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이 

반즈, 너 왜 선실 가장자리에 이런 이상한 맛의 통조림을 놔둔 거야.

 

반즈

흠... 너 그거 먹은 거야?


 

카무이 

이건 카무라도 못 먹어.

멀리서 냄새를 맡았을 땐, 네 정비실이 독가스 공격을 받은 줄 알았다니까.

 

카무이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반즈의 정비실 쪽에서 들려왔다.

 

열린 정비실 문을 통해 반즈는 원래 캐비닛에 넣어두었던 통조림을 보았다.

 

약간 부풀어 오르고 낡아서 누렇게 변한 깡통이 모든 생각을 오랜 과거로 끌고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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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슬레이트와 철근이 폐허가 된 도시 안에 수북이 쌓여있었고, 대기 중의 자욱한 연기와 먼지가 이곳을 짓누르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구멍이 이곳이 전쟁으로 어떻게 황폐해졌는지 알려줬다.

 

기름은 지형을 따라 조용히 흘러 길의 구멍을 채웠고, 마침내 거리의 움푹 팬 곳에 모여들었다.

 

군화 한 켤레가 움푹 팬 곳에 발을 들여놓자 엔진오일 표면에 검은 물결이 일었다.

 

엔진오일 속에 빠진 로봇팔에 물결이 부딪히고 잔물결이 닿는 순간 이 로봇팔은 마치 어떤 신호를 받은 듯 고요함에서 깨어났다.

 

미친 듯이 경련을 일으키며 주변의 잔해 위에 손을 얹고, 폐허 아래에 굳게 깔린 자신의 부서진 몸을 반작용으로 끌어내려 했다.

 

결국 그 행동은 둔탁한 총성과 함께 끝났다.

 

? ? ? 

사실 남부 방어선의 모든 침식체는 청정의 백로가 총지휘관이었던 대규모 소탕작전에 다 빨려들어갈 거라 생각했어.

 

저격수들은 아직 열이 나는 소총을 어깨에 메고 앞의 움직이지 않는 침식체를 바라보았다.


 

? ? ? 

반즈, 내 쪽은 아직 찾고 있는 파일을 스캔할 수 없어. 네 쪽은 어때?


 

반즈 

하암.

 

? ? ?

야 너 왜 또 하품해. 제대로 일하고 있는 거지?

 

반즈

음... 네, 네...

 

? ? ?

반즈, 반즈?

정말이지, 또 잠이 들었군.

됐다, 그럼 내가 먼저....

 

반즈 

텔로... 지금 엎드리는 게 좋을 거야.

 

고요한 통신 채널의 소리가 갑자기 울리자 텔로라는 구조체는 전술적으로 순식간에 옆으로 굴렀고, 텔로가 구른 뒤 그의 귓가에서 격렬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커다란 침식체가 공격하는 소리였다. 이 침식체는 텔로 앞에 갑자기 나타났고, 몸통에서 벽돌과 작은 침식체의 잔해가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텔로가 총을 들고 커다란 침식체를 노리자, 아까 텔로가 서 있던 자리에 은빛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이어 붕괴가 발생해 침식체의 팔에서 시작해 팔을 따라 몸으로 계속 이어졌고, 기계적 관절이 무너지면서 산산이 부서져 파편으로 변해 기름이 쌓인 구멍에 흩어졌다.

 

결국 부러진 전자뇌를 뚫고 은빛 빛이 어깨를 으쓱했고, 충격의 관성으로 인해 몸이 뒤로 넘어져 기계 부품이 떨어졌다.

 

반즈

하암- 끝났어. 자야지.

 

텔로는 일어나서 뒤를 돌아보니 반즈가 저 멀리 폐허의 엄청 높은 곳에서 기지개를 켜며 나른하게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텔로 

야, 야야, 갑자기 잠들지 마, 우리는 아직 임무 수행 중이라고!

 

반즈 

괜찮아, 아까 그게 마지막이었어....

 

텔로

허, 어느 틈에.

 

반즈

으음, 네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서류를 찾고 있을 때.

움직이지 않고 적을 스캔하고 죽이는 건, 매우 편해...

 

텔로

알았어, 알았어.

 

텔로는 한숨을 내쉰 뒤 건물 앞을 넘어 폐허 속을 계속 뒤졌다.

 

텔로 

그나저나 이곳의 도시 폐허는 정말 조용하구나.

...

반즈, 너는 왜 돌격매 소대에 들어왔어?

아, 그냥 아무렇게나 하는 잡담이야. 네가 깨어 있는 건 드문일이니까. 전에 네가 졸고있는 걸 봤을 때는 미안해서 말을 걸기가 힘들었거든.

 

반즈

...

 

텔로

...

야...또 자냐?

 

반즈 

어떤 이상한 인연 때문에. 어느새 이렇게 됐네.

