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고시 생활, 말라가는 어머니, 웃음을 잃어버린 여자친구를 남겨두고... 나는 자살했다.

7년의 시간동안 곁을 지켜준 그녀를 위해 차갑게 돌아선 다음날이었다.

마지막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흐려진 물 속에서 유영하는 것처럼.

심해로 이어진 늪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사라졌을 때, 나는 재벌가 막내아들이 되어있었다.

금방이라도 쪼개질 듯 폭주하는 심장.

누군가 몽둥이로 두들긴 것인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굳게 심호흡을 하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자, 호화스런 방안의 정경이 천천히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된 일인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나는 다급히 온 사방을 뒤적거렸다.

책상 위에 놓여진 스마트폰과 지갑, 신분증.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지갑을 열었다.

'표트르 아브라모노비치 세르게이, 러시아.'

어딘가 익숙한 이름. 분명했다.

유명 해외 축구팀을 사들인 북방의 재벌이... 로만 아브라모비치였다.

달뜬 얼굴과 비틀어지는 입꼬리를 매만지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소리도 없이 검은 화면이 밝아졌다.

정겹게 미소짓는 금발의 미남과 그 옆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커다란 개.

그리고, 날짜.

'2022년 2월 24일'

"어...?"

나는 러시아 올리가르히의 아들로 환생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하는 그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