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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첫 번째 조건'을 완수하신 분도 계시고, 다들 열심히 하시는군요. 역시, 이래야 재밌는 법이죠.]
어느덧 4번째 시나리오도 후반부에 진입했다. 아마 '첫번째 조건'을 완수한 왕은 한수영이거나 폭군왕이겠지.
[잠시후 '두 번째 조건'이 공개될 테니, 다들 기대해주시기바랍니다!]
나는 유상아, 이길영을 보며 말했다.
"서두르죠. 도깨비에게 '잠시 후'는 생각보다 기니까요."
나는 [3인 던전,'침구동인의 장']을 클리어하여 얻은 상평통보를 꺼내며 말했다..
"저희는 지금부터 '사인참사검'을 얻을 수 있는 던전으로 갈 겁니다. 아까 얻은 '상평통보 세 개씩 주세요."
"하지만, 저희는 사인참사검을 얻지 않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네, 저희는 검을 얻으러 가는 게 아닙니다."
던전에 집입하되 검은 얻지 않는다.
이 말에 담긴 의미를 두 사람은 동시에 이해했다.
"깃발을 빼앗는다는 거군요."
"그럼 이제부터 다 죽여도 되죠?"
서로 다른 의미로.
유상아는 놀란 눈빛으로 이길영을, 이길영은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유상아를 바라보았다.
"형, 마무리는 제가 할게요."
역시 이길영. 이번에도 내가 사람의 목숨을 끊지 못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유상아가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아마 유상아는 이 너머에서 깨달을 것이다.
멸망 이전에 세계에서 우리가 알던 윤리는 이제 없다는 것을.
달칵!
마지막 10번째 상평통보를 끼우자 문에서 환한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10개의 상평통보를 사용해 숨겨진 장(場)에 진입이 가능합니다.]
[숨겨진 장,'북두칠성의 장'에 진입하시겠습니까?]
이 던전에서 보라색 깃발을 지닌 왕들이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내 사냥감들이 한 곳에 있다는 뜻.
['북두칠성의 장'에 진입하였습니다.]
던전의 문을 열자, 뜨거운 공기와 역겨운 혈향이 풍기기 시작했다.
눈이 갑작스럽게 비친 빛에 적응하자 보인 것은 사람을 연료로 하여 밝게 타오르는 거대한 모닥불이었다.
그리고 그 역겨운 모닥불 주위에 몇 명의 사람들이 나의 일행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뭐냐? 신입이냐?"
한 녀석이 시선을 끌고 나머지가 뒤를 잡는다. 너무나 뻔하지만 너무나 잘 통하는 고전 전술.
"왕은 누구지? 너냐? 아니면 옆의 여자? 꼬맹이는 아닐테고."
[성좌,'긴고아의 죄수'가 시답잖은 훼방에 코를 팝니다.]
[성좌,'달빛에 숨은 여인'이 당신의 안위를 걱정합니다.]
[상당수의 성좌들이 당신의 행동을 기대합니다.]
기대하면 부응해줘야겠지.
"이봐! 왜 대답을..."
스걱.
[부러지지 않는 신념]의 새하얀 검신(劍身)이 허공을 긋자, 사내의 입이 한순간에 베어졌다.
그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한 옆의 사내가 외쳤다.
"젠장! 그냥 죽여!"
이 순간 만을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품에서 무기를 꺼내는 사람들.
"뭐,뭐가 이렇게 빨...!"
민첩의 앞자리가 3을 넘거나 보법 스킬의 레벨이 높은 사람은 현 시점에서 손에 꼽는다.
그러니 내 눈앞에 사람들은 결코 나의 움직임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스가각!
한 번의 칼질이.
"크아악!
손을 자르고.
스걱!
"커헉!
발을 잘랐다.
잘려나간 팔다리가 비현실적으로 허공을 날며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에 뒤로 다가가 조용히 수혈을 짚었다.
[전용 스킬.'점혈 Lv.1'이 발동합니다.]
팔다리를 자르고 수혈을 짚다니. 아마 아스모데우스도 이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혹시라도 누구 하나라도 죽게 된다면 내 특성,'불살의 왕'은 그 즉시 사라지고 말테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무리들이 쓰러지자 나는 이길영을 불렀다.
"부탁할게."
이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망치를 들고 쓰러진 무리를 향해 다가갔다.
퍽! 퍽!
이길영의 망치가 움직일때마다 사람들의 숨통이 하나, 둘 끊어졌다.
두 번째 보는 거지만 꽤나 살발한 손놀림.
보다 못한 유상아가 나섰다.
"내,내가 할게 길영아."
"...제가 할 수 있는데요?"
"그래도...내가 할게."
유상아는 내게서 등을 돌리며 이길영보다 훨씬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남은 사람들의 목숨을 끊었다.
전 회차에서도 이번 회차에서도 유상아는 어쩌면 나의 행동에 대해 경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들어서 유상아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지만, 그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의 목숨을 끊은 유상아의 손길이 가는 떨림이 일었고, 이내 잦아들었다.
"...앞으로도 이러겠죠?"
"네,어쩌면 더할 수도 있습니다."
"길영이 일은 앞으로 제가 대신할게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문제 없어요. 계란 깨는 거랑 비슷해요."
사뭇 다른 유상아의 비유. 애써 담담한 척하는 듯 했다.
시나리오를 겪고 또 겪다보면 이것보다 더 한 상황이 나온다.
몇 번이거나 무너지고 몇 번인가 포기하고 싶어도.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
나와 일행들은 쓰러뜨린 사람들의 아이템을 수거했다.
[2300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아이템 '동의보감-잡병편(상)'을 획득하였습니다.]
이정도면 꽤나 짭잘한데.
아이템을 확인하던 중 박수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모닥불 너머에서 이쪽을 보던 사내 중 하나가 웃음을 띄며 다가왔다.
등 뒤에 멘 커다란 창, 옷에 감쳐져 있어도 탄탄해 보이는 근육.
그 사내의 웃음을 보며 나도 미소를 지었다.
"대단한 솜씨군요. 왕이 없는 사람들 중에서 한가닥 하는 놈들이었는데."
잘 알지. 그리고 너도.
누가 눈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분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성좌,'거짓된 종말의 설계자'가 당신의 표정을 보며 혐오감을 표출합니다.]
[성좌,'구원받은 곤충의 왕'이 당신을 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오랜만이다. 한수영.
후기 : 다 쓰면 너무 길어질거 같아서 짤랐는데 연결이 조금 부자연스럽다. 
다음은 왕이 없는 세계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