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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https://arca.live/b/yandere/8218734 



 

 

 

 

 

“……칼. 혹시 용의 둥지를 찾을 방법이 뭐 없을까?”

 

“있지만, 없으니만 못합니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남자가 되게 간절한 어투로 말한 것을 칼은 단호하게 끊어냈다.

 

“병상에 누워있다가 오랜만에 꺼내신 말을 이렇게 부정하는 건 저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지만, 정말로 없습니다.”

 

“용의 둥지는 피난처입니다. 세계의 마력 그 자체를 뒤바꾸는 목소리를 가진 용들을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

 

“찾으려면 그 위치를 특정한 뒤, 거대한 사자의 몸에서 이를 잡듯이 미친 듯이 돌아다녀야 할 겁니다. 마력으로 인해 생긴, 아주 실낱같은 공간의 뒤틀림을 찾아서.”

 

“그렇게 기적적으로 찾는다 해도 용의 둥지라 불리는 만큼 그곳에 들어갈 자격 같은 게 없으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연이은 칼의 설명에 침대에 누워있던 남자는 할 말이 있다는 듯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심각한 부상 때문에 누워있는 인간이 무리하는 것에 식겁한 칼은 급히 그를 부축했다.

 

“……그럼, 자격만 있다면, 우수한 마법사인 너라면 찾을 수도 있다는 거네?”

 

마치 금이라도 간 듯한 상처가 얼굴에 나 있는 남자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목 부근에 손을 뻗었다.

그러고선 본인의 목에 걸려있던, 붉은색의 얇은 무언가와 불꽃처럼 생긴 금속 장식이 붙은 목걸이를 칼에게 건넸다.

 

“뭡니까 이건.”

 

“금속으로 된 건 우리 가문에서 몰락할 때도 저 검이랑 함께 무조건 보관하려고 했던 물건. 용과 관련된 관계를 상징하는 징표.”

 

“나머지 하나는 내가 계약으로서 용과 함께 일을 수행할 때 받은, 내가 그녀를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을 뜻하는 용의 비늘. 지금으로선 계약이 사라져 빛을 내지는 않지만 말이야.”

 

이내 들려온 설명은 평소에 표정 변화가 없던 칼이라도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용과 계약을 맺은 가문의 징표, 그리고 용의 비늘이라니.

연구를 위해 온갖 특수한 물건을 구하는 마법사로서 이것을 받고서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나, 칼이 눈을 동그랗게 뜬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진짜였군요. 함께 하시던 그 여인이 이야기에서나 나온다는 용이라는 말이.”

 

“응.”

 

“그래서, 이걸 저한테 넘기셔도 괜찮은 겁니까?”

 

“뭐가?”

 

무슨 문제 있냐는 듯 말하는 남자의 모습에 한숨을 쉰 칼은 설교하듯 말했다.

 

“전 마법사입니다. 그리고 이 물건들은 마법사들에게 당신과의 은원관계를 싸그리 무시하고 어딘가로 도망가게 할 정도의 가치가 있고요.”

 

“그래서?”

 

“제가 도망가면 어쩌려고 이런 걸 툭 툭 넘겨주는 겁니까.”

 

“도망가기만 해봐. 그 마왕이란 새끼한테 꼬리 흔들어서 괴물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잡으러 갈 테니까.”

 

농담이 분명한 말. 그러나, 칼은 남자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마왕의 그림자를 사냥한다는 소문의 인물. 붉은 여인과 불붙은 검을 가진 검사.

그 불붙은 검을 가진 검사이자 8개월 만에 그림자 중에서 가장 문제인 타락한 거인과 리치를 토벌한 자가 저 남자다.

그런 인물이 마왕의 편에 선다. 그 말도 안 되는 검을 우리에게 겨눈다.

상상만 해도 몸이 조금 떨리는 것을 느낀 칼은 충고하듯 말하였다.

 

“다른 분들에게 그런 말 농담으로도 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특히 마왕과 관련된 일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제나 성기사분들에겐 말이죠.” 

 

“그래. 알았어. 그래서 용의 둥지를…… 으윽...”

 

“괜찮으십니까?”

 

멀쩡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표정을 와락 구기며 몸이 기우는 남자.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는 듯 침대 위에서 그 몸을 비틀어대는 것에 칼은 급히 그를 부축했다.

 

“괜..찮아. 그보다 북쪽의 산맥에서 용의 둥지를 찾는 것 좀 부탁할 수 있을까...”

 

눈꺼풀이 부르르 떨리고, 붕대가 감긴 손으로 배에 덮인 모포를 찢어질 듯 움켜쥐는 남성.

칼로서는 겪어 본 적 없는, 남자의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보검의 부작용에서 오는 고통 때문이었다.

