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편은 신지와 아스카의 내면묘사보다는 주변의 상황과 대한게 주된 내용이네요

순애가 나오려면 아직 한참...







그런 와중에서도 빠르게 정신적인 회복을 끝낸 것은, 역시 조금이나마 서드 임팩트의 진실을 아는 일부 인간들이었다.
이미 폐허가 되어 있는 제3신도쿄시에서 일찍이 지오프론트라고 불린 곳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 부근에 수십 명의 남녀가 모여 있다. 모두 하나같이 피곤한 얼굴로 서로를 둘러보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하지 못한 것이다. 한동안 계속되는 침묵…. 이윽고 초로의 남자가 말문을 열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이것이 전부인가?」


안경을 쓴 젊은 남자가 그에 대답했다.


「네, 부사령. 발령소도 살펴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NERV에서 살아남은 건 우리들뿐인 것 같습니다. 숫자로 말하자면 전체 인원의 10분의 1
   이하입니다. 다만 신경쓰이는 건 시체가 하나도 없다는 것…. 살해당한 직원들부터 공격해 온 전략자위대 녀석들까지, 어째서인지 벗어 놓은
   옷들만 이곳저곳에 대량으로 흩어져 있을 뿐입니다만…」


부사령이라 불린 남자는 잠시 생각하고서


「그래서 본부쪽 피해상황은 어떤가?」


하고 다시 질문했다.
그 질문에 이번에는 단발머리의 젊은 여성이 대답했다.


「네, 대부분의 설비가 망가져서 쓸모가 없어요. 요새도시로서의 기능은 거의 완전히 정지해 있다고 봐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MAGI만은 가까
   스로 살아 있지만요」

「그건 불행중 다행이로군」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여자는 고개를 조금 숙이며


「하지만 「멜키올」은 기능의 50%를 잃었어요. 「발타잘」은 77%, 「캐스퍼」의 경우는 92%. 사실상 「캐스퍼」는 지금으로선 사용할 수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MAGI의 실질적인 처리능력은 종래의 10%도 되지 않고요」

「수복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 같나?」

「수복한다고 해도 자재가 없는 걸요. 거기다 무엇보다도 아카기 박사가 없으면…」


그리고 괴로운 듯이 얼굴을 돌렸다. 그녀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이부키 중위. 지금부터 MAGI 운용을 자네에게 일임하겠네」

「제… 제가요?」

「그렇네. 아카기 군의 데이터 뱅크를 보면 어느 정도의 수복은 가능하겠지」

「아… 네. 확실히…. 하지만 제 능력으로는 MAGI를 지금까지의 절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할 건데요…」

「MAGI 자체가 인간에게는 지나친 오버 테크놀로지지. 어떻게 다뤄야 좋을 지도 불확실하고….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에게는 MAGI가 생명선
   이네. 다른 설비 유지를 전부 포기해도 상관없어. 가능한 한 빨리 MAGI를 운용 가능한 상태까지 정비하게. 한시가 급해. 우리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 없네」


그러면서 강한 시선을 보냈다. 그 박력에 압도당한 것처럼


「라져. 그럼 전 기술반을 인솔해서 MAGI 수복에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복수의 남녀를 거느리고 그 자리에서 멀어져 갔다.
남자는 다른 한 명에게 시선을 돌리고서


「그리고… 그렇지, 파일럿들은 발견되었나?」


하고 묻자 그 질문에 장발의 젊은 남자가 대답했다.


「아직입니다…. 지금 수색반이 전력으로 찾고 있습니다만…」

「당장 찾아내게! 어떻게 해서든 정부 녀셕들보다 먼저 보호해야 하네」

「하… 하아…」


남자는 순간 노인의 박력에 밀렸지만 어떻게든 버티고서 전부터 생각했던 의문사항을 꺼내 보았다.


