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활자들이 설화를 이루며 병실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한수영이 문을 살며시 밀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었다. 자신만의 독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수영, 왔어?”


수영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자신의 독자를 향해 몸을 날려 품에 안겼다. 


“흐윽.. 바.. 바보야.. ㄴ...내가...흑.. 얼마나... 기다렸는데...흐윽..”

“...그러게. 좀 늦었다, 그치? 미안해.”


미안하다... 김독자 입에서 벌써 몇 번째 나온 말인지도 모르는 말이었지만 누구도 그 말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병실 앞에 서서 얼이 빠져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먼저 정신차린 것은 이길영이었다. 


“독자 혀...”


김독자에게 달려가려는 이길영의 손을 유상아가 붙잡았다. 


“누나..? 왜 그래요, 형이잖아요!” 


유상아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병실 문을 닫았다.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있었다. 


“우리 중에 독자 씨 살리려고 제일 많이 노력한 게 수영 씨잖아요. 하고 싶은 말도 많을텐데 둘이 이야기하라고 해요. 우리는 내일 다시 오죠.”


당연스럽게도 몇몇 사람들이 항의했다. 


“전 잃어버린 탄피를 지금 바로 확인해야겠습니다!”

“언니,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우리도 많이 보고 싶었다고.”

“상아 씨, 얼굴이라도 보고 가면 안 될까요?”


그러나 한 남자의 말로 소란은 일단락되었다.


“유상아 말이 맞다. 내일 오도록 하지.”


유중혁은 고개를 돌려 병원을 빠져 나갔다. 


“사부...” 

 


 


한수영은 독자의 품에서 보고 싶었다는 말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병실 밖의 사람들이 둘만의 시간을 위해 자리를 피해주었다는 것을 확인한 김독자는 한수영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몸으로 꾸준히 설화들이 흘러들어오며 그의 작아졌던 몸은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한수영”

 

수영이 고개를 들자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는 독자가 보였다.


“나 이제 어디 안 가. 우리 작가님 글도 봐줘야지.” 


그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있었다. 잠시 후 한수영은 김독자에게 그가 없었을 때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그제야 김독자는 자신이 완전히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제천대성이랑 우리엘이랑 염룡이가 아이돌을”

“한수영”

“어?”

“고마워”

“그 말 오늘만 10번 넘게 들은 거 알지?”

“알아. 그래도 고마워.”

“고마우면 레몬 사탕이라도 사주던가.”

 

그 말을 들은 김독자가 갑자기 자신의 아공간 코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야, 너 뭐해?”


김독자가 아공간 코트에서 레몬 사탕을 꺼냈다. 모든 일이 끝나면 한수영에게 주려고 김독자가 가지고 있던 사탕이었다. 레몬 사탕을 깐 김독자가 한수영의 입에 레몬 사탕을 넣어주었다. 


[설화 파편, ‘레몬맛 사탕의 추억’이 흐뭇해합니다.]


“뭐야, 한수영 너 이것도 설화로 갖고 있었냐?”

“갖고 싶어서 갖고 있던 거 아니거든!”


사탕을 입에 물고 목소리를 높이는 한수영이 귀여워 보였다. 


“한수영”

“또 왜. 말 끊지 마, 지금 하이라이트라고,”

“나 나가고 싶어.”

“뭐? 또 사라지려고? 내가 그 꼴 다시 볼 것 같아?”


한수영의 이야기를 듣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감정이 올라왔다. 내가 또 다시 말도 없이 떠나버린 바람에 저들이 얼마나 슬펐는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김독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한 방울, 두 방울 침대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걱정 마, 이제 너 두고 어디 안 갈게.”

“야, 이렇게 좋은 날 왜 울어? 나가자, 그래. 어디 가고 싶어? 누나가 인형 뽑아줄까?”


한수영이 자신의 소매로 김독자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잠시후 김독자는 김독자 공단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신의 정체를 당분간은 숨겨야 한다고 한 유상아의 말 때문에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중무장했지만 그럼에도 1000년도 훨씬 넘는 세월이 지난 후에야 돌아온 이곳이 너무나 좋았다. 어머니도 좋아 보이셨다. 그러니까... 두 분다 좋아 보이셨다. 이미 유상아가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 준 덕분에 어머니는 나에게 웃어주셨다.


“잘 돌아왔구나.”

“유상아 씨가 오늘은 우리 날이 아니라는구나. 우리 며늘아가랑 잘 놀고 오렴.”

“누가 누구 며늘아가야!”


그렇게 말하는 한수영의 얼굴이 토마토만큼 붉어졌다. 예상 못했던 것은 자신의 얼굴도 조금 붉어졌던 것이다. 


 [전용 스킬, ‘포커페이스 Lv.14’를 발동합니다!]


기차에서 처음 200년 정도 김독자는 동료들을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한수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는 그도 모른다. 어쩌면 올림포스의 빌어먹을 예언 때문에 자신 주위의 여자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다가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한수영을 떠올릴 때마다 김독자는 마음이 저려왔었고 눈물을 흘렸었다. 고개를 돌린 한수영이 자신을 물끄럼히 쳐다보는 김독자와 눈이 마주쳤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글쎄? 이쁨이 묻은 거 같기도?”

“아하. 이제야 내가 천재 미소녀 작가라는 걸 아셨다?”


그런 말을 했지만 한수영의 심장은 세차게 뛰었다. 김독자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이 들킬까 봐 포커페이스를 발동했음에도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 같았다. 


“뭐래. 인형 뽑아준다매. 뽑으러 가자!”



 


인형 뽑기 기계 중 하나에 ‘김독자 컴퍼니’라고 적혀있었다. 김독자가 검은 날개와 흰코트를 하고 있는 앙증맞은 인형을 보며 물었다.


“저거... 나냐?”

“ㅇㅇ”

“그럼 저게 너고?”


김독자는 옆에 있는 귀염뽀작한 단발머리 인형을 가르키며 물었다. 


“어...아마도?”

“그럼 나 저거 뽑아줘.”

“왜. 내가 그렇게 좋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한수영은 내심 기분이 좋았는지 인형 뽑는데에 열중했다. 그러나 노력과는 다르게 5만원을 넘게 쓰고서야 간신히 인형을 뽑았다.  


“너... 잘 하는 거 아니었냐?”

“오늘 처음 해보는 거거든! 난 이렇게 어려울줄 몰랐지!”

“나와 봐”


김독자는 2번 만에 자신의 인형을 뽑았다. 


“너... 왜 잘 해?”

“그러게다. 나도 처음 해보는 건데에?”

“죽을래?”

“쥬글래?”

“진짜 죽는다?”

“뭐래 ㅋㅋ. 이거 가져.”


김독자가 자신을 본 딴 인형을 한수영에게 건넸다. 


“헤... 딱히 필요는 없지만 성의를 봐서 가져줄게.”


그 뒤로도 김독자와 한수영은 공단과 시내를 누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시간은 2시가 넘어있었다.

 

“이제 슬슬 들어가자.”

“더 있어도 되는데?”

“너 환자야. 가자.”


한수영 또한 아쉬웠지만 이제는 다시는 떨어질 일이 없기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김독자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고백하고 싶었는데...’


 


 

“내일 보자.”


한수영이 웃으며 김독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김독자도 멋쩍게 손을 흔들었다. 병원 밖으로 가는 한수영을 물끄럼히 쳐다보던 김독자가 한수영을 불렀다.


“수영아”


성을 떼고 부른 것이 내심 마음에 들었는지 한수영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그... 있잖아. 고마워.”


김독자는 말하고도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고마워가 아니라 좋아해라고 했어야했는데...


“내가 그 말 그만하라 했지. 내일 사람들 많이 올 거니까 일찍 자.”

“아.. 어.. 그래.”


  



그날 밤 김독자는 한수영 인형을 물끄럼히 쳐다보며 말했다.

 

“수영아, 그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했... 이게 아닌데. 그냥 가볍게 할까? 수영아 좋아해? 아니야. 수영아, 너만의 독자가 되고 싶어. 아니야...”


시계는 어느덧 3시를 향했다.

 


 


같은 시각 한수영은 김독자 인형을 품에 안은 채 자고 있었다.


“김독자... 음냐... 좋아해..”






다음날 아침 유상아와 함께 아침 일찍 찾아온 한수영은 김독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일찍 자랬지! 너 또 웹소설 봤냐?”


한수영은 병실을 돌아보았다.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선반에는 자신의 인형이 있었다. 그것을 본 한수영은 내심 기뻤다.


“핸드폰 없거든. 웹소설을 어떻게 봐.”

“그럼 독자 씨 어제 밤에 뭐하셨나요?”

“아... 그 오랜만에 돌아온 세상이라 반가워서 창문 밖에 좀 봤습니다.”

“그렇다네요 수영씨”

“아니... 뭐... 쨋든 오늘 사람들 많이 오는데 졸면 니 책임이다.”


잠시 후 병실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자신과 함께 했던 동료들과 성좌들, 스승님, 어머니 모두가 모였다. 아이돌인 JUS는 공연 일정도 취소하고 왔다고 했다.  


“아저씨~!”

“형~!”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었는데 어느새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독자의 양옆에서 그를 끌어안았다.


“이번에는 자유의 여신상에 묶어놓을 까봐요?”

“탄피를 잃어버리는 짓은 다시는 하지 않을 겁니다!”

“헹. 이놈아 돌아왔으면 이 스승님부터 불렀어야지 않겠냐?”

“구원의 마왕!!! 보고 싶었어!!”

“쳇. 나중에 집 보러 오면 싸게 줄테니까 빨리 퇴원이나 해라!”

“막내야아아아아! 나 안 보고 싶었냐!”

