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이야기인데 최근 떠올릴만한 계기가 생겨서 적어볼게.


대략 4년 전이었나? 여자 후배랑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방송에서 젊은 남자들이 육아 체험?(그냥 젊은 아빠였던가?) 하면서 우쭈쭈해주고 있는 예능이 나왔음. 나는 그걸 보면서 그냥 그렇구나-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자 후배가 빡쳐서 나한테 이렇게 말하더라.


"남자들이 나와서 육아 잠깐 하고서 육아 힘들다, 엄마 마음 알 것 같다 하는 거 존나 가증스럽다. 여자들은 그동안 그 힘든 육아를 해왔는데 아무런 보상도 못 받았는데 남자들 잠깐 나와서 육아 하는 척 하더니 우쭈쭈 받는 거 보면 토 나온다"


뭐, 이런 식으로 반응하데.

나는 이런 이야기 나올 때 진짜 어지간히 친하지 않으면 공감하는 척 하면서 아무 말 안하는 스타일인데 솔직히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음. 저런 방송이 많이 나오는게 여자, 특히 20대 여자들에게는 득이 아닌가? 하고.


어차피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20대 여자들이 육아로 고통받는 경우는 별로 없음. 무슨 검정고무신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애가 육아에 참여할 리도 없고, 20대에 애를 낳는 것도 비교적 드문 경우니까. 그 후배 본인도 자기가 육아에 참여해본 적도 없는데 이러는 게 조금 웃기기는 하지만, 하고 단서를 두더라. 즉, 실제 기성세대 여자들에 비해서 피해를 입은 바는 없음. 


반대로 나는 개인적으로 저런 육아방송이 퍼지면서 '남자들도 육아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는 것이 앞으로 애를 낳아서 육아를 하게 될 20대 여자들에게 이득이라고 본다. 아무튼 여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던 기성관념이 움직인다는 뜻 아니겠음?


그래서 솔직히 조금 당혹스럽고 그랬음. 자기가 실제로 피해받은 것도 없고, 오히려 저런 방송을 통해서 문제가 개선될 여지가 보이는데도 저렇게 분노해야할 이유가 뭘까? 하고. 여자들 특유의 공감능력 때문인가? 나는 좀 무던한 성격이라서 내 일이 아니면 개선해야한다고 문제의식을 가질 지언정 분노하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다.


몇 년 전 일인데 생각난 건, 최근 여동생이랑 넷플릭스로 아는 형님을 봐서 그래. 어쩌다가 게스트가 딸 키우는 화제가 나왔는데 강호동이 그걸 들으면서 육아하는 거 힘들지, 하면서 공감해주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걸 보고 여동생이,


"지랄. 지가 육아를 해본 것 처럼 말하네."


라고 비아냥거리는 거임.


외부인인 우리는 강호동이 실제로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 안했는지 모르잖아? 그런데 육아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단정지어서 말하더라고.

현실적으로 여자가 육아에 참여하는 비율이 남자보다 훨씬 높은 건 사실이지만, 아빠는 아빠대로 제 나름의 역할을 하는(여자보다는 작더라도) 경우가 많잖아? 그런데도 저렇게 냉소하는 걸 보면서 내 여동생이 어쩐지 엄청 멀게 느껴졌음. 여동생과 나름 친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도.


그래서 내가 느끼기로 일부 20대 여자들은 '육아'라는 개념과 '남자'라는 개념이 함께 있는 것도 싫고, 분리되어 있는 것도 싫다는 남자로서는 조금 가불기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실제 20대 여성들은 어떨까? 내 주변만 그런가? 아니면 많이들 그러는 걸까? 어쩌면 그냥 내 생각이 지나친 건가? 주변에 여자가 거의 없어서 가끔 이렇게 당혹스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