「부사령,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만…」

「뭔가?」

「우리들은 모르는 것 투성입니다. 물론 이 모습을 보면 서드 임팩트가 발생해서 전세계가 엉망이 되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렇다고 해도 그 전후에 일어났던 초상현상은 우리의 이해를 넘고 있습니다. 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되었는지, 부사령께서는 알고 계시지 않
   습니까? 괜찮으시다면 꼭 좀 가르쳐주셨으면 합니다만…」


그 말에 남아 있던 다른 멤버들도 일제히 주의를 기울였다.
당연하게도, 지금 자신들이 처한 상황은 누구나가 알고 싶은 것이었다.


「인류보완계획의 발동… 그리고 그 실패라고나 할까…」


후유츠키는 담담하게 말했다.


「인류보완계획!」

「그렇네…. 군집체로서 진화의 한계에 도달해 서서히 멸망해갈 인류를 구하기 위해, 불필요한 몸을 버리고 모든 인간의 영혼을 하나로 뭉쳐서
   하나의 생명체로 진화시키려는 계획이지. 최후에는 초호기를 의대로 삼아 계획을 성공시키려 했을 걸세.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여기에 있다
   고 하는 건, 그 계획이 실패했다는 의미일세. 결국은 신지 군이 지금의 상황을 바랬다는 거겠지」

「신지 군이 말입니까?」

「그는 그때 초호기와 하나가 되어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되었지. 그리고 모든 인류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네.
   한번 융합이 이루어졌었다는 건 그가 그것을 바랬다는 것이며, 지금 이렇게 우리가 있다는 건 마지막에 그 상황을 거부했다는 거겠지…」

「…………………………….」

「신으로 가는 길은 닫혔다고는 것인가…. 하지만 이걸로 괜찮은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네. 인간은 살아가고자 하는 곳에 그 존재가 있다. 그것
   이 신지 군의 모친이 가진 소원이었으니…」


후유츠키는 옛날을 그리워하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바로 그 표정이 변하며 냉정함이 자리잡았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지금 우리는 지극히 위험한 입장에 있다네」

「! !」

「정부 놈들도 지금은 망연자실한 상태겠지만 이윽고 시간이 지나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 들림없이 우리들에게 모든 정치적 책임을 뒤집어 씌
   울 걸세」

「…그런… 서드 임팩트를 일으킨 건 제에레이고, 그것을 도운 건 놈들에게 놀아난 전략자위대 녀석들 아닙니까!」

「놈들에게 그런 도덕적인 진실 따위는 무의미하지. 자기들에게 불리한 진실은 전부 어둠 속에 매장해버리고 시민들을 속이는 것이 예전부터
   놈들의 상투수단이니까. 특히 이번과 같은 전대미문의 대참사라면 자신들에게서 시민들의 눈을 돌려야 할 필요가 있지. 그렇다면 그 희생양
   으로 가장 적당한 건 우리들 NERV, 그리고 실제로 에바를 조종하고 있던 칠드런들일세」

「……………………………」

「하지만 정부라고 해도 일련의 상황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네. 혼란에서 회복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 지금이라면 우리들의 힘
   으로 정부 녀석들보다 앞설 수 있네! 반대로 말하자면 기회는 지금뿐인 거야. 만약 이대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가 놈들에게 추월당하면 우
   리는 포로가 되어서 서드 임팩트를 일으킨 장본인이 되어 처형당하게 될걸세. 물론 칠드런들도」


후유츠키는 불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말에 전원이 숨을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를 구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사도와 싸워 왔는데, 마지막에는 아군이어야할 인간들로부터 일방적으로 살해당했고, 거기다 기억에도 없는 서드 임팩트의 책임까지 지게 된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그런 어른들의 일방적인 상황에 무리하게 휘말려 들어간 14살의 아이들에게 무슨 책임이 있다는 것인가?
후유츠키는 다시 주위를 둘러 보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지금은 날 따라 와주면 좋겠네. 이 늙은이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자네들의 목숨과 명예를 지켜 보이겠네. 나와 이카리는
   이번 사건들의 주범이라고도 할 수 있지. 상황도 모르고 휩쓸려 들어간 자네들에게는 하고 싶은 말도 잔뜩 있겠지만 모든 것은 정부와의 싸
   움이 끝난 뒤로 미뤄줬으면 한다네. 지금은 정말로 시간이 없으니 말일세. 부탁하겠네!」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본 NERV의 생존 직원들은 우선은 후유츠키의 지시에 따르기로 맹세했다. 모든 사람이 후유츠키의 말에 감복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내분을 일으킬 수 있는 느긋한 상황이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NERV를 떠나서 자신의 몸을 지킬 방법이 없다는 것 또한 확실했기 때문에다.
그때 아오바의 허리에 매달려 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오바는 휴대폰을 들어 두세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후 후유츠키에게 보고했다.


