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신가, 하북사정주이다.
오늘도 내 고닉에 대해 이야기해 볼 시간이 왔다.
복습 겸 다시 말하지만, 하북사정주란 후한 말의 군벌인 [원소 본초] 휘하의 네 명장, 안량 / 문추 / 장합 / 고람을 지칭하는 별칭이다. 대충 촉나라 오호대장군이랑 비슷한 개념이라 보면 되겠다.
지난 시간에 예고한 대로 이번 시간에는 세 번째 순서인 장합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다.
솔직히 이 놈은 고람과 더불어 필자에게 상당한 애증의 캐릭터다.
매번 원소로 플레이했는데, 이 둘은 하도 초반 충성도가 낮아서 뻑하면 조조한테 넘어가거나 모반했기 때문.
근데 능력치가 쩔어서 어떻게든 써야 한다 ㅂㄷㅂㄷ
장합(張郃)
후한 말의 장수로, 자는 준예(俊乂)이며 기주 하간군 막현 출신이다.
기주, 어째 익숙한 이름이 아닌가? 맞다. 기주목 한복이 다스리는 땅이다.
다시 말해 장합은 본래 한복의 부하였다가, 원소가 공손찬과 작당하고 업을 먹을 때 원소 막하로 들어간 인물이다. 사실 원소의 부하 중 장합 같은 케이스가 꽤 많다.
이런 푸짐한 라인업을 가지고도 원소한테 눈 뜨고 코 베인 한복, 당신은 도대체......
원소 밑에서 장수로 구르며 성장했지만, 사실 진짜 포텐셜이 터진 건 조조에게 귀순한 이후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진짜 이 인간은 참전 안 한 전투가 없는 수준으로 활약한 베테랑 of 베테랑이다. 정사 기준 영웅을 꼽으라고 한다면 반드시 후보군으로 찍어야 할 사람이 바로 장합인 셈.
물론 원소라고 장합을 찬밥 취급한 건 아니다. 원소도 장합의 능력을 인정하고 충분히 잘 썼다.
당장 한복 부하였던 장합을 영입한 이후, 원소는 장합을 교위 직책에 임명하고 공손찬과 싸우게 했는데 이때 큰 공을 세워서 고속 승진을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장합은 원소의 근거지를 공격하던 흑산적 무리를 토벌해 후방을 안정시키는 군공마저 세운다.
관도대전 이전까지 행적조차 불분명한 안량 / 문추 콤비와 비하면, 장합은 정사에도 기록된 진짜배기인 셈.
장합을 앞세운 원소군의 맹공에 공손찬은 제대로 패배하고, 결국 역경루에 틀어박혀 처자식과 함께 자결하고 만다.
공손찬을 제거하고 하북을 평정한 원소는 비로소 눈엣가시인 조조를 꺾기 위해 남하하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관도대전이다.
사실 장합은 전풍, 저수 등과 더불어 관도대전을 비토하는 반전파에 속했다.
그는 경기병을 운용해 조조의 보급선을 교란하고 천천히 야금야금 갉아먹는 전술을 쓰자고 주장했다. 조조의 근거지인 허도는 아직 안정되지 않은 데다가, 워낙 해먹은 짓거리가 많아 사방이 조조의 적이었기 때문. 만약 장합의 계략을 채택했다면 조조는 정말 외우내환이 겹치면서 자멸했을 수도 있다.
허나 조조 "따위"에게 꼼수를 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원소는 반전파의 의견을 기각하고 전면전을 개시한다.
비록 자신의 전략이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장합은 원소에게 충성하면서 관도대전 내내 상당한 활약상을 선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원소군 내부의 종양으로 인해 장합의 커리어가 끝장나는 시기가 도래하게 된다.
원소군의 책사, 허유의 배신으로 군량 창고의 위치인 오소가 발각된다. 이에 조조는 결사대를 조직하여 장수 순우경이 방비하고 있던 오소를 급습한다.
