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찬가의 작품이 보고 싶다.

자신이 창조된 존재란걸 알아차렸을 지라도, 신적인 존재인 작가가 이미 미래를 결정했을지라도 꿋꿋하게 맞서는 주인공이 보고 싶다.




 "오지마, 미친 놈아!!! 죽을려면 너 혼자 죽어, 널 따라가지 않으면 내가 죽을 날이 미루어질꺼야."


 "... 아니, 난 널 죽이기 위해 손을 내미는게 아니야.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너와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주고 받으며 주사위 게임이나하는 것이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고작 사천왕부터가 주인공인 너의 최종 스펙의 2배가 넘는다고. 이 6면체 주사위를 굴려 숫자 7이 나오는게 더 현실성 있겠다!"


 "7이 나오면 되는거냐?"


 나는 주사위를 던져 공중에서 일도 양단을 하였다. 두 조각의 주사위는 모두 위를 바라보았고 그 합은 당연히 7.


 "너도 알고 있겠지만 1의 뒤에는 6, 2의 뒤에는 5, 3의 뒤에는 4가 있다. 즉, 이 방법이라면 무조건 7이 나오게 된다. 모두가 7이 나오는걸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주 간단한 해법이 있는 셈이지."


 "무슨 헛소리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딴건 어거지잖아."


 "어거지다. 숫자 7이 안 나오면 무조건 지는 상황이 말이지.

세계는 불합리하잖아? 자기는 편하게 있으면서 남들은 숫자 7이 안 나오면 죽는다고 강요하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나도 불합리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지."


 "그딴게 통할리가 있을거라고 생각해?"


 "난 오히려 안심했다. 우리가 소설 속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란게 밝혀져서. 신조차 인간, 완벽하지 않아. 철옹성 같은 룰에도 반드시 허점을 있을터."


 "..."


 "난 말이지. 이 모든 일상이 누군가의 소설에 불과하다해도 행복해. 내가 태어난게 누군가에 의해서라는게 밝혀져도 그게 그 누군가에게 내 목숨을 바쳐야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어. 너는 그렇지 않은거냐?"


 "그건 아니지만... 이길 수 없다고."


 "세상에는 두 극단의 존재들이 있다. 하나는 전능한 자리에 올라서 지 멋대로 룰을 만들며 그 자신은 무조건 6이 나오게하지만 남들에겐 6면체 주사위만 던져주어 무조건적인 패배를 강요하는 놈들, 

마왕, 세계, 신 뭐 이 따위 놈들이 되겠지. 

구체적인 이름 따윈 내 알바 아니야."


 "내가 이름을 알고 싶은 건 나머지 극단. 이 사람들은 앞의 놈들하곤 달리 능력은 쥐뿔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싸워,

그렇지 않으면 빼앗길 뿐이니까. 

그래도 승산은 있다.

내가 했던거처럼 주사위를 일도양단하고, 눈을 조작하고, 8면체, 20면체 주사위를 반입해 자신이 만든 불합리한 룰에 심취해 자만심에 빠져 있는 놈들에게 일격을 먹일 수 있으니까.

그걸 시도하고 해내는 사람들,

그 명단 속에 너의 이름은 있어?"


 "..."


 "아직 주사위는 돌고 있어. 적은 전능할지는 모르지만 전지하지는 않아. 선택지는 둘, 여기서 움클여 죽거나 아니면 어거지를 써서 판을 엎거나."




 단순한 열혈 주인공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포석하고 준비하는 주인공이 보고 싶다.




 "전 마왕군 사천왕의 일각 우방의 뫼비우스라고 하는 자입니다."

 녀석은 사천왕의 일각, 뫼비우스, 어느 시시한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적이다.

능력은 무한회귀. 어떠한 조건을 충족시키면 무한히 돌아올 수 있지만 그 조건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리고 역시 '소설 속' 내용대로 찾아왔다.


 "그렇구나. 그런데 왜 마왕에게 배신당해서 죽었냐?"


 "!! 무슨."


 "왜 그러지? 이상한가? 너만이 회귀 능력자가 아니란 사실이."


