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안 든다고."

"왜 또 죽상이야."


일본의 무신 타케미카츠치가 환웅을 반겼다.

옛날이야 너 죽네 나 죽네 하고 싸웠지만
미운 정도 정이었는지 이젠 그런 것도 없었다.

환웅이 투덜거렸다.


"얼마 전에 일본엘 놀러갔네."

"나 부르지 그랬나! 내 가이드 한번 기똥차게 해줬을 텐데."

"뭐 아키하바라인지 뭐시깽인지도 가봤는데 재밌는 게 많았다네."

"아무래도 한국엔 그런 거 적긴 하지."

"해서 뭐... 신나게 쇼핑을 하고 오던 길이었지.
누가 이래 날 불러세우더라고."

"저런! 누구였나?"

"누구기는, 그 지역 토호지."


타케미카츠치가 탄식했다.


"아 지역신들... 요새 지역신들이 성격 더러워지긴 했지."

"아니 지역신까진 아니고 가끔 있는 그... 인간출신 신들 있지 않나."

"허어 있지. 있고말고. 그 동네면 무장들중에서 아마..."

"무장 말고 말일세."

"하면?"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네. 근래 인기라곤 하던데."


환웅도 나이가 나이였다.

슬슬 기억이 까마득해지는 연령이 오고 있었다.

물론 이런 얘기는 바알과 같은 나이 지긋한 신들이 보면 차가운 냉소만 끼얹어줄 투정이겠지만.


"좌우간 그 녀석 힘이 장사더구만."

"자네보다 셌나?"

"어허, 나보단 훨씬 셌네. 그래, 아마테라스님보다 강해보이던데."

"토르공보단 어떤가?"

"좋은 승부가 될 것 같았지만... 그래도 토르님이 질 것 같더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신앙을 받은 신이란 말인가, 그 양반은.

타케미카츠치가 놀란 눈이 되었다.


"그럼 아주 강한 신이었단 말이로구만!"

"그런 놈한테 걸렸으니 그냥 넘어갈 수가 있겠나."

"쯧쯧, 자네도 수난이로군."


요 얼마전에는 퍼리충이네 뭐네하는 별명이 달렸다고 끙끙거리더니.

타케미카츠치가 혀를 찼다.


"그래, 뒷골목으로 불려가선 뭘 했나."

"나야 돈이라도 뜯길 줄 알았지."


의외의 사실.

신계의 주민들은 금전에 진심이다.


'긴긴 세월 동안 인간들에게 한결 같이 추앙 받아온 것은 금전 뿐이다.'


신계에선 이런 말이 자주 나돌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금전이란 롤모델이자 또한 질투의 상징이기도 하다.


"펜을 주더라고."

"펜?"

"그래. 나보고 그림 그리는 걸 도우라고 하던 걸."

"허어... 그 정도 신력으로 한다는 일이 겨우 그림보조를 요청하는 것이란 말인가?"

"가만 보니까 깨나 야시시한 그림이었지만서도 이것이 젊은 신들의 새로운 물결이 아닐까 싶기도 하여 받아들였다네."

"허허."


타케미카츠치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림을 그려?

그림의 신인가?

지상의 신(쿠니츠카미)들 가운데에 남아있는 그림의 신이 있던가?

쿠에비코? 아니, 그 녀석은 학문의 신이렸다.

사쿠야히메? 아니, 그 녀석도 뭔가 다르다.

생각에 잠긴 타케미카츠치를 환웅이 재촉하였다.


"어찌, 누군지 알 듯 싶은가?"

"있대도 그런 괴짜는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걸."

"흐음..."

"자네야말로 어떤가? 분명히 그 정도로 강한 신이라면 이름을 밝혔을 성 싶네만."


이름, 그리고 직위. 신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자존심이다.

인간에게 명함과 같은 존재이다.

환웅이 조심스레 입을 뗐다.


"이름은 모르겠고, 직위는 들은 듯도 싶네."

"오호, 어떤 직위였나?"

"한데 이게 나도 영 금시초문인 직위인 지라 농담 같기도 하고 원..."

"어허, 말해보라니깐."


환웅이 한참을 머뭇거리다 답했다.

환웅의 입에서 그것은, 타케미카츠치에게도 생판 처음 듣는 이름이긴 매한가지였다.


"자신을...
오고곡의 신이라고 부르던데."

"... 처음 듣네만. 그런 직위로 그 정도의 강력한 신앙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역시 그렇지? 그 녀석이 농을 한 게 틀림 없네."


결국 그 정체불명의 강자는 신계에서 신원미상의 강호로 한동안 입방아를 타게 된다.

소문을 들은 북유럽의 한 망치쟁이 신이 '재밌어보인다' 면서 일본으로 향한 건, 나중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