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펑! 쏴아아아아!

꺄아아악!

으아악!

아하하하하!

한적했던 바다는 이제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이지혜가 신이나서 소리치고 있었다.

 ㅡ 재장전! 재장전! 쏴라! 마구 쏴라아!

시스템이 돌아와서 점점 원형을 찾아가는 [터틀 드래곤]이 내 눈에 보였다.

그동안 조그마해졌었다는 [터틀 드래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전함이 물대포를 뿜어대고,
신유승과 이길영이 바다에서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지게 웃고 있었다.

"뭔짓을 했길래 거북선이 물을 뿜어...?"

터틀 드래곤의 수포(砲)에서 폭음이 들릴때마다
족히 15m는 되어보이는 물기둥이 펑펑 솟아올랐다.

그것을 뚫고 나오는 정신나간 녀석이 있었다.

 ㅡ 펑! 촤아아아...!

 ㅡ 으랴! 이것이 파천검도(破天劍道)의 진가다! 아하하!

시스템이 돌아와서 신이난 장하영이 한주먹에 물기둥을 찢어발기고서, 파문으로 울렁이는 바다 위를 답보하며 외치고 있었다.

내가 한숨을 푹 쉬고서 유중혁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으휴, 파천붕권(破天崩拳)이겠지... 그것보다 파천의 진가는 물기둥이 아니라 하늘을 부수는것에 있는거라고, 장하영..."

무공에서만큼은 깐깐한 유중혁이 들었다면 한동안 장하영에게 잔소리를 했을지도 모른다.
파천의 검문의 문하생은 어쩌고 하면서.

그런저런 생각중에 누군가 내 옆에서 투덜거렸다.

 ㅡ 이래서 멸살법 오타쿠는 안돼, 쓸대없이 세세한 설정에 목숨을 건다니까...

 ㅡ 하하... 그래도 그게 독자씨 아니겠습니까?

캠핑의자에 느긋하게 누워서 태닝을 즐기는 한수영.
엎드린 녀석은 선글라스를 끼고 둥근 밀짚모자를 쓴 채로 비키니를 입은 상태였었다.
그 옆에서 야자수가 그려진 시원한 와이셔츠를 입고서 과일을 가져다가 그녀에게 대령하는 이현성이 있었다.

내가 그 꼴에 어의없다는듯이 말했다.

"넌 손이없냐 발이없냐? 현성씨도 좀 쉬게 해줘."

 ㅡ 씨끄러! 누구 때문에 최근까지 맨날 소설쓴다고 요즘 손모가지에 힘이라곤 없다!

"..."

나는 입을 쩝쩝 다셨다.

어젯밤에 그녀에게 저 외우주로 보낸 나의 이야기에 대해 들었기 때문에.

일행들이 모두 최근까지, 
나를 위해 한없이 노력했다고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나와버리면 나는 침묵할 수 밖에 없다고.

내가 고개를 푹 숙여버리자 한수영이 선글라스를 슬쩍 들어서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ㅡ ...지가 수발들 생각은 1도 안하내.

나는 녀석을 잠시 노려보았다.
어쩐지... 그게 마음에 안드는 거였구만.
나는 할수없이 녀석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현성씨, 그거 이리 주시죠."

 ㅡ 하하...! 왜 이러십니까, 독자씨. 수영씨가 장난 치시는거지 않습니까?"

내가 의자에서 스윽 일어나자 이현성이 손사례를 쳤다.

나는 그 말에 진지하게 그에게 대답했고, 
한수영도 마찬가지로 이현성에게 한마디를 쏘아붙였다.

"한수영은 진심으로 말하는 걸 겁니다."

 ㅡ 장난은 뭔 장난이야! 머슴처럼 부려먹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이현성은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나는 빼앗아들듯이 과일이 잔뜩 담긴 바구니를 받았다.

그러자 한수영이 말했다.

 ㅡ 그건 이제 됐고, 김독자 넌 저기 바구니안에 든거좀 가져와. ...화장품같은거.

"...예, 예."

나는 군말없이 소풍바구니로 가서 그것을 뒤졌다.
투명한 재질에 뭔가 끈끈한게 담겨있는 병.

나는 무심하게 그것을 꺼내서 그녀에게 가져다 내밀었다.

