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로서 만난 마녀의 모습에 가까운 참고용 삽화, 기자 소견으로 봤을 때 눈매가 더 사납다)


" 그러니까… 당신이 예전에 『재앙의 마녀』라 불린 ―――씨, 라고요? "


부스스한 머리를 볼펜으로 긁적이며 묻는 초연한 표정의 기자.

눈 앞의 작은 소녀가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마녀전쟁》의 시발점이자 제거 목표였던 최악의 마녀, 세상의 이치를 벗어난 마녀들 조차도 두려워 해 그 존재를 언급하는 것 조차도 공포에 떨게 만든 폭군이자.

마녀전쟁에서 격퇴에 성공했으나 그 생존여부가 불분명하다고 목에 엄청난 현상금이 걸려 전 세계가 수색에 열을 올리던 그 두렵고도 무서운 존재가, 지금 그 눈 앞에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믿을 수 없다.


" 뭐냐. 그럼 이 내가 거짓으로 말한다고 생각하느냐? 네 스스로 여기까지 추적해 놓고도, 자신을 믿지 못하다니. 어리석은 지고. "

" 아뇨, 믿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만. "


기자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은 재앙의 마녀의 족적을 추적해 여기 까지 도달하는 데에 엄청난 여정을 겪었다.

마력이 일절 없는 본인은 정보 수집 부터 흑마술의 지식, 추적을 도울 마녀의 포섭 등으로 실낱 같은 흔적 하나 마저도 놓치지 않고 목숨을 걸어 수 만 리를 이동해 겨우 도달한, 자신이 그토록 찾던 재앙의 마녀의 은신처가 맞았다.

추적을 못하도록 흔적을 자동으로 지우는 진이 깔려 있었고, 수상하거나 위험한 존재는 다가오지 못하도록 액막이 결계도 쳐져 있었다.


' 단지… 그 수준이 너무나도―­―― '

" ―――어린애 같다. 고 하고 싶은 게지? "

" ……!! "


말마따라, 간단히 설치 가능한 그 두 가지 말고는 일절 설치되어 있지 않고. 복잡한 마술회로도 없었다.

추적 끝에 발견한 마지막 흔적이자, 재앙의 마녀와는 연관이 없다 싶어 무시하려던 참에. 혹시나 싶어 들렀던 곳이 여기였을 뿐이었다.


" 마음을 읽은 겁니까? "

" 전혀. 그런 건 쓰지 않아도 네녀석 눈만 봐도 알 수 있다. 시건방진 놈. "

" 죄송합니다. "

" 좋다. "


마녀는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우아하게 들어 마시고는, 이어서 말했다.


" 추적 방지를 너무 과하게 하면, 오히려 눈에 띄는 법이다. "

" …허면, 단순하게 만든 것의 의도였단 건가요? "

" 실제로 너도 그랬지 않느냐. "

" 뭐… 확실히 설마 여기 있을까, 싶어 긴가민가 했지만요. "


바로 그 점이다. 라 말하며 잔을 홀짝이는 마녀.


" 마녀는 자기 과시욕이 강한 자들이다. 할 수 있으면 최대한으로 하는 것이 그들의 낙이지. "

" 그렇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재앙의 마녀 씩이나 되는 분이 이런 걸 만들 리 없다고 생각하는 거군요. "

" 그런 셈이지. 수습 마녀가 한 짓이라 볼 게다. "

" 그럼… 그 모습도 그런 의미인가요? "


탁. 잔을 내려놓는 소리.

단지 마녀가 잔에 든 내용물을 전부 마시고 내려놓았을 뿐인, 별 거 아닌 행동이었으나.

그 울림 속에 담긴 무거운 공기는 그녀가 가진 불쾌함을 전달하는 것 같았다.


" ……이건 대가다. "

" 대가……요? "

" 당시의 나는, 죽기 일보직전이였기에 급히 상처를 치료해야 했지. 하지만 마력도 다 써서 없었다. "


딸그락. 잔이 떨리는 소리.

내용물을 다 마신 찻잔은, 다시 붓기 전에는 쥐고 있을 필요가 없으나.

마녀가 그 잔을 놓지 않고 힘을 주는 바람에 잔과 받침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 것이다.


" 마녀의 격언을 아나? 「마력을 다 쓴 마녀를 조심하라」 "

" 아, 압니다. 마녀는 마력이 부족하면 대가를 바치는 것으로 끌어낼 수 있다고… "

" 그렇지. 내가 바친 건 「세월」 이다. "

" 보통은 나이를 먹지 않나요? "


그저 순수한 의문. 마녀 또한 보통의 인식은 그렇다며 크게 다를 바 없다는 투로 동의했다.


