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시체의 산을 왕좌로 삼은 듯 홀로 앉아있던 사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서야 끝났다며 불평하고도 무기력함이 묻은 듯한 한숨.
마왕을 죽였던 사내는 그 대가로 마왕이 되었다.
그 후 지나간 수많은 시간은 그를 모든 마왕들이 두려워하는 자가 되게 하였고 그는 많은 마왕들을 죽였다.
마계의 수많은 마왕들을 죽여 그 시체의 산에 앉아있는 마왕은 여유롭게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에게 위협을 가할 만한 자들이나 거슬리게 하는 자들은 모두 죽어 제 발 밑에 쌓여있었다.
새로이 얻은 삶의 목표로 삼았던 일이 끝나자 밀려 들어오는 것은 환희가 아닌 무기력함이었다.
목표로 삼았던 일은 끝났고 삶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하나 라는 막연할 뿐인 질문을 던지며 허공을 응시했다.
그저 허공을 바라보았을 때는 빛이 보였다.
하늘을 여는 듯한 밝은 빛은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마왕들이 두려워 하는 악명 높은 마왕은 매우 어린, 마왕 초년생에 불과했고 그로써는 당연히 처음 마주하는 것이었다.
그 빛을 본 마족들은 두려워하며 도망갔으나 그는 그들이 어째서 그러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마족들의 재앙이라 불리는, 천사들이 오고 있었다.
-
더욱 밝아진 빛에 아려오는 눈을 감았다 뜨자 날개 달린 이들이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마에 난 한 쌍의 뿔, 펄럭이는 검은 날개. 검고 붉은 피의 흔적을 남긴 이는 그들의 적인 것이 분명하였으나 그가 앉아있는 시체의 산은 그들의 오랜 적이었다.
적의 적은 동지라 했던가.
처음 보는, 그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기이한 마왕은 같은 적을 둔 듯 했다.
게다가 그 많은 마왕을 토벌하였으니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모시며 받들어도 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에 밝게 웃으며 어쩌면 악마보다도 더하지 않을까 싶은 천사들은 '싸우고 싶지 않다' 라 전했다.
그러고서는,
"같이 마왕 사냥하지 않을래?"
라 '같이 눈사람 만들래?' 라는 매우 가벼운 질문을 던지듯 물었다.
모든 것이 끝나자 파도처럼 밀려오는 무기력감이 싫었던 그는, 그에 승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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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무기력감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했던 일은 반복되며 호감과 친분을 쌓게 하였다.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마왕 사냥을 하거나 한가한 날은 함께 놀러 다니기도 했다.
함께 마계를 평정하며 두려움에 떨었던 사람들을 한 데 모아 마을을 만들어 삭막한 마계를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어 놓았고, 권속이 되어 억압 되었던 이들에게 감사와 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를 모시고 싶다는 자들도 많았으나 그저 떨떠름하게 알아서 살라고 하며 보냈다.
누군가를 이끄는 일은 자신 없었던 탓에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어떤 날은 인간계로 악마들이 도망치기도 했다.
고향도 오랜만에 보고 악마도 잡으러 겸사 겸사 허락을 받고 대천사들과 함께 나섰다.
키에에엑ㅡ
검을 휘두르자 피가 흩뿌려졌고 악마가 괴성을 내며 쓰러졌다.
숲의 푸른 나무들은 튄 피에 붉게 물들었다.
푸르기만 했던 붉은 숲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고 다시 돌아가려 숲을 나서자 누군가가 보였다.
손에 들린 성경과 머리에 쓴 검은 베일은 그녀가 수녀라는 것을 알렸다.
사람들에게는 자애로운 수녀이나 그건 사람 한정이었고 악마나 마족들에게는 천사들 만큼이나 매우 높은 공격성을 보이는. 그런 평범한 수녀였다.
갈무리하지 못한 검은 마기는 그녀에 시야에 너무나 또렷하게 잡혔고 피로 젖은 검은 날개, 이마의 뿔은 '나 마왕이요' 라 광고를 하고 있었기에 손에 곱게 들려있던, 성가가 쓰인 얇은 책마저 더해져 있는 매우 두꺼운 성경은 그대로 마왕의 머리를 걀겼다.
-
"아, 공격 들어갔어요! 어퍼컷!"
