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존나 크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있는 건물.
수영이 <컴퍼니>의 본부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따라와라."
중혁은 그런 수영을 일별하고는 건물 안쪽으로 들어섰다.
"야! 같이가!"
건물 안쪽에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일을 찾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을 지나쳐가는 중혁과 수영에게 한 여인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어머, 중혁 씨? 지금 막 복귀하시나봐요?"
"...유상아."
"그 뒤에 귀여운 애는 누구에요?"
"흠, 내가 좀 귀엽긴 하지. 근데 애 아니거든? 뒈질래?"
날개뼈까지 내려오는 밝은 갈색의 머리칼.
저녁 노을을 그대로 담은 듯 한 따뜻한 주황빛 눈동자.
중혁에게 말을 걸어온 산뜻한 인상의 여인에게 아이 취급을 받자 발끈하며 중혁의 앞으로 나선 수영은 뭔가 반문하려다 말문이 막힌 것처럼 표정을 굳혔다.
"...? 뭐 하세요?"
"가만 있어봐."
그러더니 갑자기 상아의 소매를 잡아채며 킁킁거리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자신의 앞에 펼쳐진 어처구니 없는 광경에 중혁이 눈썹을 꿈틀거렸고, 상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중혁을 바라봤다.
"흠, 아닌가?"
한참을 상아의 체취를 맡던 수영이 손을 놓으며 중얼거렸고, 덕분에 그 뒤에 서있던 중혁의 인상은 점점 구겨지고 있었다.
"...나중에 설명하지."
"네? 아, 네.... 파견 임무 고생하셨어요."
당황한 상아를 목전에 두고 중혁이 수영의 뒷덜미를 낚아채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한참을 수영을 끌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온 중혁이 뒷덜미를 놓으며 수영에게 으르렁거렸다.
"너는, 대체 뭘 하는거냐."
"음, 아냐. 내 착각일수도. 방금 걔, 누구야?"
갑작스런 이상행동 후에 펼쳐지는, 언젠가 보았던 그 태연자약한 수영의 모습에 중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컴퍼니> 소속 2급 헌터 유상아다. 이명(異名)은 월하현제. 그녀 역시 능력자다."
"응응, 그리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저를 쳐다보는 수영의 모습은, 그 이상의 대답을 요구하는 듯 한 모양새였기에 중혁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을 이었다.
"...끝이다. 혹 너는 그녀를 흡혈귀라 생각하는 건가?"
"엥, 티났냐?"
"그럴 리 없다. 그녀는 얼마 되지 않는 <컴퍼니> 의 설립 멤버 중 하나다. 그 동안 내가 피 냄새 하나 맡지 못했을 것 같나?"
"흠.... 그치? 확실히 냄새는 안 나더라. 그래도.... 응, 아니다. 인간이야. 확실해."
부정하는 중혁의 모습에 수영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맞아, 눈도 갈색이고 렌즈를 낀 것 같지도 않더라. 게다가 지금 낮이잖아? 좀 첫인상이 달라서. 능력자를 처음 봐서 그런 듯? 따위의 말을 재잘거리며 덧붙였다.
"헉, 혹시 이게 첫눈에 반했다 뭐 그런 건가?"
"...시간을 낭비했군."
이젠 아예 헛소리를 하고 있는 수영을 보며 중혁이 머리를 쓸어올리며 한숨을 내뱉고 뒤를 돌았다.
목적지는 <컴퍼니>의 대표이사실, 김독자의 방이다.
.
보고를 한답시고 수영을 문 밖에 놔두고 홀로 이사실에 들어간 중혁은 한 식경 쯤 지나서 조금 굳은 표정으로 방을 나왔다.
들어가기 전 손에 들고 있던 흡혈귀들의 창이 들어있던 가방은 그대로 두고 나온 듯 빈손이었다.
"가자."
"엥, 어딜?"
수영은 대답 없이 앞장서서 걷는 중혁의 뒤를 바라봤다.
더는 말을 걸면 안 될 듯 한, 왠지 모를 진중한 분위기에 수영 또한 잠자코 그의 뒤를 따랐다.
"음..."
중혁과 수영은 건물 내부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참을 내려가고 있었다.
아무리 이사실이 고층에 있었다고 해도, 이건 너무 오래 걸렸다.
뭐라 묻고 싶어도 옆에 서있는 남자의 표정은 뭘 물어도 대답해 줄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다.
한 두 층 정도의 지하가 아니었다.
뭘 이렇게 깊이 숨겨둔 거야?
결국 수영은 중혁이 직접 말을 꺼내기 전까지 잠자코 있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영도 알게 되었다.
엘리베이터의 두꺼운 철문 너머로 풍겨오는, 자신의 코를 자극하는 비릿한 혈향.
문득 중혁이 수영에게 했던 부탁이 떠올랐다.
중혁은 지금, 자신의 동생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
왠지 모를 불편한 분위기.
혈향이 풍겨오기 시작한 지도 한참을 지났는데도 엘리베이터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인내심이 그리 길지 않았던 수영이 기다리다 지쳐 입을 열기 직전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아."
문이 열리자 수영이 낮은 탄식을 뱉었다.
그들의 앞엔 짧은 복도만이 펼쳐져 있었다.
청색 등이 켜진 짧은 복도.
그리고 그 끝에 작은 소녀가 있었다.
수영보다도 한참 작은,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도 못한 것 같은 외형.
중혁을 닮은 듯 한 짙은 흑색의 머리칼, 새하얀 피부와 그와 대조되는 붉은 눈.