" 하지만 내 경우는 ‘내가 쌓아올린’ 걸 대가로 지불한 거야. "

" 쌓아올린 것…? "

" 나이, 마력량, 회로 등등. 지금 나이 부터 해온 모든 것. 어찌보면 신체만 시간 역행한 느낌이려나. "

" 허어… 큰 결단을 하셨군요. "


잔 옆의 주전자로 찻물을 채운 그녀는 다시 한 잔을 음미하고는, 그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 마녀는 오래 사는 생물이야. 나이 먹는 건 크게 대수도 아니지.

하지만 늙지 않는 건 아니라서 겉모습을 마법으로 속이는 꼴사나운 짓은 하고 싶지 않았을 뿐. "

" 하지만, 마력 보유량과 성장시킨 회로를 다시 만드는 건 어렵지 않나요? "

" 마력 자체는 다시 모으면 그만. 문제는 회로인데, 그건 경험이 없어서 만들기 힘든 거지 경험만 있다면 금방 해. "


그렇게 말하며 마녀는 복잡한 구조의 마술회로가 새겨진 물건을 보여주었다.


" 이건? "

" 마술회로는 편의상 몸에 새기는 게 대다수다만. 아직 어린 몸으로는 복잡한 구조를 새기진 못해서 말이다. "

" 아하, 마도구로군요. "

" 뭐 한 번 보거라. "


마도구에서 푸른 빛이 일렁이더니, 마치 그 속에서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어, 변태 과정을 통해 우화하듯.

하나의 요정이 하얀 빛을 내며 나타났다.


" 오오…. "

" 환영 마법의 일종일세. 광범위 하게 쓰면 마력을 꽤 먹지만, 작게라면 복잡한 것도 적은 마력으로 구현할 수 있지. "


하얀 요정은 살아있는 것 마냥 자유로이 날아 춤추며, 다채로운 빛을 뿌리고 사방에 비눌방울과 꽃 모양 빛무리를 만들어낸다.

확실히, 아직 어린 수습마녀로는 하기 힘든 기묘한 재주라 볼 수 있다.


" 놀랐느냐? "

" 네, 무척이나요. 웬만한 마녀 분들은 보여주는 걸 꺼리거든요. "

" 흥. 자신들의 신비가 바랠 까봐 두려워하는 치들이나 그렇지. 마법도 아니고 마술 같은 애들 장난으로 그러는 것들은 오래 못 가. "

" 하하. 역시 대마법사의 영역에 드신 분 답군요. "


움찔.

그녀는 챙이 커다란 고깔 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기자가 대마법사라고 거론한 순간 움직임이 멈추었다.


" 어… 제가 혹시 무언가 실례되는 말이라도…. "

" 자네. "

" 아 넵. "


기자는 목소리의 톤은 그대로이나 무언가 분위기가 변한 <마녀>의 모습에, 자신이 역린을 건드린 것이 아닌가 긴장했다.

마녀는 사람들 사이에선 기피의 대상이다.

좋은 마녀는, 사람들과 교류하여 보상을 받는 것으로 영험한 물약을 나눠주거나 토지를 풍족하게 만들어준다.

허나 그런 마녀는 소수로, 대부분은 틀어박히거나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며 주변에 사역마를 뿌리기도 한다.

비위를 거스르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고, 실험체로 붙잡혀 갖가지 고문을 당한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자기 과시욕이 강한 만큼, 자기 능력에 자신감이 가득하고 주변에 피해가 가는 걸 개의치 않기에 토벌의뢰 또한 많다.

함부로 덤비다 마을 자체가 불살라지거나 역병이 퍼지기도 하여, 악한 마녀라고 지정되면 대대적으로 【마녀사냥】이 일어난다.

마녀사냥의 원인은 마녀든 인간에게든 잘못은 있을 지언정. 누구 하나가 죽기 전 까진 끝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마녀는 인간들에게 있어 경외시 되면서도, 공포의 대상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녀들 중에서도 그 마녀들의 입을 통해 가장 위험하고, 최악의 마녀라 불리는 『재앙의 마녀』.

지금은 비록 어려진 모습을 하더라도, 그 본인이 맞더라면 그녀의 심기가 불편해진 순간―――


―――자신은 죽고 말 것이다.


