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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왕가의 일원으로 산다는 것을 주신이 내린 축복으로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주신이 내린 축복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저는 선천적으로 몸이 안좋거든요. 예,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에요. 매일매일 호화로운 식사를 먹고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한다는 것은 축복이긴 하지요. 그렇지만 왕녀로서의 삶도 그렇게 축복된건 아니에요. 식사할때마다 고리타분하고, 쓸모없는 예절을 지킨다고 몸과 정신이 바쁘지요. 아! 그것만이 아니에요. 걸음을 걸을때도 그 예법이 족쇄처럼 얽매여 온답니다. 심지어는 몸을 씻는 순서까지도 예법이라니까요!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에요.


사실 이런 예절보다 더 끔찍한건 따로 있어요. 그건...


"프란체스카. 뭘 그렇게 생각하나?"


아! 이분은 카토님이세요. 카토님은 저의 스승님이요, 저의 은사님이랍니다. 듣기론 카토님은 중앙에서 이름을 꽤나 날리시던 위대한 용사라고 들었어요. 지금은 많이 늙어셔서 머리엔 흰머리가 가득하고, 목소리에도 생기가 느껴지지 않지만.. 위대한 인간에게도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지요.


그래도 저 분을 얕잡아보시면 큰일날거에요! 호랑이처럼 엄하시면서 부모처럼 자상하시고 여우처럼 교활하시며 교단만큼 꼼꼼하시니까요. 저 분과 호각으로 다툴 수 있는 젊은 용사는 많지 않아요. 


"잠시 농땡이를 피웠어요."


"허, 참.."


제 말에 카토님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혀를 차셨어요. 그리곤 지팡이를 휘둘러 저의 머리를 살짝, 아주 살짝 건드리며 말씀하셨어요.


"프란체스카. 이건 자네 교국의 공문서라네. 자네가 농땡이를 피워서야 되겠는가?"


"어차피 저는 버림받은 왕녀니까요. 농땡이를 피우든 열심히 하든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잖아요?"


오늘은 조금 짗궃게 반응했어요. 왜냐하면 전 카토님의 답도 듣고 싶거든요. 그래도 되겠지요? 


".."


저의 말에 카토님은 입을 다무셨어요. 이쯤에서 방금하다만 이야기를 마저할게요. 


지키기 힘든 예절보다 더 끔찍하고 역겨운건 권력의 중심부에서 벗어난 왕족은 사람취급도 해주지않는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 느끼는 그 상실감, 그럼에도 무늬는 왕족이라 저를 지탱해주던 사람들이 하나, 또 하나 떨어져 나갈때의 그 상실감. 그리고 그 상실감으로 부터 시작되는 여러가지 의문들이랍니다. 제가 무엇때문에 왕녀로 태어났는지, 어째서 왕녀로 태어났는지.. 그런 생각을 곱씹을때마다 저의 정신은 지옥에 떨어진 사형수보다 고통스럽고 아팠으니까요. 


지금 저를 지탱하는 유이한 분인 카토님의 대답이 듣고싶었어요. 그 분에게 저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요? 그 대답이요.


제가 흔들림없는 시선으로 카토님을 바라보자 그 분 역시 신념으로 가득찬 눈빛을 저에게 보내주셨어요. 


"자네의 고충은 이해하네. 제 4왕녀로서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그 서러움을 이해하네. 투명인간 취급이면서도 왕녀라는 직책때문에 느끼던 고독함을 이해하네. 자신의 한심함과 비루함에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팠겠지."


카토님은 제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걸까요? 저는 감탄을 금치못하고 그 분의 말씀을 들었어요.


"하지만 자네는 버림받지 않았지 않은가. 그건 자네의 착각이네. 자네가 자네를 버렸다고 착각하는 건 애초에 자네를 소유할 수 조차 없는 왕가와 교단의 끄나풀뿐. 폐하와 여왕께서도 자네를 아끼기에 나를 파견해 자네를 교육시키는 것 이라네. 나 또한 자네를 아끼기에 자네의 언니들에게 가지 않고 자네를 교육시키는 것이고."


