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를 알 수 없는 글귀가 새긴 원진 가운데서, 머리에 노란 두건을 두른 중년이 눈을 뜬다.

 

신비로운 푸른 눈동자는 초점이 잡히지 않아 무척이나 흐리멍덩했다.

 

장각.

 

사람들을 도우며 의술을 행하고, 관리들의 압정에 반발하던 한낱 떠돌이 유생.

 

우연히 그는 어느 노인을 통해 신기한 술법이 적힌 요술서를 손에 넣었다.

 

태평요술서.

 

있는 자가 민초를 수탈하는 잘못된 세상에 질서를 바로잡을 힘을 지닌 요술서.

 

“크흐.”

 

장각이 실소를 짓는다.

 

그의 몸 상태는 빈말로도 좋지 않았다.

 

막말로 피골이 상접하여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몰골이었다.

 

“허허.”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부르튼 입술에서 메마른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푸른 동공이 머리 위, 동굴 천장을 향한다.

 

그가 입을 벌리자 종유석에 맺힌 이슬 한 방울이 입 안으로 쏙 떨어졌다.

 

덥수룩한 수염 아래 호선이 그어진다.

 

정순한 정기로 가득한 이슬을 머금자 쓰러질 것만 같았던 그의 육체에 조금씩 힘이 들어찼다.

 

“동생들아. 때가 왔다.”

 

보름이 넘도록 호법을 서던 그의 동생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드디어…!”

 

장각이 손을 들자 장보와 장량이 그를 부축한다.

 

“나가자.”

 

장각이 두 동생에게 의지해 동굴 밖으로 향했다.

 

동물의 지방에서 뽑아낸 기름으로 간신히 불을 밝힌 동굴을 빠져나오자 눈이 부셨다.

 

황실을 상징하는 푸른 하늘과 백성의 재물을 빼앗아가는 탐관오리처럼 지상에 가뭄을 내리는 태양이 보였다. 

 

“태평도의 때가 도래했노라.”

 

고요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대현양사…!”

“모두 들어라! 드디어 천공장군께서 나오셨다!”

 

동굴 밖에서 장각이 치르는 의식을 기다리던 신도들이 일제히 고개를 든다.

 

“모두 머리에 황건을 둘러라….”

 

장각이 동생들의 부축에서 벗어나 양팔을 높이 치든다.

 

“때가 왔다!”

 

장각의 호령하기 무섭게 드넓은 창공에 짙은 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덕을 잃은 자가 음양의 섭리와 오행의 이치를 거슬러, 태평한 기운을 어지럽혀 세상을 지배하고 있노니!”

 

구름은 마치 모래바람을 머금은 것처럼 노랬다.

 

“천하를 지탱하는 우리, 백성이자 태평도가 마땅히 그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느니라!”

 

장각이 혼신을 다해 외치자 하늘에서 이에 응하듯 오색찬란한 벼락을 내리쳤다.

 

벼락이 내리꽂힌 자리엔 기묘한 금이 가 있었다.

 

“보아라!”

 

신들이 인계를 직접적으로 간섭하던 먼 태곳적 시대의 일이다.

 

불의 신 축융.

 

물의 신 공공.

 

두 존재가 싸우다가 하늘이 무너졌다.

 

그러자 맹수와 괴조를 비롯한 기이한 형태를 한 괴물들이 세상에 쏟아졌다.

 

세상에 혼란이 도래했다.

 

백귀야행이 횡행하고, 사람은 두려움에 벌벌 떨어야만 했다.

 

이때, 인간을 사랑한 여와는 거북의 다리를 빌려 기둥으로 삼아 하늘을 지탱했다. 그리고 구멍이 난 하늘은 오색의 돌을 녹여서 메웠다고 한다.

 

여신의 사랑이 세상의 진실을 뒤덮는 완전히 새로운 덮개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 장각이 여신이 만든 덮개에 다시금 구멍을 뚫었다.

 

“흐흐.”

 

아니, 구멍을 뚫었다는 표현은 틀렸다. 장각은 여신처럼 전능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태풍요술서의 힘과 그의 진기를 쏟아부으면 세상의 덮개에 금을 내는 정도야….

 

쩌적.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금이 커져간다.

 

“오오오!”

“세, 세상이 붕괴하고 있어…!”

“천공장군님의 힘이시다!”

