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가 사라지자 멍한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던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꺼내달라고 문을 벅벅 긁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경찰같은 곳에 전화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옆에 이 사람은 후자였다.
"경찰이 전화를 안 받아요! 어떡하죠, 어떡해···"
나는 옆에 있는 유상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
"진정하세요, 해결책을 마련해볼게요."
초점 없이 떨리는 유상아의 눈을 마주했다.
내가 좀 더 작긴 했지만.
"뜬금 없는거 아는데, 우리 회사에서 만든 게임 해봤죠?"
"그게 무슨···."
유상아가 겨우 숨을 뱉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차갑게 얼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그 게임 속에 들어왔다고 생각해둬요."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미친 년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조언은 이것 뿐이다.
"알겠어요."
"그럼, 제가 하란대로 해주시면 되요."
"네, 뭘 하면 되나요?"
눈에 띄게 안색이 좋아졌다. 이런 바보같은 말이 통할줄은 몰랐다.
이현성과 닮은 느낌도 든다.
나는 남은 한 손으로 그녀의 반댓손을 잡고 모으며 말했다.
"마땅한 해결책을 가져오기 전까지 여기서 기다려줘요."
말하는 나조차 떨린다.
심장이 쿵쿵하고 몸을 울렸고 눈이 핑그르르하고 도는 기분이였다.
심호흡을 하고 멸살법을 떠올린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세 가지 방법』
인생을 이미 한 번 바꿔준 소설이, 또 다시 내 인생을 바꾼다.
여러 구절이 떠올랐지만 그 구절을 하나하나 맛보기엔 어려웠다.
시선을 옮기자 타이머가 딸깍딸깍하고 넘어가고 있었다.
벌써 5분이 지났다.
생각해내야 한다. 여기서 죽어서는 무엇도 없다.
나는 머리를 쥐어짜내려했다.
그러나 그걸 꿰뚫고 내 머릿속으로 박혀들어온건 듣기 좋게 올곧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자자, 여러분! 진정하시고 심호흡부터 하세요!"
적당히 그을린 피부, 평균을 웃도는 키, 옷 위로도 드러나는 근육들, 짧게 투블럭으로 잘린 머리,그리고 '그 녀석'보단 아니여도 잘 빠진 얼굴까지.
모든게 그가 누군지 말하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를 더 지켜보았다.
"진정들 되셨으면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그가 헛기침을 하고 큰 소리를 냈다.
"현재는 국가 재난 상황으로 더 큰 상황으로 번질 위험이 있기에 현 시간부로 이 지하철은 제가 통제하겠습니다!"
"네가 뭔데 통제를 해?!"
"재난 같은 소리 하네!"
통제와 재난이란 말에 격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그가 지갑을 열어 하얀 공무원증을 보이며 말했다.
"현 6502부대에서 근무중인 육군 중위입니다."
사람들이 안도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몇몇 사람들은 "군인이래!" 같은 환호를 질렀다.
안도할 상황이 아닌데.
그의 공무원증을 보고 확신했다.
그는 이현성이 맞다.
'멸살법'을 읽을때 내 남친은 이런 남자였으면 싶었던 남자기도 하고, '강철검제 이현성'으로 불리던 남자다.
하필 이런 상황에서 만나다니.
그가 지갑을 다시 넣고 말을 이었다.
"부대에서 메세지가 왔습니다."
그가 또박또박 그 메세지를 읽어나갔다.
"1급 국가 재난 상황 발생, 전 병력은 신속히 부대로 집결."
곳곳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국가 재난 상황, 예상은 했지만 상상외로 숨을 삼키게 만드는 단어다.
곳곳에서 그에게 질문이 날아왔다.
"이제 어떻게 되는겁니까?"
"구조는 온대요?"
"청와대는 뭘 한답니까?"
그는 그 모든 질문을 하나의 답으로 일관했다.
"아직 부대로부터 추가 연락이···"
"그래놓고 뭔 통제야?!"
그가 당황하며 우물주물 답했다.
"저는 시민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집어치워!"
역시 이현성이다.
그냥 주먹부터 갈기고 시작해도 됐을텐데 일일이 상대해준다.
그게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잠시만, 머리에 이상한 생각이 지나갔다.
이현성이, 그가 처음 등장한게 지하철이던가?
기억이 잘 안 난다.
멸살법을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생각도 잠시 사람들이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국무총리 연설 떴어요!"
그 소란중에도 유상아는 침착하게 연설을 내게 보여줬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들께···
연설이 시작되었다.
예상이 되는 대사들이다.
관심을 크게 갖지 않고 보고있었다.
그러다 큰 총성에 놀랐다.
한발도 아니고 여러 발.
그리고 파각 하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국무총리가 죽었다.
붉게 물든 카메라를 도깨비가 차지하며 말을 시작했다.
[말했잖아요, 이건 테러가 아니라고!]
도깨비가 섬득하게 웃었다.
[그러고보니 이 나라 사람들은 게임을 잘한댔죠? 그럼 이번꺼도 하드코어하게 가보죠!]
도깨비가 말을 끝내자 타이머가 빠르게 풀렸다.
20분을 가르키던 타이머는 10분으로 바뀌어 있었고 규칙도 추가되었다.
[5분안에 살상이 안 일어나면, 모두 죽이겠습니다!]
도깨비가 즐거운듯 웃으며 카메라를 껐다.
그리고 예상한 그대로 혼란에 빠졌다.
이번엔 "뒷칸에서 사람이 죽었어!"하는 소리도 섞였지만.
왜인지 침착했다. 마치 이 장면을 영화로 보는 기분이였다.
의문이 들었다.
주연이라지만 조연급 비중이던 이현성도 나왔다.
그렇다면 '그 자식'은 왜 안 나왔는가.
주인공인 그 자식은 슬슬 등장해야한다.
멸살법에서라면 이미···
그런 생각을 깨듯 도깨비가 웃으며 나타났다.
[5분간 아무도 못 죽이면 무슨일이 생기는지 특별히 보여드릴게요.]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영상이 나타났다.
어느 학교, 모두가 공포에 질려있다.
한 남학생이 소리쳤다.
"저거 태풍여고 교복이잖아!"
삑삑하고 불길한 소리가 울리자 학생들이 소리를 질렀다.
[제한시간이 경과했습니다.]
[유료정산이 시작됩니다.]
안냇말이 끝나자마자 맨 앞 학생을 시작으로 머리가 터져갔다.
걸레가 부러지고, 손톱이 다 벗겨질때까지도
굳게 닫힌 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전부 죽기 직전, 한 학생이 살아남았다.
[#Bay23515 채널. 태풍여고 2학년 B반 생존자:이지혜]
화면을 죽일듯 보던 학생의 영상은 사라지고 도깨비가 웃었다.
[재밌지 않아요?]
도깨비가 보여준 영상 때문에 붙어있던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옆에서 내 손을 붙들고 있던 유상아도 그 손을 풀었다.
팔이 자유로워진 나는 스마트폰을 켰다.
왜지? 왜 '그 자식'이 안 나온거지?
내가 알던 소설과 달라졌다.
다시 소설을 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불법 스캔본도 없었을테니 방법이 없나.
포기하려는 그때 메일함을 열었다.
그러자 메일에 보였다.
[첨부파일 1개]
설마. 아니겠지?
나는 확률을 부정하면서도 맞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 파일을 열자, 눈에 들어온 글자는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txt]
김남운까진 갈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