「부사령, 지금 수색반에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세컨드 칠드런과 서드 칠드런을 보호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후유츠키는 「그런가」라고 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가장 걱정하고 있던 문제가 겨우 해결되었기 때문에이다.





이부키 마야를 중심으로 한 기술반은 MAGI 복구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아오바 시게루를 중심으로 한 수색반은 물자 조달과 정보 수집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남은 멤버들은 휴우가 마코토를 중심으로 비교적 피해의 적었던 시설의 수복에 힘을 쏟고 있었다.





죽을 정도로 바빴던 격무가 간신히 일단락 되었으므로, 후유츠키는 처음으로 의료병동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칠드런들이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모습은 어떤가?」


의료반의 여성에게 물었다.


「네. 두 사람 모두 육체적인 상처는 없습니다만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든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할 수 있나?」

「세컨드 칠드런은 외부 자극에 전혀 반응이 없으므로 대화는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서드 칠드런은 괜찮습니다. 다만 정신적으로 불안
   정해서 조심하지 않으면 …」

「알겠네. 그러면 면회를 허가해주겠나?」

「부사령께서 원하신다면…」


후유츠키는 방으로 들어갔다.
중앙에 침대와 의자가 놓여져 있을 뿐인 살풍경한 방이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NERV 본부 안에서는 가장 사치스러운 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침대 위에는 소녀가 누워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의자에 앉은 소년이 소녀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신지 군…」

「………………….」


후유츠키는 소년을 불렀지만 소년은 대답하지 않는다.


「신지 군!」


이번에는 조금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러자 그때까지 소녀만을 바라보고 있던 소년이 처음으로 이쪽을 향해 뒤돌아 보았다.
그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소년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묻고 싶은게 있네만, 조금만 시간을 내 주지 않겠나?」

「…뭘… 이야기하면 되죠?」

「서드 임팩트에 관해서네. 그 후 초호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범위 내에서 가르쳐 줬으면 하네만…」


서드 임팩트라는 말을 듣자, 신지는 순간 무서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후유츠키의 따뜻한 미소를 보고 조금씩 조금씩… 점차 빨라지는 말투로 그가 아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래서… 전 전부 죽어버려! …라고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정말… 정말로… 전부 죽어버려서… 하나가 되는 거라고…… 하
   지만 이런 건… 역시 아… 니라고 생각해서…… 한번 더 모두와 만나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 했었는데……… 현실로 돌아오니까…
   전… 아스카를… 아스카의 목을… 조르고…… 우욱, 큭, 흐읍!」


신지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전… 아스카를… 아스카를……」


그 순간,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싫어어어어어어어어어엇! ! ! ! !」


침대에 누워 있던 소녀가 날뛰기 시작했다.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소녀는 오른손을 하늘에 들어올리면서 그렇게 외쳤다.


「아… 아스카………!」


그것을 본 신지는 당황하면서 아스카의 몸 자체를 감싸듯이 꼭 껴안았다.
그러자 소녀는 한층 더 무서워하면서


「싫어어어어어어어엇! ! 죽는 건 싫어……! 죽이지 마…! 부탁이니까 날 죽이지 마……!」


그렇게 말하면서 격렬하게 날뛰었다.