 ㅡ 뭐해? 발라.

"...?"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나보고... 뭘 하라고?

"...못들었어. 뭘 하라고?"

 ㅡ ...바르라고! 썬탠몰라? 내 피부 상하면 어쩔건데!

"뭐...? 어딜... 뭘 발라?"

내가 어의가 없어서 녀석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엎드린채로 밀짚모자를 가져다 푹 쓴 녀석이 답답하다는듯이 빽 소리지르고 있었다.

 ㅡ 아 됐어! 이 멍청한... 멍청아! 차라리 이현성보고 발라달라고 하는게 낫겠다!

"..."

내가 생각지도 못한 녀석의 요구사항에 충격을 받아 입을 딱 벌림과 동시에 녀석이 테닝젤을 사납게 뺏어들었다.

젤 뚜껑을 여는 녀석의 얼굴은 밀짚모자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ㅡ 쭈우욱. 쫙! 쫙!

아저씨마냥 사납게 젤을 짜서 비빈 손바닥을 신경질적으로 박수쳐대던 그녀가 아무렇게나 어깨와 배, 다리에 젤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었다.

그와중에 그녀옆에 조금 떨어진곳에서 캠핑의자에 누운 정희원이 한수영의 말에 신경질을 버럭 냈다.

 ㅡ 야! 니가 뭔데 현성씨가 더 낫겠다느니 난리야! ...현성씨! 당신도 거기 멍청하게 서있지말고, 눈치껏 나 젤좀 발라줘요! 그러니까 어디가서 비교당하는 거잖아요!

 ㅡ 그... 그런건 안됩니다! 

 ㅡ ...왜요?

 ㅡ 아... 아무튼 그건 안됩니다.

 ㅡ ...으휴, 답답해...!

 ㅡ 풋... 참나.

현성씨를 매도하며 한숨을 푹 쉬는 정희원.
비릿한 웃음을 지은 한수영이 실소했다.

한수영이 젤통을 위협적으로 치켜들었다.

 ㅡ 퍽!

"큭..."

 ㅡ 겁쟁이...

내 가슴팍에 젤을 신경질적으로 던진 한수영이 다시 휙 뒤집어누웟다.

내가 가슴의 통증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한수영이 고개를 옆으로 눕혀서 편하게 누우며 물었다.

 ㅡ 할말있냐?

"...없어."

 ㅡ ...상판데기를 보아하니 있는거같은데?

나는 선글라스 너머 나를 사납게 야리는 한수영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실,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자꾸만 틱틱거리면서 시비를 거는 그녀.
내가 한숨을 푹 쉬고서 말했다.

"그래, 불만있다!"

 ㅡ ...뭐?

"테닝은 엎드려서 하는 주제에 앞면에만 젤을 바르는건 바보냐, 아님 멍청이냐? 한수영."

 ㅡ ...

녀석은 내 말에 대답이 없었다.

 ㅡ 퐁!

나는 젤의 뚜껑을 열었다.
그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그녀가 말했다.

 ㅡ 뭐야! 뭐 하려고?

"나한태 발라달라며?"

내 말에 나를 제외한 세사람이 모두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ㅡ ...뭐?

 ㅡ ...독자씨?

 ㅡ 지금 뭐라하셨습니까?

"...?"

왜?
발라달래서 발라주려는건데.
나도 썩 달갑지만은 않다고.

 ㅡ 쭈우욱...

젤은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감촉이 별로였다.
한수영이 놀란듯한 표정으로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어버린채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현성에게 짜고 남은 젤통을 휙 던졌다.

"희원씨는 현성씨가 해 주세요."

 ㅡ 예? 에?!

나는 무심하게 손을 스윽스윽 문질렀다.
한수영이 내게 놀라서 외치고 있었다.

 ㅡ 뭐야? 진짜 하려고?

"등이나 대. 금방 끝내줄게."

예상대로 몸을 벌떡 일으킨 한수영.
녀석이 사시나무 떨듯이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내가 피식 미소지었다.

나는 니 덫에 니가 걸리는 꼴을 봐야만 하겠다.

자꾸만 시비를 걸어대던데,
내가 일행들을 속여서 열차에 남았던 미안함을 느끼는것과는 별개로, 자꾸 시비를 거는 너를 두고만 보진 않을거라고.

