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독자.
한 게임회사의 평범한 계약직 직원이며,
비척거리는 퇴근길에 웹소설을 읽는 것이 취미인 청년이다.
‘그 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제 3148화.
[열람하시겠습니까?]
여느 때처럼 김독자는 읽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다른 날들과 조금 다르다.
그것을 읽은 시간대가 퇴근길이 아닌 깊은 밤이었다는 것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게 이유라면 딱히 놀라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일은 마지막화가 연재됩니다. 감사합니다.
김독자가 10년이 넘도록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이었고,
동시에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다.
+
오랫동안 그 문장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뜻하는 바를 생각해보았다.
마지막이라.
감히 그것을 상상할 수가 없다.
13년 동안 김독자는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유일하게 그 소설만을 읽어왔다.
돌이켜보면 13년이라는 세월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같지도 않은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했고,
학창 시절,
왜인지 이유 모르고 일진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했다.
그리고 사회.
그에게는 척박한 사막이었고, 적응하기 힘든 공동이었다.
이전의 시간은 분명한 악의를 품고 그의 곁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나쳐 갔다.
그는 울지 않도록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숨을 수 있는 벽장을 던져준 소설이 있다.
그는 그 벽장에 들어가 소설을 읽었고,
그가 그 벽장에 숨을 때 만큼은, 시간의 흐름이 점점 빨라져만 갔다.
+
이제는 성인이 되고도 십년을 바라보는 김독자가 있다.
눈은 화면 빛에 비추어 더 촉촉해 보였다.
그는 지난 시간의 향수에 취하는 것이 이렇게나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소설과 함께한 모든 기억들을 떠올리자,
아직 완결되지도 않은 것에 대한 여운이 몰려왔고,
늦은 시간에 너무 많을 것을 생각했을까,
허리를 젖히게 만드는 피로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모든 것이 합쳐진 알 수 없는 고양감과 함께,
김독자는 그 날 밤 잠에 들었다.
***
‘또...... 그 꿈인가.’
“......녀석 왜 저렇게......?”
“......창문 뛰어내렸......군요.”
김독자는 근 며칠간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은 병원 침대차에 누워있고,
정체모를 사람 한 명이 곁에서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는 꿈.
그리고 그 장면을 그가 전지적인 입장에서 지켜보고 있는 꿈.
하나는 어린 시절 그의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였고,
다른 하나는...... 모르겠다.
분명히 사람이었지만, 어떤 형태로도 표현할 수 없는 체(體)였다.
의식이 흐린 건지 꺼진 건지도 알 수 없어 보이는 어린 그는,
그녀의 말을 최대한 들으려, 아니, 듣고 싶어 하는 듯 했다.
이 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김독자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어린 자신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지몽은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 꿈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말 과거의 내가 겪었던 일을 보여주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르겠다.’ 이다.
머리 속을 샅샅이 뒤져봐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다.
기껏해야 초등학생 5학년 정도 되어보이는 소녀가 어린 그의 손을 잡았다.
“어떻게...... 어떻게 좀 해봐.”
“걱정마시죠.”
그의 손을 잡은 소녀는, 어딘가 급해보였다.
마치 오랫동안 찾아왔던 이를 드디어, 드디어 만났는데,
도대체 왜 이런 모습으로 있냐고 묻는 듯 했다.
어느새 다가온 의료진은 소녀를 떼어내고,
어린 그가 누워있는 침대차를 어딘가로 옮겼다.
소녀와 다른 이는,
옆 병동으로 옮겨지는 김독자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조용히, 아주 조용하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그로부터 발걸음을 돌렸다.
소녀는 굉장히 어려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행동하는 모습은 성인의 김독자보다도 더 성숙해보였다.
그렇게 그들이 병원 출입문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김독자는 생각했다.
‘전에도 이때쯤 깼었나......’
그렇게 꿈으로부터 벗아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찰나에,
아주 먼 곳으로부터 이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
“---!”
무언가 잘못되었다.
지금 꾸는 것은 전에는 진행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꿈치고는, 이어지는 내용엔 개연성이 충만했다.
