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모음




헤이든과 루시아가 드래고니아에서의 외교 임무를 마치고 사원으로 돌아온 지 며칠 뒤였다.


헤이든은 고의적으로 루시아를 멀리하며 라이트세이버 수련에만 매진했다.


그는 사원의 훈련장에서 하루종일 모조 라이트세이버 두 자루를 각자 양 손에 나눠지고서 하루종일 휘두르기만 했다.


애써 루시아를 자신의 마음 속에서 지워 보려 노력하며.


한편으로, 루시아는 헤이든이 묘하게 자신을 멀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과 헤이든이 드래고니아로의 임무 이후로 대화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고, 심지어 자신이 그의 처소에 찾아가도 그가 없거나 핑계를 대며 그녀와의 대면을 거절하기까지 하는 것을 보며 헤이든이 자신을 멀리한다는 사실을 확신했고, 이내 돌아온 지 일주일 째가 되던 날 아침, 그녀는 헤이든의 방 문을 물어보지 않고 열어버렸다.


마침 훈련장에 가기 위해 편한 옷을 입고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던 헤이든은 깜짝 놀라며 누가 문을 연 것인지 바라보았다.


“…스승님?”


헤이든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루시아를 봤다고 금세 기쁘게 뛰기 시작하는 자신의 심장이 야속하기만 했다.


“짐을 싸거라.”


그녀는 온화하지만 동시에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임무인가요?”


“아니, 휴가다. 같이 가자꾸나.”


헤이든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태도는 온화하지만, 항상 스승과 제자 관계로 선을 그으시던 스승님이 갑자기 자신에게 휴가를 같이 가자고 제안하다니, 꿈조차도 꿔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뭘 하고 있느냐? 어서 짐을 싸거라.”


헤이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대략 한 시간 정도가 지난 뒤, 두 사람은 비행정을 타고서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흰 지금…스승님의 고향으로 가는 중이라고요?”


루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긴 어떤 곳인가요?”


“평화로운 숲이지. 드라이어드와 알라우네, 동물들만이 어우러져서 평화롭게 사는 곳이야.”


“…그런 곳에 제가 가도 되는 건가요?”


“당연하지. 내 아버지도 인간이셨다.”


헤이든은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반갑기도 했지만, 괴롭기도 했다.


스승의 호의와 애정(단지 그것이 이성에게 주는 것이 아닌 가족에게 주는 것에 가깝기는 했어도)을 받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었지만, 그것은 그에게 굉장히 괴로운 고문이기도 했다.


스승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죽여 보려 애쓰고 있었는데, 이렇게 되어버리면 그 마음이 죽기는커녕 되살아나 버리지 않는가?


그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웃느냐?”


“아무것도 아닙니다…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는 시뻘건 거짓말을 자신과 스승에게 해야만 했다.


 


대략 세 시간을 날아서 그들은 루시아의 고향인 북부 대삼림에 도착했다.


헤이든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고 거대하게 자란 나무들을 보며 감탄했다.


“이렇게 울창한 숲은…처음이네요.”


“그래?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 있을 거다.”


“제가 예상하는데…나무 위에도 집이 있을 거예요. 맞죠?”


“아니, 나무 속에 집이 있단다. 그리고 마을은 정해진 출입구가 아니라면 들어가지도 못하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나무 사이에 우거진 커다란 덤불 속으로 들어갔다.


헤이든은 그녀를 따라 덤불 속을 헤치며 나아갔고, 이내 그의 눈 앞에는 숲 속의 마을이 드러났다.


루시아의 말대로 거대한 나무들 속을 파내어 만들어낸 다층의 집들을 헤이든은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빤히 바라보지만 말고 가자. 우리 집은 저 쪽이니 말이다.”


루시아는 헤이든의 손을 붙잡고서 그를 이끌었고, 헤이든은 그녀에게 이끌리며 이내 한 거대한 나무집 앞으로 오게 되었다.


루시아가 그 문을 두드리자, 문을 열어준 것은 루시아와 똑 닮은 여성이었다.


“왔구나, 루시아. 뒤에는 네가 항상 말하곤 하던 네 제자구나? 어서 들어오렴.”


“네, 어머니.”


어머니라는 말에, 헤이든은 잠시 놀랐지만 이내 장수 종족들 중 하나인 드라이어드이니 동안인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루시아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집 안은 화려한 장식 같은 것은 없었지만, 온화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집 안을 신기하다는 듯이 둘러보던 헤이든은 이내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한편 주방으로 향한 루시아와 루시아의 어머니는 대화를 시작했다.