“김독자! 보고 싶었엉!!”

“오랜만이구나. 후인이여.”


그리고.. 


“돌아온 걸 환영한다, 김독자. 좀 많이 늦었군.”


그렇게 말한 유중혁은 어딘가 늙어있었다. 아마 자신 때문일 것이라고 김독자가 생각했다. 


“유중혁, 미안ㅎ...”

“아! 아저씨! 어제 수영 언니랑 뭐했어?”


이지혜였다. 저 눈치없는 성격은 여전하구나.


[전용 스킬, ‘포커페이스 Lv.14’를 발동합니다!]


하마타면 늦을 뻔했다.


“그냥 공단이랑 시내 돌아봤어.”

“에이... 그게 끝이 아닐걸?”


이지혜에게 변명을 하는 모습을 유중혁이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이외에도 너무 많은 목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김독자는 그들이... 시끄러웠다. 한 명, 한 명 너무 반갑고 고맙고 미안했으나 너무 많았다. 역시나 유상아가 나섰다. 


“자! 자! 다들 밖에 나가서 한 명씩 들어와서 이야기 나누죠.”


그러나 그 말은 다수의 사람들의 목소리에 묻혔다. 


‘쩝. 이 방법은 이제 안 쓰려 했는데.’


[성좌 ‘구원의 마왕’이 유상아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일순간 병동이 조용해졌고 일행들은 유상아의 말을 따랐다. 한수영도 그들과 함께 나가려하자 김독자가 한수영의 얇은 손목을 붙잡았다.


“왜? 뭐 필요해?”

“아니. 넌 그냥 여기 있으라고. 얘들이 이상한 얘기하면 중재할 사람은 있어야지.”


명백히 김독자의 사심이었다. 

 


 


어느새 모두와 이야기를 마쳤다. 창문을 보니 어느새 해는 지고 없었다. 특별한 소란은 없었다. 우리엘이 나를 안으려 하자 환자에게 미쳤냐며 한수영이 화낸 것 빼고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1층에 모여있는 기자들이 보였다. 이설화가 병원 경비원들에게 부탁하여 병원 안으로는 못 들어오게 했다고 한다. 저들까지 들이닥쳤으면 김독자는 분명히 녹초가 되었을 것이다. 


꼬르륵 


김독자의 배에서 난 소리였다.


“김독자 배고파?”

“...조금?”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러게... 치킨?”

“알겠어. 좀만 기다려봐. 치킨이 어디가 맛있더라...”


아까부터 독자의 옆을 지키느라 힘들었을 법도 한데 수영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독자는 한수영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긴 속눈썹에 매력적인 눈물점, 어디 하나 아름답지 않은 부위가 없다고 생각했다.

 

‘콩깍지가 제대로 씌였나 보군...’


치킨을 기다리면서 독자와 수영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가 교수를 한다고?”

“왜 꼽냐? 나 나름 잘 가르치거든.”

“얘들이 너 어려보인다고 무시할 것 같은데?”

“그래서 무도수 안경 낀다 왜!”


그때 병실이 조심스레 열렸다. 아일렌과 이설화였다. 


“구원의 마왕님, 설화 파편은 자기가 알아서 모두 정리되어서 더 이상 치료는 필요없을 것 같아요.”

“진료 상으로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서 내일 퇴원하셔도 될 것 같아요.”

“이열~ 김독자 의외로 튼튼한가봐?”


한수영이 내 옆구리를 쳤다. 


“악.... 야 시스템 땜에 니 근력 복구됐어... 치면 아프다...”


“알고 그랬는뒈에”


아일렌과 이설화는 우리를 보며 웃고는 병실을 나갔다. 


“야. 근데 기자들 때문에 치킨 배달 올 수 있냐?”

“배달 아닌데? 내 아바타가 테이크아웃 하러 갔지. 이제 다 온 것 같은데?”


병실 문이 열리고 한수영의 아바타가 치킨과... 맥주를 가져왔다.


“좋은 시간 보내, 진짜.”

“닥쳐.”


한수영은 빠르게 분신을 회수하였다.


“야 김독자 일로 와. 먹자!”

“ㅇㅇ 근데 맥주도 시켰냐?”

“야 치맥이 근본인 거 몰라? 누나가 시켜줬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먹어야지, 불만이 많아?”


그렇게 말하며 한수영이 맥주 캔을 따고 tv를 켰다. 잠시 후, 술에 취한 두 남녀가 병실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느새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김독자는 지금이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영아”

“너 뭐야아~? 어제도 그렇고 성 빼고 부르네.”

“중요한 얘기야, 수영아. 들어봐.”

“알겠어 독자야~”

“‘가장 오래된 꿈’이 되고 너 생각 많이 했어. 많이 보고 싶더라. 그러니까 오늘부터 나만의 작가가 되어줄 수 있어? 난 앞으로 너만의 독자가 되고 싶어.”

“읭? 진짜루? 알게써... 내일부터 천천히 써야겠다. 멸살법보다는 훨씬 재밌을 거야! 기대해 김독ㅈ...”



김독자의 어깨에 한수영이 기대었다.


쌔액쌔액...


아무래도 잠이 든 것 같았다. 나름 고백이라고 생각하면서 했는데 한수영은 전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은 듯 했다. 


“그게 아닌데...” 


김독자가 조심스럽게 잠든 한수영의 앞머리를 들추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 말한 건데...”


 



잠시 후 김독자는 한수영을 조심스럽게 안아서 침대에 올려놓았다. 자는 모습이 천사 같다고 김독자는 생각했다. 물론 우리엘 같았다는 건 아니다. 그저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김독자는 그 옆에 누웠다. 레몬 향이 코에 감돌았다. 김독자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김독자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부신 햇빛이 창문을 통해 비치자 한수영이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잠들어있는 자신이 사랑하는 김독자를 보았다. 


‘아, 어제 치맥했었지... 잘 생겼다.. 김독자...’


한수영이 김독자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찰칵!


깜짝 놀란 한수영이 뒤를 돌아보았고 그 기척에 일어난 김독자도 병실 문을 바라보았다. 이설화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야! 이설화! 그니까 이게... 내가 설명할 수 있어! 이리 와봐! 야! 이설화 어디가!”

“흐응~ 무슨 얘기를 듣든 변명일 것 같은데... 남녀 둘이 한 침대라... 잠시만요 김컴 단톡방에 올리고 얘기해요.”

“야! 이설화 거기서!”


한수영이 이설화를 쫓아가는 것을 보고 김독자는 미소를 지었다.






30분 즈음 지났을까 한수영을 따돌린 이설화가 몰래 김독자의 병실로 들어왔다.  


“이제 퇴원하셔도 돼요. 여기 핸드폰이요. 중혁 씨가 샀으니까 나중에 갚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일단 김컴 식구들 전화번호는 다 저장해 뒀어요.”

“아, 감사합니다.”


이설화가 나가고 김독자는 나갈 준비를 하였다. 아공간 코트에 한수영 인형을 고이 넣은 뒤 핸드폰을 열었다. 


[‘최종 수정본’의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멸살법의 마지막 수정본이 도착해 있었다. 김독자는 조심스럽게 눌렀다. 


「당신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그 많던 멸살법은 이제는 한 문장으로 요약되어있었다. 미소를 띈 김독자는 텍본을 삭제했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최종 수정본).txt’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 이제 필요없어.”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최종 수정본).txt’가 삭제되었습니다.]


김독자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을 전에도 느껴본 적이 있었다. 멸살법이 완결된 그 날 지하철에서 느꼈던 감정이었다. 묘한 기분을 끊은 것은 카톡이었다. 


-여러분 이것 좀 보실래요?


김독자가 카톡에 들어갔다. 


‘김컴 단체 톡방’


이설화가 무언가를 올리려했다. 김독자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아마 한수영도 그 카톡을 보고 눈치챘을 것이라고 김독자는 생각했다. 


-사진을 보냈습니다

-와 씨 이거 뭐야

-아저씨 수영 언니랑 그렇고 그런 사이야?

-야 이지혜 닥쳐

-이설화 이거 빨리 지워

-호오. 저희가 가고 나니 그런 짓을 하는군요.

-다 나았나 보네. 자유의 여신상에 둘이 같이 묶어줄까요?

-독자씨 이게 뭔가요?

-다 닥치라고

-니네가 생각하는 거 아니라고

-우리가 생각하는게 뭔데 언니?


김독자는 한수영이 열심히 변명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는 한수영에게 개인톡을 보냈다.


-야. 나 퇴원인데 안 데리러 와?

-아니 기다려봐. 지금 단톡 난리난 거 안 보이냐?

-무시하면 되잖아

-...

-기다려 갈게


잠시 후, 한수영이 [X급 페라르기니]를 타고 도착했다. 레몬 사탕을 입에 문 한수영이 문을 열며 말했다. 


“타. 어디 갈건데?”

“글쎄다. 일단 집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없네,”

“...공필두한테 가자.”

“그 사람이 집을 줄까?”

“줄 걸. 그 아재 츤데레야. 그때 왔을 때도 집 하나 구해준다고 했잖아.”

“그럼 가자.”


김독자가 타자 [X급 페라르기니]가 빠르게 서울 시내를 달렸다.


“그때 생각나네.”

“언제?”

“암흑성 때 우리 둘이 히든 시나리오 깰 때.”


아마 그때가 자신이 한수영에게 반했던 순간이라고 김독자는 생각했다.


“그러게. 그 때만 해도 절대 지금 같은 날은 안 올줄 알았는데.”

“그러게.”

“좋냐? 돌아온 거?”

“응?”

“아니 저번에 누가 그러더라고. 우리가 너를 구하는 게 너가 원하는 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냥 갑자기 생각나네.”


