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창작 채널

결국 AGS 부대의 생존자? 생존 기계는 CT 2199W 폴른이라는 개체 밖에 없었다.


소득은 연결체의 존재에 대한 확신. 그리고 연결체의 공격 수단.


철충의 함정에 빠져 지휘관 AGS가 초장거리 저격으로 일격에 파괴당하고 부대 내 혼란을 틈타 대부분 구성원이 철충에 감염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폴른의 전투력은 펍 헤드보다 높아,  T-2 브라우니 3기와 T-3 레프리콘 1기으로 구성된 바이오로이드 알보병 분대와 동등한 전력이라고 한다.


"얼마나 강한지 실감이 잘 안 간다."

"강화인간에 가깝다 해도, 바이오로이드는 결국 인체 기반. 진짜배기 기계 상대로는 감당하기 어렵단 거죠."


그렘린이 옆에서 보충 설명을 한다.


"폴른은 전고가 1m인데 반해 중량이 1톤에 가깝고 무장부터가 장갑차에 달 법한 30mm 구경의 기관포에요. 바이오로이드도 한 방 맞으면 한 방에 훅 갈 수 있죠."

"그리고?"

"21세기에 가장 많이 생산된 군사용 로봇으로 선정된 폴른. 그 대부분은 철충으로 전락했답니다."

"정면대결은 거의 무리라는 거로군."

"애초에 저희는 철충 본대와 맞닥뜨린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요."


그럼, 사실상 때가 되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망친다."

"......네?"

"왜, 뭐, 왜?"

"아니, 그게......인간님은, 도망치는 걸. 좀 더 구체적으로, 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인게 아니셨던가요?"


모든 바이오로이드가 당황해 하고 있었다.

뭘 그런 거 가지고.


"물론 싫다. 도망치는 것도, 지는 것도. 하지만, 굳이 위험한 도박을 해가면서까지 싸울 생각은 없어. 적어도 이 몸으로는."


근육증진제와 밀짚 년의 마이크로봇을 사용해 점차 몸에 살이 붙기 시작했다. 적어도 갈비뼈를 훤히 드러내던 이전과 비교하면 그나마 사람 구실 좀 하게 된 수준이다.


"투쟁과 전쟁은 달라. 만약 이게 놈과의 1 : 1 싸움이었다면. 이 몸이 되기 전의 나였다면, 바로 쳐들어 갔을 거다."

"......대체 그 몸이 되기 전의 넌 얼마나 강했다는 거야?"


금발 년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네년들과는 몸에 사용한 오리진 더스트의 양이 달라. 양산형들 따위와 같은 비교군으로 묶여 비교당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굴욕이다."

"하지만......인간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보다 더 많은 양의 오리진 더스트를 사용한 라비아타도, 그 녀석에게 당했어."


꼬맹이가 곰인형을 끌어안으며 말한다.


"LRL. 뭘 알고 있는 거니?"

"라비아타는......그 녀석을 '스토커'라고 불렀어."


메이드 년의 질문에 꼬맹이는 술술 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라비아타가 몰아 붙였어. 라비아타는 대검을 휘둘러, 철충을 깔끔하게 베는 게 가능할 정도로 강하니까."

"깔끔하게 벤다?"

"응. 절단면이 엄청 예리해서, 손가락 대면 베일 것처럼 보여."

"......호오."


삼안 놈들이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만든 홍보용 모델이라,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 생각했는데.


"아쉽군. 좀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녀석에게도 싸움을 걸러 갔을 텐데."

"무모한 소리 말게, 인간 공. 덴세츠는 괴짜들 집합소이니 재밌는 구경 했다며 넘어가 준 거지, 일반적인 회사였다면 바로 고소 안건이라고?"

"바보 같은 소리를. 권력도, 재력도 결국 '그런 것도 할 수 있나?' 라는 허상의 공포에 의존한 것. 물리적인 폭력은 모든 걸 압도한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놈들이 신고하든, 고소고발을 하든. 치안 담당의 공권력이 찾아와 가장 먼저 할 일은 놈들의 시체를 수습하는 것이었을 테지."

"......그건 뒷감당 생각 안 할 때 가능한 이야기 아닌가?"

