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병실안엔 무거운 침묵이 돌고 있었다. 제목을 알 수 없는 김독자의 설화 파편은 그가 홀로 일행들을 위해 지하철에서 수천년이 넘는 세월을 버틴 절망의 항해 일지 였다.


"......이설화."

"......알겠어요."


그 아득한 고독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긴 설화 파편을 본 그들은 두려웠다. 더 끔찍하고 더 절망적인 설화가 추출된다면......


ㅡ우우웅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추출기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니면 감히 누가 김독자를 이해하랴.

누가 그를 보듬어주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직 그들을 제외하곤...그러니 그들은 알아야했다.


그의 슬픔을.

그의 고독을.

그의 소원을.


타인의 마음은 누구보다 잘 읽어내면서, 정작 자신의 마음은 잘 드러내지 않는 바보를.

그들은 알아야 했다.


[설화 파편, '시나리오의 추방자'가 추출되었습니다.]


"이건 다행히도 제목은 멀쩡하네."

"으음......"

"뭐야, 유상아 너 왜 그러냐?"


유상아가 침음성을 흘리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돌아갔다. 유상아는 알고 있었다. 저 설화가 무엇인지. 아마 이곳에 모인 이들 중 가장 잘 알 것이다.


"혹시......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안타깝게도 수영씨가 생각하시는 게 맞을 거에요."

"그럼.......저건 그때?"

"네, 독자씨가 운명으로 인해 추방 당하셨을 때, 그 이후의 일이겠죠."


유상아의 설명에 모두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시나리오 추방', 아직도 그들의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진다.


온 몸이 찢겨진 채 피를 흘리며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김독자의 모습이.


"......보실 거죠?"

"당연히, 봐야지. 김독자 이 자식 혼자 끙끙 거렸을 생각하니까......됐다, 말을 말자."


한수영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파편에 시선을 집중했다. 곧, 설화가 흘러나왔다.



「쏟아지는 불길을 받아내며, 전신으로 조금씩 고통이 번지기 시작했다. 


······아프다. 정말로, 아프다.


고열에 피부가 갈라졌고, 안구가 익는 느낌이 들었다. 눈물을 삼키며 나를 향해 난도질을 반복하는 정희원. 악을 멸하는 불길이 상처를 헤집고 그 안의 살을 모조리 태우고 있었다.



설화가 흘러나오자 시나리오의 정경이 홀로그램 처럼 흘러나왔다. 그곳에 김독자를 난도질 하는 정희원이 있었다.


"희원씨......"


정희원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김독자를 바라보는 것 뿐.


설화는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마침내 김독자가 죽고 시나리오에서 추방되었다.


모두의 얼굴에 깊은 절망이 서렸다. 유상아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슬픈 건 슬픈 것이었다. 기쁜 건 기쁜 것인 것처럼. 그렇기에 외면하지 않았다.



쩌저저저적. 


뭐야, 라고 말할 틈도 없이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한기는 곧장 살갗으로 스며들더니 뼛속 깊이 침투했다. 파스슷, 하는 소리와 함께 폐의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컥······?” 


순간, 뒤늦게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베다>와 <올림포스> 녀석들이 굳이 나를 ‘시나리오 권외 지역’으로 보냈던 이유. 그건 바로 이런 상황을 노렸기 때문이었다. 

‘화신 김독자’를 죽이며 ‘성좌 김독자’도 처리하기 위한, 녀석들의 계략. 


“끅, 끄으으으윽······.” 


비명을 질렀지만, 비명이 나오지 않는다. 숨을 쉬고 싶었지만, 숨을 쉴 수가 없다. 마치 누군가가 폐를 압착해 버린 것처럼, 숨통이 턱 막혀왔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며, 생각들이 하나둘씩 지워져 간다. 


<스타 스트림>은 ‘이야기’의 세계. 화신이든 성좌든, 예외는 없다. 모든 존재는 ‘이야기’를 통해 숨을 쉬고, ‘이야기’를 통해 존재한다. 


[설화의 손상 속도가 빨라집니다!] 

[당신의 존재가 소멸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그 무엇도 존재할 수가 없다. 심지어 나조차도. 


파스스슷! 


‘제기랄, 살려줘!’



"아저씨......"

"하아......"

"우린 저때......미안해요, 독자씨."


다시 한번 깊은 수심이 어렸다. 김독자가 홀로 지평선을 떠돌때 그들은 무얼 하였는가? 

임시 정부가 지어준 보호소에서 따뜻한 이불 덮고 누웠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하지 못해 그저 방 안에 틀어박혀 있지 않았던가? 


「설화는 어느새 이야기를 끝마쳤다.」


그때, 그들은 무능력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때의 나약한 그들은 더 이상 없다.

그저 '김독자' 라는 단 한 단어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그들은 김독자를 읽었다. 계속 읽었다. 아픈 것, 슬픈 것, 기쁜 것, 언젠가 오직 유상아만 읽었던 그 기록들은 일행들에게 다시 읽혀지고 있었다.


'같이 읽기.' 그들은 같이 읽었다.

그들의 시선속에 김독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에 그들이 아는 김독자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눈이 쌓이듯 활자가 쌓였다.

그가 존재하게 될 광야의 지평선 속에.




ㅡㅡㅡㅡㅡ

광야의 지평선 = 종이



이제 이 쪽은 못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