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족속들에게는 괴이한 풍습이 하나 있다. 남자가 극히 부족한 고로 근방의 마을에서 인간 남성을 납치해 기르곤 했던 것이다.


그런 숲의 족속들에게 납치 당하는 아이란 대부분 가난하거나 버려진 남자 아이가 대다수였다. 


돈 깨나 있다는 작자들은 자기들을 지키는데 도가 텄기에, 일부러 약한 인간을 고르는 것 이리라.


물론 숲의 종족에게는 그 아이가 가난하건, 귀족이건 노예건 상관 없었다. 어쨌든 남자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


아마, 나도 그런 부류중 하나 일 테지만...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거라곤 고아원에서 농사일을 마치고 나서 집에 들어와 잠에 들었던 것 뿐인데. 


아침에 깨어보니 난데없이 낯선 천장이 있는 꼴이니 솔직히 어이 없을 수 밖에.


"정신 차리지 않고 뭐 하느냐."


곁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퍼뜩 잠에서 깨었다. 눈앞에는 왠 아름다운 여인이 하나 서 있었다.


길다한 적발을 곱게 땋아둔 여인은 머리에 왠 큼지막한 뿔이 하나 달려 있었다. 어찌나 우람한지 저 뿔이 천장을 뚫지 않을까 걱정 될 수준이다.


"아,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뒤늦게 어설프게나마 아부하자 그녀는 기분이 좋아진듯 방긋 미소 지었다. 이윽고 고개를 끄덕 거리고는 내 손을 꼭 붙잡는다.


"아침 시간이다. 네 할일은 내 수발을 드는 것 아니냐. 게으름 부리면 벌을 줄 테니 얼른 일 하러 가라."


말투는 퍽 딱딱한데 의외로 상냥하게 들리는 음성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마주 잡은채로 침대에서 나왔다.


솔직히 말 하자면 이곳에서의 삶은 썩 나쁘지 않았다. 전설에 나오는 숲의 족속들은 사람을 납치 해다가 썰어서 국을 끓여 먹는다던데. 살이 뭉근해 질때까지 몇시간이고 푹 조린다던가?


하지만, 눈앞에 있는 여인은 그런 짓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날 살찌워서 잡아 먹으려는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랬으면 좀 더 좋은 음식을 내 줬을터였다.


그녀가 바라는건 그저 내가 자기 수발을 들어 주는것 뿐이다. 까놓고 말해서 너무 평범한지라 좀 실망 스러운 수준이다.


아무래도 좋은가. 겨우 고개를 내저어 정신 차리고 간단히 얼굴이나 헹구러 간 사이, 그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보나마나 식탁에 가서 앉아 있겠지. 저렇게나 이쁘장하게 생긴 주제에 식욕은 엄청나니까.


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집에서, 뿌리를 타고 올라오는 물로 추정되는 샘이 하나 구석에 있었다. 계속해서 퐁퐁 올라오는 샘은 그대로 어디로 가는건지 넘치지도 않고 적당히 고여 있다.


"푸하...!"


한번 세차게 세수 한 뒤에 물기를 털어낸 뒤 거실로 나왔다. 그 묵직한 뿔을 가진 여자가 의자에 앉아서는 뭔가를 생각하는 것 처럼 턱을 괸 채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여기 납치된지 이제 2주일 째 인데, 요즘따라 혼자 멍하니 있는 일이 잦아졌다. 혹여나 어디 아픈게 아닐까 싶어 가까이 다가가면, 갑자기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더니 말을 더듬어 댄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꾸하고는 총총히 뛰어 제 방에 콕 처박히는 것이 며칠째 반복됐다.


이제는 적당히 좀 기분을 풀면 좋을텐데. 한숨을 폭 내쉬며 벽에 걸려있는 바구니에 고개를 돌렸다.


저 뿔달린 양반은 항상 먹을 거리를 사서 벽에 걸어놓곤 했다. 어디 저장할 곳도 없는지라 어디서 공수 해 오는게 분명한데.


그럼 이 근처에 마을이 있는건가?


일단은 빨리 식사나 차려 주는게 좋을까. 바구니를 덮은 천을 열었더니 보이는 것은 두꺼운 베이컨 여섯장에 달걀 네개였다.


반씩 나눠 먹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팬을 꺼내서 화로에 밀어 넣는다. 베이컨에는 기름이 많으니 딱히 기름 두를 필요는 없겠지.


"이정도면... 달아 오른거 같네."


적당히 열이 올랐을때 위에 고기를 얹었다. 그러자 치이익- 하며 고기가 익어갔다. 기름이 배어 나오며 팬을 둘러 간다.


고소한 냄새가 사방에 풍겼다. 온통 나무로 된 주제에 화덕까지 있다니, 무슨 마법을 쓰는게 아닐까 싶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계란을 두개 꺼내서 기름 위에 얹으려던 때에, 갑자기 뒤에서 부드러운 손길이 나를 꼭 끌어안았다.


"앗... 주인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뒤에서 허덕이는 숨 소리가 들렸다. 연신 쌕쌕 거리면서,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게 훤히 느껴졌다. 혹시나 감기라도 걸린건가 싶었는데, 그녀가 내 질문에 답했다.


"요리하는 남자... 개꼴려."


"네?"


씨발 뭐?


하도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뒤로 돌리려고 하니, 그녀가 내게 속삭였다.


"혹시... 알몸으로 앞치마만 입어 줄 수 있을까?


미친년이 돌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