김독자는 물끄럼히 한수영을 쳐다보았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막무가내로 모든 방법을 썼던 그녀가 이제는 자신이 옳은 일을 한 것인지 묻고 있었다.


“수영아”

“어?”

“너가 나를 구하려고 한 노력이 내 생애 가장 큰 선물이야.”

“아... 그니까 내가 잘한거지?”

“응. 고마워, 수영아.”

“근데 너 진지한 얘기할 때마다 내 성 떼더라. 왜 그러는 거야?”

“글쎄다. 예상표절로 맞춰보지 그래?”

“됐네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니 어느새 그들은 으리으리한 부동산에 도착했다. 부동산보다는 성채에 가까웠다.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김독자를 데리고 한수영은 익숙하다는 듯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냐.


저 싸가지 없는 목소리. 공필두였다.


“김독자 집 하나 구해준다며. 집 받으러 왔어.”

-30분 이따가 와라. 지금 일하는 중이야.

“알겠어.”


한수영이 김독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 할래?”

“어.. 좀 쉬고 싶은데.”

“...만화 카페 갈래?”

“오 좋다.”

“요 앞이야. 따라 와.”


가까운 만화 카페에 들어온 김독자와 한수영은 각자 책을 한 권씩 골랐다. 


“너 만화 같은 건 안 그리냐?”

“그림엔 재능 없어. 근데 너 그 약속 안 지킬거냐?”

“무슨 약속?”

“김컴 다 같이 산다며. 얘들 엄청 기대하던데.”

“아 맞다.”


김독자는 그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너는 어때?”

“나? 나는 좋을 것 같긴 한데. 방음 잘 되고 각자 방 있으면.”

“그래..?”


김독자가 핸드폰을 들어 김컴 단체톡에 들어갔다. 아직도 김컴 멤버들은 김독자와 한수영의 관계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여러분.

-저번에 여러분이랑 얘기했던 약속 지켜보려고 합니다.

-어떤 약속이죠?

-저번에 김컴 식구들 다 같이 살기로 했던 거요.

-물론 싫으신 분들은 안 오셔도 됩니다.

-누가 싫어해요.

-오! 우리 다 같이 사는거야?

-아저씨 진짜로?

-돈은 독자 씨가 내는거죠?

-공필두 씨가 사주지 않을까요?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유중혁도 좋다고 한 건 의외였다. 


-좋아요, 그럼 저랑 한수영이 집 고를게요.

-???

-왜 또 수영 언니랑 있어?

-둘이 사귀는 거 맞다니까


김독자가 아차 싶어 옆을 보니 한수영이 째려보고 있었다.


“말 조심 안 할래?”

“아..하하..하..”

“30분 지났어. 집 보러 가자.”


툴툴대며 말했지만 한수영은 내심 기분이 좋았다. 다시 공필두의 집 앞에 도착하자 공필두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군. 이래서 어린 것들은...”

“안 늦었는데.”

“30초나 늦었어.”


공필두는 따라오라는 듯 앞장 서서 걸어갔다. 그걸 지켜보던 김독자와 한수영은 눈을 마주치고 조용히 웃었다.  


“빨리 안 오면 두고 간다.”


“갈거야. 기다려.”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집을 둘러보았다. 


“난 3번째로 본 데가 제일 좋은 것 같은데. 어때, 한수영?”

“나도 거기가 제일 나은 것 같은데.”

“하여간, 비싼 건 잘 알아봐 가지고.”

“사주는 거지?”

“뭐? 내가 이걸 왜 사주냐?”

“너가 저번에 집 하나 얻어준다며.”

“젠장. 어린 것들이 돈이나 밝히고 말이야.”


어찌어찌 꽁으로 집을 받은 독자와 수영은 다른 김컴 식구들한테 집 주소를 보낸 뒤 자신들의 방을 정해 짐을 옮겼다. 한수영과 독자 모두 침대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서로의 인형을 놓고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모든 김컴 멤버들이 모였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술과 치킨, 피자 등을 사들고 왔고 유중혁은 남이 만든 건 안 먹는다를 시전하며 직접 요리를 했다. 화장실에 갖다 온 김독자가 물었다.


“..지금 뭐해?”

“형, 진짜 몰라? 이사 왔으면 당연히 파티해야지!”


‘쩝... 오늘은 좀 쉬려고 했다만...’


그렇게 그들은 광란의 파티를 시작했다. 






김독자가 예전에도 느꼈지만... 이지혜는 술에 약한 것 같다. 2잔 마시고 저 지경인 걸 보니.


“술이 들어간다! 쭈욱~ 쭉쭉쭉!”

“지혜 언니... 그거 유행 지났어..”

“뭐어어어? 유승아 언니 무시하니이?”

“아니 내가 언제 무시했어...”

“너네는 미성년자니까 안 마셔서 모르겠지마아아안 술이 말이야. 은근 쎄다고오오!”

“...왜 급발진일까.”

“그러게.”


신유승과 이길영은 미친 사람을 본다는 듯 이지혜를 쳐다보았다. 


“야 꼬맹이들. 늦었다. 얼른 자. 니네는 내일 학교 가야 되잖아.”


한수영의 말이 맞았다. 시계는 어느덧 새벽 2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길영과 유승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둘 모두 유상아의 옆 방이었다. 유상아가 엄마 역할을 할 거라는 한수영의 판단이었다. 본인 말로는 예상표절을 써다는데 그냥 자신이 하기 귀찮아서 그런 것 같다.


“지혜는 내일 공강인가?”

“응! 밤새 달릴 수 있어.”

“...아쉽군.”

“응? 사부 뭐라고 그랬어?”

“...너 취했다. 자라.”

“시룬데에에”


그러나 유중혁이 주작신보로 이지혜의 뒤로 향해 목을 쳤고 지혜는 그대로 기절하였다. 유중혁이 이지혜를 방으로 들여보내고 나왔다. 어느새 화제는 정희원과 이현성의 러브 스토리로 넘어갔다. 


“아니 그런데 현성 씨가 거기서 진짜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 했다니까요?”

“앗, 그 뜻이 아니었습니까?”

“현성 씨는 눈치를 좀 챙겨야겠어요...”

“내가 봐도 이현성은 눈치가 부족하다.”

“중혁 씨가 할 소린가요?”


김독자는 그 이야기를 듣다가 슬그머니 베란다로 나왔다. 아직 급격하게 들어온 설화의 후유증이 있었는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선선한 바람이 김독자의 머리를 간질였다. 


“여기서 뭐하냐? 어디 아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김독자는 조금 취했는지 볼이 빨간 한수영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야, 안 아파.”

“그럼 왜 나왔는데. 아프면 얘기해라, 괜히 다시 병원 실려가지 말고.”

“진짜 별거 아니야. 걱정 마.”


한수영이 내 옆에 섰다. 


“음~ 공기 좋다. 공필두가 좋은 집 주긴 했네. 야경도 끝내주고 말이야.”


김독자는 한수영을 바라보았다. 미소를 지으며 야경을 바라보는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녀의 단발머리가 바람을 따라 찰랑였고 긴 속눈썹 아래로 달빛이 비춘 눈은 아름답게 빛났다. 


“수영아.”


자신이 말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김독자가 한수영을 불렀다.


“왜 그럴까, 우리 독자님?”


고백을 한다고 불렀으나 정작 한수영의 얼굴을 보니 자신감이 떨어진 김독자였다. 자신 같은 초라한 사람이 그녀 같은 사람과 함께 있을 자격이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김독자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그냥 요즘에 볼 웹소설있냐고.”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야”

“응?”

“너 바보지.”

“갑자기 뭐라는 거야.”

“김독자”


한수영의 자그마한 손이 김독자의 볼을 어루만졌다. 김독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본능적으로 김독자는 지금은 포커페이스를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좋아해. 누구보다 좋아해, 김독자.”


그렇게 말하는 한수영의 얼굴은 점점 더 붉어지고 있었다. 김독자는 눈에 눈물이 고인 것만 같았다. 그가 얼마나 고대했던 순간인가.


“수영아,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그 말을 들은 한수영이 잠시 허공을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작게 웅얼거렸다.


“...유상아야?”

“아니”

“...그럼 됐어.”


한수영이 뒤를 돌아 그 자리를 벗어나려하였다. 김독자는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붙잡았다.


“끝까지 들어줘.”


순간 그를 향해 돌아본 한수영의 표정에는 슬픔과 분노의 표정이 섞여있는 듯 보였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독자는 한 발자국 다가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가 그 사람한테 고백도 했었어. 난 나름 고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 했나봐.”

“이거 놔.”


한수영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서려있었다.


 “그 사람한테 그 사람만의 독자가 될테니 나만의 작가가 되어달라고 했어.”


 그제서야 한수영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평생 나만의 작가가 되어달라고 해야 했나 봐.”


김독자는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한수영, 나도 좋아해. 평생 나만의 작가가 되어줄 수 있어?”


 한수영이 울음을 터뜨렸다. 아까와는 다른 눈물이었다. 안도와 행복의 눈물이었다. 


“바보야... 좀 흐윽.. 제대로 말하라고 말할 거면... 내가 흐윽.. 얼마나 긴장했는데.. 흐윽.. 그리고.. 물어볼 걸.. 물어봐야지.. 난 언제까지나.. 너의 작가야.”


한수영은 김독자의 품에 안겨 자신의 얼굴을 그의 가슴에 파묻었다. 그녀의 모습에 김독자의 얼굴에 미소가 띄었다. 김독자는 자신의 품에 안긴 작은 고양이를 끌어안았다. 


“사랑해, 수영아.”


