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화창한 날이였다. 그 날 한수영은 행복했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고 라면도 맛있게 끓여졌다. 글도 잘 써졌다. 무엇보다, 김독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김독자라는 사람으로 머리속을 채워버렸다. 김독자라는 글자를 쓰던 소설에 넣는 실수를 해버릴 뻔 할 정도로 말이다.
 그녀는 쓰던 원고를 저장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어느 새 붉게 물들어 김이 모락모락 날 것 같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중얼거렸다.
 "나 어떡하지."
 그녀는 그가 좋았다.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세계 그 무슨 단어를 가져와 붙이고 붙인다한들 이 지끈거림을, 후끈함을, 두근거림을 표현할 수는 없다. '김독자' 이 세 글자가 주는 자극은 30대를 바라보는 그녀를 10대 소녀처럼 만들어버렸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정신을 차리려고 세수를 하다가 물에 비친 자신을 봐도, 거울에 비친 자신을 봐도 결국은 그가 보였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에 몸을 던졌다. 지금 상태로 자면 적어도 현실에선 없을 그와의 연애를 꿈꿀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른거리는 김독자를 쫓아가듯 잠에 빠져들었다. 마치 물풀로 된 바다에 가라앉듯 천천히 잠에 들려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 순간 그녀의 귓가를 때리는 조금 짜증나는 소리가 있었다.
 겨우 들뻔한 잠을 깨운 장본인이 궁금해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리고 그녀는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잠기운 조차 날아갈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녀는 얼른 뛰어 김독자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뛰었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이 그녀를 보았고 형식상이라도 하려는 인사를 그녀는 무시하고 병실에 있는 김독자를 보았다.
 "왔어?"
 말투는 그가 맞았다. 미묘하게 다정한 것 같은 단어선정은 그가 아니라면 비슷하게 말에 가시를 심는 유상아정도밖에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가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라한들 동료에게는 따뜻했다. 웬만한 가족보다도 가족 같았다. 친구보다도 더욱 친구같았고 부모보다도 더욱 부모같았다. 그럴 그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차가웠다. 단 1의 온기조차 찾을 수 없었다. 마치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이 말한거라 해도 지금 상황보단 믿을 만 할 것 같았다.
 한수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고 말했다.
 "야, 너 왜 그래?"
 "뭐가?"
 이번에도였다. 그의 목소리에서, 행동거지에서, 얼굴에서. 단 1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제 4의 벽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할까.
 한수영이 안타까운 마음에 손으로 그의 얼굴에 손을 대보려했다. 하지만 그 주변에서만 맴돌고 손은 떨어졌다. 그녀가 획 돌아 뛰쳐나갔다.
그 상황에서도 김독자는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

 "자, 봐봐."
 "응."
 그녀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포기하지 못했다. 그를 돌려놓을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충격요법은 어떨까, 감정이 생기도록 외전을 쓰는건 어떨까. 그런 고민을 일주일간 했고 결국 내린 결론이 이 것이였다.
 멸살법과 전독시. 이 두 소설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멸살법을 다시 적는데 두달이 걸렸다. 아바타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그녀는 이 소설을 김독자에게 보여줬다.
 김독자가 멸살법의 1화를 볼때 그의 눈을 죽어있었다. 그리고 500화를 봤을때, 그는 돌려받았다. 맛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3000회째를 보자 그는 어딘가 벅차오르는 듯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한수영이 바로 전독시를 켰다. 그러자 김독자는 그녀가 추가해둔 문장을 생기가 아주 조금 돌려하는 눈으로 그 문장을 훑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독자(讀者)'였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야기'로서 구원받는다.'
 그 문장을 보자 김독자의 눈에서 열정이 솟았다.

 그 후로 몇개월간 그와 그녀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했다. 그녀가 그를 자극할만한걸 써서 보여주면 그는 그녀가 원했던 감정을 얻었다.
슬픈걸 써왔다면 다 읽고 눈물을 흘렸다.
 분노할 만 한걸 가져왔다면 그걸 다 읽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외에도 그는 매번 웃고, 미소짓고, 절망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소설을 건네고 오랜 시간 갖지 못한 숙면을 그녀가 갖자 김독자는 담요를 그녀에게 덮어주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

그녀가 깨어났을때, 김독자는 그녀를 지그시 보고 있었다.
 한수영은 잘못 썼나 싶은 감정이 들었다. 그도 그럴게 김독자는 여태 많은 감정을 돌려받았지만 한수영에게는 차가웠다. 그랬기에 덜컥 겁이 날 만 했다. 하지만 김독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 밖이였다.
 "지금까지 많은 감정을 너에게서 받았어. 하지만 어째서인지 어떤 감정도 네게서 느껴지지 않았어. 그런데 방금 네게서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했어. 심장이 터질듯 뛰고, 머리가 지끈거려. 너를 1초라도 더 보고싶어져."
 김독자가 그녀를 계속 바라보았다. 한수영은 무의식적으로 알았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한수영이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야, 나 진짜 너 좋아하는 것 같다."
 "응, 나도 그런 것 같아."
 "영광인줄 알아, 이 미소녀 작가님의 사랑을 받는걸."
 "미소녀라기엔 너무 나이가···"
 "야!"
 "어, 너 울어? 내가 말이 심했나? 미안해."
 "아니, 우는거 아닌···히끅."
 "···여태 고생 많았어."
 "응."







어쩌다보니 이번에도 사두사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