 

허공에 머무르던 금은 마치 거미줄처럼 영역을 확장하며 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끝내.

 

[■■■■■!]

 

맹수의 형상을 한 손이 틈새를 뚫고 현세에 강림했다.

 

“흐하하하!”

 

장각이 광소를 터뜨렸다.

 

번개가 내리친다.

 

하늘이 노란빛으로 물든다.

 

동시에 더없이 푸르던 장각의 눈이 인간의 것이 아닌 노란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은 죽고! 누런 하늘이 곧 서리라!”

 

섭리는 이미 틀어졌다.

 

힘 있는 자들의 가짜 태평도에 힘없는 자들을 위한 진짜 태평도를 가져오리라.

 

 

 

* * *

 

 

 

“허허. 맹수가 사람을 여럿 죽어?”

“글쎄 그렇다니까요!”

 

탁현의 어느 작은 마을, 수염을 가슴 아래까지 기른 붉은 얼굴의 사내가 흉흉한 소식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현령께서 조직한 사냥꾼들도 모조리 죽어서 발견되었답니다!

“사냥꾼이 당했다?”

 

사내가 의문을 표하며 제 수염을 쓸어내렸다.

 

정식으로 인정받는 사냥꾼은 맹수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군인에 비하면 뒤떨어질지 몰라도 민간에서는 그들만큼 조직적인 무력 집단이 없다. 그런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맹수가 확실한가? 산적이 아니고?”

“네. 흔적을 보면 맹수가 확실하더랍니다.”

 

갈기갈기 찢겨 토막이 난 시체는 누가 보아도 인간의 행실이 아니었다며 청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흥미롭군.”

 

그리 말하며 사내가 옆에 세워둔 거대한 도를 집어 어깨에 걸쳤다.

 

너무 커다래 검집에도 들어가지 않아서 도검보다는 둔기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청년이 당황했다.

 

“어, 설마 직접 확인하러 가시려구요?”

“그래.”

“주, 죽는다구요! 현령께서 조만간 대규모 토벌 허가서를 받아온다고 하셨는데 그때까지만…!”

 

사내가 청년의 손에 은자를 던졌다.

 

“우아앗!”

“내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준 값일세.”

“진짜 가시려고요…?”

“아아.”

 

사내가 허리를 곧게 편다.

 

객잔이 조금 작긴 해도,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기골이 장대한 사내였다.

 

“조만간 연주에서 아는 동생이 찾아오기로 했다. 마중하러 나가는 셈 치고 다녀오도록 하지.”

“미친….”

 

사내가 객잔을 나와 소문이 무성한 맹수 출현 지역으로 향했다.

 

또 애꿎은 피해자가 나타날까 청년은 두려웠다.

 

“아 모르겠다!”

 

청년이 활과 화살통을 챙겨 사내를 쫓아갔다.

 

“기다려요, 관 형! 저도 같이 갑시다!”

“음? 위험할 텐데 괜찮겠나?”

“관 형은 제 구명지은 아니십니까! 은인을 사지로 보내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비실비실하게 생겨서 생각보다 참된 청년이었군! 내 자네를 구한 보람이 있어!”

“그래도 여차하면 버리고 도망가겠습니다. 전 홀몸이 아니니까요.”

“흐하하! 그래. 자네는 집에 계신 여동생과 노모를 모셔야 하니까. 내 거기까진 이해해주겠네.”

“퍽이나 감사하네요.”

 

관우라 자칭하는 사내와 사냥길에 오른 청년은 훗날, 이때 결정을 후회했다고 한다.

 

“아니 씨 설마 평생 이 양반 뒤치다꺼리하며 요물을 사냥하고 다닐 줄은 꿈에도 몰랐지!”

 

라고 한다.

 

 


황건적은 딱 게이트물 발발하게 되는 계기 역할을 하고 세력 자체는 장각 등 인물들이 오래 못 버티고 죽어서 금방 와해.

통제를 잃은 몬스터들이 황건을 치며 군벌이 토벌하자 그대로 자멸.


재난물에 흔히 나오는 별거 있겠어? 스노우볼이 크게 굴러와 괴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세를 늘리며 세상을 다시 혼돈의 도가니로 몰고가는 전개.


군벌들은 각자 이 기회를 이용하거나, 살아남기 위해 뭉치거나 하며 헌터물OR 아포칼립스물 작가 편할 대로 전개.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