  "소설에선 네 놈은 그 딴 능력을 얻은 적 따위는..."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너도 그 능력을 얻은 적 따위는 소설에 안 나와. 세상은 소설이 아니야, 개연성이란게 있다. 어째서 너가 아니라 마왕이 마왕이지?"


 "그건..."


 "마왕이 네 회귀를 틀어막을 수단을 가지고 있으니 그렇겠지. 이 내용 따윈 소설의 어디에서도 나온 적이 없어."


 "마찬가지다. 나 또한 소설에서 언급된 능력만 가지고 있으란 법이 없지. 아니 안 가지고 있는 쪽이 개연성이 이상하잖아. 왜 넌 너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거지?"


"그야 소설 속에..."


"그럼 그 소설 속의 등장인물, 네 놈이 죽인건 누구지?"


"!! 진짜 마왕님이?"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그렇다면 잘 생각해봐라, 네 놈이 마왕에게 죽은거라면 마왕은 분명히 네 놈의 회귀를 막은 후 죽였을 것이다. 넌 회귀가 막혔는데 어떻게 지금 여기에 있는거지?"


 "당연히 너가 아니라 '내가 회귀했으니까'이다. 증거를 보여주마. 곧 야구공 하나가 우리 사이를 가로지를 것이다."


 하나부터 끝까지 '당연히' 블러프이다. 그런 편의주의적 전개 따위는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신호를 주자 '계획대로' 공 하나가 우리 사이에 떨어졌다.


 "이딴건 난 몰라..."


 "하하하, 네 능력도 완벽하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그래서 어쩔꺼냐? 여기서 날 죽이고 마왕에게 살해되는 운명을 반복할꺼냐?"


 "그런데 마왕은 어떤 수단으로 날 죽인겁니까?"


 걸.렸.다.


 "알고 싶으냐?"


 계획대로 시간을 끌자 야구공을 주우러 온 다른 학생들이 우리를 발견했다. 날 죽이지도 못 하는 상황에선 시간을 더 끌어봤자 손해는 명백.


 "다시 오도록하죠. 그 때는 다과를 챙겨올테니 마음 편히 먹으셔도 됩니다."


 계획대로

녀석에게서 마왕에 대한 불신감을 심어주고 있지도 않은 거래 수단으로 원하는 정보랑 교환할 수 있게 판을 깔았다.

앞으로 2번 정도는 이렇게 넘어가주지. 

그 다음이 네 놈의 최후다.



 때론 승산이 없을 것 같아 흔들리면서도 자신을 다 잡는 주인공이 보고 싶다.



 피아노 소리가 나의 귀를 강타했다.

조금이라도 다른 곳이 아프면 지금의 걱정에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자해한 것이다.


 효과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연주한 것은 내가 진실을 알기전에 연주했던 애창곡.

어쩌면 내가 진실을 몰랐다면 한가하게 피아노로 이 곡을 연주하고 있지 않았을까해서 친 곡이다.

이유 따윈 시시하다. 그냥 내가 젤 좋아하는 곡을 치고 있을 나 자신이 부러워서 나도 연주한 것이다.


 잔잔한 선율이 흐르자 나의 일상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와 검을 같이 수련했던 소꿉친구, 아카데미에서 보드게임이나 하곤했던 동아리 친구, 그 아카데미에 입학하자 뛸듯이 기뻐해준 부모님까지...


 그 사이에 선율이 바뀌어 무거워졌다.

그리고 나를 상기시킨 불합리한 현실들. 내가 지키기 위해 지키지 못 했던 것들이 생각난다. 결국 바꿀 수 없었던 스승님의 죽음과 아직까지도 따라잡지 못한 사천왕들,

아무것도 모르는 마왕과 그 힘까지.


 나의 머릿속을 특히 괴롭혔던 건 앞으로 잃을 것들.

몇번을 다시 저울질해도 바뀌지가 않는다. 승산은 처음부터 0, 상황을 몇번이나 반전시키고 소설에서의 나보다도 강해졌지만 아직도 0이다.

 난... 희생했던 사람들은 결국 뭐가 되는거지.


 '무의미한 활자 뭉치'


 "아니야!!!!"


