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화 보기(연속3화까지 있음)


EPISODE.1 무엇이든 살려드립니다 4

 

 소년은 마지막으로 말을 끝내고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후련한 것일까, 아님 이야기를 들은 둘의 생각을 기다리는 것일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낡은 선풍기만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방 안에서 적막함이 맴돌았다. 

리아는 소년이 더 말하지 않자 또다시 연초를 입에 물고서 피우기 시작하였다. 

소년은 말없이 피우던 그녀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전부 털어 놓은 거야?”

“네...”

“그래? 그럼 이게 끝이구나.”

 

그리고 리아는 쭉 연기를 내뱉으면서 짧게 말했다. 

 

“생각한 것보다 그저 그러네.” 

“...?”

“다른데서 이야기는 안할게. 가봐.”

 

 소년은 처음 들었을 때 그녀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은 그 말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감상평임을 알아차렸다. 

그런 짤막한 평가에 욱한 마음으로 자리에 일어나자 리아는 손으로 까닥까닥 하며 P에게 말했다. 

 

“P. 손님 나가신다 하니까 배웅해 드려.” 

“잠깐만요!”

 

소년은 그저 무신경한 말투로 말하고 가버리는 리아를 보면서 이럴 수 없다는 듯 발끈하듯이 외쳤다. 그리고 억울함이 물꼬를 틀어 새어나오는 듯 이어서 언성을 높여 말해버린다.

 

“정말 이렇게 말하고서 끝인가요?”

“난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했어.”

“그렇게 말하게 해놓고 진짜 이게 전부라고요?” 

 

 아마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감성팔이로 결국은 들어줄 것 같은 느낌을 주고서 진짜 듣기만 하고 끝나버리는 상황에 소년은 이전 이였다면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이미 피폐하고 살짝 뒤틀려버린 상태였기에 거절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부정하였다. 

이 장소로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는지 모른다.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리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면서 정보들을 사들였고, 거짓정보들 사이에서 겨우겨우 찾아낸 장소였다. 

그리고 이 위험한 장소를 찾아오기 위해서 몇 번이나 이 부랑자들의 거리에 돈을 써가면서 비교적 안전한 시간과 위치를 전부 치밀하게 적으면서 온 장소였다. 

 

 2주 밤낮이 바뀌어 가는 것도 모르고 겨우 찾아온 결과가 허망하게 끝나버렸다는 생각에 점차 예의는 개나 줘버린 평소와 다른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한참이나 사정을 토해내며 부탁의 탈을 뒤집어쓴 요구를 해왔지만 리아는 듣지도 않고 그저 불편하듯이 노려만 보고 있었다. 

 

 한 참이나 큰 소리로 말하며 지칠 대로 지쳐버린 소년은 결국은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메밀차를 한 번에 마시고서 소년은 가져왔던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뒤집어 들어 가방에게 그 안에 품고 있는 내용물을 그대로 책상위에 토해내게 하고서 말했다. 

 

“이거 전부 드릴게요! 전부! 그러니까 제발 부탁드립니다!”

 

 소년의 가방에서 나온 것은 그야말로 돈다발더미. 한 뭉치에 100장은 되어 보이는 노란색의 은은함을 과시하는 돈이 우수수 떨어졌다. 가방의 2/3을 채우고 있던 돈다발들은 대략 눈대중으로만 보아도 20뭉치는 넘어보였다. 

리아는 저 소년의 가방에서 왜 저렇게 많은 돈이 나왔는지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꼬마에게 짜증이라도 난다는 양 혀를 한번 차버린다. 

 

쾅-!

 

 그리고 돈이 쌓여져 있는 책상을 발로 차버려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어 버린다. 

당연하게도 그 위에 올려가 있던 돈다발들도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떨어지며 사무실 바닥에 도망치듯이 흩어진다. 그리고 자신이 준비한 돈을 보고서 귀찮다는 듯 발로 차버리는 모습에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간에서 들어보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마물 사람 가리지 않고 흥신소나 이런 불법적인 일을 하는 자들은 많은 돈을 보면 개라도 될 것처럼 발발 기며 굽실거리는 그런 자들이라고 들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저 여자는 도대체 거절을 하는지 모르겠다.

 

“세상에는 돈을 섬기는 자들이 있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야.” 

 

 그렇게 발로 차버려 화가 난 듯 얼굴에 인상이 쓰인 그녀의 눈을 마주치자 소년은 뭔지 모를 압박감에 질색하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검은 눈동자에서 레몬과 같은 밝은 노란빛이 번들거리는 듯 아지랑이가 올라와 보이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말이다. 

 

“너보다 부자인 놈들도 저런 돈뭉치를 한 트럭으로 가져왔는데 이정도로 될 것 같아?” 

 

 심장이 요동치며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로 호흡이 가빠진다. 마치 전력으로 몸을 움직이고서 탈진을 한 듯 시야가 흐릿해지고 배가 매스꺼워 진다.

 

“너는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어. 떼쓰면 다 될 것 같은 생각으로 말이야.” 

 

 이윽고 식은땀이 전신을 흘러내리는 온몸의 감각을 끝으로 소년은 정신을 그만 잃고 말았다. 

물론 귀에 그녀의 말은 마지막까지 귓가에 정확하게 들려왔었다. 

 

 소년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 P는 어느새 소년의 뒤에서 가볍게 양 팔로 소년을 받쳐주었다. 

P는 살짝 손가락을 얼굴에 가까이 갖다 대어 식은땀에 젖어 가쁜 숨이 들려오는 것을 확인하였다. 

설마 실수로 죽이시지는 않으셨겠지만,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확인을 마치고서 소파에 눕혀두었다. 

주인님의 마력은 산자를 부정하는 생명에 타격을 주는 마력으로써, 미약하게 남아 직접적으로 노출된 이상 기절만 한 것으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까딱이라도 잘못 하다간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 다음 이성 없는 동료가 될 수 있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그대로 가방에 돈 집어넣고서 그대로 멀리 버리고 와.”

 

 리아는 눈으로 나오는 마력을 거두면서 귀찮은지 P에게 명령을 마지막으로 방금 정리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살포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P는 정리한 가방과 기절한 소년을 허리에 들쳐 업었다. 

주인님께서 맘대로 하신다 쳐도 적어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즉 걸리지 않는 선을 지켜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셨기에, P는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고서 터덜터덜 걸어갔다.

 

 P는 대충 경찰서 가까운 장소에 벽에 기대어 두고서 간단하게 암시를 걸어 놓았다. 

절대로 다시 찾아오지 못하도록, 사무실과 가까울수록 길을 잃어버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