“오랜만이네, 루시아. 그동안…많이 컸구나.”


루시아의 어머니는 그리움과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지냈니?”


“저야 잘 지냈죠…어머닌 외롭지 않으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쭉 혼자 계셨잖아요.”


“난 괜찮았단다. 주변에 말동무나 친구들이 없진 않으니 말이야. 그래도…보고 싶었단다.”


“…저도요, 어머니.”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를 껴안으며 말했다.


“알면 앞으로는 자주 찾아오렴. 이번엔 사윗감을 데려온 것 같아서 봐 준 줄 알아.”


“…사윗감이요?”


루시아는 의아하다는 듯이 말하더니, 이내 그것이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를 알아차리고서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아뇨, 어머니…저 아이랑 저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흐음…저 애는 생각이 다른 것 같던데?”


 


한편, 거실의 소파 위에 가만히 앉아서 집 안을 구경하던 헤이든에게 루시아의 어머니(가 자신의 몸인 나무를 사용해 만든 분신)이 다가오며 말했다.


“뭐가 그렇게 신기하니?”


“…나무 속에 지은 집은 처음 들어와 봐서요.”


“그러니?”


그녀는 헤이든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그나저나…우리 딸하고는 무슨 관계니?”


헤이든은 그 말에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애써 침착한 어조로 답했다.


“…스승과 제자 관계죠.”


“그러니? 정말 그것밖에 안 되는 관계야?”


“…네.”


그렇게 말하는 헤이든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아쉬움이 끈적하게 묻어났다.


“흐음…그러니? 아까 문간에서 네가 우리 딸을 보던 눈은 제자가 스승을 보는 눈이 아니었는데.”


“무슨 대답을 듣고 싶으신 거죠?”


헤이든은 날이 조금 선 목소리로 답했다.


안 그래도 스승에 대한 마음 덕에 심란한 참이었는데, 그런 헤이든에게 그녀의 말은 마치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들리기만 했다.”


“솔직히 말해 보렴. 우리 딸 어떠니?”


“…예쁘죠. 머리도 좋고, 강하고…”


“아니, 그런 거 말고. 아까도 말했지만, 네가 현관에서 우리 딸을 쳐다보는 눈은 사랑에 빠진 눈이었단다. 마치 옛날 내 남편이 날 보던 눈을 보는 것 같아서 단번에 알 수 있었지.”


인자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말하는 드라이어드를 보며, 헤이든은 그녀의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헤이든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네…전 당신의 따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짝사랑을 한 지 6년 정도 됐죠.”


“6년? 세상에…그럼 그동안 고백하지 않고 뭘 한 거니?”


“어머님의 따님이 제 고백을 받아 줄 리가 없거든요. 제다이의 길에 워낙 깊게 심취하신 분이기도 하거니와…일단 절 남자로 보고 있지도 않은 것 같거든요.”


헤이든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흐음, 과연 그럴까?”

 




“어머니…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루시아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말 그대로야. 그 아이는 널 사랑하고 있단다.”


“…그럴 리가요. 그 애가 그랬다면 저에게 솔직히 고백 안 할 성격이 아닌 걸요.”


헤이든은 항상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기에 자신이 자주 잔소리를 하곤 했다며 그녀는 덧붙였다.


“그런 애가 너에게 거부당하는 게 두려워서 자기 마음을 숨기고 있잖니. 잘 생각해 보렴. 그 아이가 자기 마음을 너에게 얼핏 흘린 적이 있는지.”


루시아는 그 말을 듣고서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겨우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스승님은…연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헤이든은 살짝 붉은 얼굴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그 때는 헤이든도 한창 연애에 관심을 나이이니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자신의 어머니의 말을 들은 루시아는 점점 설득당하고 있었다.


“좋은 아이 같던데 말이다. 널 많이 사랑하는 것 같고…”


“그 애는 세레노 스승님의 제자이기도 했어요, 그런 애를 제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너도 그 아이가 네 연애 상대가 되는 게 싫지만은 않나 보구나.”


루시아는 붉어진 얼굴로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엿다.


“듬직한 제자죠. 언제나 제 등을 맡길 수 있는…믿음직한 아이고요.”


“그것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니?”


“…잘생겼죠. 솔직히…솔직히…”


“솔직히?”