격투장에서나 들릴 소리를 들으며 비틀거렸다.
턱에서 아릿하게 느껴지는 아픔에 정신은 안개가 낀 듯이 흐려졌다.
두꺼운 성경의 모서리가 턱을 강하게 가격했고 빌어먹을 신성력 탓에 몸은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그럼에도 고통은 실감나게 느껴졌기에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너무나 아프면 눈물이 흐른다고 했던가, 이토록 처참하게 맞았던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라 익숙하지 않은 탓에 더욱 아팠다.
성경을 들은 수녀는 냉혹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 옆의 아이는 신이 나는 듯 즐겁게 웃었다.
흥분한 듯 높게 올라간 목소리가 그의 처형식을 선고하는 듯 했다.
날개를 펼치며 도망치려 해도, 있는 힘껏 발버둥 쳐도 개미 지옥에 빠진 개미처럼 벗어날 수 없었고 남은 것은 명백하게도 죽음 뿐 이었다.
손 끝하나 가져다 댈 수 없는 일방적인 폭행, 애써 한 반항은 짓밟힐 뿐이었다.
발에 밟힌 몸이 으스러지듯 아파왔다.
몸을 집어삼킨 듯한 고통 속에도 그녀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오래전, 그가 아직 인간이었을 때, 그 때의 그도 그녀처럼 악마에게는 누구보다도 냉혹해졌으니.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그 단순하고도 간단한 한 문장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
누군가를,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죽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 잃기만 하다, 지킬 수 있는 힘을 얻었을 때에는 제게 남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 때 천사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 일지도 모른다.
무기력함보다도 더 어두운 외로움 탓에, 혼자는 더이상 싫다고 외치는 찢겨졌던 마음탓에.
그 이유 탓에, 과거의 자신이 겹쳐 보여서, 차마 공격할 수 없었다.
여기서 이렇게 죽는다니, 정말 바보같네. 라고 생각하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참으로 한심하다 비웃어질 테지만, 그럼에도 차마 해칠 수 없었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 앞에 당당히 선, 죽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흐려지는 시야,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몸에 죽음을 마주할 수 밖에 없던 그 때,
"독자야!"
들려온 그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
"그러니까 저 마왕이 천사님들이랑 친하다는 거죠?"
어이없음이 조금 묻어나는 듯한 질문.
그 질문을 들으며 몸을 일으켰고,
"네, 그렇습니다. 같이 마왕사냥도 다녔고요. 전에는 저도 인간이었는 지라 딱히 마왕편을 들고 싶지 않았고요."
라 답하며 해지지 않을 것이라 알렸다.
"독자야, 일어났어?"
품에 날아든 우리엘 탓에 간신히 일으킨 몸이 중심을 잃어 비틀거렸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그녀의 애정표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웃어주었다.
"미안해요."
"저도 잘못했어요..."
고개를 숙이며 연신 사과를 하는 모습에 잘못 한 것이 없음에도 미안해졌다.
그래서,
"괜찮습니다."
라고 말하며 가볍게 웃었다.
그 두꺼운 책에 맞아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으로 이미 만족했다.
"그래도 정말 죄송한데.. 제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수녀님, 제가 이래봐도 마'왕'인지라 재물은 차고 넘친답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굴리다 좋은 생각이 났기에 웃으며 말했다.
혼자 있던 적에는 그 외로움을 싫어했다.
더 이상 홀로 있지는 않다 해도 외로움은 아직도 그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그런 탓에 아는 사람이,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관계가 더 늘어나기를 바랬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에게 소중한, 아니 그것까지 바라지는 않는다해도 친근한 사람이 되어 그 따스함이 제게로 오기를 바랬다.
"그러면 저랑 친구 해주실래요?"
"네?"
"앞으로도 자주 마주칠 수도 있는 데 좀 편한 사이면 서로 좋잖아요."
"... 좋아요."
단순히 도망친 악마를 잡기 위해 방문한 인간계에서 친구를 얻었다.
오랜 시간동안 외롭게 있었기 때문일까, 그는 아는 사람이 늘어날 때마다 행복했기에 더 없이 좋은 결과였다.
무언가 조금 어색한 사이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서 좋다고, 조금은,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꽤나 호구같은 그가 웃었다.
모두에게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면서.
재업이긴 하지만 글자 수는 더 늘리긴 했어.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