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 되어 놀이공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채아는 아직 6살인지라, 탈 수 있는 놀이기구보다는 탈 수 없는 놀이기구가 더 많았다.
"이건 왜 못타?"
"채아 키가 120cm가 안되잖아."
"아빠 어깨는 머리만한데 안전띠 찰 수 있어?"
...이게?
"...안전띠는 어깨랑 아무 상관 없거든?"
"아빠 어깨 좁은건 인정한거네?"
유상아가 먹던 커피를 내게 뿜고 배를 잡고 웃었다.
"아하핫, 오빠 무슨 애랑 똑같은 수준으로 싸워!"
"...엄마 꼬부기같다!"
"...너희 엄마가 나랑 사귈때 특기가 저거였어. 친할머니한테도 물뿜고.."
"아니 6년도 더 된 얘기를 왜 지금 꺼내..!"
유상아가 씩씩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채아가 갑자기 소리쳤다.
"엄마 근데 너무 야해! 왜 옷을 벗고 다녀?"
"...어? 무슨 소리야?"
"배꼽이랑 찌찌랑 다 보이잖아!"
유상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그런 유상아의 옷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32살이라고는 믿기 힘든 동안의 미모와 몸매, 그리고 그걸 돋보이게 해주는 흰 탱크탑과 청바지.
"...그러네? 좀 야하다, 그치 채아야?"
"응! 엄마 변태같아! 근데 아빠랑 놀때보다는 아니야! 아빠랑 엄마랑 밤에 놀때는 다 벗고..읍..!"
주변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채아의 말에 우리를 슬쩍 바라보고 지나갔다.
"...너 한달간 고기 금지야!"
"하, 엄마는 요리 안 하잖아!"
둘이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싸움이 더 커지기 전에 다급히 그들을 말렸다.
"그럼 채아 저거 어때? 회전목마!"
"어? 저건 탈 수 있어?"
"그럼! 저기 채아 친구들도 보이잖아!"
"우아! 나 탈래!"
채아가 도도도 뛰어가서 회전목마를 탔다. 돌아가는 말을 타며 신난 표정을 지은 채아를 보며 미소짓는 유상아를 보자, 왠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찡한 감정이 몰려왔다.
"...고마워."
"응? 뭐라고 오빠?"
"...이거 덮으라고. 남자 꼬이겠다."
나는 입고있던 바람막이를 유상아에게 입혀서 잠궈줬다. 그러자 유상아가 얼굴을 붉혔다.
"...꼬여도 내가 잘 쫒아내거든?"
"내가 불안해서 그래."
순간 유상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뭐가 불안한데?"
아, 실수했다.
"아, 그게 아니고... 그냥 다른 사람들이 힐끔힐끔 보는것도 좀 그렇고.."
"...내가 다른 사람들 보여주려고 입은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오빠 보여주려고 그런건데."
"...그게.."
유상아가 고개를 살짝 내렸다.
"...미안, 내가 좀 예민했나봐."
"아, 아니야. 내가 생각 없이.."
"압빠! 엄마! 나 이거 또 타도 돼?"
"그럼-! 우리 채아 타고싶은거 맘껏 타!"
유상아가 채아에게 웃음을 짓고, 내게도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그 웃음은 그리 내게 안도감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
실수했다. 기분 좋게 온 휴가였는데 나 때문에 분위기가 약간 틀어졌다.
그저 약간 심술이 났다. 그 말이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걸 알면서도, 그가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내가 그렇게 못 믿을 여자인가? 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아니라는걸 알면서도 서러움이 살짝 스쳐온다.
"압빠! 엄마! 나 이거 또 타도 돼?"
"그럼-! 우리 채아 타고싶은거 맘껏 타!"
서러움과, 또 미안함에 나올듯한 눈물을 참아내고 미소를 지어냈다.
*
채아가 회전목마를 17번이나 더 탄 후, 밥을 먹고 숙소에 가기 위해 차에 탑승했다. 그리고 유상아가 뒷자리에 타자, 채아가 갑자기 물었다.
"엄마 아빠 싸웠어?"
유상아가 흠칫했다.
"아, 아니야! 우리 사이 좋아!"
"쯧쯧,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야. 이혼은 칼로 자식을 베는거래. 그니까 물 베거나 나 베기 싫으면 그만 싸워."
"이혼 안 해!"
"알았어. 근데 우리 지금 어디가? 아빠?"
"어.. 지금 숙소! 채아 주말 내내 놀고싶다고 했잖아!"
"와! 내일도 놀아?"
채아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 그니까 오늘은 빨리 자야 내일 하루종일 놀 수 있어."
"네, 아버님!"
.
.
.
채아를 재워두고 호텔 위에 있는 옥상정원으로 유상아와 올라왔다. 이런 일은 쌓아두면 곪는다. 바로 해결해야만 한다.
"...오빠, 그게.."
"...미안해."
"...어?"
"내 말이 너한테 어떻게 느껴졌을지 알아. 정말 미안해..."
"아, 아니야.. 나도 그런 뜻 아닌거 잘 알고있어! 오히려 내가 미안해.."
유상아가 손사래를 치며 내게 사과했다.
"사실... 나한테 최근에 그런 일이 벌어졌잖아... 그거 때문애 오빠가 이제 날 못 믿는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느껴져서.."
"그게 네 잘못도 아니고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해... 난 평생 너 그렇게 생각 안 해."
"..."
유상아가 내 말을 듣고 울먹이더니, 이내 흐느꼈다. 이런 감정들을 유상아가 자신의 마음속에 혼자 쌓아두고 있었다는게 너무 내 가슴을 아프게 때려댔다.
"...그럼 들어가자! 채아 깨겠다."
.
.
.
놀이공원 안에는 꽤 큰 동물원이 설치되어있다. 채아가 보고싶다고 조르는 바람에, 동물원에 들어가게 됐다.
"아빠! 저건 뭐야?"
"나도 몰라."
"엄마!"
"어.. 저기 적혀있는데?"
"너무 읽기가 싫게 생겼어."
"...저 동물은 악어야."
그리고 파충류들을 좀 관람하다 보니, 포유류 칸이 나왔다. 그리고 포유류 칸에 있는 원숭이들은... 성관계를 맺고 있었다.
"어! 쟤네 엄마랑 아빠랑 놀때랑 똑같이 논다!"
"조, 조용히 못해?"
유상아의 얼굴이 터질듯 달아올랐다. 물론 나 역시 이번에는 당혹스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엄마랑 아빠는 원숭이 놀이를 좋아하는구나..."
"아니라고! 조용히 못해?"
유상아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이 왠지 놀려주고 싶어, 유상아의 손을 잡아서 내 주머니에 넣었다.
"너희 엄마가 원숭이들보다 훨씬 더 열정적이지."
유상아가 얼굴을 붉히고 땅을 바라봤다.
"어딜 그렇게 보고있어? 아, 지금은 좀 곤란한데.."
"거, 거기 안 봤어!"
"누가 뭐래?"
"..."
역시 유상아는 삐졌을때가 가장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