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13은 기존 삼국지 시리즈와는 조금 다르게(확실하지 않음)

내가 직접 이야기 속 인물이 되서 플레이하는 스타일의 게임임


이 게임은 자기 캐릭터를 만들어서 역사에 넣고, 플레이 할 수 있는데

너무 사기캐를 만들면 스토리가 너무 이고깽스러워지는 것도 있어서

나는 역사 이벤트(도원결의, 황건적 평정, 손견 암살, 삼고초려, 출사표 등)가 원래대로 흘러가는 삼국지 속의

소시민적 인물의 일생을 그리고 싶었음


그래서 적당히 구린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서

184 황건적 토벌이 시작되는 해에, 동탁 휘하의 지방 도시의 관리로 시작했음


막상 그렇게 시작하니까 스탯이 구리니 전투에는 안불려가고

맨날 도시에 남아서 시장 관리하라, 얘들 민심 챙겨줘라 잡무만 하루 왼종일 하길 몇 년

어느 날 보니까 갑자기 도시에





이렇게 생긴 동백이라는 여자애가 임관해 있더라

미디어로 삼국지를 알음알음 접해봤으니까 삼국지를 어느 정도는 아는데,

듣도 보도 못한 애라 그냥 일종의 씹덕 서비스 캐릭이라고 생각했다


역사 이벤트에 관련도 없고, 일러스트는 예쁘니까 얘랑 결혼 한 번 해볼까? 생각이 들어서 작업을 꽤 쳤음

(삼국지 13에는 서로 다른 성별의 무장에게 청혼하는 시스템이 있다)

계속해서 대화 나누고, 예쁜 거 좋아한다길래 갖다주고 한 반년을 계속 대쉬해서 마침내 결혼까지 갔음


금슬좋게 결혼하자마자 임신시키고, 지방이지만 일 열심히 한다고 공적이 쌓여서 시골 도시의 태수까지 됐음

워낙 깡촌이라 이민족이나 도적이 갑자기 습격하지 않는 이상 싸울 일도 없고,

전투 능력치가 워낙 낮은 탓에 굳이 최전선까지 나를 징병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아 이번 생은 이래저래 평탄하게 굴러가겠구나 싶었음


근데 여기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메데타시 메데타시하고 끝났다면

장챈에 썰 풀러 왔다는 하기에는 좀 모자르겠지?


삼국지13 에는 조건이 맞는다면 자동으로 발동하는 역사 이벤트가 존재하며

192년 3월 도내최고미녀 초선이 여포와 동탁을 이간질해서 동탁을 몰락시키는 이벤트가 발생한다

이 이벤트에서는 기존 동탁 세력 내의 동탁 일가가 다같이 처형되는데

동백 얘는 사실 동탁의 손녀딸이라 그대로 처형됨..





결국 나는 신혼에, 곧 출산을 앞둔 만삭의 아내를 저장하지 못했음..



세이브/로드가 가능한 게임이긴 하지만, 그렇게 플레이 하는건 나한테 의미가 없었고

나는 이번 생에 흥미가 확 식어버렸고

자살하기 위해 내가 태수로 있는 도시에서 이름뿐인 반란을 일으켜, 실패해 그대로 처형됨

그게 193년 3월, 임신중이었던 아내가 죽은지 딱 1년이 되는 때였음


새 게임을 시작할까 말까.. 고민하는 중에

공교롭게도 게임 시작하자마자 만든 세이브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184년, 황건적의 난이 시작되는 시대에 동탁 밑에서 말단 관리로 들어간 그 때의 세이브.