나는 승자가 된 기분으로 녀석을 도발했다.

"왜? 겁나냐?"

한수영이 이를 꽉 물고 있었다.
녀석이 도발당할때 나오는 버릇이였다.

 ㅡ ...참나, 꼼꼼하게나 발라!

"...뭐?"

 ㅡ 야! 한수영! 독자씨! 당신들 뭐하는거에요?

 ㅡ ...너희가 못하는 짓.

한수영이 얼굴을 붉히고서 정희원에게 웅얼거렸다.
녀석이 내 예상과 달리 휙 엎드려버렸다.

 ㅡ 뭐해!

"..."

나는 손을 천천히 한수영의 등어리로 내렸다.

덜덜 떨고있는 내 손을 따뜻하고 부드러운 등피부에 올렸을때야, 제 덫에 걸린건 내 자신이라는것을 깨닳고 있었다.

"야... 이거..."

 ㅡ 빠... 빨리 안해?

나는 진득하게 들러붙는 젤을 느끼면서 천천히 손을 아래로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저녁이 되었다.

하룻밤을 묵기위해 유중혁과 이설화가 빌렸다던 팬션은 넓고 아름다웠다.

1층에는 루프탑 야외 수영장, 
요트들이 줄서있는 바(bar)가 보이고.
개별 수영장은 방마다 당연스럽게 있었으며, 
해안으로 난 넓은 벽면유리에 비친 오션뷰는 말할것도 없이 아름다웠다.

내부 인테리어는 뭔가 짚과 동양풍의 색감이 이루어져있는 인테리어로 되어 있는 거실,
깔끔하고 단아한 기분이 드는 푸른계열 단색과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부엌 등 최신식이라는 느낌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냉장고에는 먹거리가, 찬장에는 보드게임같은 놀거리가 가득가득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것처럼 편하게 앉은척을 하면서 눈치를 보는 중이였다.

 ㅡ 결국 저 아저씨는 쓰레기였어.

 ㅡ 이럴수가... 형은 나를 좋아할텐데...!

 ㅡ 이길영, 너는 좀 닥쳐! 그딴 개연성 없다는거 저번에 들통났잖아.

이지혜를 필두로 아이들이 나를 경멸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나대로 눈을 사납게 뜨고서 공중에서 퐁실거리는 못된 귀염둥이를 일별하고 있었다.

"...비유야. 이제 채널좀 꺼줄래?"

내가 일행들에게 들릴락말락한 화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비유가 당황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채널 관리자가 현재, '프리미엄 구독자'가 많은 후원을 해서 채널을 닫기가 곤란하다고 합니다.]

"...후원을 왜 아직도 받는거야?"

[채널 관리자가 이제 [시스템]이 돌아왓으니 돈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당신을 설득합니다.]

비유가 윙크하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떠오르는 메시지에 미간을 짚었다.

한수영의 등어리를 마사지하는 장면은 방송으로 송출, 녹화되고 있었고, <김독자 컴퍼니>일행들이 녹화된 그것을 돌려본 상태였다.

현재 방에 기어들어가서 숨어버린 한수영과 달리,
나는 혼자 숨어버리기에는 너무 염치가 없었기 때문에(일행을 기만한 사실 말이다.) 거실에 일행들과 나와있는 상태였다.

신유승이 정신을 놔버린 사람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ㅡ 아저씨는 분명 수영 언니에게 협박 받았을거에요. 맞아...! 그거에요! 아저씨는 지금 우리에게 거짓말한걸 미안해하니까...!

 ㅡ 아니! 내가 옆에서 봤는데, 유승아. 신나가지고 젤을 빛의 속도로 손에 펴바르더라고. ...저렇게 짐승같은 면상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말야.

정희원이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필력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이지혜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서, 정희원을 깊히 맹신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저곳에서 자행되는 어느 신사참배급 역사왜곡에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ㅡ 독...  독자아저씨가 그럴리 없어! 흑흑...! 거짓말이야!

 ㅡ 탁탁탁! 쾅!

울음을 터트린 신유승이 제방으로 뛰어들어가고,
그 꼴을 본 장하영이 한숨을 푹 쉬며 물었다.