「아스카! …아스카! …아스카! …아스카! ……」


신지는 마치 주문처럼 아스카의 이름을 중얼거리면서도 아스카의 공격에 몸을 맡긴 채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계속 기다렸다.
잠시 후 진정이 되었는지 아스카가 조금씩 차분해졌다. 그것을 느끼면서 신지는 겨우 아스카에게서 몸을 떼어 놓았다. 신지의 얼굴은 잠시 사이에 너무나 초췌해져 있었다.


「이건 대체?」


후유츠키는 옆에 있는 의사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네, 아마도 이전 전투에서 에바 양산기에 이호기째로 능욕당하고 먹혀서 살해당했을 때의 이미지가 강한 트라우마가 되어서 그녀의 마음에
   남아 악몽이 되어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 밖에도 살해당하는 것에 대한 다른 기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요 일주일
   간 비정기적으로 이런 증상의 발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가 저렇게 꼭 껴안고 있으면 잠시 후에 진정합니다만, 그 때문에 이번에는 그가
   수면부족이라…」


이렇게 설명하고서 의사는 얼굴을 돌렸다.
신지는 아스카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평온한 것이 아니었다. 괴로움에 일그러지는 아스카의 얼굴을 보고서 신지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우욱…… 흑… 크흑……. 나 때문이야…. 내가 아스카를 죽이려고 했으… 니까… 아스카가… 우우…… 아스카… 미안……우우……」


신지는 아스카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후유츠키는 크게 한숨을 쉬고서 가만히 신지의 어깨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신지는 흠칫흠칫 뒤돌아서 후유츠키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깜짝 놀랐다.
휴우츠키의 눈에는 한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똑바로 신지의 눈을 응시하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네, 신지 군. 어른들의 일방적인 사정으로 아직 어린 자네들이 정말 심한 일을 당하게 만들어 버렸네…. 사과한다고 해서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용서해주었으면 좋겠내. 반드시 보상하겠네. 아마 이카리도 나로 같은 기분일걸세」

「아버지가요?」


신지는 믿기지 않는다는 말투로 물었다.


「아아.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카리는 자네를 아들로서 사랑하고 있었네. 사실은 너무 서툴고 마음의 약한 녀석이라서 자네에게서
   도망쳤던거지」


신지의 머릿속에 초호기 안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아버지의 최후의 모습과 그때의 대사를…


「미안했다…신지….」

「아버지…」


후유츠키는 결심한 것처럼 신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 누구도 더 이상 자네들을 상처입히게 하지 않겠네! 이제부터는 평범한 14세로서 충만한 청춘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네. 에바도 이
   제는 존재하지 않아. 아담·리리스·롱기누스의 창이라는 신들의 유산도 모두 소멸했지. 자네들의 싸움은 이제 끝난 거라네」

「후유츠키 씨…」

「그러니 자네는 아스카 군을 지지해주지 않겠나…. 그녀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네. 그렇게나 심한 일을 겪었으니 마음을 닫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녀가 우리 어른들을 신용하지는 않겠지만 자네에게라면 마음을 열어 줄지도 모르지…」


그 말에 신지는 괴로워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전 안돼요. 전… 아마도 아스카에게 미움받고… 아니 증오를 받고 있어요. 아스카가 마음을 닫기 전에 「기분 나뻐」라고 말했을 때 아스
   카의 눈을 봤어요…. 아스카는 진심으로 절…」

「………………………….」

「…그래도 하겠어요…. 비록 미움받는다 하더라도 저한테는 이제 아스카밖에 없으니까요…」


그러고서 신지는 의자에 걸터앉아 아스카의 손을 잡았다.
그것을 보고 후유츠키가 조용히 병실을 나가려고 했을 때, 신지의 혼잣말이 귀에 들렸다.