 곡 또한 하이라이트 부분으로 접어들었다.


 "난, 우리는, 살아있다. 피가 흐르고, 감정이 있고, 때론 이기적일지 모르지만 때로는 남을 돕기도 한다. 그 모든건

어찌 되어도 상관없는 무의미한 활자 따위가 아니다.


 아니 착각하지 말아라, 신. 네 놈이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을 시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틀렸다.


 네 놈이 좌우할 수 있는건 눈꼽만큼도 남겨두지 않겠다.

우린 우리의 의지대로 이 곳에 서 있다. 네 놈이 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쟁취할 거다. 네 놈이 허락하지 않은 미래를."




 신에게 버림받았단 것을 깨달은 성녀가 자신은 이 만들어진

세계에서 거짓된 신이나 믿고 있는 광대였나 자괴하고 있을 때 다독이는 주인공이 보고 싶다.



 "전, 도대체 뭐였던거죠? 제 인생은, 신님이 만들어낸 가공의 신이나 믿고, 진짜 신님은 절 죽일 생각이라고요."


 "맞아. 아무것도 아니다. 너의 인생따윈."


 "..."


 "그저 맹목적으로 신한테 충성을 바치며 자신의 정체성을 본 적도 없는 신에게 몽땅 맡겼으니까."


 "그저 깡패나 간신배보다 못한 인생을 산거지. 적어도 깡패는 눈에 보이는 폭력을 간신배는 권력을 숭상하고 거기에 자신을 맡겼으니까."


 "그럼 저는..."


 "지금까진 그래왔지. 하지만 오늘은 어제에 의해 결정되지도 벌어지지 않은 미래에 의해 결정되지도 않아. 설사 신이 어제까지의 날 지배했더라도 그리고 미래의 날 지배한다할지라도, 지금이 남아있어.


 지금은 어떠한 순간 따위가 아니야. 미래의 어떠한 순간도 언젠간 지금이 될 것이고 과거의 어떠한 순간도 한 때는 지금이었지, 

신님이 그렇게 대단하다 하지만 봐라 결국 뭘 지배하는거지?


 넌 너가 되어라. 순수히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라. 너 스스로의 판단하에 움직인다면 그건 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


 "전 신님의 뜻에 따르는 성녀입니다! 이때까지 그 것밖에 할 수 없었는데 어떻게."


 "허나 그 뜻에 어떻게 따를지는, 아니 처음부터 그 뜻을 따를지말지의 유무는 너가 정했다. 안 따르고 싶었다면 성녀를 그만두면 되지 않는가?

처음부터 너는 너의 주인이였다. 거기서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라."


 "그래도 이제 만회할 시간따위는 없지 않습니까. 무한한 신님은 저희들의 죽음을 약속했습니다."


 "아이들의 의무는 그 부모를 골탕먹이는 것."


 "지금와서 성경의 그 구절이 무슨 상관입니까? 어차피 신님이 만들어낸 신님의 성경인데."


 "골탕먹인단건 부모의 예상을 뛰어넘어 생각하지도 못한 미래를 실현시키는 것. 어느 맥락에선 뛰어넘는단 말이기도 하지. 이게 의무란 것이 무슨 뜻일까?"


 "부모를 뛰어넘어라? 그걸 할 수 없게끔 아이들을 가두지 마라?"


 "그건 부모에게하는 말이다. 우린 신의 아이들이라며? 아이들은 뭘 하면 안 되지?"


 "...부모에게 굴복하지 마라?!"


 "그래, 맞아. 처음부터 이상했어. 성경에선 우린 신님의 아이들이라면서 신님에게 복종해라 말하면서 왜 그런 구절이 있는걸까?"


 "처음부터 신님도 원했던거다. 자신이 내린 운명에 굴복하지 않기를."



 소설 속에 빙의한다거나 내가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란건 따지고 보면 존나 암울한 세계관인데 조명해주는 작품이 너무 없다.

 캐빨물이랍시고 틀에 박힌 여캐가 주인공에게 아양떠는게 아니라 주인공이 주인공답게 주인공의 매력으로 소설에 몰입시켜주는 작품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