" 대마법사… 라고 했나? "

" 아, 그, 저… 심기 불편하셨다면 사과… "

" 드디어! "

" 예? "


마녀는 껑충 뛰며 환호를 내질렀다.

기자는 갑작스런 변화에 사고가 따라가질 못해 의문만 머리 속에 가득해진다.


" 여보게! 이 자도 말하지 않는가! 나 대마법사 맞다니까! "

" 어 그래~ 잘났어~ "

" 이이익!! 역시 안 믿는 게지! 두고 봐! 내 힘만 되찾으면… "

" 응~ 그 전에 내가 먼저 죽음~ "


도도도. 어디론가 총총 뛰어가더니 웬 사내와 투닥거리기 시작한 그녀.

어안이 벙벙해진 기자는 도대체 뭔 일인지, 그 재앙의 마녀라는 자에게 저런 일면이 있었나 싶어 머리에 새긴 소문을 되짚었다.


그러니까, 재앙의 마녀는.

「 눈에 띄는 점은 폭군이다. 맘에 안 들면 죄다 부수고 다녔다. 」


" 오늘은 닭백숙이 땡기네. 이 녀석으로 할까. "

" 아아!! 안됀다!! 그녀석 작기는 해도 불사조란 말이다! 먹히면 부활 못해! "

" 저번에 내가 뒀던 간식 어디갔어, 니 지팡이 허리 끊어지기 전해 말해. "

" 그그, 그건 내가 아니다! 불사조가 먹었… 아야! 부리로 쪼지 말거라! "


" ………. "


「 사람이고 마녀고 사역마고 부려먹는 게 심했지. 안 들으면 거의 죽음이었어. 」


" 이 녀석! 한 때 내 사역마였거늘, 지금 네가 격이 더 높다고 이리 반항적이더냐! 진짜로 백숙으로 만들어버릴까 확…. "

" 끼룩! 끼룩끼룩! "

" 뭐, 뭐!? 간식을 안 주면 깃털은 없다고? 끄응… 유일한 돈 벌이 수단인데…. 좋다! 내 몫의 반! 그 이상은 안돼! "

" 끼룩! "


처억. 마녀와 불사조가 한 손, 한 날개로 악수를 나눈다.

거래 성립의 순간이었다.


「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거스르거나 심기를 건드리는 자에게 역경을 냈어. 」


따악.

" 아얏! "

" 애초에 내 간식이잖아. "

" 우이씨…! 이 나를 이렇게 험하게 다루는 건 네 놈 밖에 없을 게다! "

" 그거야 니가 힘이 있을 때나 그렇지. 힘이 없는 지금은 숨어 지내야 한다며. 듣기로는 한 성질했다던데 그래서 마녀들한테 원한 산 거 아냐? "


마녀는 딱밤을 맞아 글썽이는 눈으로 그건 아니라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 제가 듣기로는, 마녀의 모임에서 모두의 의견에 반하는 걸 입에 담아 전쟁으로 까지 이어졌다고 들었습니다만…. "

" 아아, 그러고보니 그런 일이 있었지. 정말 시답잖은 이유로 싸우려 들고 말야. 요즘 젊은 것들은…. "

" 혹 불쾌하지 않으시다면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

" 별 거 아닌 일이다만. 왜 그걸 묻지? "


방금 전 까지 전혀 다른 모습이던 그녀가 팔짱을 끼며 진지하게 묻는다.

기자는 심호흡하며 지금까지 마녀를 찾아 여정을 떠난 자신의 근원을 떠올렸다.


" 「진의를 알고 싶다.」 그게 제가 당신을 찾아 온 이유입니다. "


마술, 흑마술, 마법.

기적, 또는 신비를 다루는 법을 익히고, 가르치는 자들에게 항상 전해지는 말이 있다.

「 《지식》을 갈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라. 」

기자는 그 말에 이끌려 마력은 없어도 마술에 대한 지식을 익혀왔다.

그리고 그 지식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하는 재앙의 마녀를, 직접 그 눈으로 뵙고 싶었던 것이다.

또, 그 마녀가 어쩌다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는지 까지도 탐구의 일환이었다.


" 가르쳐 줄 수는 있네만. 그 대신 내 이야기나 좀 들어주게. "

" 좋습니다. "


씨익. 그녀가 기분 좋게 웃더니.

탕!


" 자네, 술은 좀 하는가? "


어디서 꺼낸 건지 테이블에 고급 술을 올려놓았다.