"어째서 제 언니들이 아니라 저인가요?"


"자네또한 언니들에게 뒤쳐지지 않는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네. 자네의 건강이 그걸 막고 있었던 거지."


"그렇다면 저에게 재능이 없었다면 저를 선택하시지 않으실거였나요?"


제 말에 카토님은 멈칫하셨어요. 멈칫..하셨어요.


아... 왜.. 왜 멈칫하시는 거죠? 어째서? 제발.. 


"그렇네."


...


카토님의 말씀이 비수처럼 날아와 제 가슴에 꽂혔어요. 


예.. 그렇죠. 저는 결국..


카토님은 변명하듯 말했어요.


"이 말이 자네에게 상처를 준다는 걸 알고 있네. 하지만 거짓말을 말하고 싶지는 않네. 자네는 분명 좋은 사람이네. 신분도 따지지 않고 개방적이고.."


"그런데 왜, 제가 아닌거에요?!"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어요.


"제가 모든걸 잃었을 때 저는 카토님을 만나고 희망을 얻었어요! 카토님에겐 제가 그저 교육시키는 용사들 중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 카토님이 소중하신 분이라는걸 알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저를 선택하시지 않으시는.."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때.


카토님은 저를 쳐다보고 계셨답니다. 신념으로 가득찬 눈빛으로요.


"프란체스카. 잘 듣게. 나는 항상 나약한 다수를 위해 싸워왔네. 나약한 다수를 위해 싸워왔지만, 다수는 항상 분열되어 자기들끼리 공멸했네. 분열된 다수중 나를 지지하는 소수만을 가지고 강력한 소수와 싸워왔네. 그렇지만 그들은 나와 싸울때는 항상 뭉쳐 다수가 되어있었네. 나는 항상 그렇게 싸워왔네.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가망이 없다면 저를 포기하시고 제 언니들을 교육시키신다는 건가요? 그러는 편이 승산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해도 승산이 없는 것이 현실이네. 내가 교육한 수많은 용사들이 그 강력한 소수에게 회유되고, 살해당하고, 타락했으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네. 만약 자네에게 재능이 없었다면 다른 왕족을 나의 대의에 동참시키는 수 밖에."


"..카토님. 당신의 대의가 도대체 무엇인가요?"


"교단의 개혁."


그의 모든 말이 진심인걸 알기에, 저의 가슴은 더욱 아팠어요. 저는 소리치듯 물었답니다.


"도대체 왜요? 왜 교단의 개혁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시는건가요"


"교단은 내 인생의 전부네. 그리고 주신님을 섬기는 인류의 마지막 보루. 절대로 포기할 수 없네."


"그리고요? 교단이 카토님의 인생의 전부라는건 알겠어요. 그리고 주신님을 섬기는 보루라는 것도 인정하지요. 그런데 그래서요? 왜 교단의 개혁이 필요한건데요?"


"자네는 교회앞에서 구걸하는 어린이들을 본적 없는가? 매일 밤 먹거리를 살 돈이 없어 눈물을 흘리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적 없는가?"


카토님의 목소리는 아이를 교육시키는 부모처럼 자상했어요. 


"교단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그런 아이들이 없을거네. 교단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그런 부모들의 눈물이 사라질걸세. 나약한 다수가 행복한 다수가 되는걸세."


"그렇다면 카토님. 당신이 교단을 개혁시키려는 이유는 많은 이들의 행복, 즉 쾌락 때문인가요?"


"그렇네."


저는 비릿한 미소를 띄며 말했어요.


"그렇다면 마물과 손을 잡으시는건 어때요? 듣기로는 마물도 인간들에게 행복을, 더 많은 행복을 나눠준다던데요. 그 대상이 가난하든, 부자든, 어린이든, 어르신이든.. 누구던지 차별하지 않고요."


의외로 카토님은 화를 내시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자상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며 말씀하셨지요. 그 점이 저를 놀라게 했어요.


