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당신과 제가 다른 것이 무엇이죠?]
이 마왕이 드디어 미친 건가, 라고 생각한 라파엘은 아스모데우스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질문임. 님은 악마, 나는 천사. 이거면 된거 아님?]
아스모데우스는 턱에 손가락을 얹고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라파엘을 바라보았다.
[가끔 당신과 같은 천사들을 볼 때면, 그들이 악마가 아닐까 싶어서요.]」
ㅡ 격노와 정욕의 마신.
*
누군가에겐 하늘의 축복.
또 다른 누군가에는 하늘의 쓰레기라고 불리는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
‘겨울에 눈은 흔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한겨울의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면, 난 이 말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네요.”
햇빛을 머금어 반짝이는 눈들과 함께 에메랄드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 우리엘이 있었다.
[응! 이런 날은 정말 오랜만인거 같아!]
오늘은 크리스마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성탄절이라고도 부르는 날.
그 날의 주인공인 <에덴>. 거기에 우리엘이 빠지면 섭섭하지 않겠는가.
[어서 가서 놀자!]
“자...잠깐만요!”
우리엘은 나의 손을 꼭 잡고는 아름다운 금발을 휘날리며 힘차게 달려갔다.
목적지는 옛 <에덴>의 동산.
최대한 빨리 도착하려는 것인지, 우리엘은 자신의 흰 날개를 활짝 폈다. 나도 또한 검은 날개를 활짝 펴려고 했지만… 그 전에 우리엘이 날개를 퍼덕이며 나를 끌고는 날아가기 시작했다.
“어어... 어어! 위험해요 우리엘!”
[걱정마. 독자는 내가 지켜!]
일반인이 떨어지면 즉사할 높이. 그 높이에서 날 한 손으로 들고는 날아다니며 말했던 것이었다.
“으악! 우리엘!”
고개를 들자, 실신 전의 내 모습을 보고 방긋 웃는 우리엘이 보였다. ‘악마 같은’이라는 수식언이 생긴 이유는 이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을 찰나,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헉... 헉… 그렇게 좋은 겁니까, 우리엘...”
[흠흠. 이날만을 위해 기다려왔다고!]
우리엘은 날개를 접고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쓰고 있던 선글라스, 마스크를 벗으며 아름다운 금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그런 우리엘의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난 건데, 만약, 우리엘이 아이돌이 아니라 모델을 했어도 잘 되었을 것이다.
키는... 그럴 수 있지. 암튼 둘째치고, 그것을 상쇄할만한 출중한 외모와 몸매까지.
물론,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근데 복장이...”
간단하게 털코트를 입고 나온 나와는 다르게 우리엘은 하얀색 롱패딩과 산타 털모자, 그리고 루돌프의 모습을 따서 만든 털 귀마개, 마지막으로 빨간 벙어리 장갑까지 입고 있었다.
패션은 집어던지고 오직 방한만을 생각한 듯한 복장이었다.
[어때? 이름하야 ‘우리엘 에디션’이라고!]
그래. 우리엘이 행복하면 되는거지.
신나게 눈밭으로 달려가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우리엘을 뒤로하고, 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브리엘은 어디 계십니까?”
솨아악.
어디선가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에 털이 곤두 설 정도로 엄청난 한기 또한 느껴졌다.
[니 뒤에.]
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어······ 괜찮...으십니까?”
헝클어진 머리에 겨우 입고 나온 듯한 옷들과 그것들 사이로 보이는 초췌한 눈빛을 하고 있는 ‘물병자리에 핀 백합’, 가브리엘이 새빨간 아우라를 내뿜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도대체 사람... 아니, 대천사가 무슨 일을 겪으면 저런 살기를 뿜을 수 있는거지?
[이얍! 다 만들었다!]
우리엘은 자신이 만든 눈사람을 자랑스럽게 토닥여주며 나를 바라보았다.
[독자야! 이거 봐봐! 내가······ ■발 놀래라!]
어느샌가 우리엘 앞으로 다가간 가브리엘이 무언갈 번쩍 앞으로 내밀었다.
[도대체 ■발. 이런 거 부탁하려고 나한테 쌩 난리를 피운 거냐?]
우리엘은 가브리엘이 들고 있던 물건을 덥썩 낚아채고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꼬우면 ‘하르마게돈’이라도 일으켜 보던가.]
순간 대천사 둘이서 싸울까 봐 걱정했다. 저 둘의 격이라면 이 일대를 초토화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되게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네. 됐다 됐어.]
다행히도 가브리엘이 손사래를 치며 한발 뒤로 물러나 주었다.
[흥! 너한테 배운 거거든.]
진짜 다행이다. 진짜로.
“근데 그건 뭡니까?”
[이거? 희원이가 선물해줬던 건데…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었나?]
우리엘이 물건을 바닥으로 던지자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동식 주방 ㅡ Made by. Yangsan]
도대체 이 아저씨가 만들 수 있는 끝이 뭘까. 벌써 차에다가 목베개, 심지어 여러 무기까지… 이러다간 부동산까지 섭렵하시겠는데?
우리엘은 주방을 요리조리 살피더니, 이내 주방 칼을 뽑아 들곤 방긋 웃어 보였다.