안쓰럽게도 작은 소녀의 두 팔과 허리는 무언가에 묶여 뒤쪽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얼핏 보이는 희끄무레한 털뭉치들이 혹여나 쇠사슬이 아이의 피부에 작은 생채기마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쇠사슬을 감싸고 있었다.
"그, 오, 흐아..."
그 작은 소녀가, 그들의 얼굴을 보고 무어라 말하며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묶여있기에 소녀의 발걸음은 그들에게 닿지 않았고, 이내 소녀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엎어진 채로도 어떻게든 그들에게 닿으려 몸부림치는 소녀.
수영에게는 그 움찔거림이 마치 손을 뻗고 도와달라 말하는 것 처럼 보였다.
수영에게 소녀의 붉은 두 눈은, 단순히 피를 탐하는 흡혈귀의 그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
흡혈귀에게 감염된 자들은 그 시점부터 신체의 성장이 멈춘다.
아마 이 작은 소녀는 이렇게 작은 신체로, 몇 년을 이 차가운 복도에 갇혀 제 오라비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작은 아이까지..."
"...차라리, 그 때 미아가 죽었으면."
이사실을 나온 뒤 가자, 라는 말 이후로 한참을 침묵을 고수하던 중혁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었다. 평생을 어두운 지하에 갇혀, 제 오라비가 내어주는 팔목을 물어 혈육의 피를 빨아가며 벌레같은 생을 이어갈 바에야,"
중혁의 표정은, 담담히 말하는 것과 달리 지독한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피만을 갈구하는 혈귀가 되어 제 팔목을 입에 물고 피를 삼키는 여동생을, 몇 년을 보살펴온 남자의 인생은 과연 어떻게 얼룩져 있을까.
몇년 동안을, 제 임무를 끝낸 뒤 이 지독하게도 깊은 지하를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속에서, 그 긴 시간 동안 중혁은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일련의 과정들이 끝난 후 제 여동생을 다시 이 캄캄한 지하에 홀로 남겨두고 몇 번이나 밝은 곳으로 떠나야 했을 남자의 심정은?
그리고 이제는 제 여동생의 죽음을 바래왔던 자신을 담담히 타인에게 밝히는 남자의 심정은.
수영은 그다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그 때 감염되지 않고, 고통받지 않고 이 아이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면, 이 아이에겐 그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저 몸도, 정신도 지쳐 떠오른 생각이라기엔, 수도 없이 생각했다. 오라비라는 이름을 달고도 어린 여동생을 지키지 못한 어리석은 자답게, 현실을 피하려 했다."
"한 번, 아니 여러 번 그런 상상도 해봤다. 사실 이건 모두 지독한 악몽이고, 눈을 뜨면 예전과 같은 삶이 돌아오지 않을까."
"혹은, 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기적이라도 일어나 미아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까."
"수도 없이 상상했고, 바래왔다."
"치료법 따윈 없었다. 9년 동안 수 백의 흡혈귀를 도륙냈다. 수 천의 흡혈귀를 생포했다. 수 만의 흡혈귀를 해부하고, 조사하고, 실험했다."
"의료계 능력자들. 비능력자 의료인들. 수많은 도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부탁이다, 한수영."
중혁이 고개를 돌리며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 석자를 불렀다.
그의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도 피부 위로 직접 느껴지는 간절함에, 수영은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내겐 네가 마지막 희망이다. 유일한 기적이다. 만일."
그리고 중혁은, 늘 이곳에 도착하면 해왔던, 제 여동생 앞에서 소매를 걷어내 팔뚝을 내보이는 대신에 자신의 애검인 [흑천마도]를 뽑아들었다.
"만일 너마저 실패한다면.... 미아를, 지금껏 붙잡아왔던 가느다란 줄을, 놓겠다."
제 여동생에게 칼을 겨누는 남자의 심정은 어떠할까.
부모를 잃고, 여동생마저 잃게 된 남자의 심정은.
여동생이 인류를 위협하는 적이 되어, 결국 제 여동생을 베어야만 하는 남자의 심정.
이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신은 소설가니까.
하지만 수영은 그 불온한 심정을 상상하는 대신 심호흡을 하며 눈을 떴다.
완연한 붉은 빛이었다.
"...좋아. 해볼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작가의 상상력으로도 알지 못하는 것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마주하게 된 수영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중혁의 감정을 마주하고, 미아의 붉은 두 눈을 보자 무얼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수영은 소매를 걷었다.
새하얗고 얇은 제 팔이 드러났다.
그리고, 중혁이 미처 뭐라 하기 전에 미아에게 팔을 내밀었다.
"야, 만약에 내가 쓰러지면 내가 널 눕혔던 것처럼 존나 푹신한 침대에 코코아 존나 단걸로 한 잔 준비해라. 아니, 세 잔!"
수영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중혁을 돌아보며 여유롭게 웃어보였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걸까, 중혁은 답지 않게 조금은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수영에게는 안타깝게도, 누군가에게 피를 억지로 빨리는 느낌은 전혀 좋지 못했다.
아, 씨발. 피 빨리는 기분 존나 뭣같네.
그리고 그것이, 제 팔을 물고 피를 빨아가는 작은 소녀를 보며 수영이 정신을 잃기 전 느꼈던 마지막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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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미루다 한시간 컷 성공
일단 유상아만 대충 나왔고 다른애들 등장은 또 다음화로 미뤄졌네
다음편은 어케 풀어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