……………

………



" 그래서 말이야~ 히끅! 그 때 날 주운 게 저 놈이란 말이지~ "

" 저기… 이제 두 잔 짼데…. "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산 비싼 술이라 조금씩만 마셔야 된다며, 작은 잔에 따른 건데도 벌써 주정뱅이 처럼 되었다.

아무래도 어려진 만큼 알코올 저항력 까지 초기화 된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정신력은 끝내주는지, 마녀 전쟁에 있었던 일 하나하나 세세한 부분까지 환영마법을 써가며 보여준다던가.

그 후 마녀들에 의해 격퇴 당해 마을 근처 숲 속에 쓰러져 있던 것을 집 주인이 발견해 데려왔다고 한다.


" 주인 분께선 어린애인 줄 알고 데려오셨다구요. "

" 어엉~ 긴급 조치는 취했으니까 당장 죽지는 않지마안~ 마력이 계속 소모되고 있었으니까~ "


주인은 정체는 몰라도 어린애를 두고 가기도 뭐해 일단 데려왔으나, 마력이니 마술이니 하는 거엔 일절 모르기에 마력 고갈은 어찌할 수 없었다.

마력을 다 쓰는 걸 마력 고갈이라 하나, 생명유지면으로 항상 일정량은 남는다.

허나 대가를 지불하거나 한계 이상으로 쥐어짜낼 경우, 【임계점을 넘는다】 고 하여 지속적인 마력 방출, 소모 상태가 되는데.

이 때에는 타인이 마력 회로를 닫아주거나 자연적으로 닫힐 때 까지 주기적인 마력 보급이 이뤄져야 한다.


" 허면, 어떻게 해결을…. "

" 어. 으음. 그게…. "

" 응? "


이때 까지 술술 잘 말하던 그녀가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말하기 힘든 사정이라도 있는 거려나.


" 일단 한 잔 받으시죠. "

" 음. "


쪼로록- 작은 잔에 채워진 술을 단숨에 들이킨 그녀는 크하-하고 알코올의 쓴 맛을 감미했다.

그후 탁! 탁자에 잔을 격하게 내려놓고는 살며시 중얼거렸다.


" …했어. "

" 했다? 무엇을? "

" 떡 쳤다고 떡!! 섹스!! "

" 어, 에, 네? "


기자는 잠시 혼란이 왔다. 하지만 무엇에 혼란이 온 건 지는 기자 스스로는 분간하지 못했다.

무엇이 그를 혼란스럽게 했을까?


인터뷰인데 술자리가 되어선 갑작스레 음담패설을 들어서?

술자리에서 나오는 야한 농담 정도는 있을 법 하다.


어린 아이가 어른의 계단을 올랐다는 점에서?

애초에 어른이었다가 어려졌을 뿐이다. 지금도 마녀로서 어린 편은 아니라고도 했고.

윤리적으로 문제는 없을… 것이다.


" 처음이었는데…. "

" 잠깐 거세를 시키고 오죠. "

" 아니, 기다리거라. 하자고 한 건 나다. "


마음의 정리가 잘 안 되는 것인지 다시 한 잔을 받는 그녀.


" 마력을 얻는 방법에 대해선 아느냐? "

" 개인이 가진 마력 외의 마력이라면, 생물의 생명력. 즉 피나 장기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죠. "

" 잘 아는구나. 허면, 정을 통한 것으로도 가능하단 건 아느냐? "

" 잘은… 모릅니다만. 음마ㆍ몽마족이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


첫째로, 일반적인 마력 보급으론 체내에서 생성되는 마력과 마나 포션이 있다.

체내 생성에는 한계가 있고, 마나 포션은 보충이 아니라 체내 생산량을 일시적으로 늘려줄 뿐이다.

무엇보다 포션은 자주 사 마시기에는 수량이 적어 비싼 편이다.


둘째로는 흑마술식 제물 교환법이 있다.

흑마술은 『마신』 이라는 존재에게서 빌려 쓰는 술식으로, 대부분 대가를 요구하는 형식의 신비다.

마력을 보충하는 것 또한 타 존재에게서 생명력을 갈취해 그것을 마력으로 교환하는 식이다.

꼭 목숨이 희생될 필요는 없지만, 단기ㆍ장기적으로 마력을 끌어모으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다.


마지막으로, 마의 존재들이 가진 특수한 능력. 《흡정》 이다.

음ㆍ몽마들만이 가진 마력 흡수에 특화된 성질, 흡정은 효율은 좋으나.

