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유난히 푸르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서 천둥 소리가 몇 번이고 일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요 백청!”
키리오스에게 소리를 지른 자는 마교의 최고 전력인 장로회 중, 육 장로의 허강이라는 자였다. 그의 옆에는 심장이 꿰뚫린 채 차갑게 식어버린 마교의 사 장로가 있었다.
“내 첫번째 제자가 혈마교 최고 호법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 제 1무림에서 혈마교의 이름이 지워졌었지, 이번에는 너희 차례다.”
차갑게 울리는 키리오스의 음성과는 다르게, 그의 주위에는 계속 튀기는 스파크로 인한 열기로 아지랑이가 일고 있었다.
육 장로는 키리오스의 말에 일 주일 전의 일을 떠올렸다.
*
장맛비가 무섭게 들이치는 날이었던가, 무림맹의 마교척살단이 마교의 본거지 바로 앞까지 치고 올라왔을 때였다.
정파의 최고를 자처하는 강호인들이 모였던 탓이었을까, 바닥에 고인 물이 거센 유수로 흐를 정도로 잔뜩 비가 내렸던 탓이었을까. 본교의 정예 전력이 모였음에도, 난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전황을 더욱 불리하게 만드는 이가 있었다. 검에 희고 푸른 강기를 띈, 백청의 무사.
본교의 정보망에서도 저런 자의 정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최근 강호에 출두한 자라는 말인데, 그런 자가 초절정에 달하는 무위를 지니고 본교의 무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백청의 무사가 손에 들린 머리를 바닥으로 툭 던졌다. 흉측하게 썰린 머리가 데굴데굴 구르다, 내 발 앞에서 멈췄다.
일 장로부터 육 장로까지, 상위권의 장로들이 원 모양의 형태로 호법을 서 지키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천마신교의 미래. 공석인 본교의 교주가 될, 천마신교의 후계자. 그가 폐관 수련을 통해 얻은 심후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차기 천마로 재림하기 위해 천마신공의 심법으로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백청의 무사가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달렸다. 그를 저지하는 본교 장로의 공격을 하나 둘 받아내며,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뿐이었다. 아무리 그가 초절정의 무사라고 하나, 본교의 장로를 그것도 여섯이나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여전히 호법에 집중한 채, 여섯 명의 장로가 백청의 무사를 둘러쌓았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흉측한 마성이 무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
“강호의 도리로써 정당한 결투에 대한 결과는 결코 복수하지 않는 법이오! 당시 천마와 그대의 제자의 싸움은 정도의 무인과 마교의 절대자 간의 정당한 결투였소. 파천공과 함께 무림의 절대고수로 손 꼽히는 백청, 그대가 정녕 강호의 법도를 무시하는 것이오?”
그렇게 외치는 육 장로의 목소리는 꼭 하나의 절규처럼 들렸다. 절대적인 두려움 앞에 죽음을 직시하고, 자신의 인생을 울부짖는.
육 장로의 말을 들은 키리오스의 얼굴이 희미하게 떨렸다.
“더러운 마교 놈들이 도리니 법도니 하는 것을 운운하는구나.”
파츠츠츠츳.
키리오스의 몸이 [순백의 역설]과 함께 푸른 전기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주위를 에워싸는, 순백의 스파크들.
[전인화].
키리오스가 자신의 발을 지축에 강하게 틀어박자, 그 주위로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쿠구구구구.
푸른 하늘이 시커먼 먹구름으로 물들었다. 잿빛으로 가득찬 하늘에서, 거대한 전기의 기둥이 쏟아졌다.
육 장로는 순간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이미 무림 내에서 명성이 자자한 키리오스였지만, 그의 무위를 확인한 자는 드물었다. 직접 그 실체를 확인하니 도저히 대적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너무나 아득한 차이.
어찌 감히 일개 인간이 자연재해에 대적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저 순응하는 것일 뿐.
육 장로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리고 검에서 손을 놓았다.
그때였다. 키리오스의 그것과 비슷한 내공의 진기가 [전인화]를 발동한 키리오스를 덮쳤다.
키리오스가 검을 휘둘러 그 기운을 떨쳐내자, 곧바로 한 남자가 흑검을 들고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카가가가각!
아찔한 공명음과 함께, 검과 검이 부딪혀 만들어 낸 날카로운 예기가 마교의 장로들에게 향했다.
“크윽!”
그들은 모두 각자의 병장기를 꺼내 예기에 반응했지만 모두 십 보 정도 뒤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고작 예기였다. 직접 검을 맞부딪힌 것도 아니고, 파생된 예기뿐임에도 중원에서 상위권 강자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마교의 강자들의 내공을 넘어선 것이었다.
