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약할 빠엔 죽고 말지. (1)







메타트론.


일명 ‘하늘의 서기관’.


<에덴>을 비운 메시아를 이은 2인자로써, 모든 선(善)을 대표한다는 것에 <스타 스트림>에서는 그 누구보다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성좌이다.


[저기 ‘설화급’ 수장님 지나가시네.]


[하다 하다 성운을 책임지는 성좌가 설화급인 건 처음 보는 거 같군.]


[내 말이. 하하하!]


물론, 그 유명세가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하진 않았다. 이 세계관에서의 메타트론은 그저 ‘설화급’에 불과했으니깐.


[저 미친 ■들이 뭐라고 우리 서기관님께...]


[전 괜찮습니다, 카마엘.]


메타트론은 칼을 꺼내려던 카마엘을 겨우 말려내었다.


[정말로 괜찮으신 거예요, 서기관님? 아무리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가브리엘. 제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인데 어쩔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괜찮을 리는 없지만…


후, 하고 한숨을 쉰 메타트론은 자신과 함께 다니고 있던 대천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자신이 욕보일 때 선뜻 나서 지켜주려는 대천사들이 함께 해주는 게 어딘가.


오히려 메타트론은 이런 선한 대천사들에게 많은 걸 못해주는 것이 더욱 미안할 따름이었다.


‘메시아께서 떠나지만 않으셨더라도...’


메타트론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에덴>은 그 높다던 강(强)의 위치에 도달 했을 만큼 장엄하고도 장엄했다.


어느 날, ‘그’가 <에덴>의 수장 자리를 내려놓기 전까지는.


- 정말 그러셔야 하는 겁니까?


메타트론의 물음에 그는 저 먼 <스타 스트림>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자신의 자리가 그곳이라는 것처럼.


- 모든 것은 유(有)에서 무(無)로 돌아간다.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 말이다. 이제는 나도 모든 것을 얻기도 하였으니,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곳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지.


- 제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말입니다.


- 그렇겠지. 하지만 넌 이제 이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곧, 나의 뒤를 이을 것이니.


메시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메타트론에게 있어서 충격이었다. 이제 막 위인급 성좌의 자리에 오른 그가 무슨 성운을 관리할 수 있겠는가?


- 자...잠시만요!


일방적인 통보에 반대하려고 했던 메타트론이었지만, 메시아는 자신의 설화를 메타트론에게 전달해주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메시아’라는 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처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뒤를 돌아보자, 수많은 천사들이 메타트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메타트론의 앞에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 ...<에덴>의 새로운 서기관을 뵙습니다.


그날 이후로 메타트론은 ‘하늘의 서기관’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신화급’ 서열에 오르고 <에덴>을 총책임 지을 성좌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강한 힘에는 수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이 있듯이, 주변 성운들은 그런 메타트론을 가만히 둘 일이 없었다.


- 서기관님! <올림포스>에서······!


- 이번에는 <베다>입니다!


- <아스가르드>에서 내놓은 협의안은······


- 자...잠시만요, 여러분…


한 곳의 홍수를 막으니, 다른 곳에서는 지진이 일어났고, 또 그 지진을 막으니 그 다음에는 운석이 충돌하였다.


이 모든 것을 메시아는 스스로 해결해 나갔었다는 건데…


새로 부임한 우리 <에덴>의 수장님은 그 모든 것을 처리할 시간과 경험이 부족했을 뿐. 그가 실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얼굴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메시아님...’


분명 자신을 믿고 <에덴>을 맡겼을 텐데…


심지어 오늘은 <올림포스>의 당부를 듣고 오는 길이었다.


- ‘흉포의 군신’이 이번 관리를 맡아주실 겁니다. 성격이 오락가락하는 이니깐,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신경을 잘 써주셔야 할 겁니다.


메타트론도 분명 한 성운을 책임지는 이다. 그러니 <올림포스>에게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도 정도가 있었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그저 <올림포스>와 <에덴>의 차이는 분명했으니,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메타트론이었다.


[하아...]


[힘내세요, 서기관님. 에덴에는 도착 했…]


메타트론을 걱정하고 있던 가브리엘이 말끝을 흐리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야, 라파엘. 저거 미카엘 아니냐?]


[맞음.]


가브리엘은 다시 한번 눈을 씻고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그녀의 의문을 해결해 준 것은 카마엘이었다.


[오. 아레스다. 아까 올림포스 들릴 때 동상에서 본 적 있어.]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메타트론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미카엘은 설화급 성좌이다. 그것도 가장 신화급에 가까운 설화급 성좌.


어디서 그만한 격을 얻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런 큰 힘을 가지고 항상 난동을 피운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미카엘이 생각이 없는 이도 아니고...’


그 순간.


[그러면 이건 하극상이다, 이 ■■끼야!!]


퍼어어억ㅡ!


그의 생각이 무색하게도, 순식간에 미카엘이 내지른 주먹은 정확히 아레스의 미간에 적중하였다.