한수영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으나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김독자가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입술이 김독자의 입술을 포갰다. 김독자의 눈은 커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눈을 감은 김독자가 한수영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그의 혀가 침투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녀의 혀가 그의 혀를 맞아주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베란다에서 한 쌍의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였다. 


[새로운 설화를 획득하였습니다!]


[설화, ‘작가와 독자의 사랑’을 획득하였습니다.]


[새로운 설화를 획득하였습니다!]


[설화, ‘마황을 사랑하는 마왕’을 획득하였습니다.]


[새로운 설화를 획득하였습니다!]


[설화, ‘바람 부는 날의 첫키스’를 획득하였습니다.]


[당신의 네 번째 수식언이 결정되었습니다.] 


[당신의 네 번째 수식언은 ‘한 사람을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독자’입니다.]


“내가 저번에 약속했잖아. 새 수식언 하나 지어주겠다고.”


[성좌, ‘거짓 종막의 설계자’의 두 번째 수식언이 결정되었습니다.]


[성좌, ‘거짓 종막의 설계자’의 두 번째 수식언은 ‘한 사람을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작가’입니다.]


“그때랑 다르게 이번에 우는 건 너인데?”

“너가 울렸잖아. 바보야.”

“알아.”


다시 한수영을 조용히 내려다 본 김독자가 한수영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사랑해. 사랑해, 수영아.”

“나도..”

“뭐라고?”

“사랑한다고 김독자...”


달이 두 사람을 축복하기라도 하듯 그 둘에게 환한 달빛을 비추었다. 싱긋 웃은 한수영이 다시 김독자에게 입을 맞췄다. 그날 밤 둘은 베란다에 앉아 서로에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이야기,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였다. 


“암흑성 때부터 좋아했다고? 꽤 오래 좋아했네. 이거이거 김독자 순정파였네.”

“그러네. 넌 언제부터 좋아했는데.”

“난 그 전우치 아줌마 술법에 걸렸을 때부터?”

“...흑염룡 보고 반한 건 아니지?”

“아니거든”


한수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럼 너도 순정파네.”

“그러게.”


어느샌가 수영은 독자의 어깨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새액새액


그녀의 앞머리를 살며시 넘기며 김독자가 싱긋 웃었다.


“언제나 언제까지라도 사랑할게, 수영아.”


다음 순간 김독자도 잠에 들었다. 유난히 달이 밝은 그 밤에 아름다운 한 쌍의 남녀가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김독자 일어나.”


자신을 부르는 수영의 목소리에 독자가 부스스 눈을 떴다.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자신을 부르는 한수영의 모습에 독자의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베란다였다.


‘아, 맞다. 어제 그러고 그냥 잤지...’


“몇 시야?”

“9시 좀 넘었어. 얘들은 학교 갔고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일하러 갔어. 빨리 일어나기나 해.”


김독자가 무릎에 내려앉은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분명 어제 고백해서 사귀기로 했었는데 한수영의 행동은 평소와 같았다.  


“뭘 봐. 빨리 와. 유중혁이 아침 해놓고 갔어.”


김독자는 한수영을 물끄럼히 쳐다보다가 앞서 가던 한수영을 뒤에서 안았다.


“뭐.. 뭐 해?!”


한수영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침 인사”

“너는 아침 인사를 백허그로 하냐?”

“...싫어?”

“싫지는 않고... 배고파.”


김독자는 싱긋 웃더니 수영의 손을 잡았다. 


“그래. 아침 먹으러 가자.”


 

 


유중혁이 준비한 음식을 플레이팅하면서 독자가 수영에게 물었다.


“근데 사람들이 나 없냐고 안 물어봐?”

“내가 일찍 일어나서 너 어머니들 만나러 갔다고 했지.”

“오. 변명 좋았는데”

“이 정도는 돼야 천재 미소녀 작가님 아니겠어?”

“그리고 나만의 작가님이고?”

“...닥치고 쳐 먹어.”

 

유중혁의 음식은 역시나 맛있었다. 시스템이 복구되면서 요리 스킬이 돌아와서 음식은 전보다도 더욱 맛있어졌다. 한수영은 유중혁이 만든 계란말이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먹고 있었다. 김독자는 그런 한수영을 쳐다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한수영이 그런 김독자와 눈을 마주치고 째려보았다.


“먹어. 환자야.”

“먹고 있어.”

“...내가 그렇게 이쁘냐? 한시도 눈을 못 떼겠어?”

“웅”


쨍그랑


뒤에서 지혜가 접시를 떨어뜨렸다. 


‘아 맞다. 쟤 공강이었지.’


“그...그... 둘이 사귀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그게..”


김독자가 한수영의 말을 끊었다.


“왜 나랑 수영이 관계에 문제있어?”


이지혜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뒤 어머어머하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한수영의 얼굴에서 김이 나는 것 같았다. 한수영의 얼굴이 토마토보다도 붉어졌다. 


“우리 수영이, 부끄러워?”


한수영은 말 없이 독자의 발을 밟은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김독자는 홀로 거실에 서서 무엇이 그리 기분이 좋은지 미소 짓고 있었다. 

 


 


그날 밤 모두가 모여 나와 한수영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둘이 사귄다고요?”

“수영 씨, 혹시 독자 씨한테 협박 당한 거 아닌가요?”

“난 언니랑 오빠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둘이 완전 꽁냥꽁냥 댔다니까.”

“돌아온지 얼마나 됐다고 연애질이냐.”

“와... 어제 둘이 사라졌다 했더니 그런 거였어?”

“형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어?”

“설마설마 둘이 그거 했어?”

“독자 씨, 응원합니다.”

“전 병원 침대에서 그랬을 때부터 알아봤어요.”


한 쌍의 토마토가 붉게 익었다. 둘 다 아무 질문에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참다 못한 한수영이 소리를 질렀다.


“아! 다 닥쳐봐!”


한수영이 김독자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췄다. 


“이게 대답이야. 됐지?” 


그렇게 말하고 한수영은 김독자의 손을 잡고 집을 나갔다. 한수영의 손에 이끌리는 김독자는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그녀가 모두의 앞에서 자신과의 관계를 떳떳하게 밝힌 것이 내심 기뻤다. 


“김독자, 기분 좋냐?”

“...너 같으면 안 좋겠냐?”


한수영이 씩 웃었다.


“나도 아까 니가 지혜한테 말했을 때 그런 기분이었어. 되게... 좋더라”



 


김독자과 한수영의 관계가 들통나자 김컴 멤버들이 난리가 났다. 궁금한 것이 무엇이 그리 많은지 집에 들어가기도 힘들었다. 언제 이야기했는지 스승님은 물론이고 JUS와 어머니들도 모두 알게 되었다. 다행히 두 세 달 정도 지나자 독수 커플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정희원과 이현성 사이의 관계 정도의 주제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자와 수영이 사귀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이들도 그들이 하루종일 꽁냥대는 것을 보니 어느새 납득하게 되었다. 



 


“김독자, 나 다녀올게.”

“웅. 6시에 끝나지? 끝나고 데리러 갈게.”


한수영은 자신만을 위한 글을 쓰기 위해 교수직을 때려친다고는 했지만 그 학기까지는 마무리해야 했기에 아직까지는 출근을 하였다. 수영과 하루종일 함께 있고 싶었던 독자였으나 수영의 일까지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끝나고 데리러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수영이 집을 나서고 다시 독자만의 시간이 되었다. 누워서 웹소설을 넘기고 있던 독자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수영은 마지막 수업을 시작했다. 이제 3시간 후에 다시 그녀의 사랑스러운 남자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수업을 진행하던 수영은 한 학생에게서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학생들에게 큰 관심을 갖지는 않는 수영이었으나 그리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기에 학생들의 대략적인 외형은 알고 있었다. 수영이 그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흐음... 음?! 김독자?’ 


마스크를 썼지만 자신의 남자친구가 분명한 남자는 특유의 생글생글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수영이 한낮의 밀회를 사용했다. 


-너 왜 여깄어?

-너가 누구죠?

-혼날래?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이거 불법 수강이야. 그게 잘못한 거야.

-내가 내 여친 보러도 못 오나?

-이따가 저녁에 스테이크 사 줘. 그럼 용서해줄게.

-알겠어. 수업이나 해.


그의 말대로 수업을 진행하기 했으나 그의 눈치를 보느라 수업은 영 시원찮았다.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하나 둘 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강의실에는 수영과 독자만 남게 되었다. 


“...내 수업 보러 온거야?”

“내 여친이 얼마나 잘하는지 보러 왔지.”

“야! 여기 학교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흐음? 부끄러워?”

“아..아니 그건 아닌데... 수업 어땠어?”

“음... 귀여웠고 또 귀여웠고, 또 그 뭐더라 귀여웠고..”

“그만 거기까지.”


그녀의 얇은 손가락이 김독자의 입술을 눌렀다. 수영은 재빨리 짐을 챙기더니 독자의 손을 잡았다. 


“자! 스테이크 먹으러 갈까?”


그녀의 활기찬 모습에 덩달아 신이 난 김독자였다.


“내가 미리 찾아본 데가 있어. 거기 가자. 맛집이래.”


수영은 독자의 손을 잡은 채로 시내로 향했다. 


 



잠시 후 도착한 레스토랑은 수영의 생각보다 훨씬 고급진 곳이었다. 김독자가 수영을 위해 의자를 빼주었다. 


“어머. 이런 매너는 또 어디서 배웠냐?”

“너 때문에 독학했지. 마음에 들어?”

“마음에 안 들면 내가 화내지 않았을까?”

“그건 그러네.”


김독자와 한수영이 수다를 떠는 사이 분위기는 어느새 무르익었고 와인을 부드럽게 마시던 둘은 어느새 만취 상태가 되어있었다.


“어어~ 누구 여자친구가 이렇게 이쁘지?”