“--- 열 다섯 살에 ---을 읽었다고 ---.”
“예, ---.”
“만약, ---! 읽지 못하면 ---?”
“---?”
“---!”
귀 끝에서 들려오는 이명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갑자기 이명이 들리는 까닭이 무엇일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만든 것 같은 느낌이 있었고,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의도는 지금의 김독자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했다.
조금씩 잠이 물러가는 것 같았다.
천천히 돌아오는 현실의 의식을 외면한 채,
김독자는 마지막까지 모든 장면을 보고, 기억하려 했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확실하게 본 것은,
소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작지만 분명한, 그런 눈물이었다.
이제는 거의 느낄 수 있는 현실의 감각 속에서,
김독자는 저 눈물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점점 심해지는 이명과 함께,
그리고 가쁘게 헐떡이는 숨과 함께,
김독자는 잠에서 깨어났다.
오늘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의 마지막 화가 연재되는 날이다.
***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새벽이었다.
김독자는 그런 마음을 식히기 위해 멍하니 창가로 다가갔다.
창백한 하늘 저 너머에서 모든 것을 비추는 빛이 밝아오고,
별들은 조금씩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해가 뜨고 있는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그 날 따라 별들은 다른 때보다 밝았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몇몇 별들도 보이는 것 같았다.
마치 ‘내 존재를 곧 알 수 있을거야.’ 라고 표현하듯이,
별들이 함부로 반짝이고 있었다.
꿈은 눈을 뜨면 금방 잊어버린다.
어디선가 그런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김독자는 그 꿈 만큼은 절대로 잊어버릴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은 이 세상 모든 꿈에 전지적인 영향을 미치는 듯 하다.
며칠간 반복되는 같은 꿈에 시달려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던 김독자.
이 아침에도 어김없이 밀려오는 끔찍한 피로감에 겹쳐,
꿈은 다른 이야기들을 위해 김독자의 머리 속에서 조금씩 물러나고 있었다.
시간은 이른 새벽이었지만,
벌써 창 밖에는 출근을 하는 모습의 사람들이 하나 둘 보였다.
김독자는 여느 때처럼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출근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는,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집 밖으로,
그는 발을 내딛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아니, 있을 수가 없었다.
13년 동안 항상 그래왔듯이,
그는 오늘 밤 실현될 소설을 다시 한 번 읽는다.
그렇게 김독자는 마지막 출근길을 나섰다.
***
김독자의 집은 지하철역과 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 잠깐 동안에도,
오늘 밤 올라올 마지막 화를 위해서 스마트폰을 켰다.
모든 등장인물에 몰입할 수 있도록 귀에는 이어폰을 꼈고,
단 한 자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고개는 화면에 고정했다.
김독자는 집중했다.
오늘이 아니라면 다시는 이것을 읽을 수 없다는 것처럼.
항상 똑같은 출근길이었기 때문에,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 본능적으로 장애물들을 피하며 걸을 수 있었다.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어느새 역 입구에 다다랐다.
스마트폰을 놓을 생각이 여전히 없어 보이는 김독자.
그가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다리를 뻗었다.
그 순간.
“---!”
“---?”
다시 한 번 먼 곳으로부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들려왔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황급히 귀에 꽂은 이어폰을 만졌다.
소리는 그가 오늘 새벽 꾼 꿈에서 겪은 이명과 비슷했지만,
김독자는 그 소리가 자신이 꿈에서 들은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김독자가 다시 소설에 집중하면서,
꿈은 어느새 김독자의 머리에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다만 두 소리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머리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귀에 박힌 이어폰 밖에서,
“---.”
누군가가 그를 향해 보내는 소리같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
분명히 의미가 담긴, 굉장히 서글픈 소리였고.
그 의미를 쉽게 추측할 수 없었지만,
“---!”
마치, 김독자를 부르는 소리같기도 했다.
제발,
나를 한 번만 봐달라고.
내가, 너를 보려고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나를 알아보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너가 정말 보고싶었다고.