그 외의 종족은 못 쓰고, 정을 뽑아낼 대상의 정력에 좌지우지되어 종의 수도 적고 그 강함도 천차만별이라 한다.


" 그래. 마력이 지속적으로 소모되기에 제물로는 보충하기가 힘들지. "


무엇보다 마력이 소모되고 있을 때는 움직이기도 버거워서 택할 수 조차 없었다 했다.

만약 제물을 택할 수 있었다면 했을 지 물어보았으나, 자신은 이유 없이 살생을 저지르는 마녀가 아니라 답했다.


" 그래서 택한 것이 흡정이다. 보통은 못 쓰지만, 음마와 계약하면 그 권능을 잠시 빌릴 수 있어. "

" 권능을 빌린다…. 그런 수가 있었군요. "

" 뭐, 보통은 사역마에게 시키지만 말이다. "


취기가 많이 올랐는지 그녀는 꼴깍꼴깍 넘기던 아까와는 달리 조금씩 잔을 홀짝였다.

그러더니 마녀는 한쪽 눈 만을 게슴츠레 뜬 채, 기자에게 물었다.


" 그런데 자네… 몇 번 까지 가능한가? "

" 예? "

" 횟수 말일세 횟수. 한 번에 몇 발 까지 할 수 있는가? "

" 에… 대충 서너 번… 정도려나요. "

" 역시! 그 놈이 이상한 거였어! "


뭐지? 무엇을 비교 당한 거지? 기자는 약간의 자존심이 건드려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첫 날에 말이다. 몇 번을 했을 거라 생각되느냐? "

" 으음, 그렇게 까지 말하시니… 7번? "

" 전혀 아니다. "


마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 오히려 한 두번? "

" 아니, 무지 많았다. "


기자는 충격 먹었다. 7번도 많이 부른 건데.


" 그, 그럼… 12번? "

" 아니! "


타-앙!! 그녀가 잔을 세게 내리쳐 내용물이 든 잔이 출렁거린다.


" 50번…. "

" 뭐라구요? "

" 자네도 믿기지 않지? "

" 무척이나…. "


사람이긴 한가?


" 저거. 사람이긴 한 게냐? "

" 마침 저랑 같은 생각을 하시네요. "

" 인큐버스인가 싶어 확인도 해봤으나, 일단 사람이 맞았다. "

" 일단, 이군요. "


기자는 마녀전쟁의 이야기를 들을 때 보다 이 쪽이 더 신묘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 무언가 마술적으로 보조하셨다거나? "

" 서큐버스와 계약하는 걸로 마력은 다 썼고, 자연 회복력을 높이는 룬 밖에 안 새겼어. "

" 그 회복력의 효과는? "

" 가끔 손가락에 난 까슬림이나 손톱의 티끄가 떨어져도 신경 안 쓰이게 되는 정도. "

" 미미하네요…. "


정력은 쉽게 재생되는 것도 아니니. 미미한 회복력 가지고는 기껏해야 지속시간이 1분 늘어나는 정도다.


" 그런데, 대가를 지불해서 마력을 못 쓰는 거 아니었어요? 서큐버스와 계약한다니. "

" 쉽게말하자면, 가불이다. 저쪽에서 마력을 내어주는 후불제 형식이지. "

" 뭔가 은행의 빚 청산 같은데요. "

" 대신 평상시 마력의 2, 3배는 많이 지불해야 되지. "


마녀는 아까 잔을 쳐서 조금 남은 술을 마저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 놀라운 점은 뭔지 아느냐? "

" 무엇이죠? "

" 계약으로 마나를 왕창 뜯어가겠다던 년이 토할 거 같으니까 마력을 그만 보내라고 하더구나. "

" 서, 서큐버스가요? "


서큐버스는 흔히, 마력 돼지라고 불릴 만큼 마력 보유량이 높은 종족이다.

그렇기에 마력 보급을 늘려줄 기술이 특화되어, 그것이 권능으로 까지 이어진 특이케이스다.


" 나도 어려진 상태라 넘치는 마력을 주체 못해 그냥 그쪽으로 넘겼더니 잘못했다고 빌지 뭐냐. "

" 허, 허어…. "

" 그래서 계약이 유지되는 한 마력이 계속 흘러갈 수 밖에 없다 하니, 그냥 권능만 남기고 패스를 끊어 버렸어. "

" 명색이 악마인데 그래도 되는 걸까요…. "


낸들 알까. 그녀는 담담하게 어깨를 으쓱여 보인다.