 ㅡ ...뭐 어때, 멸망도 다 지나갔는데 슬슬 짝을 지을때도 된거 아니겠어?

 ㅡ ...짝이요?

짝이라는 말에 반응하는 유상아.

 ㅡ 그래, 짝! ...뭐야? 상아언니도 관심이 있어?

장하영이 눈을 반짝였다.
이지혜와 이길영도 놀랍다는듯이 유상아를 바리보았다.

 ㅡ 그래, 일단 한수영 쟤는 마왕한태 더럽혀졌으니 제외고, 상아언니는 누가 마음에 들어?

 ㅡ 네? 저... 저는, 없어요! 그런사람...!

갑자기 타깃이 된 유상아가 급히 손사례를 쳤다.

 ㅡ 어, 이 언니 얼굴 빨게진다! 누가 [거짓 간파]가 있었지? 빨리!

 ㅡ ...저기 있내. 쓰레기... 가 아니라 쓰레기 아저씨.

"..."

이지혜가 구석에 쳐박힌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장하영이 경멸스럽다는듯이 말했다.

 ㅡ 어이! 아직 결혼도 안하신 한수영 명예 초청교수님의 알몸을 만지작거릴 기회가 생겼다고 신이나서 만진 [구원의 마왕]님?

"..."

 ㅡ 이리 와서 잘난 [거짓 간파]좀 써 보시죠?

"..."

 ㅡ 어쭈? 이거 다시 재생할까?

대답없는 내게 장하영이 시스템속의 한 영상을 틀었다.

「금방 끝내줄게. 왜? 겁나냐?

끈적한 젤이 거미줄처럼 쳐진 양손을 펴고 한수영을 웃으며 내려다보는 내 영상.
...왜 앵글을 저따위로 잡아서 녹화한건지, 
영상을 녹화한 범인의 취향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보면볼수록 내 스스로가 변태같은 느낌이였다.

"...그거 당장 지우면 시키는데로 할게."

 ㅡ 아니, 니가 하는거봐서 지워줄게. 구원의 마왕.

"..."

 ㅡ 까불지 말고 얼른 스킬이나 쓰셔, 킥킥...

장하영 저 자식... 
어쩌면 [손익 계산] 스킬도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내게 선택지는 없는건가.
나는 유중혁이다...
그 누구처럼 회귀라도 하고싶어진다.

'미안해요, 상아씨...'

나는 당황하는 유상아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김독자’가 해당 발언이 거짓임을 확인하였습니다.]

 ㅡ 와! 거봐! 이 언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ㅡ 누나! 누구야? 누구?

[씨끄럽다!]

들뜬 일행들의 말을 자르고 나타난 한 사내.

어울리지 않는 하얀 앞치마를 두른 녀석이 큰 접시에 담긴 뭔가를 둘러앉은 우리앞에 살짝 내려놓았다.

다양한 빵과 샐러드, 예쁘게 잘린 치즈와 다양한 잼이 한가득 담긴 플레터.

그 전체요리의 예쁜 담김새에 다들 '와' 소리를 내었다.

유중혁은 일행들을 한번 둘러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식사시간에 쓸대없는 말을 더 듣고싶지는 않다.]

 ㅡ 어이, 유 사형! 이건 우리가 회귀에서 돌아오고 나서 역대급 중요사안이라고!

[씨끄럽다, 장하영. 괜한 분위기 조성은 용납할 수 없다.]

유중혁은 나를 한번 힐끗 바라보았다.

[...한심한놈.]

"..."

한수영이나 저놈이나.
시비걸지못하면 비명횡사라도 하는 병에 걸린 모양이다.

장하영이 아쉬움에 발버둥치고,
이지혜가 유상아에게 몰래 자기한태만 알려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이길영은 세상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군.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익명의 후원자가 이길영을 열렬히 응원합니다!]

떠오르는 메시지에 내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런 악마같은 응원은 그 존재 뿐이다.

"...우리엘. 당신이 그 '프리미엄 구독자' 입니까?"

[익명의 후원자가 화들짝 놀랍니다!]

[익명의 후원자가 저기 마들렌이 맛있어 보이지 않냐고 당신에게 외칩니다!]

...확실히 마들렌이 맛있어 보이기는 한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폭신한 그것을 한입 먹은 이지혜가 지금 눈물을 흘리는 중이니까.

