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친구여


하하...상상으로 친구를 만들어 내다니, 내가 드디어 미친건가?

하지만 난 너를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어, 적어도 내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야.

어찌 되었건, 넌 내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거잖아? 내가 내 자신을 배신한다니, 있을 수 없는 얘기지.


결국, 이 얘기는 '너'에게 밖에 할 수 없단 소리지.

난 이미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멍청하게 보이겠지만, 그래도 내 얘기를 좀 들어줘.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진상을... 오늘 이후로는 이 건에 대한 모든 기록이 말소될 지도 몰라.

지금까지 있던 상식이 송두리째 뒤바뀔 거야...

진정한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앞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날 거고...


내 얘기, 듣고 있어? 아니면...말도 안되는 소리로 치부하고 무시하고 있는 거야?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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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


지휘관

......


???

지휘관!!



세리카

정말...정기 회의 시간에 용케 숙면을 취하시네요.

물론 지휘관이 구룡 시내를 돌아다니며 악전고투 했다는 건 알지만...

혹시, 휴가가 필요하신가요?


지휘관

잠깐...그러고 보니...


세리카

무슨 일 있으세요?


지휘관

루시...아...는?



기억이 오버랩되며, 루시아가 등 뒤를 지켜주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거친 숨소리, 기체가 손상되며 입가에 튄 순환액의 맛, 과열된 기체의 온기.


눈 앞의 회의는 꿈인가? 난 아직도 싸우고 있고, 루시아는...



세리카

지휘관!!



세리카가 지휘관의 머리를 건드리는 감각은, 지휘관을 현실에 있는 회의장으로 되돌려 놓았다.



지휘관

미안, 잠시 멍때리고 있었네...


세리카

지휘관이 지금까지 제게 했던 변명 중에 가장 얄팍한 변명이네요.


핫산

세리카, 구룡의 전쟁영웅한테 너무 쏴대는 거 아니야?


세리카

저는 단지 피곤하면 좀 쉬라고 말하고 있는 거라구요!


핫산

확실히 우리 영웅 군이 요즘 연속 장기 근무가 많았지, 자네가 모범생이라고 너무 숙제를 많이 내줬나 보구만.

흐음, 좋아. 이 참에 내가 휴가를 좀 주지.

아니, 휴가를 쓰는 겸 여행이라도 어떤가? 지상에 안전구역이 다수 설치된 현재 상황이라면 시기도 적절해 보이는데?


세리카

의장님, 저는요!? 저도 요즘 연속 장기 근무 중인데!?


핫산

오! 자네도 좀 푹 쉬게나!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게 좀....


세리카

...뭐, 별로 기대도 안했어요.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일로 회의를 모집하신 거죠?


핫산

구룡 시의 재건을 감독할 인원이 필요해서 말이야. 

무명시와 K-44에 대한 부흥 지원도 해줘야 하고...

그리고 자네도 알다시피 지역 정보원을 수배해서 극정승원에 침투해서 정보수집도 해야하고, 또...



핫산의 말이 길어질 때마다 세리카의 표정은 점점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갔다... 



핫산

...어, 어쨌든 휴가를 갈 거면 마음 편하게 전부 처리한 뒤에 휴가를 내는게 좋지 않겠나, 세리카?


세리카

...잔업수당, 두배로 쳐주세요.


핫산

거래 성립이군, 콜.




핫산

다시 본제로 돌아와서, 휴가를 주긴 할텐데.

시내 수색을 마치고 복귀하는 팀과 같이 휴가를 사용하도록 하는 걸로 하지.


지휘관

그 말씀은...


핫산

구룡전에서 까마귀 소대와 돌격매를 도와준 협력자이지.

문제는 장소인데...




니콜라

다들 지휘관을 둘러싼 채로 무슨 이야기 중이지? 


세리카

핫산 의장님이 구룡 경비 수색을 마치고 돌아온 부대와 구룡전에 있던 소대들에게 휴가를 주는게 어떻겠냐고 해서요.

괜찮은 장소가 있나 물색중이였어요.