" 계약상 권능은 남지만, 저쪽이 패스를 끊었으니 내가 재계약 하기 전 까진 현상 유지일세. "

" 그건 다행이군요. "

" 다행? 지금 자네 다행이라 했나? "

" 헉. 제가 말 실수한 건가요? "


그렇고말고. 라며 술을 잔에 따라 홀짝이는 마녀는, 그렇게 화가난 것 같지는 않았다.


" 마력은 이미 차고 넘치는데, 그 놈은 마력 보급을 명목으로 계속 나를 붙잡아 둔다네. "

" 붙잡아… 둔다구요? "

" 아아, 하기 전에 「네 녀석으로는 내 본래 마력의 반도 못 채울 것이다.」 라고 호언장담 했더니. 그 후로도 계속…. "

" 음. 자업자득 같네요. "


그녀는 시선을 피했다.


" 그런데 말이다. 흡정이 어떤 원리로 이루어지는지 아느냐? "

" 아니요. "

" 원리 자체는 흑마술과 비슷해. 피가 정액으로 바뀌었을 뿐. "

" 그런데도 효율이 좋다구요? "


마녀는 환영 마법으로 설명을 돕기 위한 이미지를 구현하며 덧붙였다.


" 흑마술은 생명이 가진 에너지를 마신에게 보내고, 그가 먹고 남은 찌꺼기를 받는 식이라네. "

" 그 찌꺼기가 마력, 이란 거네요. "

" 하지만 흡정은 정액에 담긴 정자를 죽임으로서 직접 그 에너지를 흡수하는 거지. "

" 정자를 죽여요? "


충격적인 말이었다. 흡정은 단순히 마력 변환이 아니라, 정자를 아예 죽여 얻는 식인 것이다.


" 음마족이 그렇게 떡을 쳐대는데 임신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봤나? 이게 그 이유라네. "

" 듣고보니… 그럴듯 하네요. "

" 다만 만능은 아니야. 죽이지 못한 정자가 남아 임신할 수도 있어서, 임신 방지의 결계를 치기도 하지. "

" 그렇군요. "


기자는 수긍하면서 생각했다.

‘자신은 마녀전쟁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건데, 왜 지금 떡간에서나 들을 법한 얘기를 듣고 있는가’ 하고.


" 그런데 자네, 양은 얼마나 되는가? "

" 네? 주량 말씀이십니까? "

" 그거 말고. 사정량 말일세. "

" ………. "


아까의 횟수 이야기도 그렇고,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는 거나, 또 비교될까 주눅이 드는 복잡한 심경의 기자였다.


" 그러니까… 찻잔의 반? "


기자는 자신의 경험 중 가장 많았던, 자신있는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얘기했다.


" 평범하군. "

" 하하…. "

" 그 놈은 물 컵 한 잔, 혹은 맥주잔 반 컵 정도라네. "

" ………. "


사람이 아니라 말 아닌가? 나는 자랑을 들으러 온 건가?

더더욱 이 인터뷰의 취지가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 그 땐 어려지느라 처녀로 돌아갔지만, 무경험은 아니네. 보통은 말일세, 사정을 했는지도 못 느낀다네! "


마녀가 역경을 내고 있다.


" 그런데 말이지, 그 놈은! 사정할 때마다 몸 안에 뭔가 부어지고 있다는 게 느껴져!! 무서워! "

" 으, 음. 그건, 무섭겠네요. "

" 매 번 매 번, 그만한 양이 계속 뱃 속에 부어진다 하면… 무조건 임신한다고!? "

" 아~ 그렇다면 혹시. "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마력고갈에서 벗어나자 마자 제일 먼저 시전한 마술이, 임신 방지라니. 지나가던 마녀가 웃겠다! "

" 웃지 못할 이야기긴 하겠군요…. "


피임은 중요하다. 하지만.

죽는 것 보다 다른 의미로 무서웠으리라.


" 지금은 위기를 넘기고 성장하는 시간만이 남았다만, 그것 보다 무서운 게 남아있네. "

" 마녀 님이 무섭다 하실 정도라니, 그게 대체. "

" 그의 정력이, 상승세기 때문이지. "

" 무, 무슨…. "


아까는 그녀의 자랑 아닌 주인 자랑 같은 느낌이었으나, 방금의 한마디로 질투와 경외를 넘어서.

공포감이 느껴졌다.


" 내 마력의 영향인지, 그의 정력도 점점 오르고 있어서. 이제는 하루 종일 해도 끝나지 않을 때가 있다네. "

" 24시간. 전부? "

" 전부. 100번은 기본. "

" 헉……. "


마녀는 불안한 듯 술잔을 만지작대며 말을 이었다.