소리의 주인이 간절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로의 마음은 두 존재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김독자는 귀가 찢어질 듯 심해지는 이명 속에서도,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지금 뒤를 돌아보면,
그가 읽고 있는 이야기는 흐름이 끊기게 된다.
한 번 등장인물들의 세계에 동화(同化)된 김독자는,
그곳에서 나올 생각을 잃는다.
***
‘제발...... 뒤를 좀 돌아봐봐......’
가빠오는 숨과 함께,
흐려져만 가는 자신의 자아를 무시한 채,
나는 그를 필사적으로 쫓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다가갈수록,
그는 조금씩 더 멀어져만 갔다.
‘아...... 제발......’
다리가 점점 떨린다.
피로에 젖은 몸이 아파온다.
머릿속에서는 다른 누군가가 나를 쫓아내려고 하고 있었다.
“---!”
제발,
“---!”
한 번이라도 좋으니,
“---!”
나를 알아봐 줘.
이제 나도 힘들거든.
더 이상 힘이 없어.
하지만, 내 자아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
너가 내 소설에 대해서도 그랬듯이.
+
그녀는 다시 한 번 힘을 냈다.
다시 그를 향해 달린다.
*
이제는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소리도 거의 사라졌다.
그의 양 어깨에는 또 다른 이들의 어깨가 부딪혔다.
어젯밤 피로감에 제대로 읽지 못했던 3148화.
말도 안 된다.
이 이야기가 오늘로 끝이난다니.
김독자는 지하철에 탑승하면서까지 생각했다.
‘오늘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누군가의 손이 가늘게 떨리며 힘없이 다가온다.
무언가가 성립되고 있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읽으면 돼......’
‘톡.’
‘......?’
바로 이것이.
‘독자’와 ‘작가’의 만남이 시작된 순간이다.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 역에서 그 정도의 감각은 누구나 무시하겠지만,
이건 달랐다.
김독자는 등줄기에 오소소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평범한 사람들의 만남이 아니었다.
대체 누군지 확인을 해야만 했다.
읽던 소설까지 포기한 채 김독자가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밀려든 인파에 의해 앞으로 떠밀린 김독자는,
그게 누구인지는커녕,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지하철의 문이 서서히 닫힌다.
만약 내가 창문가에 있다면 좋을텐데.
하지만, 붐비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치, 김독자가 그랬던 것처럼.
열차가 조금씩 움직인다.
관성에 밀려 모두가 흔들리고 있었다.
찰나, 창문 밖이 보이는 작지만 확실한 틈이 만들어졌다.
그 사이에, 김독자는 절대 눈을 떼지 않았다.
어렴풋이 자신의 머리를 긁는 여성의 모습이 보인 것 같기도 했다.
순간이 지난 후,
다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그 틈마저 막아버렸다.
김독자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지만,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린 것은 잠시 후의 일이었다.
그렇게 김독자는,
그 저녁 있을 모든 것의 마지막을 기다렸고,
동시에 모든 것이 시작될 그 밤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렇게, 현실로서의 김독자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
.
.
.
.
.
.
“......뭐야? 나 왜 여깄어?”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뒤틀리고, 끊어지고, 마침내 겹쳐지고,
그렇게 정상일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아 시바, 오늘 연재분 아직 다 못 썼는데!”
이 순간은 다시 한 번 반복될 것이다.
이상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혼자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독자,
‘제 3149화. [열람하시겠습니까?]
.
.
.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주인공,
‘「이제 몇 개는 잊어버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리고 작가.
‘「그것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살아남을 거란 사실이다.」’
언젠가는 잊혀져 막을 내리지만,
지금처럼,
PM 7:00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것이 있다.
[제 8612 행성계의 무료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메인 시나리오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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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느낀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배경은 전독시 533화랑 535화임 시간많은 사람은 같이 읽는 거 추천하긴 함ㅋㅋ
사실 배경이지 시점만 한수영에서 김독자로 바뀐거라고 생각해도 됨
전독시 처음 읽으면서부터 써보고 싶었던 건데 드디어 쓰네 한 1주 걸린듯
이해 안가는 거나 피드백은 댓글ㄱ 존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