“그러게! 남자가 자~알 생겼나보다. 이런 이쁜 여자친구도 있고.”


어느새 시계는 2시를 향하고 있었다.


“손님 저희 이제 가게 마감 시간입니다.”

“아~ 그렇구나. 죄송합니다. 가자 수영아~”

“알겠엉”


수영이 독자에게 팔짱을 끼고 레스토랑을 걸어 나갔다. 시내를 걸어가던 중 술 기운이 너무 강했는지 한수영이 김독자에게 기대어 졸기 시작했다.


“수영이 졸려?”

“우웅...”


김독자는 자신의 등을 내주었다.


“업히세요, 수영마마”


다행히 레스토랑이 집과 가까워서 독자는 취한 몸임에도 한수영을 등에 업고 집에 도착했다. 너무 늦은 탓인지 집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김독자는 조심스럽게 한수영의 방문을 열고 한수영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이마에 조용히 입을 맞춘 독자는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향하려고 하였다.


“김독자”


한수영이 김독자의 소매를 잡았다. 


“가지 마. 내 옆에 있어. 같이 자자”





“사부, 오늘 아침 뭐야?”

“...오므라이스다.”


옆에서 식탁을 닦던 유상아가 없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있고, 있고, 있고, 수영 씨는 원래 늦게 먹고, 있고, 어?”


유상아는 순간 쎄한 느낌이 들었다. 한 번도 늦잠을 잔 적이 없는 사람이 안 보였다.


“유승아. 가서 독자 씨 불러와. 아침 거의 다 됐어.”

“넹”


신유승이 김독자를 부르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똑똑똑


“아저씨, 아침 드세요.”


신유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시간이면 아저씨가 일어나고도 남을 시간인데.’


“아저씨? 아저씨 저 들어가요?”


신유승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침대는 아무도 다녀간 적이 없었다는 듯 깨끗했고 이불은 잘 개어져 있었다. 신유승은 재빨리 1층으로 뛰어내려가며 외쳤다.


“상아 언니! 아저씨가 사라졌어요!”

“뭐?”

“빨리 다들 찾아봐요!”

“빨리 한수영을 깨워라.”


 정희원이 눈을 비비며 자신의 방에서 나왔다.



“무슨 일이야? 왜 시끄러워.”

“희원 언니, 아저씨가 사라졌어요! 수영 언니 깨워요!”


일순간 정희원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정희원은 수영의 방으로 달려가 방 문을 열었다.  


“수영 씨! 독자 씨가...” 


그러나 희원은 자신의 눈 앞에 놓인 광경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한 쌍의 발가벗은 남녀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축축하게 젖은 침대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눈부신 햇살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고 방 안은 밤꽃 냄새로 가득했다. 정희원은 얼굴을 붉히며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유상아가 그런 정희원을 보고 물었다.


“희원 씨. 설마 수영 씨도 방에 없나요?”

“아... 그게... 둘 다 여기 있네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정희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이현성이 의아해하며 한수영의 방으로 향했다. 


“둘 다 괜찮은 건지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수영 씨는 그렇다 쳐도 독자 씨가 이렇게 늦게까지 잘 리가 없습니다.”


정희원이 눈을 부라리며 이현성을 쳐다봤다. 


“제가 확인했으니까 아침이나 먹읍시다.”


유중혁이 인상을 찡그리며 음식을 플레이팅했다. 잠시 후, 아침 식사를 하며 이지혜가 정희원에게 물었다.


“그래서 둘이 한 거지? 몇 시까지 했길래 못 일어날까?”

“그러게다. 우리는 바빠 죽겠는데 저 둘은 팔자 좋네.”

“그럼 비유 동생 생기는거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며 비유가 나타났다.


[바앗?]


시스템이 복구되면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도깨비인 비유는 최근 시스템을 정비하느라 바빴다. 


“비유야. 아저씨가 너 동생 만들어준데.”

[바앗...이 아니라 뭐?]

“수영 언니랑 아저씨랑...”


지혜가 오른손 손가락으로 동그란 구멍을 만든 뒤 왼손 검지를 구멍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정희원도 신나서 거들었다.


“밤새도록 했는지 지금 방에서 뻗어있단다. 밤꽃 냄새가.. 어휴~”


오랜만에 온 비유와 수다를 떨던 일행들은 학교로 출발한 길영, 유승, 미아를 시작으로 한 두 명씩 집을 나갔다. 

 


 


김독자가 부스스 눈을 떴다. 자신의 눈 앞에 귀여운 고양이 상의 여인이 잠들어있었다. 김독자는 그 모습을 물끄럼히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려도 좋을 것만 같았다. 10분 쯤 지났을까 한수영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자신을 바라보는 독자와 눈이 마주친 수영이 빙긋 웃었다.


“일어났네. 잘 잤어?”

“태어나서 이렇게 잘 잔 적은 처음인 것 같은데.”

한수영이 그 말에 만족했는지 그에게 입을 맞추고 물었다.

“몇 시야?”


그제서야 시계를 본 김독자가 대답했다.


“3시”

“벌써?”


한수영이 시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네. 밥 먹으러 가자. 나 배고파.”

“그래.”


한수영이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었다. 김독자도 자신의 옷을 챙기러 자신의 방으로 가기 위해 일어났다. 그제서야 김독자는 방문 밑에 껴있는 메모를 보았다. 천천히 메모를 읽는 김독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 독자 씨, 수영 씨. 아침 차려놨으니까 일어나서 드세요.

 아. 늦게 일어나면 못 먹으려나요?

 도대체 몇 시까지 했길래 못 일어나실까? 」


「 아바앗! 동생은 결혼을 하고 만드는게 맞지 않을까? 」


“김독자, 뭐 봐?”


옆으로 다가온 한수영이 메모를 보더니 얼굴을 붉혔다. 


“다 들켰나 봐...”

“그러게...”



  


예상대로 유중혁의 먹음직스러운 오므라이스는 식어있었다. 한수영이 오므라이스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다. 전자레인지 안에서 돌아가는 오므라이스를 멍하니 노려보며 침을 흘리고 있는 한수영을 김독자가 뒤에서 끌어안았다. 한수영이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대꾸했다.


“뭐야.”

“좋아서.”

“...좀만 더 그러고 있어. 나도 좋으니까.”


한수영의 귀가 점점 빨개지는 것을 보고 김독자가 웃어보였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귀여울 수 있는지 궁금했다.


“수영아. 오늘 강의 없어?”

“엉. 오늘 하루종일 너 옆에 붙어있을건데? 왜 싫어?”

“아니. 그냥 드라이브나 갈까 해서.” 


그 말에 한수영이 화색을 띠었다. 고개를 돌린 한수영이 두 눈을 반짝이며 김독자에게 물어보았다.


“어디 갈건데? 밥 먹고 바로 갈까? 하룻밤 자고 오는거야?”


생각보다 더 좋아하는 한수영에 김독자는 괜스레 뿌듯해졌다. 잠시 고민하던 김독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 바다 갈까?”


 



잠시 후, [X급 페라르기니]를 타고 해안가대로 나 있는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탄 두 남녀는 간만의 여행이라 그런지 한껏 멋을 부린 상태였다. 김독자가 고개를 돌려 한수영을 바라보았다. 평소에 입지 않던 흰색 원피스를 입고 파나마 모자를 쓴 채 한수영은 조수석에서 벌떡 일어나 양팔을 번쩍 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만세~!”


김독자가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눈길을 의식했는지 한수영이 김독자에게 웃어보이고는 또 다시 외쳤다. 


“김독자, 내 거다!!”


순식간에 빨개진 김독자의 얼굴을 보고 한수영이 자리에 앉았다. 


“암흑성 때 생각난다. 그치?”

“그러네. 너 그때 나한테 처음 반했다고 하지 않았나?”

“마치 너는 아닌 것처럼 말한다?”


질주하던 [X급 페라르기니]가 드넓은 해수욕장 앞에서 멈추었다. 가을이라 살짝 쌀쌀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맑은 하늘에 끝도 안 보이는 바다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았다. 한수영도 그랬는지 잠시 바다 너머를 지긋이 응시했다. 그러더니 해수욕장으로 웃으며 뛰어갔다. 김독자가 한수영을 헐레벌떡 따라갔다. 한수영이 신발을 벗고 바다에 발을 담갔다.


“아, 차가!”


뒤늦게 따라온 김독자가 한수영에게 웃어보였다. 한수영 역시 그에게 웃어보였다. 김독자의 눈에 비친 한수영은 일전에 보았던 아프로디테의 뺨을 1863번 정도 갈길만큼 아름다워 보였다. 단발머리가 바람에 부드럽게 살랑거렸고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때, 김독자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 한수영이 꺄르르 웃어대며 그에게 물을 뿌리고 있었다.


“바보야~ 이것도 못 피하냐?”


자신을 약올리는 한수영에게 김독자가 다가갔다.


“야. 뭐야. 왜 와.”


김독자가 한수영의 허리를 팔로 감싸서 자신에게 밀착시켰다.  


“이제 못 뿌리겠네.”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물장구를 쳐서 물이 튀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수영이 실수로 김독자의 발을 밟는 바람에 넘어졌고 한수영을 잡고 있던 김독자도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첨벙!


김독자가 한수영의 눈치를 보았다. 오랜만에 신경 써서 입고 나온 한수영의 옷을 적셨기에 그녀가 금방이라도 화를 내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김독자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수영아.”


시무룩해진 그의 표정을 지켜본 수영은 그런 그가 귀여웠다. 한수영이 김독자의 옷깃을 붙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순간 김독자의 입술에 한 마리의 나비가 앉았다가 날아갔다. 한수영이 조용히 말했다.


