었다.

 

차갑고 까다로운 성격 덕분에 다른 히로인은 눈에 치우고 ‘최애캐’인 그녀만을 공략해서 결혼까지 골인하고 끝까지 믿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무색하게 세라는 원작 주인공이 세운 하렘파티와 함께 나를 공격했다. 저 얼음 검에 그대로 반 토막이 나버렸지. 

 

주인공, 그 새끼한테 세라가 이미 NTR 당했었는지는 정말 몰랐었다. 걸레년.

 

세 번째 주인공은 체크무늬 헌팅캡을 푹 눌러쓴 연갈색 생머리의 여인으로, 고상한 지팡이와 겉옷 차림까지 제법 탐정 분위기가 난다.

허리춤에 찬 건 벨트(Gun belt)가 그녀가 사격의 명수임을 암시한다.

 

“아하, 조수군. 난 자네와 언젠가는 해후할거라고 믿고 있었다네. 정말, 정말로! 다 예상했어. 난 명탐정이니까!”

 

추리게임 『미스 디텍티브』의 주인공인 앨리스 리들.

 

-작중 설정 상 유명한 탐정의 딸로, 제멋대로에 막무가내라 ‘조수’로서 비위를 맞춰주는 게 힘들었다. 결국은 마음을 나누는 것이 성공했으나….

 

결혼식장, 런던의 저명인사들이 모인 그 중요한 장소에서 맹약의 첫 키스 대신 탄환을 내 심장에 박아 넣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

 

네 번째 인물은 늘씬하고 슬림한 여성으로 중화풍의 옷으로 소매 안을 가렸다. 대나무 양산을 던져버리고 나를 향해 다소곳 고개를 숙였다.

어딘가에서 독사가 스산하게 혀를 흔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본녀, 서방님께 문안을 올리옵니다. 삼도천 건너에서 평안하셨는지요?”

 

무협소설 『천마일로』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당상화(唐相花)

 

-천마도, 무림맹주도 아닌 한미하고 빌빌거리는 세가의 일원으로 환생한 내가 촉한 지역을 주름잡는 사천당문의 아가씨와 알게 되기까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나의 실력을 보고 스스로 숙여 부인이 되길 청한 상화는 그 독하다는 고독(蠱毒)을 항아리 째로 쏟아보았다. 

비원인 무형지독을 완성키겠다는 개 같은 이유.

 

다섯 번째 인물은 자그마한 체구의 소녀로 피처럼 붉은 적발과 덧니처럼 나온 송곳니가 가장 큰 특징이다.

환한, 아니, 거의 숭배와 가까운 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셰피, 셰피구나. 와아, 와아. 역시 진조님께서는 죽지 않았어!”

 

사이버펑크 TRPG 『섀도우 스타』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하나인 밤피 바토리아. 

 

-기업도시 ‘네오-서울’의 주인, 드래곤들에게 박해받는 흡혈귀 종족. 날 흡혈귀의 조상, 진조의 환생으로 착각한 그녀와 함께 도시의 어둠을 파헤쳐 나갔다.

 

막판에 드래곤의 편에 억지로 서게 된 밤피는 울면서 은 화살을 고슴도치가 될 때까지 박아 넣었다. 

-유일하게 납득이 갈만할 이유. 

 

검정과 붉은 색이 조화를 이룬 제복, 큼지막한 철혈의 무장이 몸에 달려있는 보브컷의 숙녀로 연분홍색 머리카락에 붉은 브리지가 박힌 게 곳곳에서 보인다.

 

“어머, 사령관님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호~해드릴까요. 음……, 어떻게 해야 할까…….”

 

모바일 턴제 게임 『소울 테이큰』의 캐릭터 중 하나인 샬롯 아이하만.

 

-2차 대전 때 독일을 모티브로 삼은, 가상의 적 제국의 병기-소녀로 둥실둥실해 보이나 사실은 엄청난 새디스트에 우리 쪽 아군 파멸의 원인 중 하나다.

 

절망적인 난이도의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적인 그녀를 포섭하고 결혼까지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말 그대로 벌집이 되었다.

몇 년간 잘 지내다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인물은…. 자그맣고 가녀린 몸에 걸친 교복. 검은 머리카락에 가린 적갈색 눈동자가 어째서인지 빙글빙글 도는 듯하다.

 

“승재 오빠, 금방 다시 만나서 기뻐!”

 

아이돌 육성게임(?) 『러브아이돌!』의 히로인 중 하나인 권나연.

 

-소꿉친구, 옆집 동생으로 말할 수 있는 사이의 인물로 프로듀서로서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다.

 

이 마지막 회차에서 나는 자살했다. 사는 게 너무 괴롭고 끔찍해서 어쩔 수 없었다.

 

화염보다도, 빙검보다도, 총탄보다도, 사천당가의 독보다도, 화살보다도, 벌집이 되는 것보다도.

생각만 해도 오싹해져 나는 약속을 어긴 미치광이 상태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뭡니까? 젠장, 도대체 뭐냐고요!”

 

일곱 명으로부터 각양각색의 반응이 돌아온다. 

반은 당황했고, 다른 반은 상황에 순종했으며, 하나는 재밌는지 싱글거리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태창은 나에게 너무 가혹한 문구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메인 퀘스트 ‘세븐즈 신’이 진행됩니다]

 

[지금까지 수고해준 사용자에게 이들 중 당신을 제일 사랑한 한 사람과 원하는 곳에서 환생할 기회를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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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작품 시리즈튀 성공하면 문피아 일반에 올릴지도? 

일단 비축분 쌓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