「……도와줘…… 아스카……」


후유츠키는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고서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네들의 싸움은 이제 끝…… 아니, 신지 자네들에게 있어서의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인지도 모르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
   저 아이들에게는 14세의 아이가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을 짊어지게 했어. 과연 회복할 수 있을지…」 





병실을 나오자 거기에는 휴우가·아오바·이부키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계셨어요. 부사령, 방금 MAGI의 정비가 완료되었어요. 「캐스퍼」도 어떻게든 운용 가능한 상태까지 수복했고요. 전원도 확보했으니까
   금방이라도 시동할 수 있어요. 하지만 처리능력은 평상시의 36% 정도지만요…」

「36%인가…. 그렇다 해도 MAGI라면 일본의 정보망을 제압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수치로군. 아오바 군, 정부는 지금 뭘 하고 있나?」

「네. 이제야 조직적인 활동을 재개했습니다만 지금은 명령계통에 상당한 혼란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전략자위대는 앞서의 싸움으로 괴멸상태
   에 빠졌으므로 물리적인 전투력을 되찾으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도의 혼란도 상당합니다. 상당히 뒤숭숭해져
   있으니 현상은 치안유지가 전부로 이쪽으로 군을 보낼 여유는 도저히 없을 겁니다」

「부사령, 어쩌시겠습니까?」


후유츠키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지만 바로 결론을 냈다.


「이부키 군, MAGI를 중심으로 한 일본 전국의 부흥계획 리포트를 3일 안에 작성할 수 있겠나?」

「3일인가요? 철야로 노력하면 가능할거라고 생각하지만… 무슨 생각이신가요?」

「정부 놈들은 두가지를 바라고 있네. 하나는 이 괴멸상태에 빠진 일본을 구하는 구세주. 그리고 두번째는 이 사태의 책임을 질 산제물…」

「…………………………….」

「세계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MAGI와 그것을 관리하는 우리의 우위성을 정부가 인정하게 만들 수 있으면 첫번째 조건은 채워지겠지」

「네… 하지만 그러면 두번째의 조건은 어떻게 하나요? 오히려 두번째 조건이야말로 놈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거잖아요!」

「글쎄… 놈들은 범인을 원하고 있을 뿐이네. 그렇다면 놈들에게 범인을 소개해주면 되겠지」

「소개한다고 해도… 범인을 꾸며낸다는 건…」

「이 경우 날조한다고 할수는 없을 걸세. 우리가 내미는 건 진범이니까…」

「에… 진범이라면… 서, 설마…」

「맞네. 제에레지」

「………………………….」

「걱정은 필요 없네. 제에레의 간부들 중에 현실로 돌아올 놈 따위는 하나도 없을테니…. 진심으로 인류를 보완하려고 했던 광신자들이니 말일
   세. 제에레도 노인들만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지. 사실상 괴멸한거나 같아. 이 두 가지 조건을 미끼로 하면 정부를 이용할 수도 있을 걸세」


세 사람은 완전히 납득한 얼굴을 하지는 않았다. 그것을 본 후유츠키는


「자네들의 생각도 이해하네. 우리 NERV 직원들을 학살한 정부와 손을 잡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 나도 마찬가지라네. 하지만 길은
   이것 뿐일세. 지금 정부와 적대시하면 함께 망하게 될 뿐이지. 우리에게도 물리적인 전투력은 이제 존재하지 않으니. 죽은 동료에 대한 원통
   한 마음은 아플 정도로 알지만, 지금은 살아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살아갈 이 세계의 부흥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주게」


그 말에 세 사람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후유츠키의 말은 정론이며 현재 상황은 분명 개인적인 감정을 품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진심으로 납득한 것은 아니었지만….


「리포트가 완성되는 대로 나는 정부 놈들에게 회담을 신청할 생각이네…」


그 말을 듣고 세 사람은 놀라움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회담이라니… 부사령께서는 혼자 수도로 향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다네」


담담하게 말하는 후유츠키.