 

“정말 끔찍하군요. 무슨 가뭄이라도 난 땅처럼 살이 갈라지고 불에 그을린 것처럼 변하게 하다니. 그 용검이라 불리는 보검은 마검인 겁니까?”

 

“너무 많이... 과하게 사용해서 그래. 듣기로는 내 적성이 초대 가주랑 비견된다 하는데. 그 초대 가주도 나처럼 용검을 쓰진 않았을 거다...”

 

“그렇군요.”

 

“말 돌리지 마... 부탁 들어줄 거야 안 들어줄 거야.”

 

“개인으로서도, 마법사로서도 당신에게는 청산해야 할 빚이 있습니다. 아무리 불합리한 부탁이라도 거절할 수는 없죠.”

 

“진즉에 그렇게 좀 말하지... 당장이라도 숨넘어갈 거 같은 환자 고생을 시키네.”

 

“그래서, 용의 둥지를 찾은 뒤에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할 말은 다 끝났다고 생각해 침대에 누우려던 남자를 칼의 질문이 붙잡는다.

 

“……그냥, 확인만 해줘. 그곳에 그녀가 있나, 그리고 잘 지내나 못 지내나. 못 지내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돌봐줘.”

 

“정말 그거면 되겠습니까? 목숨을 건 일을 함께한 동업자잖습니까. 할 말 하나 없습니까?”

 

“그래 봤자, 갈라진 지 오래야. 계약도 이미 끊겼고, 내가 그녀에게 뭐라 할 말은 없어.”

 

“계약 관계도 없는 분을 위해 목숨을 걸고, 결국 지금처럼 되시다니, 당신도 정말 호구군요.”

 

“……시끄럽고. 빨리 가기나 해.”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북쪽 산맥같이 추운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려면 필요한 게 많거든요. 그럼 안정을 취하시길.”

 

덜컹.

 

칼이 나간다.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다시금 정적이 맴돈다.

찾아온 침묵을 이불 삼아 남자가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은 순간이었다.

 

“……시발 또 왔냐.”

 

갑자기 매우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눈을 감은 남자가 욕을 내뱉는다.

 

“마왕이라고 불리는 새끼가 인력이 아주 부족한 가 봐? 지 부하를 전부 죽인 놈한테 굽신대면서 손을 빌리려고 하고.”

 

“몇 번이고 이야기하게 하지 마. 안 해. 팔다리가 다 잘려서 뒤지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 밑에는 안 들어가.”

 

“꺼져. 예언에 나오는 용사에 겁먹어서 비스무리한 거 다 죽이는 겁쟁이 외톨이랑은 말 섞고 싶지 않으니까.”

 

“저주? 걸어보던가. 병신처럼 봉인된 놈이 건 저주가 세봤자 얼마나 세겠어?”

 

적대심을 여실히 드러낸 남성. 헤른 칼라이스는 그렇게 혼자 방 안에서 중얼거렸다.

 

 

 

 

 

 

***

 

 

 

 

 

 

 

1년 내내 피부가 아린 추위가 끊이질 않는 북부.

오늘은 날씨가 좋은 건지 그저 작은 눈송이가 내려오는 하늘 아래를 두 인영이 걷고 있었다.

3일간 둥지를 찾는 탓에 눈 덮인 산을 오르락내리락한 칼과 그런 칼의 말을 듣고 둥지를 뛰쳐 나와 그를 들쳐 매고 근처 도시까지 날아온 에이르였다. 

 

“……협조 감사합니다. 레드 드래곤 에이르님.”

 

도시에 도착한 뒤 앞에서 길을 안내하던 칼은 진심으로 에이르에게 감사를 전하였다.

처음 둥지를 발견했을 때는 도플갱어에게 정신 나간 용을 어떻게 설득하나 까마득했다.

내부에서 피로 그린 헤른의 얼굴을 봤을 때, 죽이려고 달려드는 에이르를 제압했을 때는 이거 진짜 안부만 전해줘야 하나 싶었을 정도.

 

“빨리 안내나 해 헤른한테.”

 

그러나 지금처럼 헤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그녀는 진정되다 못해 너무나도 순종적으로 변하였다.

그 소름 끼치는 피 그림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죽이려고 달려드는 미친 용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

 

‘정신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야. 그러면, 헤른 씨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한 탓인가?’

 

정신이 불안정했던 헤른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전적이 있는, 정신 관련한 마법을 사용하는 칼은 대충 먹다 버린 빵처럼 너덜너덜한 에이르의 정신 상태를 보고선 추측했다.

본래부터 헤른에게 상당한 감정을 가진 그녀가 미쳐버리면서 그 감정이 뒤틀려 그에 대한 집착이 심화되었다고.

그 결과 지금 그와 관련된 나에게 얌전히 따르는 거라고.

 

완전한 정답은 아니었다.