[...어?]


메타트론은 자신도 모르게 의문을 표하였다. 분명히 보았음에도 믿기지 않는 현실을 보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옆에 있던 대천사들도 멍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10초간의 정적. 그 10초는 모든 것을 인지하는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모든 대천사들이 상황판단을 끝낸 순간.


[미카엘 이 미친 ■끼야!!!]


가브리엘을 선두로 한 대천사들이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



깡ㅡ!


[아야! 아, 아니! 내가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고오!]


[아니긴 뭘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머리를 때릴 건 없잖아…


나는 최대한 불쌍한 눈으로 가브리엘을 쳐다보았다.


[뭘 ■려.]


까앙ㅡ!


[아악!]


가브리엘. 이렇게 안 봤는데… 이거 참 너무하네.


멀리서 쓰러진 아레스를 지켜보고 있는 메타트론이 중얼거렸다.


[하하… 에덴은 이제 망했어…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메시아님...]


저 양반 넋이 나갔네.


[에이. 서기관. 그러지 말고ㅡ]


까앙ㅡ! 까앙ㅡ!


[아야! 아프다고! 아파!]


[서기관이 뭐야! 서기관이! ‘서기관님’이겠지!]


엥?


[니네가 먼저 서기관이라고 했ㅡ]


까앙ㅡ!


[■랄을 한다. ■랄을 해! 얘 도대체 왜 이러냐?]


허.


이 녀석들. 이젠 아예 서기관까지 ‘님’짜를 붙여가면서 부르네?


하지만 우리 <에덴>의 전통이 무엇인가! 서기관은 서기관이라고 부를 것!


이런 전통을 깨는 행위를 지켜볼 수 없었던 나는, 메타트론을 향해 소리쳤다.


[서기관님! 감히 소인(小人)이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전통은 얼어 죽을.


일단은 살고 봐야지. 괜히 난리 피웠다가 죽으면 어떡해.


옆에 있던 가브리엘이 경멸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카엘. 여기가 <황제>냐?]


아 맞다. 여기 서구권이지.


초췌한 눈빛을 하고 있던 메타트론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됐습니다… 어차피 다같이 사라질 운명인데… 말해보시죠, 미카엘.]


[너무 부정적이시다. 아직 바로잡을 기회는 있다고요, 서기관님.]


[...무슨 기회 말입니까?]


좋아. 걸려 들었어.


나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저한테 딱 하루. 딱 하루만 참회동을 빌려주시면 됩니다. 아, 기왕이면 저 올림포스 ■끼도 같이요.]


메타트론은 아레스를 슬쩍 바라보더니, 알아서 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망하게 될 거 해보라는 거겠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우리엘이 내게로 다가와 물었다.


[뭐, 뭘 하려고?]


[그런 방법이 있어.]


아주 좋은 방법이 말이야.



*



아레스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아레스이시여!”


“오오! 저게 바로 ‘흉포의 군신’······!”


모두의 환호를 받으며 지구를 행진하는 꿈.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그것이 그의 마지막 꿈이었다는 것이었다.


[이분 죽으신 거 아니야?]


[기다려봐. 아직은 안 죽었어.]


[...‘아직’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설고도 익숙한 목소리에, 아레스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넌... 누구지?]


그의 앞에는 어떤 금발의 사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잘 아시는 분이 왜 그러세요.]


[어······. 설마, 너는!]


- 그쪽은 누구신지?


- 미카엘.


[...미카엘.]


[오. 진짜 기억하고 계시네? 이건 좀 감동인데.]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솔직히, 그 짧은 순간에 설렁설렁 대답한 녀석의 이름을 누가 기억해 주겠는가?


[아까 그거 하나 때렸다고 삐진 건 아니죠?]


미카엘의 말에 자신이 맞았다는 기억이 되돌아왔는지, 이빨을 드러내며 아레스는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개자식이!]


하지만, 아레스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철컹ㅡ!


[죄송하지만, 좀 묶어뒀어요. 따질 거면 요피엘한테 가서 따지세요. 내가 한 거 아니니깐.]


뭐, 찾아갈 수 있다면 말이지.


[이...이 무례한 자식! 내가 <올림포스>에 돌아가면 무슨 보고를 할지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


[잘 알죠. 그 위대하신 ‘번개의… 인(人)’이었나? 그 사람한테 일러바치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번개의 좌(座)’다! 좌!]


‘내가 이런 자식한테...’


아레스는 성좌, 그것도 한 성운을 담당하는 성좌의 수식언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이에게 맞았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


[암튼! 부탁하러 온거죠. 꼰지르지 말아달라고.]


미카엘이 두 손을 모으고는 눈을 반짝이며 아레스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 녀석은 갑자기 왜 친절하게 대하는 것인가. 사람 무섭게.


하지만 그 친절함에도, 단단히 화가 난 아레스는 부탁을 들어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쓸데없는 부탁을·····!]