“사랑해. 김독자.”


물에 젖어 안쪽이 비치는 흰 원피스가 그를 유혹했다. 아무래도 오늘도 밤을 불태워야 할 것 같다. 






김독자가 눈부신 햇살에 눈을 떴다. 자신의 아름다운 여자친구가 그런 그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어제, 오늘 그녀와 몇 번이나 한 건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일어났네?”

“응”

“너 오늘 인터뷰 잊은 거 아니지?”

“아.”


오늘 김독자는 김독자 공단이 앞으로 정부와 어떠한 관계로 나아갈지 그리고 앞으로의 어떠한 행보를 걷게 될 것인지 인터뷰하기로 했다. 돌아오고 난 뒤 첫 인터뷰였다. 그 중요한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인터뷰는 3시였다.


“지금 몇시지?”

“9시”


지금 출발한다면 도착해서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다. 김독자는 한수영을 쳐다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한수영과 둘만 놀러온 것인데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웠다.


“왜? 난 괜찮아. 인터뷰 늦겠다. 빨리 체크아웃하자.”


김독자가 조용히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뚜루루...


- 네. 모두를 위한 방송사 JUS입니다.

“아 저 김독잔데요.”

- 아 구원의 마왕님이시군요! 무슨 일이신가요?

“그... 오늘 인터뷰를 내일로 미룰 수 있을까요? 오늘 급한 볼일이 생겨서....”

- 아... 그... 잠시만요... 아 네. 가능하네요. 내일 3시에 가능하신거죠?

“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김독자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한수영이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더니 이내 그에게 뛰어들었다.


“사랑해, 김독자.”


김독자가 자신의 품에 안긴 어른 고양이를 쳐다보고는 나지막히 웃었다. 


“아침 먹으러 가자.”

“웅!”


한수영은 기분이 좋았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김독자와 아침으로 가볍게 국밥을 먹고 나와서 손을 잡고 바닷가를 따라서 걷고 있었다. 


“김독자.”

“흐음... 오빠라고 부르는 건 침대에서만인가?”

“아 닥치고. 넌 내가 왜 좋아?”


김독자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궁금해?”

“어”


김독자가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충 생각해봤는데... 100개 정도 있는 거 같거든? 다 들을래?”


한수영이 김독자를 째려보았다. 그러나 은근히 기분이 좋았는지 그녀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우리 수영이는 눈물점이 매력적이고, 긴 속눈썹이 예쁘고, 짜증내면서도 해야 할 거 다 하고, 귀엽고, 봉긋한 가슴이 사랑스럽고, 몸매가 훌륭하고, 언제나 똑똑하게 상황을 처신해내고,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려고 노력하고...”

“그만, 그만! 알겠어. 알겠다고...”


한수영이 고개를 숙인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김독자가 살며시 그녀의 턱을 들어올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붉어진 얼굴에 그녀가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처음 보는 그녀의 모습이 김독자의 눈에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보였다. 김독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는 내가 왜 좋아?”

“어...?”


한수영이 고개를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 생겼잖아, 그리고 나만의 독자고.”

“뭐라고? 안 들리는데?”


 한수영이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그냥... 그냥 알아들어 바보야.”


한수영이 까치발을 들고 김독자에게 살며시 입을 맞췄다. 그 행동 하나로 모든 대답을 들은 김독자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김독자와 한수영이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바다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이 아름다웠다. 한수영이 그 풍경을 넋이 나간채로 바라보고 있었고 김독자는 그런 한수영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야, 김독자. 저거 진짜 예쁘다. 그치?”


그 말을 하며 한수영이 김독자를 돌아보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김독자와 눈이 마주쳤다. 김독자가 한수영의 머리칼을 귀 뒤로 살짝 넘겨주면서 그녀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그러게 진짜 예쁘다.”


한수영이 자연스럽게 이 분위기를 눈치채고 눈을 지긋이 감았다. 김독자의 얼굴이 그녀의 얼굴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이윽고 서로의 입술이 맞닿았고 마치 지금만을 기다렸다는 듯 둘의 혀가 뒤섞였다. 서로의 타액이 뒤섞였다. 어느새 해는 바다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았고 바닷가는 희미한 달빛을 제외하고 어둠으로 뒤덮였다. 한수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진짜 능글맞아. 김독자.”

“칭찬이지?”


그렇게 물으며 김독자가 아까 전 편의점에서 산 맥주와 폭죽을 꺼냈다.


“뭐야. 폭죽도 샀어?”

“아니 뭐... 여기까지 왔는데 할 건 해야지.”

“내일 인터뷰하러 가야되는데 여기서 술 마셔도 돼?”

“대리 부르지 뭐.”

“대리가... 서울까지 가?”

“...돈이 곧 권력이야.”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깔깔대며 웃는 한수영을 뒤로 하고 김독자가 5개의 폭죽에 불을 붙이고 모래사장에 꽂았다. 돌아오자 한수영이 맥주 캔을 까고 있었다.


“여기, 김독자.”


한 손에 이미 자신의 맥주 캔을 들고 있는 한수영이 김독자가 좋아하는 맥주를 그에게 건넸다. 김독자가 미소 지으며 맥주 캔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폭죽이 하늘 위로 쏘아올려졌다.


피융! 펑! 피슈우웅! 퍼펑!


형형색색의 폭죽이 하늘에서 터졌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아, 맞다. 김독자 나 내일모레가 마지막 수업이야.”

“진짜? 그럼 이제 하루종일 붙어있을 수 있겠네.” 

“그러게. 이제 좀 여왕 대접 받을 수 있는건가?”

“그러시지요, 마마.”


잠시 후, 김독자는 대리기사를 불렀다. 원래 가격의 2배를 준다고 하자 대리기사는 흔쾌히 승낙하였다. 한수영은 김독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쳐다봐? 머니 이즈 파월!”


그의 농담에 한수영이 낄낄댔다. 


 

 


“대체 둘이 어딜 갔다 온 겁니까? 말도 없이?”


또 눈치 없는 이현성이 우리 둘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정희원이 이현성의 등짝을 때렸다.


“이현성 씨! 방에 들어가서 주무세요!”

“아.. 아픕니다. 희원 씨는 저 둘이 뭘 했는지 안 궁금하십니까?”


모두가 이현성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심지어 그 유중혁조차도. 정희원이 이마를 짚으며 그의 방을 가르켰다. 


“가서 자요!”


그녀의 기세에 눌린 이현성이 하는 수 없이 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현성이 들어가자마자 정희원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좋았어요?”


한수영의 얼굴이 달아오르더니 그녀의 방으로 달려갔다. 졸지에 혼자 남은 김독자는 김컴 멤버들의 질문에 시달렸다. 


“아... 여러분 저.. 그... 내일 인터뷰 컨디션 조절 때문에... 안녕히계세요!”


김독자가 [바람의 길]을 활성화하여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 술 마시고 컨디션 조절이 앞 뒤가 맞아요?”


정희원이 궁시렁거리며 불만을 토했으나 이미 너무 늦은 후였다. 그날 밤 한수영과 김독자는 여행의 추억을 회상하며 잠에 들었다. 






테라스에 서서 고요한 밤하늘을 한수영이 물끄럼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해 가을 김독자와 단둘이 놀러간 이후로도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김독자가 놀러가자고 해서 둘만의 여행을 떠났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번 주는 놀러가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도 말이다. 한수영이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맥주를 홀짝홀짝 들이키고 있었다. 조금 취한 그녀의 볼에 홍조가 띠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서프라이즈 하는 거겠지?’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불렀다.


“수영 씨, 여기서 뭐해요? 오늘 이브 아니에요? 독자 씨는요?”

“아.. 그게...”


한수영이 고개를 숙이고 우물쭈물했다. 뒤늦게 정희원이 분위기를 눈치챘다. 


“에이... 우리 현성 씨도 아니고 독자 씨가 그러겠어요? 사소한 기념일도 하나하나 다 챙겼던 사람이...”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김독자는 100일은 물론이고 사소한 일 하나하나 기념일로 챙겨서 한수영은 이설화, 정희원의 부러움을 받고 있었다. 한수영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그래도... 내일 놀자고... 흐윽.. 정도는 할 수.. 있잖... 흐윽.. 있잖아..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흐윽....”


정희원이 속으로 재수 없는 새끼라고 생각하였지만 그녀를 안아주어 위로해주었다. 


“에이... 독자 씨가 분명 서프라이즈 준비하느라 바빠서 그런 거에요. 걱정 말아요. 울지 마요. 뚝! 에헤이... 독자 씨가 수영 씨 울고 있는 거 알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한수영이 그녀의 위로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런.. 그런 거겠지? 나... 나 잊은 거 아니겠지? 내가... 내가 매력이 없는 거 아니겠지?”


술에 취한 그녀가 훌쩍였다. 정희원이 그녀를 위로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테라스를 나섰다. 


“자! 나와요! 내일이 크리스마슨데 술 취한 상태로 시작할거에요? 숙취해소제 먹고 한 숨 자고 일어나요.”


한수영이 무력하게 정희원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향했다.


 



한수영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시계의 시침이 3을 가리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시작을 자면서 보낸 것이었다.  


“김독자... 나 찾으러도 안 온거야?”


눈물을 참고는 한수영이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러나 한 발자국도 못 내딛고 멈춰섰다. 김독자가 자신의 문 옆에서 쭈그려 앉아있었다. 옷에 신경 썼는지 평소와 다르게 흰 와이셔츠 위에 코트를 입고 목도리까지 두른 뒤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김독자가 눈을 비비며 자신에게 웃어주었다.


“일어났어?”


한수영의 얼굴이 또 빨개졌다.


‘또 나 혼자 오해했어...’


