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독자가 잠들어 있는 병실.
그 가운데에 일행들이 한데 모여 무언가 이상한 기기를 조정하고 있었다.
"이걸 이렇게...하면...된건가?"
이설화가 기계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이 기계는 일명 '설화 파편 추출기'.
무의식에 놓친 작은 설화의 파편을 추출해 부족한 이야기를 메꾸려는 일행들이 고안해 낸 것이었다.
"그럼...한번 시험해 볼까요? 자원하실 분?"
이현성이 먼저 손을 들었다.
"이걸 머리에 붙일거에요."
"넵!...으음...뭔가 느낌이 이상합니다..."
이설화가 이현성의 머리에 뚫어뻥 같은 것을 씌웠다. 이현성은 이상한 감촉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개를 끄덕인 아일렌이 버튼을 눌러 작동시켰고. 그러자
[설화 파편, '낡은 철제 방패' 가 추출 되었습니다.]
"아, 이거 그거네요! 금호역에서!"
"맞아요, 독자씨가 저랑 한 부장님 구해주시고 얻은 거였죠."
"그때 땅강아쥐 다리도 같이 먹었잖아요! 맛있었는데..."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정희원, 유상아, 이길영이 추억을 회상하는 듯 이야기를 떠들었다.
"좋아, 그럼 이제 우리 잘나신 오징어 대마왕님의 설화를 추출해보자고."
"수영언니, 진짜 사악해 보인다."
한수영의 재촉에 이설화가 김독자의 머리에 뚫어뻥을 씌웠다. 기계는 곧 작동하기 시작했고.
[설화 파편, ■■■??■■? 이 추출되었습니다.]
"엥? 이거 왜 이래?"
알아볼 수 없는 설화를 추출했다.
"야, 이거 고장난거 아냐?"
"고장이 났으면 추출조차 되지 않았을 거에요."
"......그래요? 그럼 일단 봐요!"
이설화와 아일렌이 기기를 재점검해 보았지만 기기는 정상이었고 제목만 깨져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가려진 제목에 일행들의 호기심은 배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그 설화가 어떤 설화인지를.
얼마나 오래된 절망이 담긴 설화인지를.
[보고 싶다. 사람들이...보고싶다.
(김독자는 차가운 지하철 바닥에 드러누운 채 중얼거렸다.)
그들의 미소가 보고 싶다.
(김독자는 몸을 일으켜세워 지하철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비치는 건 자신이었다.)
뭐가 잘난 구원의 마왕이냐...뭐가 잘난 가장 오래된 꿈이란 말이냐......뭐가 잘나서 살아있는거냐...
(김독자는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의 주먹은 중학생의 것만큼 줄어들어있었다.)
ㅡ콰앙!콰앙!콰앙!
아아아아아아아아아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김독자는 계속해서 창문을 내리쳤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는 '혼자' 였다.)
제발! 제발! 날...여기서 꺼내줘....제발...
(김독자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흐흐흐으흐으으으
(자신이 우는 건지 웃는 건지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저 짐승같은 소리가 지하철안에 울려퍼졌다.)]
"이게......"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고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 중 누구도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 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
설화를 일시정지 시킨 그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신유승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더 볼 거에요?"
"......봐야지."
대답을 한 건 한수영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한수영을 향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돌아왔을 때...우리가 김독자를 위로 할 수 있어.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다고."
모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다시 재생할게요."
아일렌이 다시 기계를 작동시켰다.
[(14231년 째, 김독자는 말을 하기를 그만두었다. 제 4의벽이 동면에 들어간 이후로 대화할 상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마 다시 깨어나기 가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죽고싶다
(마음 속으로 수만번을 빌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김독자는 몸을 웅크린채 계속 생각했다.)
.......이게 내가 멸살법을 읽은 대가인가? 내가 이 세계를 읽었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의 대가인가? 나는 그저 살기위해...살고 싶었는데...행복하게...