그리고 나는 주저없이 그 세이브를 불러 게임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동백을 살릴 방법을 고민하는 것


고민 끝에 동백이랑 최소 짱친 이상의 관계를 만들고,

관계 시스템을 이용해서 동탁이랑 절교하게 만든다면

시스템 구조상 동탁이 몰락해도 동백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백은 191년 1월에 15살이 되어 게임 내 역사에 등장하고, 192년 3월에 이벤트로 처형당하니

1년 2개월 안에 친구 이상이 되고, 동탁이랑 손절하도록 유도해야 했다

이전 생의 내가 도왔는지, 똑같이 결혼은 물론 임신까지 시키고, 동탁과의 손절까지 성공했음


동탁의 몰락이 가시화 된 192년 1월,

나는 임신중이던 아내의 손을 잡고 동탁을 배신하며 중원 반대편의 도시로 피난했음

이번 생에는 동탁 휘하에서 태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말단 관리로 일하면서 조금씩 쌓인 명성으로 지방 도시에 경력직으로 채용됐음

나는 지난번 생처럼 전투랑은 관련없는 관리직의 삶을 살겠구나 싶었는데...


근데 193년이 되고 뭔가 이상함을 느낌

동탁이 몰락하지 않고 오히려 천하의 절반을 먹음

조조는 동탁을 타도하겠다고 나서다가 쇠락해서 원소에게 흡수당하기 일보 직전까지 몰림

손책은 원소 땅을 먹겠다고 동탁과 손잡고 남은 천하의 절반을 먹는 중이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이벤트 조건이 안맞아서 동탁이 몰락하는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게 되고,

그 세력이 분열하지 않고 그대로 남는 바람에 중원 최강의 세력이 되어버린 것


난세에 휘날리던 영웅들이 연합해도 연의 속 동탁을 물리치지 못했는데,

삼삼오오 분열된 간웅들이 게임 속 동탁을 물리칠 수 있을리는 만무했고

결국 동탁의 마수가 내가 사는 도시까지 도달하는데는 몇 년이 채 걸리지 않았음


그 몇 년동안 점점 강성해지는 동탁의 세력을 막아보자고

사람도 구해보고 조언도 해보고 가끔 생기는 외교 특권도 써봤지만

내 낮은 능력치와 소시민적인 인맥은 무슨 일을 해내기에는 너무나도 모자랐음


결국 동탁이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덮쳤을 때,

전사, 부상, 회유 등을 이유로 나 말고는 싸울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음


도시의 태수는 나보고 도시 방어에 나가라고 명령함

도시 방어에 나선 내 앞에 서 있는건 무력수치 101짜리 마초였고

나는 일기토를 걸어온 마초에게 한 합만에 나가떨어져 사망함

그렇게 나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메인 메뉴로 되돌아가는 것을 선택함


메인 메뉴로 나와서 나는 고민해야 했음

내가 동백을 동탁군과 손절시켰기 때문에 동탁이 죽는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은 건가?

그렇다면 내가 동백을 데리고 나오는건 천하를 동탁에게 넘기는것과 사실상 같은 행위가 아닐까?

소시민의 연애담 vs 역사의 원래 흐름,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듦


하지만 플레이어인 나한테는, 이미 삼국지 속 "나"는

자신의 아내를 위해 184년의 말뚝에 자신의 개목줄을 걸어버린

어디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버렸기에 한 번쯤은 둘의 순애보를 보고 싶어졌음


처음은 어렵지만 두 번째는 쉽다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

포기하지 못한 나는 또 184년, 황건적의 난이 시작되는 시대에 동탁 밑에서 말단 관리로 들어간 그 때로 되돌아감

중간에 다른 도시로 전근 명령이 떨어졌지만 개의치 않고 공적을 쌓기 위해 최대한 노력함


191년에 동백이 등장하자마자 동탁한테 동백이 있는 도시로 근무지 이전 신청을 냈지만 반려됨

바로 동탁군에서 하야하고 동백이 있는 도시로 달려가 구애를 시작함

동백은 전 생을 기억을 못하니 백수찐따랑은 말도 섞지 않으려고 했고

이전 삶과는 다르게 친해지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음


192년 1월, 원래라면 동탁이 몰락하기 한 달 전

동백과 짱친이 되긴 했지만 이번에는 부부의 연을 맺는것 까지는 실패함

그래도 짱친이 되었기에 동탁군에서 동백을 빼내 올 수 있었음

그리고 이번에는 둘이서 조조한테 의탁했음


지난번에 원소한테 조조가 발렸다면서 왜 원소가 아니라 조조한테 갔냐면

이번에는 또 알 수 없는 이유로 내가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이벤트가 발생하면서