" 매일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틈만 나면 이 구멍 저 구멍 박혀대며 정액이 부어지고 부어지고, 마시고 마셔지고.

정신차려 보면 아침이던 하늘이 어느새 노을이 지다 달이 한가운데에 떠있지.

전신은 정액 범벅이 되어 냄새 빼는 데만 해도 상당한 고생이고.

적어도 밥은 먹게, 쉬게는 해달라고 애원해도 멈추지 않고.

끼니가 정액 36발분으로 때워진다던지, 휴식은 기절한 동안 박히는 거라던가.

기절할 동안 자극이 계속되어서 절정과 동시에 깰 때는 진짜…. "


" 아, 알았으니까 숨 셔요 숨. "

" 이 쯤 되면 내 몸이 물과 피로 되어 있는지 정액으로 되어있는지 조차 모르겠어! 마녀들이 알면 날 『정액의 마녀』 라고 부를 거야! "


동공이 풀려 죽은 눈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은 무섭기 그지 없었다.


" 그런데 좀 신경쓰이는 게 있는데요. "

" 응? 뭐가? "

" 탈수 안 일어나요? "

" ……아. "


마녀의 머리에 번개가 내리 치는 듯한 충격이 온 듯 하지만, 짐작이 가는 게 있는 듯 했다.


" 그거 아마 재생의 룬 때문인 것 같네. "

" 재생의 룬? 그거 별 효용 없다고…. "

" 마력이 적으면, 말이지. "

" 아. "


이번엔 기자의 머리에 번개가 내리친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재생의 룬에 대해 덧붙였다.


" 재생의 룬은 정확히는 주변에서 ‘끌어오는’ 형식의 마술. 마력이 적으면 체내에서 영양을 가져오지. "

" 마력이 많으면요? "

" 많으면 대강 100m 정도까지 주변의 양분을 끌어와. "

" 그렇게 멀지는 않군요. "


애초에 그런 고성능 마술이 아니니까. 라며 재생의 룬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 그랬으면 여기 주변의 수분이 바짝 말랐겠지. "

" 확실히 그러네요. "

" 이 동네에는 정령이 많다는 거 아는가? "

" 전 마력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


그래? 마녀가 손지팡이를 가볍게 휘두르자 4대 정령들이 튀어나왔다.


" 불, 물, 땅, 바람의 정령들이라네. "

" 정령도 다루세요? 매우 희귀한 성질이라던데. "

" 대마법사 쯤 되면 기본 소양이지. "


에헴. 가슴을 펴는 그녀지만, 그런 그녀가 왜 그의 성 노리개가 되어있는 건지 의문이다.


" 아무튼 룬은 정령에게서 빌리는 힘이야. 그들의 힘이 있으면 더 많은 걸 할 수 있지. "

" 구체적으로 어떻죠? "

" 정액의 대부분은 수분이니까, 운디네가 있으면 저 멀리 강가에서도 끌어올 수 있다네. "

" 그렇다면, 탈수되지 않는 건 운디네가 도운 거였군요. "


마녀가 조용히 운디네를 쳐다보자, 운디네는 시선을 돌려 딴청을 피운다.


" 에휴. 애시당초 그 룬을 새긴 건 나니까. 뭐라할 순 없지. "


정령들은 대개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일이 없다. 그저 거기에 존재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손길을 내밀 뿐이다.


" 가장 신기한 것은, 어째서 마녀님이 받아주고 있느냐에요. "

" 응? "


처음에는 마녀가 마력을 급히 얻어야 해서 받아주고 있었던 건 이해했다.

하지만 외모도 달라졌고, 충분할 정도의 마력도 보충했으니 떠날려면 언제든 가능했고.

때가 되지 않았다고 느끼면 그저 그를 제압하면 그만인 일이다.


" 글쎄다…. 듣고 보니, 받아줘야 할 이유따윈 없는데 말이지. "


그녀는 취기에 후들거리는 팔로 턱을 괴어 감상에 찬 눈을 지었다.


" 외람된 말씀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

" ? "


기자가 조용히 있다 꺼낸 말에 마녀는 눈알을 또르르 굴려 쳐다보았다.


" 좋아하시는 게 아닐런지요. "

" 무, 뭐, 뭣!? "


벌떡, 너무나도 당황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기자를 노려보는 그녀.