군량 창고가 함락당할 위기에 처하자 원소 진영은 패닉에 빠졌고, 과연 어찌 대처해야 할 지 설왕설래가 오고 간다.
장합과 심배는 조조군이 오소를 점령할 가능성이 크니 정예병을 보내 순우경을 구원하자고 했지만, 원소의 책사 곽도의 의견은 달랐다.
곽도는 차라리 병력이 빠진 조조군의 본영을 들이쳐 그들의 커맨드 센터를 작살내자고 했다. 쉽게 말해 엘리전을 노린 것이다.
장합은 조조군의 방비가 단단하므로 오소 함락 전까지 적의 본영을 공략하는 건 어렵다고 반박했으나
조조한테 밀리는 기색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원소는 또 장합의 주장을 기각하고 곽도의 작전을 따른다.
불만이 가득했지만, 어쨌든 장합은 군인. 까라면 까야 하는 신세였기에 어쩔 수 없이 적진 공략을 나선다.
그러나 장합의 예측대로 조조군의 본영은 쉽게 함락되지 않았고, 그 와중에 순우경의 오소군이 패퇴하면서 군량 창고가 전부 불타버리는 참변이 발생한다.
그런데 일이 어긋나자 곽도는 오히려 장합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장합이 열심히 싸우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모함을 한다.
자신이 참소당한 것을 안 장합은 처벌이 두려워 마침내 조조군에게 항복하고 만다.
곽도 아 한 놈 때문에 원소군의 에이스가 이탈해 조조군 휘하로 들어간 것. 이 업보인지 곽도는 관도대전 이후 원소의 신임을 완전히 잃고 만다.
이후 관도대전에서 조조군이 승리하고, 이에 원소는 홧병이 도져 사망하고 만다. 그 결과 원가에서 내분이 일어나 하북이 분열되자 조조는 장료와 장합을 앞세워 이들을 토벌하게 했고, 장합은 굵직한 전공들을 세우며 자신의 주가를 올리는데 성공한다.
앞서 말했듯 장합이 진짜 포텐셜을 터뜨린 건 조조 휘하로 들어간 후이다.
그의 대표적인 활약상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원씨 가문 토벌
2. 관승이 이끄는 청주 일대의 해적 토벌
3. 조조에게 반란한 첨산 일대의 진란 군대 토벌(첨산 전투)
4. 조조의 형주 정벌 당시 참전
5. 마초의 서량군 격파(위수 전투)
6. 부한현의 군벌들과 양주의 저족(氐族) 토벌
7. 한중의 장로 정벌(양평 전투)
8. 정군산에서 하후연을 죽인 유비군을 격파하고 무사히 후퇴(정군산 전투)
9. 반란을 일으킨 산적 정강과 노수의 오랑캐 토벌
10. 강릉에서 수 천의 오군 섬멸(강릉 전투)
사실 이것들만 해도 소소한 수준이고, 조조 사후 제갈량의 북벌이 시작되면 장합의 주가는 더욱 상승한다.
번번이 그의 북벌을 좌절시킨 명장이 바로 장합이기 때문.
쉽게 말해 대촉방면 결전병기였던 셈. 촉한의 병사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괴물이 바로 그였다.
사실 북벌 시기쯤 되면 1세대 장군들은 대부분 사망한지라 촉군의 동향을 익히 아는 노련한 장수는 장합 밖에 없기도 했고.
당장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 등산왕 마속을 격파한 장본인이 바로 장합이다. 연의에서는 사마의를 띄워주기 위해 장합이 멍청이 쩌리로 나오지만, 실제로 촉군의 북진을 막아낸 영웅은 다름아닌 장합이었다.
결과는 뭐, 다들 알다시피 읍참마속. 등산왕 마속의 장렬한 최후를 보라.
