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원작과 99.9% 일치함을 알립니다.
『도깨비다. 그 놈이 처음 나타난 순간,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왜 그 문장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괴음과 함께 멈춘 지하철,
깜박이는 전등.
가시감을 느끼기엔 너무나도 디테일이 부족한 정황이다.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그 소설의 서두가 머리에 아른거렸다.
설마, 말도 안 된다.
내가 타고있는 3807칸의 앞문이 전기가 돌아오는 것과 함께 열렸다.
"···도깨비?"
유상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머릿속이 지잉ㅡ하고 울리는 기분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소설의 서두가 떠올리게 했던 그 광경과 현실이 겹치며 시야가 흔들렸다.
『두개의 작은 뿔, 작은 거적을 걸치고, 보송한 솜털이 돋은 괴생명체가 허공에 두둥실 떠 있었다.』
『요정이라 부르기엔 괴이하고 천사라 부르기엔 사악하며 악마라고 부르기엔 천진한 외형.』
『그래서 그 녀석은 '도깨비'라고 불리었다.』
나는 녀석이 처음 꺼낼 말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니였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아#@!···]
[&아#@!&아#@!···]
허구였던 소설과 현실이였던 실재가 겹쳐진다.
"뭐라는거야?"
"AR이야?"
당황한 사람들 사이, 나 혼자 다른 세계에 덩그러니 던져진 기분이였다.
져건 틀림없이 '도깨비'다.
3000편을 넘어선 '멸살법'의 시작이자 이야기꾼인 '도깨비'.
내 상념을 깬건 떨리고 있지만 힘이 있는 유상아의 목소리였다.
"저거, 스페인 어 같은데 제가 한 번 말 걸어볼까요?"
나는 그녀답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게 뭔지 알고요? 돈이라고 꿔달라고 하실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요."
능숙한 한국어가 들려온건 그때였다.
[아아, 들리죠? 한글패치가 잘 안 되서 고생했네, 다들 잘 들리죠?]
익숙한 언어라서인지, 사람들의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린 듯 했다.
어느 덩치 큰 남자가 항의하듯 말했다.
"이봐요!"
[···예?]
"영화 촬영입니까? 저 오디션이라 빨리 가야하는데요."
무명배우 같았다.
저 당당하고 큰 목소리, 내가 뽑는 사람이였다면 가산점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앞에 떠있는 저 놈은 겨우 그런게 아니였다.
단번에 모두 죽이기도 가능한 어찌보면 초능력적인 것들이다.
[아··· 오디션? 아하하, 오디션 좋죠. 7시에도 오디션을 하는군요··· 정보가 부족했네요, 지금 시간대에 사람이 제일 많이 따라온댔는데.]
"뭔 소리야?"
'도깨비'가 헛기침을 하고 소리쳤다.
[다들 앉아주세요! 중요한 말을 전해야 하니까!]
폐 한 쪽이 뜯긴 것처럼 숨 쉬기가 힘들다.
가슴이 답답하다.
"뭡니까? 얼른 출발 시켜요!"
"기장 불러!"
"엄마, 저거 애니메이션이야?"
틀림 없었다.
그 전개다.
얼른 말려야하는데 몸이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말리지 않으면 모두 죽을지 모른다.
저 조그마한 인형같기도 하고 cg 데이터덩어리 같기도 한게 사람 말을 들을리 없다.
아니 듣더라도 멋대로 행동 하겠지.
하지만 몸이 굳어버린 내가 할 수 있는건, 내 옆에 앉아 움츠려든 이 여자를 말리는 것.
"상아씨,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마요."
"네?"
유상아가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부럽긴 했지만 중요한건 이게 아니다.
정작 말하긴 했지만 내게 이걸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정확히는 설명할 시간도 없었지만.
[거참, 시끄럽네.]
눈앞에 저 존재가, 설명을 해줄테니까.
[내가 닥치라 했잖아요? 그쵸?]
'도깨비'가 눈을 감았다 떴다.