"내가 그딴 거 신경쓰던 놈으로 보였나?"

"하긴. 그런 걸 신경쓰지 않는 남자이니 촬영 현장에 대뜸 난입한 거겠지."


이야기가 삼천포로 샜다. 메이드 년에게 턱짓하자 꼬맹이를 달래며 이야기를 재개시킨다.


"한참 싸워서 라비아타가 앞장 서 공격할 때, 갑자기 그 괴물이 나타났어."

"그래서?"

"그 괴물은......막 레이저를 쐈어. 라비아타도 처음엔 기습이라 한 방 맞았는데, 그 다음에는 조심해서 다 피했거든."


한 방 맞았지만, 그 다음은 조심해서 다 피했다.


견뎌낼 수 있는 만큼 튼튼한 건가, 아니면 팔다리 한짝 씩 날아가도 전투속행이 가능할 만큼 터프한 몸인가.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쨌든 라비아타가 다치는 바람에 더 공격도 못하고, 마리도 저격하려 해서......일단 후퇴하기로 한 거야. 난 등대로 가 있으라 했기에 얼른 온 거고."

"마리?"

"불굴의 마리. 스틸라인의 지휘관 개체에요."


조직의 우두머리를 포착할 수 있을 만큼의 지능이 있는 철충인가.


"부하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비겁하게 기습한 거겠지? 차라리 우리가 먼저 공격하러 가는 건 어때? 언제나 주변에 부하들이 우글우글 거릴 거 아니야."


금발 년이 제안해 왔다. 정찰용 병력을 보내 위치를 포착한다면 뭐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피하는 편이, 제일 현명한──.'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오르카호는 아직 도망칠 수 없어."

"뭐?"


포츈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동력부나 저장고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 지금으로서는 멀리도 못 가고, 깊이 잠수하는 것도 힘들어."

"그런데 놈은 아마 근처에 있을 거다, 라고?"

"아마도."


그럼 어쩔 수 없군.


"힘을 모아 한 방에 승부를 굳히는 타입이라고 봤다. 그럼 이쪽도 마찬가지로 가지."


이번 기회에 양산형들 대부분 갈아넣자. 똑같이 생긴 것들이 우글우글 거리고 있으면 콜사인을 따로 정한다 한들 지휘하는 것도 번거롭고.


"우선 정찰을 보내 위치를 특정한 후, 야습을 가해 전장을 마구 헤집는다. EMP 한두 발 정도는 남아 있지? 그리고 놈이 힘을 모으는 걸 방해해, 최대한 공격을 늦춘 뒤 이쪽에서 끝장을 가한다."

"연결체를 일격에 끝내려면 어지간한 화력으로는 무리일 거에요."

"지금 이 배에서 화력이 제일 강한 녀석은?"


폭격이 가능한 금발 년 뿐인가. 저 건방진 눈초리와 말투가 마음에 안 들지만......어쩔 수 없지.


녀석을 이번 작전에서 자폭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앞마당의 불안거리들을 단번에 정리하는 편이──.


"잠깐만요, 인간님. EMP야 한두 발 정도 더 쏠 수 있다지만, 이전과는 달리 무차별 폭격이 어려울 거에요. 스토커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바보 같은 하급 철충들 따위나 걸릴 함정에, 연결체가 걸릴 거라고는 도저히......"


EMP 투하 요원인 블랙 하운드가 난색을 표한다.


"하물며 야습이라니요. 가뜩이나 EMP를 터뜨려 아군 간의 통신에도 장해가 올 텐데. 거기서 폭격을 가한다면 대다수의 아군들이......"

"그래서 뭐? 싸우다 죽는 게 너희의 존재의의 아니냐?"

"......"


무혈의, 완전승리 따위는 관심없다. 쓸데없이 많은 양산형들 정리하는 것도 겸하는 작전이니까. 얼마나 죽어나가든, 오르카 호를 움직일 수 있게 될 때까지의 시간만 벌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폭격까지 갈 것 없습니다, 인간님. 제 포를 이용해 처리하는 게 가장 좋을 테니까요."

"너는......?"


거대한 포를 짊어진, 긴 분홍머리가 말문을 열었다.