[오늘은 내가 요리사! 독자는 가브리엘이랑 가서 앉아 있어!]
“저도 도와드릴 수 있ㅡ”
우리엘은 슥ㅡ 슥ㅡ 칼을 갈며 말했다.
[에이. 앉아 있으라니깐.]
다른건 몰라도 칼은 집어넣고 웃어주면 안되는 걸까? 마치 연쇄 살인마가 할만한 행동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인데 말이지…
아닌가? 어떻게 보면 우리엘도 왕년에는 마왕 학살자인데 말이지. 어쩌면 어울리는 행동일지도.
[빨리 와라. 김독자.]
어느샌가 또 다른 의자를 펼쳐놓은 가브리엘이 의자를 탕 탕 두들기며 나를 불렀다.
내가 자리에 앉자 가브리엘이 조심스럽게 속닥였다.
[야. 저 미친■ 또 요리한다고 하지?]
“네. 근데 무슨 일이라도…?”
가브리엘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우리엘을 바라보았다. 참고로 우리엘은 스토브의 불을 켜지 못해 [지옥염화]를 내뿜으려 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넋이 나가 있던 가브리엘이 정신을 차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제였더라… 아 그래. 시나리오가 시작되기 한참 전, 내가 『우당탕탕 크리스마스 일대기』라고 불리는 사건인데······]
.
.
.
.
*
모든 천사들이 모여있는 에덴의 회의장.
새하얀 대리석들과 금장이 칠해져 있는 기둥들. 역대 <에덴>의 설화들이 그림으로 전시되어있는 벽면은 마치 웅장함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메타트론은 그런 웅장한 장소에서 이번 성탄절에 관련하여 여러 계획을 설명하는 중이었다.
[이번 성탄절에는······]
[서기관님 멋있어요!]
회의 중, 웅성거리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카마엘이 천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저. 하급 천사들 봐라. ■빠져선.]
메타트론의 언변이 뛰어난 건 사실이다. 게다가 엄청난 스케일의 건물이 그를 뒷받침해주고 있으니 어떻겠는가. 하급 천사들은 그런 메타트론의 모습에 매료된 모양이었다.
[매년 똑같은 얘기야. 서기관은.]
물론, 그 모습을 하도 많이 본 우리 대천사들은 그저 지루함만을 느끼고 있었을 뿐이지만.
[······그래서, 여러분이 이번 음식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순간, 주변 일대가 고요해졌다. 그리고 대천사 모두가 메타트론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서기관 뭐 잘못 먹음?]
[아무래도 노망이 난 것 같군. 내가 아는 좋은 의사가 있는데······]
[진심이야, 서기관?]
메타트론은 자신의 안경테를 밀어 올리곤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다시 한번 설화 전파를 하실 분을 골라볼까요?]
‘하늘의 서기관’. 마계에서는 ‘하늘의 지배자’, ‘천상계의 아가레스’라고도 불리는 성좌.
그 성좌의 한 마디가 모든 상황을 종결시켰다.
[반대하시는 분은 없는거 같군요. 그러면 이번에는 라파엘과 가브리엘께서 담당해주시길 바랍니다.]
*
멀리서 출장 갈 준비를 하고 있는 메타트론이 보였다. 곧 성탄절이기도 하니, 원래 바빴던 서기관은 더 바빠질 게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엘은 회의장을 나서곤 머리를 헝클며 난리를 치고 있었다.
[아니이! 우리는 ■발 대천사지, 출장 요리사냐?!]
우리엘을 끌고 다니던 라파엘 또한 끄덕이며 동감했다.
[가끔 저 서기관 보면 마왕 같음.]
선두에 있던 ‘타락의 구원자’, 미카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미친■들아… 닥치고 빨리 와...]
[■발. 니가 뭔데 오라 마라야!]
급발진하는 우리엘에게 미카엘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대천사라는 ■이 땡깡만 부리고 있냐?]
[땡깡이라니! 너도 솔직히······]
가브리엘은 둘의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옆에 있던 라파엘 또한 마른세수를 하며 말했다.
[저건 대천사들이 맞긴 하냐?]
[뭐야. 너 그 이상한 말투 어디갔어.]
라파엘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가브리엘에게 두루마리를 전달해주며 말했다.
[메타트론이 너랑 나랑 대천사들을 나눠서 맡으라고 함. 아, 그리고 이건 메뉴임.]
크림 스파게티, 칠리새우, 미트볼, 케이크, 크리스마스 쿠키······. 하나 같이 다 복잡한 메뉴들이었다.
더군다나 대천사 중에서는 ‘메타트론의 요리 강의실’을 들은 천사는 없을 터. 기본적인 요리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라파엘이나 가브리엘 같은 경우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 외의 대천사들이 문제였다.
그 아래로 빼곡하게 적혀있는 레시피들. 하나같이 섬세하고도 복잡하게 적힌 레시피는 ‘메타트론이 썼어요~’하고 적혀있는 것 같았다.
가브리엘은 그 모든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들어 단 한 마디를 외쳤다.
[■됐네.]
[끄덕.]