하지만 그것보다도 장하영이 가지고 있는 그 영상.

「몸을 맡긴 한수영을 악마 김독자가.avi

그 징그러운 영상의 최초 유포자를 용서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한수영이 싫어하는 소리를 낸 것처럼 직접 '더빙'까지 한 그 정성이 괘씸한 나였다.

내가 한마디 하려는 찰나,
녀석이 튀어나왔다.

 ㅡ 철컥.

문이 휙 열리더니, 한동안 방에 쳐박혔던 한수영이 잠옷같은 옷을 주섬주섬 줏어입으며 나오고 있었다.

신유승도 따라나왔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지금 주역인 한수영이 무심하게 중얼거린다.

 ㅡ 냄새한번 끝내주내.

 ㅡ ...

"..."

둘러앉은 일행들의 시선을 독차지하며 털래털래 걸어오더니 내 옆에 풀썩 주저앉는 한수영.

녀석이 아무렇지 않게 모닝롤 하나를 집더니, 특제 레몬젬을 턱턱 바르고 있었다.

 ㅡ ...왜? 먹을래?

내가 하필 내 옆자리에 앉은 이녀석에게 당황스럽다는 시선을 주자, 녀석이 무심하게 내 입으로 빵을 밀어넣었다.

"...야, 뭐하는 짓이야? 읍...!"

 ㅡ 아, 해.

[익명의 후원자가 놀라서 자신의 격을 드러냅니다!]

[성좌, '악마같은 불의 심판자'가 이 상황을 격하게 싫어합니다!]

빵을 강요하는 한수영.

나는 영문도 모른채 입에 강제로 들이밀어진 그 빵을 한입 물었다.

그리고 반쯤 먹힌 그 빵을 그대로 자신의 입에 가져간 한수영.

"어 ...! 잠깐만!"

 ㅡ 암냠... 괜찮내. 이건... 침이잖아?

"...??"

 ㅡ 뭔 한입 먹는데 침이 이렇게 묻냐? 너도 신거 좋아하냐?

"..."

얘가 미친건가?

지금 내가 먹은 그 부분에 다시 주둥이를 가져다 대려는 한수영을 격하게 제압하고 싶었다.

그때,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다른 사람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이설화'가 전용 스킬, '침대차 Lv.??'를 사용합니다.]

 ㅡ 자, 일단 누우세요. 수영씨. 다들 비키세요.

 ㅡ 뭐... 뭐야! 왜이래?

 ㅡ 중혁씨. 부탁해요.

[...정신병이라도 걸린 모양이군.]

 ㅡ 퍼억!

누가 들어도 괜찮치 않을 소리가 한수영의 목 뒤에서 났다.

유중혁의 무자비한 당수에 비명도 지르지못하고 기절한 한수영.

산채로 기절한 사람은 또 있었다.

바로 나. 김독자.

 ㅡ ...너 진짜로 수영이한태 뭔짓을 한거야, 구원의 마왕?

 ㅡ ...아저씨, 이게 대체 뭔 일이래? 이제부터 두사람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하면 되?

 ㅡ ...독자씨! 당장 설명을 부탁드려요!

 ㅡ 독자 아저씨? 

 ㅡ 형...?

나는 눈을 깜짝일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한수영이라는 '캐릭터'성이 붕괴되어서 두통으로 지끈거리는 상태였다.

"...얘 왜이러는거냐, 유중혁?"

[정말로 끼리끼리 어울리기로 했나보군.]

"..."

[모르는척 연기하는 네놈이 구역질이 나는군.]

유중혁은 무심하게 침대차를 끌고가고 있었다.

이설화와 유중혁이 사라지고,
일행들이 질문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ㅡ 어젯밤에 몰래 서로 고백이라도 하셨나보죠?

 ㅡ 귀뜸이라도 해주지 그랬어요, 독자씨!

"한수영이 미친걸 왜 저한태 그러세요...!"

내가 차례로 나를 질타하는 정희원과 유상아에게 버럭 화를 냈다.

[성좌, '악마같은 불의 심판자'가 대경해서 JUS의 멤버 3인방을 소집합니다!]

[채널 관리자가 이 상황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채널 좀 꺼! 나 화낼거야 비유야!"

