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얼마나 걸은 거지.’ 마르쿠스는 정신이 몽롱해지는 가운데 속으로 되뇌였다.


그는 전쟁에 참여해 큰 공을 세운 기사였지만, 그를 시기한 본국의 귀족들과 다른 이들에 의해 모함을 뒤집어 쓰고 지금은 쫓기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한순간에 전쟁 영웅에서 역적이 되어 버린 그에게 있어서는 도망만이 유일한 선택지였고, 결국 넉 달 째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채 여러 항구를 전전했고, 관군들이 온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상선에 올라타 다른 나라로 도피했다.


이번에 탄 배는 원래 오스만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지만, 거센 풍랑으로 인해 배가 난파되면서 마르쿠스는 그만 이집트로 흘러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을 그는 닷새째 걷고 있었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물론이거니와 베두인(*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아랍인)이나 카라반(*사막을 여행하는 상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오직 작열하는 태양과 모래바람, 그리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만이 있을 뿐이었다.


다시 현재, 심장마저 차갑게 얼려 버릴 것 같은 모래바람을 뚫고 마르쿠스는 걷고 있었다. 하늘에는 마치 광배(光背)를 방불케 하는 커다란 보름달이 하나 떠 있었다.


그는 달을 계속 올려다 보며 정처 없이 발길을 옮겼다. 며칠째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아 굶주려서인지, 아니면 끝없는 사막을 걷느라 서서히 미쳐 가는 것인지 달의 위상은 6개의 모습을 계속 바꿔가며 마르쿠스의 눈에 비치고 있었다.


“이제 진짜로 죽을 때가 된 건가. 사막에서 죽으면 시체 하나 남지 않겠지.”하고 마르쿠스는 중얼거렸다.

그러자 바로 다음 순간, 눈앞에 거대한 신전이 보였다.


“이젠 진짜로 내가 미친 건가, 분명히 멀리서 봤을 땐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렇게 말하며 그는 신전 내부로 몸을 옮겼다. 외부는 매우 낡아 보였지만 신전의 내부는 오랫동안 방치되었음에도 흙과 모래, 그리고 먼지 하나 없이 이상하리만치 깔끔했으며, 양 벽에는 복잡한 상형 문자와 수호신 부조가 새겨져 있었다. 마르쿠스는 과거 문헌으로만 보았던 이국의 신전이 눈앞에 있다는 것에 경이로워 하였다. 그때,


‘바스락.’


마르쿠스는 화들짝 놀라 소리가 난 방향으로 천천히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한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과 창백하다고 느낄 정도의 흰 얼굴, 달처럼 푸른 눈동자와 날카로운 턱선, 그리고 매력적인 곡선을 가진 몸매까지. 수수한 무녀복을 입고 있었지만 한 눈에 봐도 남자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분위기를 여인은 뿜어냈다.


“당신은 누구시오?” 하고, 마르쿠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웃으며 “저는 이 신전의 무녀입니다. 먼 길을 걸어오신 것 같은데, 여기서 잠시 쉬어 가심이 어떠신지요.” 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르쿠스는 이 말을 듣고도 의심을 놓지 못했지만, 너무 지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여인에게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우선 목욕부터 하시는 게 어떨까요, 몸에 모래가 많이 묻으셨네요.” 마르쿠스의 남루한 모습과 다 해진 옷을 보고도 여인은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

신전 내부에 있는 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자니, 마르쿠스는 점점 생각이 다시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신전에 저런 여인이 있다니, 역시 날 죽이러 온 암살자인가. ” 지친 몸을 달래면서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도망치며 사는 건 곧 죽는 것과 다를 바 없었기에, ‘저런 아름다운 여인에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그때, “물은 따뜻하신가요?” 여인이 다가와 물었다.

“고맙소. 덕분에 여독이 싹 가라앉는구려.”

“목욕이 끝나시면 식사를 대접해 드릴테니 처음 뵈었던 신전 중앙에 와 주세요.” 여인은 이 말을 남기고 물러갔다.


목욕이 끝난 후, 마르쿠스는 정말 오랜만에 음식과 마실 것을 입에 대었다. 오랫동안 배가 주린 채로 사막을 횡단해서인지 음식은 지금껏 자신이 먹은 그 어느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극상의 맛이었다.


