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화.

나는 떨리는 손으로 멸살법의 회차를 눌렀다.

멸살법을 읽기 시작한 지 4년째. 여름의 날이었다.

짧은 로딩을 기다리며 나는 전철의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불에 타는 듯이 뜨거운 날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생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멸살법의 배경도 이맘때쯤이면 여름이었다.

화차가 켜졌다.

흰 화면에 텍스트들이 떠오르면서 한 회차가 펼쳐졌다.

이번 화는 999회차의, 혹은 이 소설의 끝이었다.


나는 노트를 펼쳐 기록을 시작했다.

이 회차에서 그가 살아간 방법 등을 적었다.

고질병적인 습관이었다.



999번째 기록


999회차는 유중혁의 1000번째 삶이었다.

그의 삶은 매순간 같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1000번째 삶을 일행들, 그가 인정한 동료들을 위해 살았다.

그동안 그가 살았던 삶들과는 달랐다. 그러나 확신할 수는 없다. 그의 0회차와 1회차, 2회차를 나는 몰랐다.

그 회차들이 행복했기를, 나는 이 회차가 행복하기를 바라듯 바랐다. 적어도 1000번의 삶들 중에 행복한 삶이 한번쯤 있어도 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회차가 행복하게 끝나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유중혁은 많은 것들을 잃었다. 저번회차도 그랬다. 그때와는 다른 것들을 잃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 쪽 눈을 제외한 온몸이 망가졌고 너덜너덜해졌다. 하지만 그 외에는 잃은 것이 없었다.

동료들은 그를 놓지 않고 데려갔다. 그것 뿐만이 아님에도 나는 독자인 관계로 글재주가 없으니 더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아무도 버리지 않은 사람이 버림받지 않았다고 하겠다.

그들은 마지막 시나리오에 도착했다. 최초 최대의 일이다.



...유중혁은 회귀했다. 이계의 신격과의 계약이 그의 숨을 거둬갔다. 그의 동료들은 그의 옆에서 울었다. 끝의 바로 앞에서 그는 닿지 못했다. 그의 동료들은 닿았다. 이맘때쯤이면 멸살법도 여름이라 했던가. 그는 여름에 죽었다.

그는 죽었지만 지키고자 했던 것을 모두 지킨 회차였다.



나는 기록을 끝냈다.

쓴 기록은 일종의 감상이었다.


여름의 일이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