이 때문에 제갈량이 매우 골치를 썩었고, 반대로 위나라의 황제인 조비와 그 후계자 조예는 장합을 극도로 총애했다.
그러나 제갈량의 4차 북벌 당시, 장합은 사마의의 명으로 퇴각하는 촉한군을 무리하게 추적하다가 화살에 맞아 전사하고 만다.
이에 대해 권력 찬탈을 계획하던 사마의가 명장 장합의 위상을 부담스럽게 여겨 일부러 사지로 내몰았다는 설도 있는데, 어디까지나 설이다. 말 그대로 믿거나 말거나.
어쨌든 대촉 결전병기였던 장합이 그렇게 죽자 조예는 심히 애석해 했고, 그를 태조인 조조의 사당에 배향할 정도로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장합의 네 아들들도 전부 열후에 봉해졌다.
정사 장합은 행적만 보면 정말 영웅이라는 위명이 아깝지 않은 신이 내린 기재라 할 수 있다.
반면 연의의 장합은 너프를 꽤 심하게 먹었다.
사실 정사의 굵직한 사례들만 봐도 장합은 절대로 멍청한 돌격형 장수가 아니다. 오히려 지능도 만렙을 찍은 문무겸비형 SSS급 장수라 할 만하다. 그런데 왜인지 나관중은 이런 장합을 그냥 지 무력만 믿고 뻗대는 전형적인 무투파로 격하시켰다.
원소군 휘하의 행적은 정사나 연의나 비슷하다. 여기서는 조조군의 장료와 일기토를 벌이면서 50합을 넘게 싸우는 준수한 모습도 선보인다. 어찌 보면 이게 연의 장합의 유일한 리즈 시절.
근데 조조군으로 들어가면서 포텐이 터진 정사와는 달리, 연의 장합은 조조 아래로 들어가면서 느닷없이 안습 전설을 시작한다.
장판파 전투 당시, 아두를 안고 도주하던 조운과 마주친 게 연의판 장합인데 여기서 장합은 조운에게 패하고 그를 놓치고 만다.
기는 좀 살려줄 생각이었는지 30합을 겨뤘네 어쨌네 하지만, 하여튼 애기도 안고 있던 조자룡한테 장합이 졌다. 심지어 판본에 따라서는 여기서 조자룡한테 죽기도 한다. 연의에서는 대촉 결전병기 역할을 사마의가 꿀꺽한지라 가능한 전개.
이걸로 끝이면 다행이게?
위수에서 마초를 격파한 이력은 삭제된 채 마초랑 일기토 붙었다가 꼴사납게 도망치는 모습만 나오고
나름대로 분전한 정군산 전투에서도 황충과 엄안을 노인네들이라고 얕보다가 대패하는 추태를 보였으며
1차 북벌 당시 마속을 격파한 공로는 사마의한테 날름 뺏기고
심지어 최후도 사마의가 말리는 걸 씹고 공명을 잡겠다고 우라돌격했다가 목문도에서 끔살 당하는 걸로 바뀌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정반대다. 장합이 쫓지 말자고 하는 걸 사마의가 억지로 쫓게 했다가 전사한 것.
이쯤 되면 나관중 씨가 장합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촉나라를 징글징글하게 괴롭힌 대촉 결전병기라서 그냥 거슬렸던 걸 수도 있고
어쨌든 연의 장합을 위해 묵념. 연의에서 대폭 버프된 나머지 하북사정주와 비교하면 연의 장합은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좌우지간 이걸로 장합전을 마치겠다.
조조군 휘하에서 포텐이 터졌다면서 정작 활약상 자체는 요약해서 적었는데, 이는 일일이 다 묘사하지면 끝이 없어서 그런 거다.
그만큼 대단했던 장수가 장합이었다. 궁금하면 직접 찾아보는 걸 권장. 장씨의 레전드가 장익덕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허술한 글 읽어줘서 고맙고, 다음에는 마지막 편인 고람전으로 돌아오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