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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빨라! 신기하다.."


"...안 무서워?"


"응. 진짜 재밌어. 하늘을 난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뭐.. 다행이네. 안 떨어지게 조심해."


아이작이 레아를 품에 안은 채 하늘을 날고 있었다. 우려와는 정반대로 그녀는 이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10분 정도 비행하자 비로소 발밑에 시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는 곳을 찾은 아이작이 조심스럽게 착륙했다.


"우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레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현대적인 분위기의 시장은 아직 겨울이었지만 생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커다란 길 양쪽에서 수많은 종족들이 물건을 나열한 채 장사하고 있었고, 자기 물건을 사달라며 외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뭐 사고 싶은 거 있어?"


"그게.. 나 돈이 없어.."


"걱정 마. 돈은 나한테 많아."


아이작이 외투 주머니에서 검은 지갑을 꺼내보였다. 


"괜찮아. 안 그래도 많이 신세졌는데.."


"너 데리고 시장 간다니까 국왕님께서 뭐 좀 사주라고 하시더라."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아이작과 레아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물론 고향에도 시장이 있기는 했지만, 그녀는 처음 보는 종족들과 물건을 구경하는 데 푹 빠져 있었다.


"이건 무슨 과일이야?"


"그게 용각당이야. 네가 먹은 수프에 들어있던 거."


"이 보석 진짜 예쁘다.."


"그건 축뢰석이라고.. 번개의 힘이 저장된 돌이야. 무기로도 쓰이지만, 가공하면 조명처럼 쓸 수도 있어."


이것저것 물어보던 그녀의 눈에 유리병에 담긴 노란 액체가 들어왔다.


"이건 뭐야?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건 아우라우네의 꿀이에요."


아이작 대신 가판대 뒤에 앉아 있던 그리즐리가 대답했다. 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던 그녀가 음흉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 사 보세요. 품질 좋은 거라 효과도 확실하답니다❤."


그 꿀의 효과가 뭔지 알고 있었던 아이작이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아니.. 우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얘는... 내 사촌."


"아.. 죄송합니다."


연신 사과하는 그녀를 두고 아이작과 레아가 다시 길을 떠났다.


"왜? 그냥 꿀이잖아?"


"그래. 엄청 맛있는 꿀이긴 한데.. 보통 저걸 맛으로 먹진 않아."


"그럼 왜 먹는 건데? 궁금해서 그래."


"....먹으면 발정나는 효과가 있어.."


발정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레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그렇구나.. 그래서 아까..."


"아.. 아무튼 누가 물어보면 사촌이라고 대답해."


악마의 사촌이 엘프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지만 다른 종간의 결혼이 일상화된 지금은 꽤 흔한 일이었다.


한참 동안 시장을 돌아다니자 어느새 시간이 흘러 점심때가 되었다. 아이작은 레아를 데리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파스타 집으로 향했다.


"어때? 맛있었지?"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이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너무 맛있다. 고마워."


"아니, 근데 너 생각보다 엄청 많이 먹네."


"야! 아니거든.."


"장난이야. 너 단 거 좋아하지? 갈 데가 있어."


아이작이 식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가게로 향했다. 


"형! 나 왔어."


"야, 진짜 오랫만이다!"


젊은 인간 남자가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아이작이 어리둥절해하는 레아에게 그를 소개시켜 주었다.


"이쪽은 대학교 선배 태현이 형이야. 형. 얘는 내 사촌. 이름은 레아."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엄청 미인이시네."


인간들의 나라에서 전학을 온 그는 아이작과 마찬가지로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었고, 닮은 구석이 있는 둘은 친한 사이가 되었다.


"형. 호떡 두 개만 줄 수 있어?"


"팔 만큼 팔아서 오늘은 이만 접으려고 했는데.. 너라서 해주는 거다."


잠시 후 태현이 종이로 감싼 호떡 두 개를 건내주었다.


"신기하게 생겼네."


"그렇지? 한 입 먹어 봐."


호떡은 본디 인간들이 먹던 음식이었지만, 고소하고 달콤한 맛 덕분에 마물의 입맛에도 잘 맞았다. 태현이 졸업 후 차린 호떡 가게는 특히 겨울에 인기가 굉장히 많았다.


"음.. 달다. 맛있어."


"역시 좋아할 줄 알았다. 형. 근데 미아는?"


"아.. 오늘은 추워서 안 나왔어."


"맞다. 뱀은 변온동물이지."


친한 친구였던 그의 아내 미아는 아이작과도 잘 아는 사이였다. 태현은 졸업 기념으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미아의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고, 그 다음은...


"잘 먹을게. 고마워."


"그래. 잘 가라."


두 시간 뒤 시장을 구경할 만큼 구경한 둘은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 아이작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아니, 날아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오빠!"


"라미엘! 오랫만이다."


라미엘이라는 이름의 천사는 이제 16살이 된 어린 소녀였다. 4년 전 인신매매 조직에게 납치된 그녀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날개가 잘리기 직전 아이작에게 무사히 구출되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부모님이랑 뭐 좀 사러 나왔어."


그녀의 뒤로 양손에 장바구니를 든 천사 두 명이 보였다. 그들 역시 아이작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엄청 많이 컸네요. 못 알아볼 뻔했어요."


"그러게요. 그때 우리 딸을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제 일인데요, 뭐."


악마와 천사 가족이 화목하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은 천 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광경이었다. 레아는 그들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 언니는 누구야?"


"나? 오.. 오빠 사촌이야."


"진짜 예쁘다.."


"고, 고마워.."


그날 오후 아이작의 품에 안겨 왕궁으로 돌아온 레아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축뢰석으로 만든, 은은한 금빛으로 빛나는 팔찌를 양팔에 차고 있었다. 아까 소녀가 했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저기.. 아이작. 나 예쁜 편이야?"


"그.. 그럼. 당연하지."


남자에게서 예쁘다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엘프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한편 아이작 역시 조금 전 일이 계속 생각났다. 그는 아까 팔찌를 채워줬을 때 엉겁결에 레아의 작고 새하얀 손을 잡았다. 그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아직도 손 끝에서 느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