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짜고짜 내 앞에 나타난 어느 여자의 말에 나는 대답조차 못하고 얼어붙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대관절 주말에 늘어지게 자던 사람 앞에 튀어나와서 이게 무슨 헛소린가 싶지만.


누구든 단단히 잠긴 현관문을 스르륵 통과해서 들어온 박쥐 날개의 뿔달린 미소녀를 보면 합죽이가 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그러거나 말거나, 꼬리를 살랑거리며 온갖 혜택을 주르륵 늘어놓는 그녀를 보며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아니... 그, 공채라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지옥?"


"어머, 모르셨나요?"


"시발, 당연하지!"


애초에 악마라는 게 다 상상의 산물 아니냐, 하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푸흡 하고 웃었다.


그러더니 정장 와이셔츠 단추를 열고 가슴팍에서 뭔가를 주물주물 하더니 종이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지옥 인간특별채용 전형 1기 입사 모집서]


"요즘 저희 지옥이 인력난에 시달리거든요. 그런데 최근? 문물을 살펴보니 훌륭한 인재들이 너무 많은 거 있죠!"


눈으로 서류를 훑는 사이에도 이 수다쟁이 악마의 설명은 길게 이어졌다.


지옥의 지배자, 사탄님이 보고 졸도하실 정도로 뛰어난 악행이라느니, 수천 년간 쌓아온 대악마들의 업적을 뛰어넘는다느니.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대며 찬양을 일삼는 꼴을 보고 어이가 사라져서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기나긴 설명이 끝나고, 목이 말랐는지 재킷 주머니에서 물을 꺼내 마신 악마가 나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래서, 해주실 거죠?"


"아니."


"에에에에에? 이런 좋은 기회를 왜요!"


아니 생각을 해 보라고. 나는 그냥 일개 방구석 무직 장붕이란 말이다.


웹소설에 나오는 초인들마냥 인간을 뛰어넘은 정신력이나 무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악마 따까리질이나 하다가 신세 망치는...


"하아, 또 실패네요. 역시 연봉이 한화로 20억원 밖에 안돼서 그런 걸까요?"


"선배님!!!!!!!!!!!!!!!!!!!!!"


빛보다 빠른 속도로 악마녀의 두 손을 감싸쥐고 콧김을 마구 내뿜자, 그녀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리는 것이 보였다.


"하겠습니다! 할게요! 제발 시켜만 주십쇼! 제 어릴 적 장래희망이 지옥의 대악마였습니다, 제발요!"


"네, 네? 아... 그, 그, 그러셨군요! 아하하..."


그 다음은 당연히 일사천리였다.


이미 사탄의 직인이 당당하게 찍힌 서류에 일필휘지로 사인을 하자, 계약서가 스스로 불타더니 사라져버리는 걸 보고,


"특별공채 신입 1호시네요, 축하드려요!"


마치 제 일인양 기뻐하는 악마녀가 물개박수와 함께 최고급 정장을 허공에서 꺼내 입혀주었다.


옛말에 옷이 날개라더니, 괜찮은 옷 한 벌 입은 것만으로 벌써 뭔가 자세부터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팔이나 어깨를 만져보고 있는데, 악마녀가 대뜸 말했다.


"역시 사탄 님께서 눈여겨보신 인재라서 그런가, 근무복도 잘 어울리시네요?"


"네?"


내가 딱히 이름난 범죄자도 아니고, 뭔가 대단한 악행이라도 한 게 있었나 머리를 굴리던 찰나 악마녀의 설명이 돌아왔다.


"그, 아카? 에 쓰신 글을 읽으셨거든요.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과 사람을 살리는 금기 두 가지를 말하자..."


온갖 무단횡단과 담배꽁초 투척의 기억을 떠올리던 나는 짝 하고 박수를 쳤다.


"NTR이 정상 성욕이 되게 해달라고 말했던 거요?"


"그럼요! 이제부턴 세 개라면서 당황하던 램프의 요정을 보고 얼마나 놀라셨는걸요?"


"아니... 그게 뭐 별 거라고..."


뭔가 쑥스러워서 뒷머리를 긁적거렸는데도 악마녀가 보내는 존경의 눈빛은 사그라들줄 몰랐다.


"아뇨, 저희는 상상도 못한걸요! 아무튼 이제 정식으로 저희 지옥의 일꾼이 되셨는데, 첫 번째로 하실 악행은 뭔가요?"


어우, 저 뜨거운 기대의 눈길 좀 보소. 이글거리다 못해 녹아내리겠는데 아주?


수상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해가며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리자 악마녀의 동공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사흘 후


英 BBC "김정은 北 국방위원장 하룻밤 새 여성으로 성전환"


NYT "북 호위총국 사령관 김빨갱 상장 고사포로 처형돼"


가디언 "U2 정찰기로 김정은 사진 입수한 미국"


조선중앙테레비죤 "미제 파쑈 괴뢰도당들의 가증스러운 모략 책동 좌시하지 않을 것"


더 썬 "바이든 美 대통령, "TS녀도 가능" 발언에 전미 술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