[선생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편안하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요?]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긴 한데…


[...먼저 때려놓고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다.]


[아. 그런가?]


‘지가 때린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근데 그쪽에서 먼저 우리 서기관님 욕했잖아요.]


[...]


- 어이. 내 말을 듣기는 하는 건가? 도대체 ‘하늘의 서기관’은 무엇을 하고 있길래…


[크, 크흠!]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여기서 제안을 받아들이면 내 명예가 짓밟힌다.’


아레스는 미카엘에게 소리쳤다.


[어...어쨋든 안 됀다! 이 일은 반드시 <올림포스>에 보고할 수 있도록...]


[하... 참. 이래서 자존심만 쎈 ■끼들이 안 된다니깐?]


미카엘이 손에는 어떤 창이 쥐어져 있었다.


[들어보니깐, 선생님께 이상한 설화가 있던데… ‘패배 설화’였나?]


아레스에게는 ‘패배 설화’가 하나 있다.


바로 헤라클레스에게 창을 맞게 된 설화.


그것보다, 헤라클레스의 창을 어디서 구해왔냐고?


- 가브리엘. 네 성흔 좀 빌려줘라. 그… 이상한 이름의 창 있잖아.


-  ‘편애(偏愛)의 천칭(天秤)’이다. 근데 이건 왜?


- 다 쓸 곳이 있어서 그래.


...해서 겨우 얻어온 창이다. 물론, 이 창은 아레스의 ‘패배 설화’를 일으킬만한 충분한 조건이 되지 않는다. 헤라클레스의 창이 아닌, 가브리엘의 창이니깐.


근데 이 신이라는 작자가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조금의 각색만 더해주면 믿게 된다는 거지.


[이 창 기억 하세요? 헤라클레스께 친히 얻어온 창인데.]


[...그 창은!]


봐봐. 뇌가 있는 데도 제대로 안 쓰니깐 이런 것도 곧이곧대로 믿잖아.


[이게 그쪽 허벅지를 관통한다면… 아주 재미 있을 거 같지 않아요?]


하지만 아레스는 해보라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정도로 날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깟 작은 상처로는 일격에 날 죽이지 못······!]


[누가 죽인데요?]


[...어?]


[음... 이거면 되겠다. 잘 봐요.]


미카엘은 주변에 있던 돌을 주웠다.


그리고, 조금씩 힘을 주었다.


아주 조금씩. 점점 강하게.


[작은 상처도 상처에요. 그리고 그 작은 상처들이 모인다면!]


파사삭!


돌은 끝내 으스러졌다.


[······끝내 죽게 되겠지만, 아주 천천히 죽을 거에요. 고통이란 고통은 생생하게 느끼면서.]


장난기가 가득했던 눈빛은 사라지고, 어느새 천사라고는 믿을 수 없는, 고오하고도 서늘한 눈빛을 내고 있는 미카엘이 아레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저딴 얼굴이 천사라고? 악마 중에서도 마왕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미카엘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때요? 저는 하루종일도 할 수 있는데.]


아레스는 생각했다.


‘진짜 미친 새끼다.’


이런 작자를 누가 천사라고...


그때, 미카엘이 시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고민이 너무 기시네... 그러면 천.천.히 고민 하실 수 있게 제가 도와드릴까요?]


휘이이익ㅡ!


해맑게 웃고 있는 미카엘이, 창을 쥐고 아레스의 팔을 향해 찌르려고 한 순간.


[자, 자 잠깐!]


[네?]


[...알겠네.]


‘얘는 한다면 진짜 하는 애다.’


눈을 질끈 감은 아레스가 분하다는 듯 나지막이 말했다.


[...보고하지 않겠네. 모두 <에덴>의 활동은 정상적이라고 보고하겠어.]


[정상적?]


[그...그렇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입막음일 터, 이렇게만 보고한다면 문제는 없ㅡ


[정상저어억? 이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셨네!]


…어?


[이렇게 사람 마음도 모르고서는 어떻게 전쟁에서 지휘하셨데? 아~ 뭐. 옆에 있던 제우스가 다 해줬나?]


[그게 무슨 소리인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는 ■랄. 제가 원하는 게 뭔지 천천히 알려드릴게요.]


미카엘이 천천히 창을 들어 올렸다.


[그...그러면 안정적?]


[허. 아직도 못 알아들으셨네.]


[뭘 원하는 건데! 말을 해보라고 말을!]


그러자, 미카엘이 소름 돋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에이. 입 아프게 뭘 말로 해요.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런 미카엘을 바라보고 있던 아레스의 눈빛에는 온갖 두려움이란 두려움이 다 나타나고 있었다.


미카엘이 창을 돌리며 말했다.


[오늘같이 한번 ■져 보자고요!]


슈우우우웅!


‘아.’


자신의 팔을 향해 내려오는 창을 바라보던 그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애초에 이 녀석은 입막음을 원하던 게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