변함없는 태도로 가만히 쳐다보는 기자의 모습에, 이윽고 감정을 추스르며 다시 앉는다.


" 그럴 리가 없잖느냐. 그 놈의 막돼먹은 행동은 내 성격에 딱 질색이다. "

" 그런가요? "

" 그럼. 본래의 내 힘만 돌아오면 당장에…. "

" 그건 지금도 가능하잖아요. "

" ………. "


마녀는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

" ……? "


뒤이어 기자가 내뱉은 한 마디가 신경쓰였는지, 눈을 떠 바라보는 그녀.


" 그의 얘기를 하는 동안 즐거워 보이셨어요. "


재앙의 마녀라는 이명에 걸맞지 않게,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자신의 감정을 되새기는 한 소녀.


붉게 달아오르는 그 얼굴이. 그의 말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 ……하지만 마녀를 좋아하는 자는 없다. "

" 그럴까요? "


기자는 히죽히죽 웃는다.


" 묘하게 증거라도 있는 것 마냥 웃는구나. "

" 증거라면 있는데요. "

" 그게 무어냐? "

" 정확히는 ‘증언’ 이지만요. "

" ??? "


마녀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렇게나 하겠어요? "

" ………!!! "


하지만, 덧붙인 기자의 말에 의해 그녀는 깨닫는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데도 그를 해치지 않고.

그의 간식을 훔쳐 먹기는 했으나 깃털을 팔아 돈을 벌고.

그로 인해 자기 보다 격이 높아진 사역마에게 쩔쩔 매고.

마력의 과잉 보급임에도 꾸준히 공급해주는-단지 해소일 수도 있지만- 자가 있고.

정체를 알고도 집에서 내쫓거나 하지 않은 채 같이 살아가는.


" 그런 사이를 부부라고 부르지 않을까요? "

" 그런겐가? "

" 뭐어, 떡정이 무섭다고. 인간과 관계 맺은 마녀가 결혼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합니다. "

" 음. 좋은 참고가 되었구만. "


이제 날이 저물어가기도 해서, 본래의 목표를 들어보고자 기자는 물었다.


" 그럼 슬슬. 마녀전쟁의 계기가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

" 아~ 그거 말이냐. 푸훗, 너도 대단하구나. 고작 그거 들으려고 오다니 말야. "

" 네? "


전쟁은 근 한 달간 이어진 마녀간의 대전쟁인데, 고작?

재앙의 마녀이기에 하는 자만심인지 아닌지. 그는 분간 조차 할 수 없다.

그녀는 재밌다는 듯이 쿡쿡 웃으며 말한다.


" 별 거 없다네. 왜 그렇게 됐냐면… "









이후 편찬, 집필된 일지에서 밝혀진 내용으로는.

마녀 전쟁의 계기는 단순한 식성 취향 차이라고 한다.


거의 모든 마녀가 민트 초코, 파인애플 피자 등을 맛있다고 할 때. 재앙의 마녀만 맛 없다고 한 것이 계기였다고.


기자가 모험한 대여정의 결말이 왜 이러냐고 구매자들은 따지지만, 사실이었기에 뭐라 하지도 못하였다.

그래서인지 일부 구매자 중에서는 일지 보다 부록인 성인의 책을 더 선호하기도 하였다.


『정애의 마녀』


그 내용은 매우 선정적이며, 마녀들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으로 섹스판타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심지어는 마법의 영역까지 들어가 고증에 맞게 떡만 쳐대는 전설의 야설이라 불리우고 있다.

마법을 떡치는 데에 쓴다고 일부 마녀들이 역경을 내지만, 한 번 본 이들은 다들 한 번 따라해본다고 한다.


이후 재앙의 마녀가 다시 세상에 나올 즈음에는, 그녀의 이명은 이미 바뀌어 있을 것이다.


집필된 책 이후로도 계속해서 상승하는 그의 정력은, 주변 토지를 풍족하게 만드는 걸 넘어 녹지화를 이루고 있다 한다.

어찌보면 재앙이 될 지도 모를 마왕은, 바로 그가 아니었을까.

기자는 그리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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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해도 내가 뭘 쓴 건지 모르겠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었더니 공백제외 10200자 ㅋㅋ...

쓰고 싶었던 건 그냥 존나 강했던 마녀가 정력 존나 센 인간에게 무너지는 모습이 보고 싶었을 뿐인데.


로봇 이야기 후편도 써야 하는데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스토리 라인이 전편에서 딱 끊겨가지고 더 생각이 안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