김독자가 한수영에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크리스마슨데 나갈까?”

“아... 웅! 잠깐 옷 갈아입고 올게.”


한수영이 방 안에 들어갔다.


쿠당탕!


“한수영? 괜찮아?”

“아 응.. 그냥... 잠깐 옷걸이가 쓰러져서.”


잠시 후, 방에서 나온 한수영은 평소에 한 번도 입은 적이 없던 흰 셔츠와 검은 스웨터 조끼를 입고 주름 치마에 짧은 패딩을 입고 나와서 김독자를 바라보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그녀의 검지가 긴장했는지 그녀의 머리카락을 베베 꼬고 있었다. 


“그.. 그... 우리.. 그래서... 어디 가는거..야?”


김독자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약간 교복 느낌의 옷을 입고 그녀가 그의 눈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핫...”

“뭐... 뭐야! 나 웃겨?”


한수영이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김독자가 여전히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너무 귀여워서..”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정희원이 이현성의 방으로 달려가 이현성을 베개로 팼다. 김독자는 한수영의 손을 잡고 밖으로 향했다. 


 

 


김독자와 한수영이 공단을 천천히 걸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그런지 공단은 시끄러웠다. 한수영은 평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밖에서만 데이트를 했기에 사실상 거의 첫 공식적인 공단에서의 데이트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사람을 많이 마주치면 곤란해질 수도 있기에 사람이 적은 곳을 주로 찾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김독자, 인형 뽑기 하자!”

“흐음? 이번엔 얼마를 날리려고?”

“내가 날리면 너가 뽑으면 되잖아. 그리고 나 연습했거든?”


인형 뽑기를 연습했다는 말에 김독자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그걸 봤는지 한수영이 김독자의 손을 쓸고 인형 뽑기점으로 향했다. 


“오늘은 나 이거 뽑을래!”

“오, JUS 굿즈네. 형님이 좋아하시겠다.”

“나도 오랜만에 염룡이 웃는 얼굴 좀 봐야겠다.” 


연습했다고는 하나 한수영은 염룡이를 뽑는데 40000원이나 써버렸다. 반면 김독자는 3000원 만에 제천대성을 뽑았다. 


“그래도 저번보다는 발전했네. 저번에는 아마 50000원이 넘어갔..”


한수영이 김독자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닥치고. 나 영화 보러 갈래.”

“요즘에 재밌는거 하나?”

“그 ‘그냥 죽어라’ 재밌다는데? 어떤 싸이코패쓰가 자기 짜증난다고 막 죽이고 다니는 거래.”

“...크리스마스에 보자고?”

“아.. 좀 그런가? 그럼...”

“아니야. 너 보고 싶은 거 보자.”


이 말에 한수영이 환하게 웃고는 김독자를 이끌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녀가 이렇게 행복한 것이 너무 기분이 좋은 김독자였다. 언제나...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물론 한수영은 각본가가 자기보다 글을 훨씬 못 쓴다며 궁시렁거리기는 했지만 그녀의 밝은 표정을 보니 그녀도 재미는 있었던 것 같았다. 영화관 옆에 있는 커피숍에서 둘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커피숍에서는 빙수도 파는구나.”

“그러게. 생각보다 맛있는데?”

“아 토마토 맛은 없나.”

“...혼난다 너.”

“혼놘돠 눠어~”


잠시 그들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어느새 시계가 7시 3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곧 해 뜨겠다. 일출 보러 가자.”


한수영은 그곳에서 그가 서프라이즈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가 이끈 곳은 한 건물의 텅 빈 옥상이었다. 


“여기서 일출이 그렇게 잘 보이더라고.”

“아... 그럴 것 같네.”


한수영이 애써 실망감을 감추며 말했다. 서서히 지평선 너머로 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예쁘다. 그치?”

“그러게...”

“우리 사진 찍자!”


방긋 웃는 독자와 수영의 뒤로 일출하는 광경까지 한 사진 안에 완벽하게 들어갔다. 


“야 이거 잘 찍었네.”

“이것도 잘 찍었다.”


하늘이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수영아.”

“응?”


갑자기 김독자가 한수영을 안아들었다.


“김독자? 갑자기 왜..?”


[‘천사화’를 일부 발동합니다!]


김독자의 등에서 새하얀 날개가 솟아나왔다. 김독자가 한수영을 한 번 바라보고는 그녀를 안아 든 채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김독.. 김독자! 뭐하는 거...”


그녀의 눈에 아름다운 광경이 드러났다. 웅성거리는 공단의 사람들과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뒤덮인 공단이 점점 멀어져갔다. 시나리오를 겪은 적이 없던 거처럼 서울은 예전의 모습을 어느새 되찾아가고 있었다. 잠시 후, 한수영과 김독자가 구름을 뚫고 올라왔다. 노을이 구름까지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한수영이 아름답다는 듯 그 풍경을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았다. 


“수영아.”


자신을 부르는 김독자의 목소리에 한수영이 그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김독자가 그녀를 안아들고 있던 팔 하나를 떼었다.


“나 떨어지면 죽어.”

“걱정마. 나 힘 세.”


그의 왼팔이 그녀의 허리를 붙들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이 자신의 코트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자그마한 직육면체 케이스를 그가 열었다. 붉은 루비가 박혀있는 은색의 반지가 케이스 안에서 자신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영아. 나랑 결혼해줄래?”


한수영의 감정이 북받혔다. 그녀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당연하지.”


김독자가 서서히 케이스에서 반지를 뽑아 그녀의 손에 끼워넣었다. 그의 손에도 어느새 그녀와 같은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한수영이 그 반지를 끼우자 한수영에게 메시지 창이 올라왔다. 


[성좌, ‘한 사람을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독자’의 성유물 ‘사랑의 반지’를 획득하였습니다.]


“너...”

“이거 만드느라 고생 좀 했지. 이제 눈물 뚝! 이렇게 좋은 날 왜 울어?”


김독자가 그 얘기를 하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입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 서로의 팔이 서로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노을로 붉게 물든 하늘의 구름 위에서 두 남녀가 서로를 향해 입을 맞추었다.  


“사랑해, 수영아.”

“나도 사랑해, 독자야.”






붉었던 하늘이 점점 하늘색이 되어갔다. 오랫동안 입을 맞추던 남녀가 입을 떼었다. 김독자가 한수영을 향해 싱긋 웃어준 뒤 천천히 다시 건물 옥상으로 내려왔다.  


[‘천사화’가 해제됩니다.]


한수영이 자신의 약지에 끼워진 결혼 반지를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김독자는 자신의 성유물을 만들기 위해 1주일 동안 이제는 세력이 약해진 올림포스에 쳐들어가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을 들락날락했던 것에 보람을 느꼈다. 한수영이 조용히 김독자를 올려보았다. 


“그... 사람들한테는 언제 말할까?”

“일단 오늘은 우리 둘이 보내고 내일 말하자.”

 

둘이서 있자는 말에 한수영이 기쁜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귀여웠는지 김독자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이제 다시 놀러가자!” 



 

 

그들은 하루종일 돌아다녔다. 한수영이 가고 싶다는 오락실에 가서 펀치 기계를 실수로 부숴버리고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놀이공원을 한 번도 안 가봤다고?”

“어... 응... 딱히 갈 일이 없었어서..”

“에헤이... 이 누나가 오늘 신세계를 보여줄게!”

“내가 오빤데?”

“시끄럽다아아”


한수영이 놀이공원 입구로 달려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빨리 와. 김독자!” 


그녀의 웃는 얼굴에 미소를 지은 김독자가 서둘러 그녀를 따라갔다. 오랜만에 온 놀이공원이라 그런지 한수영은 가장 먼저 기념품 숍으로 달려가서 고양이 귀 머리띠를 들고 김독자에게 씌웠다. 


“와! 김독자가 이렇게 귀여웠어?”

“너... 술 마셨니?”

“뭐래 ㅋㅋㅋ”


한수영이 그렇게 말하며 자신도 똑같은 고양이 귀 머리띠를 썼다. 어느새 아이스크림 가게로 가 있는 한수영을 김독자가 허둥지둥 따라갔다. 


“먹을 시간에 줄 서야 되는 거 아니야?”

“너 진짜 처음 오는구나? 줄 서서 기다릴 동안 먹을게 있어야지!”


한수영이 그렇게 말하며 아이스크림 2개를 받아 하나를 김독자에게 건넸다. 


“자, 롤로코스터, 바이킹, 후름라이드, 뭐부터 탈래?”

 


 


“이상하다. 줄이 이렇게 짧을 리가 없는데...”


김독자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설화, ‘돌멩이와 나’가 이야기를 속삭입니다.]


김독자도 자신이 놀이기구처럼 큰 물건도 설화로 돌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물론 너무 커서 조금만 마력이 높은 사람이라면 통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놀이공원에 놀러온 사람 중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한수영이 아무래도 좋다며 김독자와 롤로코스터, 바이킹을 탔다. 


“...김독자, 괜찮아?”

“아.. 응.. 미안..”


김독자가 바이킹을 탄 뒤 살짝 어지러운 듯 보였다. 한수영이 시계를 보았다. 다행히도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다. 


“일단 밥 먹으러 가자! 나 배고파!”

“아. 그래! 예약해놨어. 이 근처야.”


김독자가 한수영을 고급진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이열~! 김독자 오늘 플렉스입니까?”


김독자가 그 말에 자신의 블랙카드를 살짝 들어보이고는 작게 속삭였다.


“우리 수영이,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잠시 후, 한수영의 접시에 놓여있던 스테이크는 모두 그녀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 


“아.. 배 나오면 웨딩 드레스 안 이쁠텐데.”

“넌 뭘 하든 이뻐.”