 

칼의 추측대로 도플갱어 사건 이후 에이르는 헤른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게 되었다.

그 결과 헤른과 관련된 일이 있는 칼을 순종적으로 따르는 것도 있다.

단지 그녀에게 생긴 것은 헤른에 대한 집착뿐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죄책감.

 

도플갱어를 기점으로 여태껏 자신이 해왔던 행동 하나하나를 중죄로 여기고, 그렇게 사랑하고 집착하는 헤른의 목소리를 두려워하게 만든 감정.

헤른에 대한 집착과 충돌하여 그녀가 미쳐버리게 만든 죄책감인 만큼 지금 그녀가 침착을 유지하는 것도 이 감정 덕이었다.

 

그가 나를 불렀다.

 

정말 쓸모도 없는, 그를 죽이려 한 쓰레기인 나를.

 

그에게 사죄를 전해야 한다.

 

그를 도와야만 한다.

 

“……잠시만, 대기해주시죠. 포탈의 좌표를 조정하여 유즈라에 돌아가기 전에 연락을 넣어보겠습니다.”

 

헤른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하던 에이르는 들려오는 칼의 부탁에 속으로 짜증을 삼켰다.

한시라도 빨리 헤른에게 가야 하는 데 무슨 연락을 하겠다고 또 시간을 잡아먹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헤른과 관련된 사람에게 뭐라 할 수도 없던 그녀가 몇 분, 체감상으로는 몇 년이 지난 듯한 시간을 기다리던 와중이었다.

 

“뭐..?”

 

저 멀리서 당황해하는 칼의 목소리가 에이르의 귀에 들어왔다.

용인만큼 그 시력과 청력이 인간을 아득히 넘는 그녀는 무슨 일인가 귀를 기울여봤다.

 

“1시간 전, 헤른 씨가 사망했습니다.”

 

칼이 손에 쥔 구슬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을 들은 에이르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

 

 

 

 

 

 

포탈을 타고 유즈라에 도착한다.

 

그와 동시에 곧바로 폴리모프를 해제한다. 

 

용의 형태로 변해 하늘로 날아오른 나는 칼이란 남자가 말한 병원에 도착한다.

 

다시 인간의 형태로 변해 병원 내부로 들어간다.

 

그가 있는 곳, 그가 있어야만 하는 곳으로 쉬지 않고 달려가 그 문을 연다.

 

“헤른?”

 

나는 너의 이름을 불렀다.

 

이전처럼 웃어주지 않아도, 나를 욕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듣기를 거부했던 네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거기 있어?”

 

나는 방 안에 있는 침대에 다가가 그 위를 덮어씌운 새하얀 천을 벗겼다.

 

그곳엔 네가 있었다.

 

쓰레기 같은 나를 위해 고생했다는 게 눈에 보이는, 용검의 부작용이 온몸에 퍼진 거로도 모자라 무언가로 인해 곳곳이 새까맣게 변해버린 네가.

 

“헤른. 나야. 에이르.”

 

다시금 너를 불러본다.

 

당장이라도 감겨 있는 두 눈이 뜨이고, 저 입에서 대답이 들려오길 기다린다.

 

“미안해... 내가... 멋대로 도망가서... 그 탓에 혼자 고생하게 하고... 정말...”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그의 대답을 듣는 것은 내 욕심이란 걸.

 

그는 이제 누가 와도 대답을 해줄 수 없다는 걸.

 

헤른은 죽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에게 사죄할 것이 너무 많았던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을 이어갔다.

 

“미안... 미안... 정말 미안... 나 너한테 너무 심한 짓만 했어...”

 

나의 복수심을 위해서 널 계약이란 명분으로 속박했다.

 

네가 나에게 전하는 마음을 받기만 하고 너에게 베풀지 않았다.

 

너는 언제나 나를 위하지만, 나는 나만을 바라봤다.

 

네가 힘든 몸으로 나를 걱정하고 위로해 줄 때 나는 그것을 갈구했다.

 

네가 목숨을 걸고서 싸우다 쓰러졌을 때 나는 환상에 속아서 너를 죽이려 했다.

 

네가 그럴 사람이 아님에도 너를 의심하고 혼자 두려움에 빠졌다.

 

혼자 있던 나를 보듬어 준 너를 혼자 있게 내버려 두고 말았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뭐든... 뭐든 할게.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 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눈 좀 떠줘...”

 

그렇게 붉은 용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를 잃고 말았다.

 

곁에 남은 거라곤 그 소중한 존재가 사용하던, 이제는 더, 이상 뽑힐 일 없는 검. 한 자루뿐이었다.

 

 


3편 짧은 건 미안! 원래는 좀 더 쓰려고 했는데 내일 일찍 나가야해지고 갖다와서 다음 쓸게. 심한 뇌절하고 구린 필력으로 버무러진 글 봐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