키리오스가 조금의 내공을 더 실어 흑검을 떨쳐냈다. 아직도 검에 남아있는 흉흉한 기운을 없애기 위해, 그는 허공에 검을 몇 번 더 휘둘렀다.
‘…천마.’
무림에서 키리오스와 제대로 검을 부딪힐 수 있는 강자는 손에 꼽힌다. 무림의 재앙인 파천검성, 혈마교의 절대자 혈마, 그리고 천마신교의 천마.
가볍게 물러선 천마의 주위로 둘러싼 마기가 주변으로 산란했다. 그리고 쓰러진 마교 무사들의 검에 깃들었다.
검들이 조금씩 떨리며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곧 천마의 주변으로 모였다.
이기어검술(馭劍術). 지고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운영할 수 있는, 최고의 무공이자 기술.
눈 앞에 서있는 천마가 그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가 운기조식을 모두 끝마치고 결국 진정한 천마로써 재림했다는 의미였다.
“그대의 이름은 익히 들었습니다. 키리오스 로드그라임. [피스랜드]의 소인 출신임에도 초월좌의 벽을 뚫고 무림의 절대고수에 오른… 경탄할 만한 인물이라고.”
공력을 담은 채 전해져오는 천마의 중후한 목소리는 꼭 짐승의 불쾌한 울음소리를 듣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천마와 키리오스. 모든 무림계를 통틀어 절대고수라 칭할 두 인물의 전투를 예감한 다른 마교인들은 일찍이 그 현장으로부터 몸을 피했다.
“허나 그대에게는 강한 제약이 걸려 있다고 하던데…. 개연성의 후폭풍을 감당할 무슨 뒷배라도 얻으셨나 봅니다.”
그 말에 키리오스의 눈끝이 움찔했다. 저 말은 분명 제대로 힘도 못 쓸 네가 지금 나와 겨룰 수 있겠냐고 비꼬는 말일 터.
하지만 더 이상 개연성이라는 단어는 키리오스에게 의미가 없었다.
“네놈이 명분을 만들어주었으니, 따로 신경 쓸 건 없다.”
개연성은 곧 그럴 듯함. 제자의 죽음으로 촉발된 스승의 복수라는 명분이 그럴 듯한 이야기가 되지 못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파츠츠츠츠!
지축을 박찬 키리오스가 천마에게로 쇄도했다. 그의 뒤로 잔상같은 섬광이 잇따라 번쩍였다.
카가가각!
다시 한 번 천마검과 [순백의 역설]이 부딪혔다. 검과 검이 맞부딪힌 지금, 승부를 가르는 것은 내력의 차이.
천마가 아무리 그 유명한 ‘천마신공’으로 순식간에 절대고수라 불릴 만한 내공을 얻었다고는 하나, 상대는 몇 백년의 아득한 세월동안 무공을 수련한 키리오스였다.
“이익!―”
한 보, 두 보. 어느새 다섯 보까지 뒤로 물러선 천마가 단말마같은 신음을 내뱉었다.
키이이잉―
천마 주위로 떠돌던 열 두개의 검이 키리오스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순식간에 칼을 거두고 거리를 벌린 천마가 괴상망측한 기를 내뿜었다.
이어서 천마가 검결지를 휘두르자, 열 두개의 검이 가공할 만한 속도로 키리오스에게 쇄도했다.
카강! 캉 카가가각!
키리오스가 사각을 찔러오는 검초들을 천천히 파훼했다. 열 두개의 검들은 특별한 검초나 무공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받아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한 개의 검을 받아내는 동시에 시야의 사각을 노리는 열 한 개의 검이 있었기에 웬만한 무사였으면 두 세 번의 합도 견디지 못하고, 온 몸이 난자되었을 수준이었다.
물론 그것이 웬만한 무사라면의 일이다.
파츠츠츠츠―
잿빛 하늘을 머금고 몸집을 불리던 먹구름 아래로, 거대한 번개가 연달아 내리쳤다. 여태껏 에너지를 모으고만 있었던 키리오스가, [전인화]의 공력을 일순에 발했다.
쿠구구궁.
그가 천마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마치 그 자리에 거대한 벼락이라도 내린 듯 대지가 거대한 균열로 부서졌다.
“이 미친!!”
어느새 천마와 키리오스 간의 거리는 한 사람의 키만큼을 앞두고 있었다. 당황한 채로 장을 내뻗는 천마와, 백청의 기운을 담아 [순백의 역설]을 내지르는 키리오스.
자욱하게 올라온 먼지가 서서히 걷히며, 차츰 결투의 판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