 

갑자기 통신 채널에서 들린 목소리 때문인지, 예상 밖의 답변을 들었기때문인지, 폐허의 벽을 타고 올라가던 텔로의 발이 미끄러지려 할 때, 그의 발에서 엔진 작동음이 들리고, 하얀 빛이 그의 발밑에서 나더니 텔로는 공중에 그대로 멈춰 섰다.

 

텔로 

휴, 깜짝 놀랐네.

 

텔로는 자유로운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은 후 매달린 발을 뒤로 젖히고 다시 부서진 벽의 단단한 부분을 밟고 자세를 안정시키며 올라가는 동작을 계속했다.

 

텔로 

인연이라, 정말 좋은 일이군.

나는 정찰병은 정면에 별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들어왔어.

역시 너희들 돌격매 같은 정예 소대와는 비교가 안 되네.

 

반즈

음... 어, 우리가 정예였나?

 

텔로

그럼. 정찰 소대 중에 돌격매 소대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반즈

하지만 정예 소대에는 일반적으로 있지 않나.. 뭐라고 하더라......흠...인간 지휘관?

 

텔로 

그것은 평범한 정예 소대고 너도 너희 대장이 누군지 알잖아.

특화형 역원장치를 장착해 부대 내 지휘관의 책임을 지는 완벽한 구조체 크롬이잖아.

아 참, 대장뿐만 아니라 돌격매의 대원들도 모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정예지. 돌격매가 참여하는 임무는 실패가 거의 없으니까.

 

반즈 

그런가.... 나는 대장과 카무이가 특이하다고 느꼈을 뿐인데.

 

텔로 

반즈 넌 그런 걸 신경 쓰진 않지만, 난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

나는 뛰어난 전투력이 없어.

빨리 달리고 입이 험한 게 유일한 장점일지도 몰라. 그래서 니콜라 사령관이 이 임무를 나에게 준 걸지도 몰라.

솔직히 말해서, 나는 침식체들과 싸우는 것이 두렵지 않지만, 할 수만 있다면 여전히 그들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지는 않아.

그래서 아까의 일이 많이 고마웠어.

 

반즈 

아니, 괜찮은데.

 

텔로 

하하, 부끄러워할 필요 없잖아. 진심 어린 고마움이야. 담담히 받아줬으면 좋겠어.

 

텔로는 모든 이야기를 나누며 부서진 벽의 꼭대기로 올라갔고, 그 덕분에 아래의 넓은 지역을 스캔할 수 있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땅 위의 침식체와 인간의 유해가 쌓인 것이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비극적인 전투가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잠시의 침묵 끝에 텔로는 고개를 숙이고 부서진 벽에서 뛰어내리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텔로

역시... 면역 시대에 잃어버린 도시다.

솔직히 내 눈앞에 있는 이 장면이 내가 감히 전장에 정면으로 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해...

군인들이 목숨을 바쳐 얻어낸 것이 고작 전멸의 대 퇴각뿐이라니 웃기지도 않아.

하지만 명령을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니까.

하지만 이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어.

 

반즈

때로는, 답을 찾으려 하는 게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걸지도...

 

텔로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관자놀이의 위치를 톡톡 두드리자 눈 앞에 형광 패널이 튀어나왔다.

 

텔로

이 지역에서도 못 찾았네.

반즈,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전쟁이 언제 끝날 거라 생각해?

 

반즈

흠...모르겠어.

 

텔로

야, 전쟁터에서 한 사람이 죽으면 영웅이고, 열사람이 죽으면 순교자이고, 백만 명이 죽으면 숫자에 불과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희생했는데.

완전히 승리해 인류를 지구로 되돌려 놓아야만 비로소 소명을 다한 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반즈

...잘 모르겠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꿈을 꿨어.

성화는 미약한 빛에서 전 세계를 휩쓰는 변혁으로 번졌어.

결국 그 불꽃은 지구 전체에 불을 붙였으나, 타면서 점차 희미해졌어...

침식체를 상대로 일시적인 승리를 거둔다 해도 퍼니싱의 위협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거야…

 

텔로

그냥 꿈일 뿐이야.

 

반즈

꿈뿐만이 아니야...

퍼니싱이 이미 우리를 여러 번 놀라게 했어.

인류가 수백만 년 동안 지표면에 자신의 문명을 세운 것처럼 말이야.

퍼니싱은 또한 나름의 방식으로 이 땅에 적응하면서 감염시키고 있어.

그것을 뿌리 뽑을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환경과 시간과 같은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언젠가 퍼니싱은 우리의 인식을 초월한 존재로 변해버릴 지도 몰라.

 

텔로

그런가... 그래도 아직 그렇겐 되지 않았잖아?

미리 대비하는 것은 항상 옳지만, 그대로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어.

 

반즈

음... 그렇지.

 

통신 채널은 다시 잠잠해졌고, 텔로와 반즈의 의식의 바다에는 서로 다른 생각이 휘몰아쳤다. 침묵이 주가 된 지금, 두 사람은 이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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