“음식은 입에 맞으셨나요?”

“이거 미안합니다. 당신이 먹을 것도 필요했을 텐데 너무 배가 고파서인지 다 먹어 버렸소.”

“괜찮습니다. 맛있게 먹어 주셨다니 전 오히려 기쁩니다.” 


“그런데, 이 사막에서 여장(旅裝) 하나 없이 걷고 계셨던 이유가 뭔가요?” 

마르쿠스는 잠시 망설였다. 처음 만난 여인한테 나의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 이야기를 끝내면 ‘걸렸구나!’ 하면서 품에 있는 칼을 빼 드는 것 아닐까.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질문을..” 

“아니오, 이야기 해드리겠소. 잠시 앉아 계시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털어 놓고 죽자는 심정으로 여인에게 사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기사고 전쟁 영웅이었다는 것부터, 모함을 받아 도망쳤다가 이 사막까지 흘러 들어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전부.


“그런 사연을 가지고 계셨군요.” 

이야기가 끝나자 여인은 슬픈 눈으로 마르쿠스를 바라보았다.

“그렇소. 박복한 인생이었지. 한 가지 다행인 건, 죽기 전에 이런 대접을 받고, 당신과 같은 아름다운 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영광이었소. 자, 이제 찌르시오.” 그는 담담히 이야기했다.

“예?”

“날 죽이라는 귀족들의 명을 받고 이 신전에서 날 기다렸던 것 아닙니까? 망설일 것 없지 않소.” 

죽음 앞에 오기가 생긴 것일까, 과거 기사였을 시절 호탕한 목소리가 나오는 듯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신전 벽에 그녀의 웃음 소리가 메아리치며 귀를 때렸다.

“왜.. 왜 웃는 것이오?”

“설마 내가, 그대를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던 암살자였다고 생각했던 게냐.” 

갑자기 달라진 말투.

“그러면, 당신은 대체 누구요?” 

마르쿠스는 겁에 질렸다. 암살자가 아니면 이 여인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

바로 다음 순간, 신전 바닥에 엺게 깔려 있던 모래가 여인의 주변으로 몰려들며 회오리쳤다. 모래바람은 그녀의 몸을 감싸고 돌며, 입고 있던 무녀복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그녀를 탈바꿈시켰다. 


머리에는 새 머리 모양 장신구를, 목에는 초승달 형상의 목걸이를 두르고 달처럼 창백한 푸른색을 띈 튜닉을 입은 여인의 모습이 달빛을 받아 빛났다. 무녀복을 입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번에는 한 번 바라보는 것만으로 지체 높은 황제마저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로 바꿔 버릴 만큼의 아우라를 뿜어냈다.


“나의 이름은 콘슈. 이 신전의 주인이자 달의 여신이니라.” 방금 전과는 다른 위엄 넘치는 목소리였다.


“여신이라고..!” 


마르쿠스는 모반 혐의를 받았을 때 다음으로 크게 충격을 받았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여인이 그 누구도 아닌 이 낯선 땅의 여신이었다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마르쿠스는 곧바로 머리를 조아렸다.


“왜 머리를 숙이는 것인가, 고개를 들라.”


“아무리 이방인의 땅이라 한들, 이곳의 여신께 큰 누를 범했습니다. 제 목숨을 취하시어 화를 푸십시오.”


콘슈는 쿡쿡 웃으며 “정말 재미있는 남자로구나.” 하고 말했다.


“예..?”


“내가 그대에게 호의를 베푼 것은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기 때문이었다. 이 대륙의 인간들은 더 이상 나를 숭배하지 않는다. 과학이 들어오면서부터 사람들은 나에게서 멀어졌고, 내 신전도 자연스럽게 잊혀졌지. 난 일부러 신전을 마법으로 숨기고 누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려 왔다. 그런데, 수 세기 동안 찾아온 손님은 그대가 유일하구나.” 여신의 목소리에서는 외로움이 묻어났다.


“그러면, 저를 죽이지 않는 겁니까?”