“삭발해도?”

“... 아.. 응 당연하지!”

“좀 망설였다?”

“아.. 아닌데?”


한수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후름라이드 타러 가자!”


김독자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신난 고양이를 따라갔다. 후름라이드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둘이 웃으며 손을 들고 경사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사진으로 정말 잘 찍혔다. 한수영은 만족스러운 듯 출력까지 해서 자신의 투명한 핸드폰 케이스 사이에 넣었다. 김독자도 옆에서 바라보다 그녀를 따라했다. 


“이제 다음은... 귀신의 집..!”


한수영이 조금 두려운 표정으로 말했다. 귀신의 집에서 남자가 여자를 심쿵하게 만드는 것이 클리셰만 아니었어도 먼저 귀신의 집에 가자고는 안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김독자도 무서운 걸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김독자가 잠시 당황했지만 그녀가 하자는 것이었기에 별 말 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어서 오십시..요?”


귀신의 집은 궁예의 화신인 차상경이 직원으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저번에 니르바나에게 죽은 줄 알았는데 어찌어찌 살아남은 것으로 보였다. 


“오랜만이군! 그런데, 둘이 사귀나? 흐음...”


[등장인물 ‘차상경’이 성흔 ‘관심법 Lv.10’을 사용합니다!] 

[등장인물 ‘차상경’은 등장인물 ‘김독자’가 ‘잔뜩 쫀 마구니’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등장인물 ‘차상경’은 등장인물 ‘한수영’이 ‘잔뜩 쫀 마구니’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상경이 조용히 웃었다. 


“자! 그럼 들어가시죠!”


한수영과 김독자가 손을 잡고 들어갔다. 안은 깜깜했다. 한수영은 자신의 손을 풀고 김독자의 팔을 안았다. 


“김... 김독자.. 나.. 무서워..”


안이 깜깜해서 자신의 창백해진 얼굴이 안 보여서 다행히라고 김독자가 생각하였다.


“그.. 꽉.. 꽉 잡아.. 지금.. 가자..”


김독자와 한수영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갔다. 


“끼에에엑!”

“끄아아악!!!”

“우와아아악!!!!”


갑작스럽게 나온 귀신 분장을 한 직원을 보고 김독자와 한수영이 괴성을 질렀다. 뒤에서 또 다른 귀신 분장한 직원이 튀어나왔다.


“크라아아악”

“우와아아악!!!”

“아악 시바아아아알!”


[성좌, ‘구원의 마왕’이 자신의 격을 드러냅니다.]

[성좌, ‘거짓 종막의 설계자’가 자신의 격을 드러냅니다.]


순식간에 귀신의 집 천장이 날아가고 벽면이 바깥쪽으로 무너졌다. 귀신 역할을 했던 직원들은 저 멀리 날아가서 기절해있었다. 차상경이 화내며 그들에게 달려왔다.


“지금 뭐하는건가? 자네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한지는 아는건가?”


차상경이 둘을 향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김독자와 한수영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크흡... 큽.. 크흑... 킄킄카카카학”

“푸흡.. 풋.. 푸핫... 푸하하핫”


차상경이 화내는 자신을 앞에 두고 서로를 보며 배꼽 빠지게 웃는 두 남녀를 보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으나 둘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야 이제 뭐하러 갈래?”

“헤에... 불꽃놀이 보러 가자!”

“그래!”

“자네들 지금 어디 가는... 어?”


김독자가 자리를 벗어나며 차상경에게 50,000 코인을 주고 떠났다. 


“수리비요.”


그러고는 두 남녀는 불꽃놀이가 하는 광장을 향해 달려갔다. 멍하니 서있던 차상경이 분개했다. 수리비도 수리비지만 자신이 직장에서 해고될 것이 뻔했다.


“야! 이 연놈들아! 거기 서라!”


그러나 이미 아름다운 한 쌍의 커플은 광장의 인파 속에 몸을 숨겼다. 

 

 



펑! 퍼엉! 퍼버벙! 펑!


“예쁘다.”

“그러게. 역시 불꽃놀이는 놀이공원이지.”

“나는 바다 때가 더 좋았는데?”

“아.. 아니 내 말은.. 아니..”


당황한 한수영의 입에 김독자가 입을 맞췄다.


펑! 퍼벙! 펑!


“사랑해, 자기야.”

“나.. 나도.. 사랑해... 자기야...”


펑! 퍼엉!


불꽃놀이 아래에서 한 쌍의 남녀가 진한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둘의 손에서 루비빛 반지가 불꽃놀이의 빛을 머금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결혼식 당일, 결혼식은 근처 결혼식장에서 아무 특별한 것 없이 진행되었다. 김독자와 한수영이 자신들이 특별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김독자는 신랑 대기실에서 두근두근 거리는 자신의 심장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후우.. 후우...”


철컥


문이 열리고 이수경이 들어왔다.


“우리 아들 오늘 잘 생겼네.”

“아 어머니 오셨어요?”

“그래... 많이 긴장했나보구나?”

“그러게요... 시나리오 깰 때도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수영이가 좋아하겠구나... 너도 수영이 보러 가려무나. 언제까지 진정만 시킬거니?”


김독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김독자가 멋쩍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김독자가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김독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수영이 환하게 웃었다. 


“우리 자기 왔어?”


뒤에서 듣고 있던 이수경이 한숨을 쉬고 떠났다.


“그래... 한참 좋을 때지...”


그 장면을 본 한수영이 당황해서 얼버무렸다.


“아니! 김독자, 너는 어머님이 있었으면 얘기를 했어야지!”

“흐음... 너가 언제부터 우리 엄마 눈치를 봤다고. 그나저나... 오늘 진짜 이쁘다.”


사실이었다. 화장을 안 해도 아름다운 그녀였기에 몇몇 포인트만 강조하였고 순백의 아름다운 드레스가 그녀에게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녀의 손에는 그가 프로포즈를 하며 끼워준 루비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김독자가 그녀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하였다. 한수영이 부끄러운 듯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다른 사람들은 언제 오냐?”


그 말이 소환 주문이기라도 한 듯 누군가 문을 두드리더니 김컴 멤버들이 들어왔다. 


“우와! 둘 다 여기있었네.”

“수영 씨 오늘 너무 이쁜 거 아니에요?”

“기분 좋아보이는군 김독자.”

“아저씨, 오늘 멋져요!”

“수영 언니 너무 이쁜데...? 나도 결혼하면 저렇게 예쁠까, 사부?”

“어림 없다.”

“두 분 너무 잘 어울리네요.”


한수영과 김독자의 얼굴이 토마토 마냥 붉어졌다. 이지혜가 다급히 자신의 백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냈다. 


“우리 단체사진 찍어요!”

“오. 오랜만에 좋은 의견 냈네.”

“시끄러!”


사진을 찍자는 그녀의 말에 일행들이 그들의 주변에 섰다.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찰칵!


 


 

결혼식장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싸워주었던 서울 왕들, 차라투스트라들이 모두 참석하였고 키리오스, 파천검성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몇몇 성좌들도 보였다.


“제자 놈이... 결혼이라니...”

“두 분 너무너무 축하드려요.”

“저는 축의금 많이 냈습니다~”

“내... 내 화신이... 결혼이라니..”

“우리 칠칠치 못한 막내 잘 부탁한다.”

“우리 후인이 결혼이라니!”

“그러게 말일세. 이을 대가 없다고 말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우리엘은 한수영과 유중혁에게 꿀밤을 맞았다. 


“우리 독자가 결혼이라니... 나는 당연히 중혁이랑 할 줄.. 꾸엑!”


잠시 후, 페르세포네가 사회를 시작했다.


“하객 여러분. 지금부터 신랑 김독자와 신부 한수영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김독자가 입장했고, 한수영이 입장했다. 한 발, 한 발 내딪는 그 순간 하나하나가 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설화, ‘가장 행복한 결혼’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뒤이어 진행된 주례는 투전승불이 진행하였다. 주례사가 진행되는 동안 둘은 이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지긋이 미소를 지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시겠습니까?”

“네!”

“넵!”


[성좌, ‘한 사람을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독자’가 존재의 맹세를 합니다.]

[성좌, ‘한 사람을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작가’가 존재의 맹세를 합니다.] 


사실상 그들은 시스템의 영향으로 늙지 않는 몸이어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리가 없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영원히 서로를 사랑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하객들은 힘찬 박수를 쳤고 김독자와 한수영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더니 입을 살짝 맞추었다. 이수경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김컴 멤버들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성좌들은 그들의 우렁찬 대답에 환호했다. 뒤이어 이어진 축가에서 길영이와 유승이가 노래를 불렀고 정희원이 유상아와 듀엣을 하여 노래를 불렀으며 JUS가 그들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정말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다시 있을까라고 생각을 하며 한수영과 김독자가 행복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행진을 하자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하며 폭죽을 터트렸다. 한수영과 김독자는 손을 깍지 낀 채로 어느 때보다 밝게 걸어갔다. 결혼식이 마무리되었고 하객들은 다시 그들에게 다가와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정말 이렇게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수영과 김독자는 거듭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자! 자! 다들 모여 주세요! 단체 사진 찍습니다!”


하객들이 전부 한수영과 김독자의 양옆에 섰다. 


“그럼 찍습니다! 하나! 둘! 셋!”


누구보다 밝은 표정의 김독자와 한수영이 그 사진에 남겨졌다. 정말 다시는 없을 소중한 추억이 분명하다고 김독자와 한수영은 생각했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차에 탄 김독자와 한수영이 출발했다.


“가자! 하와이로!”

“오빠! 달려!”


그들에게 잘 다녀오라고 하는 일행들을 뒤로 하고 김독자가 엑셀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