조조의 세력이 적당히 커졌기 때문이었음

역사가 또 이상하게 흘러간다면 조조세력에 몸담아 있어야 어떻게든 수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근데 갑자기 초선의 계략으로 동탁이 여포의 애비초즌 인성질에 죽어버리고

동탁의 세력은 오체분시 당하면서 역사가 본래의 흐름대로 흘러감

오히려 여기까지는 어쨌든 역사가 본래의 흐름을 찾았기에 개인적으로는 만족했음


그 후에도 본래 역사대로 유비, 여포, 조조의 우당탕탕 할리갈리를 지나

200년, 조조와 원소의 관도대전이 발발하면서 시대의 빅매치가 강제로 시작하게 됨

조조나 원소가 손가락 한개라도 더 빌려다 써야 하는 전세에

나랑 다르게 전투 능력치가 최악은 아니였던 동백은 조조군에 징집되어 전투에 나감


관도전투는 개쩌는 빅매치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상 한 달 만에 끝나는데,

하필 그 짧은 기간 막바지에 적에게 포로로 사로잡혀 그대로 처형되버림

이번에는 다섯살 짜리 전쟁놀이를 좋아하는 딸내미 하나를 남기고..


플레이어 캐릭터의 가족이나 친구가 살해당하면 그 실행자를 원수(怨讐)로 선언하는게 있는데

나는 그대로 원소를 원수관계로 선언하고, 원소를 멸망시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함

원래는 그럴 생각이 아니였는데, 이제는 역사적 흐름이고 뭐고 다 좆까고 원소놈을 죽이는게 제 1 목표가 됨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가 되면 올려주는 스탯과 스킬 때문에 친구를 사귀었으며

능력치가 부족하면 능력을 올려주는 아이템을 구매하고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여

외교특권을 구매하고

원래는 맺을 리 없는 조조-유비-손권의 삼자동맹을 체결함

이런 과정에 돈이 필요하면 공금을 횡령해서 자금을 마련함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소를 멸망시킨게 218년, 천하 지도를 다시 보니까

역사는 이미 어그러질대로 어그러져 이번에는 손권이 천하의 절반을 먹은 상태였음

내가 명목상으로나마 주군으로 모신 조조는 내가 강행한 토벌전 때문에 곧 손권한테 먹힐 처치가 됐고

어미가 죽을 때 다섯 살배기였던 딸래미는 조조군에 사관했다가 손권군에 붙잡혀서 그대로 전향함


조조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딸이 손권군에 있으니 면목이 없기도 하고 그래서

어지러진 내정만 정리해주고 조조군에서 하야하고 보니까

소지금이 딱 명마 한 마리 살 정도가 있더라

그 돈으로 딸 전쟁터에서 사로잡혀 죽지 말라고 명마 한 필 구해다가 주고

처음에 동백이랑 만났던 땅으로 다시 이사 가서 동네 사람들 도와주는걸 낙으로 살다가

동백도, 역사의 흐름도 무엇하나 지키지 못하고 노환으로 죽음


메인 메뉴로 돌아와서 생각난 건

두 번째는 쉽지만 세 번째는 더 쉽다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

그렇기에 나는 지금 황건적의 난이 시작되는 시대, 동탁의 말단 관리로 돌아갈지 고민 중이다

이번에는 동백이라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과몰입하면서 겜했는데 썰 풀만한곳 생각나는게 여기밖에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