"AA캐노니어 소속, AT-100 비스트헌터라고 합니다. 인간님도 제 157mm의 예거 캐논을 보니, 생각이 좀 달라지시지 않나요?"

"화력에 자신있는가 보지? 분홍머리."

"하하하......포병은 전장의 신이라고, 누군가 말했었죠. 제 예거 캐논은 현존하는 단포신 강선포 중에서는 최강의 위력을 자랑합니다."


탕탕 포신을 치며, 분홍머리가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이 거대한 포는 제 자부심 그 자체. 이만한 포를 자유로이 다룰 근력과 기술. 그걸로 저는 전쟁의 여신, 장갑병의 공포, 전장의 사냥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포가 으르렁거리고 있는데요......이번에도 활약할 차례, 라고."


자신만만한 건 좋다. 그건 좋은데.


"밤눈은 쓸만하나?"

"......백주대낮에 싸우면 안 될까요?"

"백주대낮에 싸우면 쟤들이 널 먼저 찾아 찢어죽일걸? 어둠 속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건 이쪽이야."


폭격에서 강선포 한 방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그건 좋다. 폭격으로 소모하는 미사일들이 워낙 많아야지.


하지만, 여전히 그 야습의 혼란 속에서 스토커란 놈의 위치를 포착할 방법은 없다.


아깝긴 해도, 안전빵으로 폭격을 가해 일대 째로 갈아엎어버리는 게 제일 확실한데.


"내, 내가......할게!"

"등대지기 꼬마, 네가 말이냐?"


꼬마는 제 안대를 가리키며 말한다.


"내 빛으로......녀석을 비출 수 있어! 난 그 녀석이 어떻게 생긴지도 아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하다가 뭔가 복받쳐 올랐는지, 녀석은 울먹이며 히끅거리기 시작했다.


"나, 아...도, 활약케, 해줘...버리지, 말아줘...나도, 하려고 하면, 할 수 있으니까..."


정신연령이 낮다 생각했는데, 아주 눈치가 없는 건 아닌 모양이군.


이번 작전을 통해 버릴 녀석들 중 하나로 선택하고 있었는데.


"그 경우, 스토커가 제일 먼저 널 노릴 수 있는데, 감당할 수 있겠나?"

"비, 비스트헌터......할 수 있지?"


남을 의지하기만 할 뿐인, 조금 독특한 재주가 있는 약자.

하지만, 의지하는 것조차 못하는 멍청한 고집쟁이 아니시다?


"물론. 이 포에 맹세코. 실패한다면, 난 내 긍지인 이 포를 스스로 부수고 자결하겠어.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인간님?"


스스로의 긍지마저 걸어가며 그 기대에 부응하고, 활약해 보이고자 하는 여자.


"너희들이 실패하면, 난 곧장 예의 폭격을 명령할 거다. 너희들의 실패를 예상하며, 미리 준비해 둘 거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망할 아버지 새끼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강함이란, 의지나 억지를 관철시키는 힘이라고.

그 외에 다른 수식어는 필요없노라고.


등대지기 꼬마도, 분홍머리 년도 자신의 의지와 억지를 피력해 오고 있다.


말이 허락을 바라는 거지, 노골적으로 명령하지 않으면 지들 멋대로 수행할 것들이라는 게, 눈에 훤히 보인다.


인류에게 헌신한다, 라는 대의명분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독단전행할 것이 뻔히 보인다.


마음을 비추는 창인 눈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니까.


"......흥, 어디 멋대로들 해봐라."

"진짜!?"


그리고 정말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난 그런 녀석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투쟁을, 향상을, 발전을. 노력에의 보답을, 성공의 성취를, 오늘 강해지기 위해 내일을 포기할 수 있음을.


"성공한다면, 등대지기 꼬마. 일전의 프린세스니, 드래곤 슬레이어니 멋대로 지껄여라. 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테니까. 그리고 분홍머리, 네년은?"

"포상에 관한 것이라면, 추후 따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기대치를 너무 올리면 내 실망도 그만큼 커질 것 같은데."

"그래야 제가 더 성공에 간절해지지 않겠습니까?"


내 밑에 있는 녀석들은 어째 한 마디도 그냥 지려 하는 녀석들이 없다.


그거 하나는 참 마음에 드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