"프란체스카. 방금전에 내가 자네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그렇게 모나게 대답할 필요는 없다네. 내가 이 세상 어떤것 보다 더 마물을 혐오하는지는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대답해주세요. 어째서 교단은 가능한데 마물은 할 수 없는건가요? 똑같은 행복이니까요."


카토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어요.


"다르네. 그것들이 진정 행복을 약속한다해도 믿을 수 없네. 언젠간 쾌락을 나눠주다가 우리를 배신하고 다시 우리를 고통속에 밀어넣을걸세. 서큐버스들이 그러하듯 말이네."


"믿을 수 있다면요?"


"그래도 마찬가지네. 그 놈들이 주는 행복은 육체적인 것. 그런 쾌락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배고픈 인간이 배부른 짐승보단 낫지 않은가."


"왜 그들이 배부른 짐승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부른 인간일수도 있는데."


"그럴리는 없네. 그 놈들은 항상 영원한 쾌락이니,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쾌락을 나누어준다고 우리를 현혹한다네. 생각해보게나. 그 놈들이 나눠준다는 쾌락에도 결국 한계가 있을 터. 그렇다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쾌락을 우리에게 어찌 나누어주겠나? 필시 다시 우리를 착취해서 우리에게 나누어주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착취를 당하는 인간이 어찌 인간인가. 그것이 짐승이 아닌가."


"그들이 나누어주는 쾌락이 무한하다면요?"


"후후. 프란체스카. 그럴 수는 없네. 이 세상에 무한하고 영원한건 오직 주신님 뿐이니.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지?"


부정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저는 참아냈어요.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요. 


카토님은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저를 칭찬하셨어요.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것이네. 원래 사람은 의문으로부터 발전하니까. 불순한 사상도 우리를 닦는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그 가치는 충분하네. 그리고 자네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말을 너무 괘념치말게. 애초에 자네가 재능이 없음을 가정한 것이니까. 자네의 재능은 충분하네. 내가 보기에 자네는 윌마리나와 비견할 수 있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네. 그러니까 허리펴고 자신감을 갖게."


저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였죠.


"그리고 자네도 그렇지 않은가? 자네도 자네의 신념이, 자네가 믿는 대의가 나를 버리라고 말한다면 버릴 터. 내 말이 틀렸는가?"


"저는 카토님보단 더 많은 고민을 할거에요."


제 가시돋친 말에 카토님은 미소지으셨어요.


"그게 젊음의 증거라네. 나도 자네 나이였다면 충분히 고민했을 테니까. 자, 다시 문서를 보게. 우리의 방어시설은.."


카토님은 저의 스승이시면서, 은사님이에요. 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세요. 그래요.. 저도 저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카토님을 버릴 수 있어요. 아.. 이 경우는 버리는게 아니라 취하는 건가요? 어느 쪽이던 망설임은 계속되겠지만.


ㅡ듣던대로 카토는 뛰어난 인간이구나.


네. 위대하신 분이지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하신 분이시죠.


ㅡ불쌍하네.


그렇지요? 하지만 저도 당신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아무리 발전해도 그 분의 턱까지도 따라가지 못했을거에요. 저는 카토님 만큼의 냉철함이나 지혜가 없으니까요.


ㅡ하지만 나를 만났으니까 좋은거 아니겠어?


후후.. 그럼요.


ㅡ카토에게 마물이 사실은 얼마나 이성적인지, 얼마나 많은 쾌락을 줄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면, 분명히 우리를 지지할거야. 프랑이 그랬던거처럼.


예. 받아들이시지 못한다고 하셔도 받아들이게 만들거니까요. 


지금 덮칠까요?


ㅡ아냐. 아직 당신의 실력으로는 그를 재빠르게 제압할 수 없어. 조금만 기다려. 조만간에 숲 근처 마을로 마물을 보낼거야. 그때 가장 뛰어난 용사를 파견해줘.


예. 마리를 보낼게요.


ㅡ윌마리나 노스크림말이지? 좋아. 조금만 기다려. 아주 조금만..


예. 


저의 사랑, 저의 주인님, 저를 지탱해주시는 유이하신 델에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