“죽일 거라면 만난 시점에서 바로 폭사시켰겠지. 내가 살려둔 이유가 뭐라 생각하는 게냐?” 마르쿠스는 간담이 서늘했다. 여신의 마음이 달랐어도 바로 지옥으로 갔을 것 아닌가.


“게다가, 이젠 죽이지도 못하는 몸이 되었는데, 어찌 할 수도 없겠지.”


“그게 무슨..”


“내가 준 음식은 나의 축복과 가호가 담긴 넥타르다. 그리스에 갔을 때 올림포스에서 얻어 왔지. 그래서 맛이 달랐던 게다.”


“넥타르라면, 설마..”


“그래, 그대는 지금 나와 같은 불멸의 존재가 된 것이지.”


어안이 벙벙했다. 달의 여신이 자신을 살려준 것 뿐만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다고?


“제가 무엇을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음?”


“저를 살려주셨으니, 보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다시금 삶을 얻은 마르쿠스는, 자신에게 두 번째 기회를 선물한 이 여신에게 영원토록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라.”


“신관이 되라 하시면 되고, 죽으라 하시면 죽겠습니다.”


“그대는 이제 못 죽는다고 아까 말했는데.”


“신을 죽이는 무기도 있을 거 아닙니까.”


여신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여전히 눈 앞의 도망친 기사가 재미있는 남자라고 생각하며.


“그렇다면, 계약을 하나 하자.”


“어떤 계약 말씀이십니까?”


“나의 반려가 되도록.”


일순간의 정적.


“반려..라 하시면..?”


여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와 부부의 연을 맺자는 얘기다.”


“저보다 나은 인간이나 신은 많은데, 어째서 접니까?”


“수 세기 만에 처음 만난 인간이고, 나의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 거기다, 함께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 그대도 날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마르쿠스는 자기가 한 말을 여신이 진심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고,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싫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아.. 그게..”


“싫으면 싫다고 말 해도 된다. 굳이 강요는 안 할테니.”


마르쿠스는 일생일대의 고민을 시작했다. 만약 거절하면 추격자들에 의해 계속 도망다녀야 했을 테고, 설령 적대자들이 나이들어 죽는다 하더라도 고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거기다 죽지도 않을 테니 고독하게 긴 세월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반대로, 눈앞의 달의 여신과 함께한다면, 이 절망과도 같았던 삶에서 벗어나 영원히 서로 사랑하며 지낼 수 있을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결단을 내렸다.


“되겠습니다.”


“나의 남편이 되겠다고?”


“예.”


승낙의 답변을 듣자, 콘슈는 서서히 마르쿠스에게 다가와 바닥에 엎드린 그의 얼굴을 들어올리고 입술에 자신의 입을 맞췄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온 몸을 타고 전류처럼 흘렀다.


“계약, 승낙이로구나.” 낮지만 부드럽게, 여신이 말했다. 지금은 위엄찬 여신이 아닌,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아내의 목소리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 아니, 부탁드리오.” 그가 다시 속삭였다. 


“그러면, 일어서서 다시 살아가라. 나의 반려로서, 나의 기사로서.”


그리고 둘은 아주 오래, 보름달이 다시 사라질 때까지 긴 키스를 나누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마르쿠스를 쫓던 암살자들은 그가 마지막으로 포착된 이집트로 들어갔다. 허나, 이 첩보를 끝으로 그들의 소식 또한 들을 수 없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첩자는 흰 붕대 같은 갑옷을 두른 기사가 창백하게 빛나는 검을 들고 동료들을 모조리 도륙했다는 이야기를 주인에게 전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주인들도 머리에 초승달 모양 표창이 박힌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마르쿠스가 억울하게 반역자로 몰렸다는 증거 자료도 발견되어 그의 지위는 다시 복권되었으나, 그를 다시금 봤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도망치다 이미 죽었거나, 아니면 먼 타국에서 농사꾼이 되어 살고 있을 거라는 추측이 난무했을 뿐, 결국 왕조가 망하기까지 기사 마르쿠스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

시간은 다시 흘러, 새 세상이 펼쳐졌다.