니콜라

오, 그런 거라면 마침 괜찮은 장소가 있긴 한데.


핫산, 세리카

엥?


니콜라

카리브 해 D구역, 거긴 예전에도 유명한 관광 명소였다고 하더군. 

해변도 훌륭하고, 지금은 관광객도 없으니 한적해서 휴가를 보내기 제격일 거야.


세리카

하지만 그 지역은 주둔지가 남아있지 않나요?


니콜라

거기야 애초에 퍼니싱 농도가 낮은 편이니, 게다가 그 주둔지도 안전 확보 차원에서 남겨져 있는 거야.

지금 다른 안전구에 갔다간, 재건 부대에 방해만 될걸?


핫산

...흠, 니콜라 말도 일리가 있군.


세리카

의장님...


핫산

내 생각도 D구역이 괜찮다고 보내. 거긴 황금시대에 세계 정부 통합 프로젝트의 중심지였거든.

퍼니싱 바이러스가 퍼지기 이전 면역 시설은 전부 거기에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지휘관

알겠습니다.


세리카

하아...부럽다아. 저도 모두랑 같이 바다에 가고 싶어요.

하지만 모처럼이니 이번 기회에 멤버들 끼리 가서 팀워크를 다지는 것도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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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

...무슨 일이신가요, 지휘관?


지휘관

아, 아무것도 아니야.


루시아

'아무것도 아닌' 얼굴이 아닌데요?



결국 휴가 얘기를 루시아에게 꺼냈다.



루시아

휴가라...좋네요! 모두를 다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에요.


지휘관

그러게.


루시아

잠시 생각 좀 해볼게요, 음...리브와 리랑...아이라랑... 


지휘관

다른 애들 한테도 알려줄까?


루시아

네! 그렇게 해요!



루시아는 지휘관의 손을 잡은 채로 달려나갔다.


루시아

(내 행동은 본능에 근거한 걸까? 아니면 기억일까. 지휘관이 내게 이렇게 해주길 의식하며 바라는 건가?

...아냐, 나는 나야. 까마귀 소대 대장 루시아, 무슨 일이 있어도 지휘관의 옆에 있을 거야. 이것만은 변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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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산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꿍꿍이냐.


니콜라

뭐야, 이제와서?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결과는 너도 바라는 대로 된거 아닌가?


핫산

너가 호의로 단순하게 휴가를 보낼 곳을 추천해줬다고? 차라리 퍼니싱 바이러스가 소멸됐다는 말을 믿고 말지.

그래서 뭐냐, 루시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은 건가?


니콜라

...데이터를 추가해서 전투 성능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데 굳이? 뭐, 별 문제는 없겠지만.


핫산

그럼 왜 D구인가?


니콜라

보고 있으면 알게 될걸세.


핫산

...휴가 연장 허가서를 준비해 둬야겠구만. 

그건 그렇고, 케로베로스 소대에게 뭘 지시해 놓은 거지? 

공중정원의 모니터링 시스템에서 사라져있더군.


니콜라

대답해줄 의무야 있지만, 지금 대답할 필요는 없군.


핫산

일단 알겠네만...흠, 나중에 아시모프를 통해서 지휘관에게 '그걸' 전달해 둬야겠군.


니콜라

뭐라고!?


핫산

네놈 계획이 뭔진 모르지만, 작전 성공률을 높이려면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 사막 위를, 3개의 인영이 걷고 있었다.


???

저기, 어째서 전선기지에서부터 이런 생고생을 하며 걸어다녀야 하는데?


???

그거야 망각자 놈들이랑 사이가 안좋으니 그런 거 아니겠냐. 차도 안 빌려줄 줄이야.

공중 정원에 얘기 해봐야 안 타니만 못한 접이식 차나 컨테이너로 투하해 주겠지.



베라

아가리 닥쳐. 한번만 더 쫑알거리면 분해해서 작전 구역에 끌고 갈거야.


녹티

야, 들었냐. 조용히 하시란다.


21호

시끄러워.



녹티는 현란하게 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