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도련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달콤하디 달콤하던 꿈. 그 꿈에서 깨어날 때의 짜증은 일로말 할 수 없다. 특히나 내가 5살이었을 때부터 늘 들어온 이 목소리는 너무나 날 짜증나게 만들었다.


"아아, 5분마아아안. 엘리 진짜 5분만 더어."


나는 눈도 뜨지 않고 이불을 치켜들더니 얼굴을 덮었다. 엘리의 간지러운 꼬리가 내 얼굴 위에 올라왔었기 때문이다. 엘리는 내 직속 메이드인 키키모라다.  정말이지 있으면 든든하지만 가끔은 날 옥죄어오는듯한 기분 나쁜 메이드이다.


"야, 너! 꼬리 그만 올려 대!"


"안 됩니다. 메이드장으로부터의 명령입니다."


엘리가 칼같고도 로봇같은 어조로 답하였다.


"하여간 그 꼰대...또 귀족은 그에 걸맞는이랍시고...하아..알겠어 일어난다고."


이불을 팍하고 걷어차며 나는 일어섰다. 그러고 눈을 팍하고 뜨자 엘리가 환하게 미소지어주고 있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10분이나 일찍 깨셨군요." 


하지만 그 목소리는 로봇처럼 일정하였고 별다른 리액션도 없었다. 난 딱히 엘리의 말에 반응하지 않은채로 문을 나섰다. 눈 앞에 보이는건 거대한 계단에 둘러쌓인 지금은 쓰이지 않는 족히 천평은 돼보이는 연회장과 그 중앙에 놓여져있는 거대한 식탁이었다. 뭐 이 정도는 늘 보던거니 별 감흥이 없었지만 그래도 아침에 깨서 먹을 식사가 눈 앞에 바로 보인다는건 좋은 일이었다.


"빨리 내려와라."


아버지께선 전형적인 귀족같은 차림새와 자세로 식탁에 앉아있었다. 그래봤자 이름만 귀족인 주제에 늘 겉치레만 잔뜩이시다. 일단은 아버님의 말씀에 별 수 없이 바닥으로 맞은 편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어.


"귀족이라면 허리를 펴라."


"아랫 사람들이 피땀흘려 만든거니 남기지 마라."


"숨은 쉬고 먹는거냐?"


아버지께서는 이런저런 잔소리들을 하시며 나에게 귀찮은 소리를 하셨지. 평소에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셨는데 말이야. 그러고보니 음식을 드시는 아버님의 얼굴에 왜인지 그림자가 짙게 있으셨어. 근엄한 아버지시더라도 내 앞에서 그런 표정을 지으신건 처음이셨지.


"아들? 내가 너 많이 아끼는거 알지?"


아버지께서 꽤나 착잡하신 목소리로 말하셨어. 난 직감적으로 뭔가 중요한 일이란걸 알았지. 


"알아요...신혼도 제대로 못 갖고 바로 전쟁에 나가셔선 힘들게 힘들게 싸워서 훈장도 타오셨는데 끝나고 돌아오니 어머니는..."


"스읍! 그런걸 굳이 말 꺼내지마. 이야기 길어진다."


갑자기 큰 소릴 내시며 아버지는 내 말을 끊으셨다. 그러고는 어떤 인장과 함께 두루마리를 펼치셨지.


"우린 변방이라서 잘 몰랐지만 마왕군과의 전쟁이 꽤나 거센 모양이더구나. 수도가 함락되기 직전이니 모든 기사들과 영주들은 직접 이리로 오라는 서신이다."


아버지는 잠시 숨을 들이쉬고 옆에 있던 인장과 나를 번갈아쳐다보셨다.


"아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난 어이없는 말에 입에 넣은 감자를 삼키지도 않고 말하였다. 아버지께서는 내 말엔 대답도 않으시고 식탁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인장을 들고 내 옆으로 다가오셨다.


"이 국가가 나같은 귀족조무사, 한낱 기사에게까지 오라고한건 분명 두 가지 일게다. 하나는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할 만큼 열악한 상황이거나, 둘 째는..."


"이미 함락 당한 뒤에 보낸 가짜 서신이겠지요."


아버지가 들고 있던 인장이 또렷이 보인 순간부터 아버지의 얼굴에 짙게 드리웠던 그림자가 무엇인지 난 확실히 알았다. 저 인장은 분명 그 동안 쓰인적 하나 없던, 그치만 아버지께서 감히 손도 대지 못했던 이 가문의 인장이었다. 


"내 이걸 너에게 주마. 이 애비에게 이 가문의 모든 것은 과분하였지만 너에겐 아니다.  이 가문의 시종과 저택을 말이다."


아버지는 그 말을 끝으로 제일 늙은 병사 천여명 정도와 함께 늙은 말들을 타고 수도를 향해 나아갔다. 내 눈가에는 어느새 촉촉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https://arca.live/b/monmusu/6573264?p=1 (next.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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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에 만든 의도는 메이드들이랑 띵가띵가 노는 도련님을 만들려 했는데, 쓰다보니 굉장히 진지해진거 같다. 근데 키키모라랑 쇼거스 빼고 메이드로 쓸만한 종족들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