왕국들은 사라지고,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거쳐 세계는 평화로이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영국, 대영박물관

“이 초상화는 기사 마르쿠스 경의 것입니다. 15세기의 주요 전쟁에서 큰 공적을 세운 전쟁 영웅이지요. 하지만 그를 시기한 귀족들에 의해 역적으로 몰렸다가 도주해 이집트로 사라진 후에는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큐레이터 마커스가 강화유리로 보존된 초상화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그럼 마르쿠스 경의 거취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나요? ” 견학을 하는 학생이 물었다.


“예.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만 난무할 뿐,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다만 그의 정적들이 살해된 후 모함의 증거가 드러나 다시 지위를 돌려받았고, 원래는 자작이었지만 백작 직위로 추숭되었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해설을 모두 끝낸 후, 슬슬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마커스는 피곤한지 기지개를 켰다. 


“어이 마커스, 오늘 술이나 한잔 하러 갈래?” 동료 큐레이터 스티븐이 물었다.


“아냐, 다음에 갈게.” 그는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말했다. “마누라가 오늘은 일찍 들어오라 해서.”


“공처가야? 꼭 잡혀사네.”


“난 애처가거든?” 이 말을 남기고서 마커스는 직장을 빠져나왔다.



“나 왔어!”


“빨리 왔네?” 아내가 그를 반겨 주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빨리 오라는데, 어길 순 없잖아?” 


“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재밌는 남자라니까.”


“그 얘긴 굳이 안 해도 돼.”


마커스, 아니 마르쿠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 앉아 있던 아내는 과거 그와 반려의 계약을 맺은 달의 여신, 콘슈였다.


콘슈와 계약을 맺고 난 후, 마르쿠스는 아내로부터 받은 힘으로 먼저 자신을 쫓던 추격자들과 본국의 적들을 제거했다. 조용히 살기 위해선 후환은 반드시 뿌리뽑아야 했으니까. 그 후부터는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마르쿠스는 콘슈와 함께 신전에서 매일 밤 사랑을 나누며, 하늘에 흩뿌려진 별들 아래 함께 밤을 거닐었다. 여신의 남편으로 산다는 것이 처음에는 큰 충격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익숙해졌다. 이따금씩 시시콜콜한 것으로 싸우기도 했지만, 결국 사랑이 기저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부부 관계는 원상복귀 되었고, 화해한 후의 정사는 더욱 뜨거워 달이 붉게 물들 정도였다.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후, 두 신 부부는 함께 전 세계를 떠돌았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여러 진귀한 명소들을 보았고, 심지어 추운 북극에서 오로라를 감상하기도 했다. 


시간이 더 지나 근,현대로 접어들자 두 신은 신분을 10년에 한 번씩 바꿔 가며 인간들 속에 섞여 살아왔고, 그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 일은 좀 어땠어?”


“내 초상화 앞에서 내 약력에 대해 얘기했지. 기분이 묘하더라고.”


“당신이 실종된 게 아니라 달의 여신이랑 결혼했다는 얘기는 했어?” 콘슈는 푸른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요즘 시대에 그런 얘기 하면 정신병원 갈걸?” 마르쿠스가 웃었다.


“그건 맞긴 해.”


“콘슈, 하나만 물어 봐도 될까?”


“뭔데?”


“우리가 만난지 이제 60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날 사랑해?”


“또 재밌는 소리를 하네.”


“그게 아니라, 얼마 전에 신문에서 본 건데 부부들의 사랑은 3년이 지나면 식는다고 했거든. 근데 우리는 600년 가까이 부부로 살았는데 당신이 나한테 질리지 않았나-”


마르쿠스의 말은 콘슈의 키스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질릴 리가 없잖아. 계약을 했던 날 밤, 난 맹세했어. 이 남자만을 영원토록 사랑하겠노라고. 그 마음은 여전히 변함없어. 당신은 영원히 내 남편이자, 내 기사야.”


“내가 말을 잘못 꺼냈네, 미안.”


“잘못을 했으니 벌을 내리겠노라.” 콘슈는 이전의 위엄이 조금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만 하소서.”


“내일 출근 안 하니까, 오늘 밤은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 벌, 달게 받겠나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신은 상아 침대로 걸어가 누워 서로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고 육체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이 밤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빌면서.




****

콘슈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달의 신임

원전에선 남신이지만 일부러 여신으로 바꿈

어제 쓴 달의 여신 순애에서 영감 얻어서 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