붉은 안광이 항의하던 무명배우에게 닿자 퍼석하는 소리와 함께 정적으로 물들었다.
정확히는 지하철도 피로 물들었지만.
무명배우의 이마에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피가 터져나왔다.
그가 입을 몇번 뻐금대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도깨비가 즐거운듯 웃으며 말했다.
[이건 영화 촬영이 아녜요!]
다시 파각 하는 소리와 함께 아까 기장타령을 하던 중년의 여성이 죽었다.
[꿈도, 소설도, 애니메이션도, 당신들이 아는 현실도 아니죠!]
차례대로 죽어갔다.
그러자 어느 새 절반이 죽었다.
피와 살점덩이가 낭자하는 퇴근길의 지하철.
이젠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떨리는 몸으로 그 '도깨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놀라 딸꾹질을 하고 구토를 하려는 유상아의 어께를 살포시 누르며 그 것을 응시했다.
이건 진짜다.
진동하는 피냄새부터 하얀 셔츠에 묻은 붉은 피까지 모든게 허구가 아니란걸 알려주고 있었다.
현실감이 깨어난다.
이상한 메세지가 귀를 맴돌때에도, 도깨비를 처음봤을때도 깨지 않던 현실감이 피냄새를 맡고 깨어난다.
[당신들은 너무 공짜로 살았어요! 아무 것도 내지 않고 먹고 마시고 자고 싸지르고 늘려갔죠! ■나게 좋은 삶을 사셨네요?! 그쵸?!]
그리고 도깨비가 심호흡을 하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이제 댓가를 지불 할 시간이에요.]
그 말을 듣자마자 어느 한 중년이 손을 들고 말했다.
"돈, 돈을 원하십니까?!"
어느 멍청이인지 궁금해졌다.
나는 그 손에서 팔로, 팔에서 머리로 시선을 옮겼다.
그 멍청이는 내가 잘 아는 작자였다.
"상아씨, 저 사람···"
"우읍, 예? 저 사람··· 설마?"
우리회사 낙하산이자 기피대상 1위인 재무팀 한명오 부장이였다.
도깨비가 그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 섬유로 되어있는 알록달록한거 말이라면 뭐, 돈 좋죠.]
한명오가 일개 회사 부장이 들고 다닐 리 없는 수표를 꺼냈다.
"얼마를 원하는지 말씀 해주시면···"
[그쪽네들 기준이지만요.]
도깨비가 그를 비웃듯 그의 손에 들린 수표를 태웠다. 한명오가 놀라 나자빠졌다.
그 광경을 보던 도깨비가 재밌다는듯 웃다가 정색하며 말했다.
[한번만 더 그러면, 그 사람은 특별히 뇌의 안쪽부터 태워드리죠.]
사람들의 표정에 다시 공포가 번졌다.
소설을 보듯 뻔한 표정들이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거지?』
그리고 오직 나만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지 알고 있었다.
[이럴 시간이 없어요, 당신들 빚이 엄청 많다구요? 뭐 이 차원에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멋들어진 말도 있잖아요? 직접 벌어보는게 빠르겠죠?]
도깨비의 뿔이 안테나처럼 늘어났다. 몸체가 천장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메세지가 들려왔다.
[#BI-7623 채널이 열렸습니다.]
[성좌(星座)들이 입장합니다.]
멍하니 눈만 꿈벅이던 사람들 눈 앞으로 제각기 작은 창이 떠올랐다.
[메인 시나리오가 도착 했습니다!]
*
<메인 시나리오 #1 - 가치 증명>
분류:메인
난이도:F
클리어 조건:하나 이상의 생명체를 죽이시오.
제한시간:30분
보상:300코인
실패시:사망
+
몸체가 투명해진 도깨비가 다음 칸으로 사라지며 흐릿하지만 섬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재밌는 이야기를 보여주세요.]
ㄹㅇ 놓치기는 싫은데 바꾸기도 애매한 부분들이 많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