“…얼굴도 제 취향이긴 해요.”


“그래, 그럼 됐네! 얼굴도 취향이야, 믿음직해, 성격도 솔직하고! 뭐가 문제야? 덮쳐!”


“엄마!”


“안 되겠다. 따라와.”



 

한편, 루시아의 어머니의 분신은 헤이든과의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우리 딸도 널 싫어하진 않는단다.”


“하지만 절 이성으로 봐 주시는 것도 아닌 걸요.”


“그건 한번 직접 물어보렴.”


헤이든의 등 뒤에서 루시아의 어머니의 본체가 그렇게 말하며 루시아를 방금 전까지 자신의 분신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혔다.


갑자기 자신의 옆에 앉은 루시아를 보자 헤이든은 놀란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디서부터 들으셨어요?”


“…거의 처음부터.”


루시아가 자신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헤이든과 어머니의 분신이 대화하는 것을 듣기 시작한 시점은 헤이든과 분신의 대화가 시작하던 시점이었고, 그 덕에 루시아는 헤이든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매우 잘 알 수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른 오랜 침묵 끝에, 루시아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자야, 솔직히 답해다오.”


헤이든은 루시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정말 연모의 대상으로 삼았느냐?”


“…예.”


“정말로 6년 전부터 그래왔느냐?”


“예.”


“그렇다면 어째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


“스승님께 거부당할까 봐 무서웠으니까요.”


“…내가 널 거부할 리가 없지 않느냐.”


“네, 절 거부하진 않으셨겠죠. 단지 제 고백에 대해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셨을 거고, 전 그걸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전 제다이 답지 않게 감정에 솔직하니까요.”


헤이든은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말해버렸네요.”


그는 겁이 났다.


자신의 스승과는 더 이상 예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것이 파국으로 치닫게 되지 않을까 그는 겁이 났다.


한편으로 루시아는 그에게 무어라 대답해 주어야 할 지를 전혀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제다이로서의 자신과 루시아 자신으로서의 자아가 갈등하는 와중에, 그녀는 겁에 질린 헤이든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스승에게 거부당하고 멀어질까 두려움을 품은 눈을, 그녀는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스승이 자신을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하고 아무 말이 없자, 헤이든은 체념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잠시 뒤에 자신의 손 위를 기어오르는 따뜻한 감각에, 그는 소파를 짚고 있던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루시아가 헤이든의 손 위로 겹쳐 올린 그녀의 손이 있었다.


그녀는 이내 손을 잡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헤이든의 두꺼운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길고 얇은 흰 손가락을 끼워 깍지를 꼈다.


헤이든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다오. 지금은…”


루시아는 얼굴을 붉히고서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돌려 그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했고, 헤이든은 그런 그녀를 보며 그녀의 말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하더니, 이내 자신의 손바닥을 돌려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헤이든의 행동에 잠시 놀란 루시아는 그와 자신이 맞잡은 손을 바라보다 헤이든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던 두 사람은, 이내 서로에게 점점 가까이…

 



“…그래서 둘이 언제 키스하니?”


“어머니!?”


그리고 두 사람이 만들어가던 무드는 이내 뒤에서 둘을 가만히 구경하고 있던 루시아의 어머니에 의해 완벽히 깨져버렸다.



 

한편, 드라이어드의 마을 입구 근방.


한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가 거울 조각을 들고서 그 거울에 비치는 누군가와 말하고 있었다.


“주인이시여, 당신께서 당부하신 곳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마을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멍청한 것. 포스를 사용해 주변을 느껴보아라. 일그러짐이 보이는 곳이 있을 것이다.”


거울 너머에서 들려온 여자의 말대로, 남자는 자신 앞의 덤불에서 공간의 일렁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그나저나…그 두 명을 어찌 할까요, 주인이시여?”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데려와라. 그 아이는 새로운 제국의 초석이 될 것이니 말이야.”


거울 너머의 여자는 왕좌와 비슷한 넓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으며 말했다.


그녀는 몹시 매혹적인 외모를 하고 있었지만, 그 표정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오만함과 악의는 그아름다운 얼굴을 뒤덮어 악녀의 상을 만들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다스 크레이트, 나의 주인이시여.”


남자가 그렇게 말하자 거울은 그 짝이 되는 거울의 너머를 비추지 않게 되었고, 남자는 거울을 품 속에 집어넣은 뒤 덤불 속을 헤치고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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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투척.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맙다, 몬붕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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