내 말을 듣는둥 마는둥,
비유는 둥둥 뜬 상태로 큰 고민에 빠져있었다.

[채널 관리자가 한수영을 '엄마앗'이라고 불러야할지 고민해고 있습니다.]

떠오르는 그 메시지에 어느새 튀어나온 신유승이 내 앞에 나서서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ㅡ 수영이 언니랑 독자아저씨가 사귈리 없잖아요!

 ㅡ 왜 없어? 가만히 생각해보면, 구원의 마왕에게 제일 환장한 사람이 한수영 아냐?

장하영이 반론에 나서자 신유승이 부들부들 떨며 나를 돌아보았다.

 ㅡ 독... 독자아저씨! 정말로...?

나는 유승이가 왜 나를 이렇게 도와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쨋든 지금에야말로 사태가 심각해지기전에 사실을 규명해내야만 했다.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저 돌아온지 하루밖에 안된거 다들 아시죠?"

 ㅡ ...

의심스런 눈초리를 하는 일행들.
나는 유상아를 바라보고 애원하듯이 말했다.

"저 아시잖아요, 도와주세요 상아씨. ...탕비실 도구함에 숨어서 소설을 보던 저 말이에요."

유상아가 한숨을 푹 쉬더니 일행들의 앞으로 나섰다.

 ㅡ 독자씨가 여자친구를 사귀었을리 없어요.

"..."

 ㅡ 적어도 100년은 더 있어야 가능성이 있겠죠.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ㅡ 맞아요, 언니! 아저씨가 그럴리 없어요! 여자친구가 있는 아저씨라니, 그건 절대 있을수가 없어요!

 ㅡ ...그래요! 독자씨가 그럴리 없죠!

"..."

신유승의 어시스트에 확신을 얻은듯이 유상아가 담담히 선포하고 있었다.

다 잘되어가는데, 나는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중이였다.

나는 내 상판을 한번 둘러보고서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 장하영의 뺨을 서너방 갈겨주고 싶었다.

녀석이 투덜거리며 입을 열었다.

 ㅡ 그럴 개연성이 없긴 하다.

장하영이 한숨을 푹 쉬더니, 아까부터 눈여겨보던 테이블위의 보드게임을 펼쳤다.

그리고 멍하게 앉은 이현성과 이길영의 어깨를 감싸며 크게 소리쳤다.

 ㅡ 자, 그럼 문제도 해결됬겠다! 밤새 놀아보자!

 ㅡ 잠깐만, 하영이 누나. 그럼 결국 독자형이 수영이 누나 마사지 해준건 뭐야?

 ㅡ ...한수영 상태 봤잖아. 구원의 마왕이 한수영의 아픈 상태를 이용해서 짐승짓 했다고 보면 되겠지. 역시 마왕의 이름값은 하는구나, 김독자.

 ㅡ 겨... 결국 그런겁니까? 독자씨?

 ㅡ 여...역시, 형이야! 기회를 놓치지 않는 독자형! 수영이 누나를 이용했구나! 역시 형이 한수 위였어!

'그딴 칭찬 듣고싶지 않아, 길영아...'

나는 끔찍함 모욕감과 부끄러움에 이를 꽉 물었다.
차라리 한수영이랑 사귄다고 하는게 내 사회적 지위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당장이라도 이 팬션을 벗어나 저 바닷속으로 뛰어들고 싶다.

 ㅡ 역시 아저씨에요! 아저씨가 여친이 있을리 없죠!

 ㅡ 난 믿고 있었어요, 독자씨. ...그래도 독자씨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되겠내요...

 ㅡ 운이 좋내요, 독자씨? 하지만 나는 알아요. '동료'는 무슨... 한수영 마사지 하려고 할때 그 상판을 일행들이 봤었어야 했는데!

"...즈는 그뜨 아므른 프증 아지으스미드..."
 ㅡ (저는 그때 아무런 표정 안지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이를 으드득 갈며, 내게 미소짓는 신유승과 유상아에게 억지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제 보드게임을 시작한 일행들이 다시 행복하게 웃고 떠들고 있었다.

나는 외롭게 보드게임에 찬스카드들을 뒤져보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대멸망]이라는 카드를 발견하고서, 제발 이 카드가 당장 발동되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