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novelchannel/36201548?p=5

누가 써달라고 해서 노력해봄. 블러드본 느낌나게 썼는데 잘 썻는지는 모르겠다.


 

 

철썩.. 철썩...

 

파도가 치고 있었다.

서늘한 달빛만이 세상을 밝히는 어두운 밤.

그 아래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검게 물든 바다에 파도가 치고 있었다.

 

파도는 느린 속도로 육지에 발을 디뎠다가 다시 돌아간다.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모든 것의 근원인 바다로.

마치 죽음을 알아챈 코끼리가 무덤을 찾아가듯.

 

천천히 하지만 끊임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된다.

 

그렇게 파도가 빠져나간 해변가에 한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길을 잃은 바람과 모두에게 평등한 달빛만이 기억하는 사내. 세상에 잊힌 사내의 몸이 희미하게 들썩였다.

 

"으..."

 

사내의 입에서 거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격통에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오른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의 메마른 폐는 갑자기 들어온 차가운 바다 공기를 견뎌내기에는 무리였다.

 

시간이 흐르고 온몸에 퍼졌던 격통이 잦아들자 비로소 사내는 감겨있던 눈을 뜰 수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감겨있었던 건지 눈꺼풀을 떼내는 것조차 힘들었다.

 

"여긴......"

 

머리가 지끈거렸다. 사내의 기억은 안개가 낀 것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가 어딘지 왜 이곳에 쓰려져 있었는지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까지도. 

 

사내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사내는 일어나자마자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상할 정도로 무거운 몸에 그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복부와 다리를 감싸는 금속의 플레이트 아머. 한때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동료였던 그것들은 이제 처참히 부서진 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고철덩이들이 되어있었다.

 

사내는 이제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되어버린 고철덩이들을 힘겹게 벗어던지고 일어났다. 이제야 선명하게 보이는 그의 시야에 처음 보이는 것은 우주였다.

 

수많은 별들이 장식하고 있는 선명한 밤하늘. 

그리고 그 밤하늘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바다는 우주를 닮아 있어 너무나 아름답다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아아... 바다여. 만물의 어머니. 모든 것들의 근원이여... 지금... 그쪽으로...”

 

사내는 무언가에 홀린 듯 바다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비틀거리면서도 멈추지 않은 채 한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깊은 어둠속으로 들어가던 그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 것은 발에 걸린 무언가였다.

 

주위에 흩뿌려진 흔한 돌덩이처럼 보였던 그것은 말라비틀어진 시체였다. 

사내는 무표정으로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체의 주변을 훑어보던 시선은 어느 한곳에서 멈추고 지켜보는 그의 눈에는 흐릿한 빛이 밝아오고 있었다.

 

사내는 무릎을 굽혀 시체에 손을 뻗었다. 손이 향하는 곳은 말라 비틀어진 시체가 아닌 그 옆에 널브려져 있는 검이었다.

 

사내의 손이 검에 닫자 그의 정신은 선명해지고 잊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것을 다시 떠올렸다.

 

“찾아야 한다... 반드시...”

 

사내는 망설임 없이 낡은 직검을 손에 쥐어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검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리그었다. 그 행동은 몇십 년간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한 장인처럼 자연스럽고 또 날카로웠다.

 

익숙했다. 마치 한 몸인 것처럼. 

 

‘모든 것을 잊었어도, 나 자신마저도 잊었지만 검은 나를 떠나지 않았구나.’

 

그는 무의식적으로 나온 자신의 말을 떠올렸다. 찾아야 하는 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기억은 아직 흐릿하고 떠오른 것은 저 알 수 없는 한마디뿐이니. 그는 검을 바닥에 꽂고 무릎을 꿇은 채 잠시 눈을 감았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그는 무언가 깨달은 듯한 후련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 하늘을 향해 내밀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검의 옆면에 하늘에 있는 달이 비치고 있었다.

 

길을 잃어버린 유랑자에게 길을 알려주는 것은 언제나 어느 때나 곁에 머무는 친구인 달이니. 

 

그는 걸음을 옮겼다. 

그의 비틀거리는 발걸음은 너무나 위태로워 보였으나 그는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저 달이 향하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