「위… 위험합니다! 만에 하나 부사령께서 돌아오지 못하시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NERV는 와해됩니다. 대리를 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이번 교섭이 가능한 건 나뿐이네. 그리고 걱정은 필요 없어. 나는 반드시 돌아올테니까. 음험한 놈들이지만 정부의 놈들에게도 그 나름의 이
   성과 타산이 있지. 현재 MAGI를 소유하고 있는 것은 우리야. 지금의 정부에게도 NERV를 적에게 돌리는 것은 공멸의 길을 선택하는 것임을
   이해시키면 단념하겠지」

「하… 하지만…」

「이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일세」


말투는 온화하지만 그 얼굴에는 반론을 허락하지 않는 강한 의지가 담겨져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무구한 아이들을 이용하고 최전선에 보내 싸우게 했네」

「!!!!!」

「그 결과 아이들의 작은 손을 피로 물들었고, 그 섬세한 마음에는 결코 사라지 않는 깊은 상흔을 남겨 버렸지…」

「……………………………….」

「이제 더이상 아이들의 손을 피로 물들이게 하고 싶지는 않아. 아이들의 싸움은 끝났으니까. 지금부터는 우리 어른이 싸울 차례네. 손을 피로
   물들이는 것도 책임을 뒤집어 쓰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네. 더 이상 아이들을 상처 입히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단 말일세!」


세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생각은 제각각이지만 신지와 아스카에 대한 죄책감은 어른들의 가슴 속에 가득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네. 이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임을 알겠는가」

「네」

「그러면 이야기는 끝이네. 각각의 부서로 돌아가 작업을 계속하도록.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도와주게나.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아
   이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세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3일 후 후유츠키는 몇 명의 수행원을 동반하여 리포트 다발을 껴안고 수도로 여행을 떠났다. NERV 멤버들은 후유츠키가 길보를 가지고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주가 지났다. 어른들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신지와 아스카의 시간도 멈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공허한 눈동자로 침대에 누워 있는 아스카. 그리고 그런 아스카에게서 잠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신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돌발적인 발작을 막는 것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신지의 정신은 항시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신지의 정신은 확실하게 마모되어 갔다. 그렇다 해도 지금 신지의 현실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스카를 향한 마음뿐이었다. 그것은 주위에 있는 어른들도 아픈 만큼 알고 있었다. 





일이 일단락 된 마야는 오랜만에 병실을 방문했다. 그곳에는 일주일 전에 방문했을 때와 조금도 변하지 않는 풍경이 있었다. 초췌한 표정, 그런데도 아스카의 옆을 떠나려 하지 않는 신지에게 마야는 잠시 휴식을 권유했다.


「신지 군, 잠깐이라도 쉬는 게 어때? 그동안 계속 안 잤지. 아스카의 간호는 괜찮아. 시간도 생겼고 하니까 내가 지켜보고 있을게」

「……고마워요, 마야 씨. ……하지만 괜찮아요. 마야 씨야말로 일로 피곤하실텐데 무리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이건 제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요…」


마야는 신지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그 눈에는 감사의 기색보다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강했다.


(그런가…. 지금의 신지 군은 아스카만이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이라고 믿고 있는 거네. 그래서 그 있을 곳을 잃을까 무서워하고 있어…)

「알았어. 그러면 나는 돌아갈게. 너무 무리하진 마」

「…네. 죄송합니다……」


병실의 문을 잡고 마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끊어지기 직전인 신지 군의 정신을 받쳐주고 있는 건 아스카에 대한 마음뿐인가…. 하지만 만약 아스카가 신지군을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신
 지 군은 어떻게 되는 걸까…)


상상해보려다 바로 그만두었다.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지킨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저 아이들의 다친 마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거네. 부사령이 말하는 대로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겨우 정치적인 폭력에서 둘을 지키고, 가능한 한 아이들의 자유와 안전을 보증하고 물질적으로 자유롭게 해주는 것 정도…. 겨우 그정
 도로는 아무런 속죄도 되지 않는데…)


마야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다친 사람끼리, 서로를 지지하면서 살아가주면 이상적이겠지만…」


그것은 확실히 이상적이지만 현실에서는 어른들의 제멋대로인 소망에 지나지 않았다. 





일주일이 더 지난 후에 후유츠키가 돌아왔다. 그때는 검은 옷을 입은 몇 명의 정부 관계자를 동반하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부사령. 그리고 교섭은…」


휴우가가 불안한 말투로 후유츠키에게 물었다.