(김독자는 행복이라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이내 자신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나 같은게 행복을 바랄 자격이 있는거냐? 나는 그들의 가족을 죽였다. 일상을 뺏었다. 행복을 뺏었다. 나는...행복하면 안된다...
(눈을 뜬 김독자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죽어가는 유중혁과 그의 동료들이 있었다. 김독자는 천천히 양 손을 들었다. 그리고.)
푸욱...으드득
(자신의 눈을 찔렀다. 더 이상 그들의 죽음을 볼 자신이 없었다. 검붉은 설화가 그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그렇지만 곧 다시 재생되었다.)
보기싫어 보기싫어 보기싫어 보기싫어 보기싫어 보기싫어 보기싫어 보기싫어 보기싫어 보기싫어 보기싫어
(김독자는 날개와 뿔을 꺼냈다. 그리고 양손으로 뿔과 날개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꽈드드득 콰득 으드드득
(뿔과 날개가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자신이 혼자임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나는 영원히 이 지하철에 계속.......수만년? 어쩌면 수십만년? 버틸 수 없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죽고 싶어. 제발.
(뜯어버린 날개와 뿔은 다시 설화로 흩어져 김독자의 화신체에 흡수되었다. 뿔과 날개는 다시 자라났다.)
콰득 우드득
(그는 다시 뿔과 날개를 뜯어내었다. 그 행동이 1년이 반복되었다.)]
"......"
그들은 다시 설화를 일시정지 시켰다.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길영과 신유승은 김독자의 손을 꽉 붙잡고 있었다.
"저는...저는...으흑...도저히 못 보겠습니다...크흡."
이현성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병실 밖으로 나갔다. 정희원은 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대신 걸음을 옮겨 다시 기계를 작동시켰다.
눈물을 거칠게 닦은 정희원은 그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 보였다. 다가온 유상아와 이지혜, 한수영과 이길영 그리고 신유승, 이설화, 아일렌, 장하영, 공필두, 이수경 모두가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대답은 없었다. 그들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김독자의 몸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설화가 흩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대로...계속...작아지는구나...나에겐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거겠지? 마치 암흑성에서 시나리오 바깥으로 추방당했을 때의 기분이다. 온몸이 점점 사라져간다는게...비유와 유상아씨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김독자는 힘겹게 기억을 떠올렸다. 더 이상 그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에겐 아직 기억이 많이 남아있었다.)
마지막에는 꼭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이렇게 사라지는구나...
(김독자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마지막을 구경하러 온 성좌들 같았다.)
......안된다. 죽을 수 없어...내가 지금 죽으면...안돼 여기서 죽으면...이 우주가 끝나...절대로...죽으면 안되는거야...
(김독자는 자신의 꼴이 우스웠다. 수만년동안 이곳에 갇혀 죽고싶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던 그가 살고 싶다니.)
만약...이 세상에 나 처럼 무력한 신이 아닌...정말로 전능한 신이 있다면...제발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제가 몇 일이라도, 몇 년이라도 더 살아서 그들의 세계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발...다시 만나지 못해도 좋습니다. 그들을 살아가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부탁드리겠습니다.
(김독자는 존재의 여부도 알지 못하는 신에게 몇번이고 기도하고 빌었다. 자신이 몇 천년이라도 더 살아서 그들을 살릴 수 있다면, 말 그대로 영원히 지하철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살고 싶습니다.
(김독자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고독한 열차의 운항 소리만이 들렸다.)]
설화의 재생이 끝났다. 그들은 병상에 누운 김독자에게 다가가 몇번이고 어루만졌다, 손을 잡아주었고, 감사를 빌었다. 이불이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어섰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를 위해 오직 그 만을 위한 이야기를 써내려가자고.
이젠 우리가 당신을 구해주겠다고.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당신은 수고했다고.
그러니 무사히 돌아와 반드시 우릴 향해 웃어달라고.
지하철의 기억따윈 잊어버리고 우리가 행복을 채워주겠다고.
그렇게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야기가 활자의 설원에 써내려져 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