「순조롭게… 는 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이야기를 정리하는 데는 성공했네」


그러고서 후유츠키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얼굴은 하나의 일을 완수한 충족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다면!」

「아아. 정부는 MAGI를 중심으로 한 부흥계획을 승인했네. 정부 예산도 제3신도쿄시의 수복에 최우선적으로 투자한다고 하더군. 정부가 독자
   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부흥계획보다 이부키 군이 제출한 리포트가 부흥을 10년 이상 빠르게 할 수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 자네
   덕일세, 이부키 군」

「…그런…」


마야는 얼굴을 붉혔다.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네. 지금부터는 인재·자원·예산이 계속해서 제3신도쿄시로 흘러오겠지. 지금까지 이상으로 바빠질걸세…」


그 말을 듣고 세 사람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리고 또 하나. NERV는 지금부터 해체되네. 그렇다고 해도 명목상의 이야기이지만…. 지금부터는 「인류지원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네」

「인류지원위원회입니까….」

「솔직히 NERV에 호의적이지 않은 조직은 셀 수도 없을 정도니까…. 불필요한 트러블을 피하려면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 그와 함께 구
   NERV의 자료를 파기하게 되네. 물론 칠드런들의 데이터도. 그 요구는 순조롭게 받아들여졌지. 이미 에바도 없고, 그 기술이 영원히 사라진
   지금, 겨우 14세의 아이들에게는 이용가치가 없다는 거겠지… 놈들의 본심은」


그 보고는 어른들에게 가장 기쁜 것이었다. 정부측의 동기야 어떻건 간에 아이들은 정치적 책임과 관련 사항으로부터 개방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잔뜩 있었지만 그 중 하나가 어떻게든 해결된 것이다. 어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후유츠키는 그런 어른들이 마음을 단단히 먹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 MAGI를 사용해 정보공개를 실시한다. 시나리오는 이미 정부와 협의되었다. 정부와 합의한 것처럼 모든 것은 제에레의 일방적인 악
   행이었다. 그에 따라 정부에게도 불편한 진실은 모두 은폐하게 되었다. 분한 일이지만」


그렇게 말하고서 후유츠키는 씁쓸하다는 듯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

「그 대신, 죽어간 NERV 직원들의 명예는 최대한 지킬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지만 이 세계를 부흥시키는 것
   이 우리 「인류지원위원회」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의 세계를 유지하는데 「인류지원위원회」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시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해야 한다. 머지않아 정부가 힘을 되찾았을 때에 우리를 잘라버릴 수 없도록…」


후유츠키의 말에 전원이 숨을 삼켰다.
그는 정부가 힘을 되찾았을 때의 대책을 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정부를 신용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 정부는 아군이 아니다.
이해타산을 근거로 일시적으로 손을 잡았을 뿐이다.
타산… 술책… 속임수… 타협… 첩보… 공작…
정치의 세계는 더럽다.
그러나 그렇기에 어른들이 몸을 던져야만 하는 싸움이기도 하다.
아직 더러움을 모르는 아이들이 손을 대게 해서는 안 되는 세계이다.
머지않아 아이들이 성장해서 어른이 되는 그날까지…. 





그리고 NERV의 정보공개가 시작되었다. 


시민들에게 공개된 정보에서는 서드 임팩트를 일으킨 것은 제에레이며 정부와 NERV는 서로 연합하여 그것을 저지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후유츠키의 예상대로 수뇌진을 모두 잃은 제에레는 조직으로서 거의 와해하고 있었다. 유엔에 대한 강한 영향력도 완전히 소멸되어서, 일단 여론이 NERV 측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유엔도 시민도 매스컴도 일방적으로 제에레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압된 제에레의 지부에서 서드 임팩트 발생을 증명하는 자료가 압수됨에 따라, 제에레는 조직으로서 완전히 숨통을 찔리게 되었다. 그나마 살아있던 지도자들이 모두 정치범으로 체포되어서 제에레라는 이름의 조직은 지상에서 완전히 소멸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인류지원위원회」의 발족이 드높이 선언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