라파엘은 끄덕이면서 어딘가를 가리켰다. 라파엘이 가리킨 곳들에는 재료를 준비하고 있는 대천사들이 보였다.
[어느정도가 1인분이지...? 야, 카마엘!]
[나라고 한들 알겠냐?]
악마들의 목이나 따고 다녔던 대천사들이, 음식이라는 것 단 하나로 인해 쩔쩔매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어색했다.
[일단 저기는 라구엘이고, 스파게티 담당임. 저기는 카마엘, 미트볼 담당. 난 케이크고. 이렇게 내 그룹임.]
라파엘은 이상한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우리엘을 바라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는 우리엘이랑 미카엘을 담당하고. 너희들은 칠리새우, 크리스마스 쿠키를 맡아주면 될듯.]
가브리엘은 유심히 레시피를 살펴보았다. 두 메뉴 모두 간단하여 보였다. 그러면 역할 분배는…
[그리고 ■■아! 네가 갑자기 방에 들어와 놓고선 그때...]
[뭔 ■소리야! 안 들어갔었다니깐? 그리고 그때 그건...]
도대체 저 둘의 악연은 언제 끝나는 걸까. 한숨을 푹 쉰 가브리엘은 둘을 향해 소리쳤다.
[미친■들! 그만 싸우고 빨리 와봐!]
우리엘과 미카엘은 서로 툴툴거리며 가브리엘에게 다가왔다.
[미카엘. 우리엘이랑 나는 크리스마스 쿠키 만들테니깐, 너는 칠리새우 만들어라.]
칠리새우의 레시피를 바라보고 있던 미카엘이 인상과 함께 종이를 구겼다.
[왜... 이렇게 복잡한건데. 심지어 너네꺼가 더 간단하잖아! 심지어 너는 요리도 할줄 알ㅡ]
어떻게 ‘대천사’라는 작자들이 이렇게 불만이 많은걸까. 그냥 까라면 까면 될 것을. 뭐, 물론 미카엘이 순응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본래 서기관이라면 대충 미카엘을 열외 시켜주었을 것이다. 대충 다른 일을 맡겨두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번 담당자는 서기관이 아니었다. 가브리엘은 고오한 미소를 지으며 미카엘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꼬우면 ‘하르마게돈’이라도 일으켜 보시던지.]
그 도발은 ‘내가 하라는데. 안 하면 반항하는 거다?’와 같은 뜻이었다.
그들은 천사 중에서도 대천사였다. 툭하면 자존심에 못 이겨 덤벼오는 마왕들과는 다르게, 항상 절제하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이들이었다.
「[근데 있잖아, 그땐 내가 잘못 생각했더라고.]」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방긋 웃은 미카엘의 신형이 점점 떨리더니, 깊은 잠에 빠져있던 어둠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뭐 때문에 말입니까?”」
그의 하얀 날개는 검은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고, 이마에는 검은 뿔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발■끼 마왕이잖아.]」
[네가 원한다면. 왜냐면 난 지금 ■나 꼽거든.]
[마왕, ‘타락한 천사들의 왕’이 성좌 ‘물병자리에 핀 백합’을 노려봅니다.]
「[너도 알지? 미카엘은 신화급 대천사였어. 근데 걔가 진짜 모습을 꺼내들면 어떻게 되겠냐고.]」
미카엘이 본신의 힘을 꺼내 들자 <에덴> 일대가 그의 격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각각의 자리에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던 천사들은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인해 혼돈에 휩싸이기 시작하였다.
[미카엘 님께서······!]
[다들 대피해!]
「"그러면 정말 위험한 거 아닙니까?“」
휘이~ 휘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 혼비백산하고 있는 천사들과는 다르게, 대천사들은 평온하게 가브리엘 옆으로 와 구경을 시작했다.
[저 미친■ 또 왜 저러냐.]
[항상 있던 일인데, 뭐.]
「[원래라면 그렇지. 근데 걔도 나처럼 생각은 짧더라.]」
그때, 어디선가 탁! 하고 책을 접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곳이면 몰라도, 우린 <에덴>에 있었잖아.]」
미카엘은 분명하게 신화급 성좌이다. 그것도 모든 힘을 방출한 신화급 성좌. 하지만 그런 미카엘의 위에 서식하고 있는 성좌가 <에덴>에는 또 있다.
<에덴>의 2인자이자, 유일하게 모든 대천사들이 두려워하는 존재.
「[그… 수식언이 뭐였더라. ‘천상계의 아가레스’?]」
[미카엘...]
[성좌, ‘하늘의 서기관’이 마왕 ‘타락한 천사들의 왕’을 억제합니다.]
떠날 채비를 마쳤던 메타트론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피곤한 얼굴을 하며 미카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발… 제가 없는 동안에 가만히 계시면 안 됩니까?]
*
미카엘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포탈을 타고 사라지는 메타트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이그. 그러고도 네가 대천사냐?]
우리엘은 그런 미카엘의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미카엘은 올라온 혹을 어루만지며 억울하다는 듯이 가브리엘을 가리켰다.
[아니, ■발. 저 ■이 꼬우면 덤비라고 했ㅡ!]
퍽ㅡ!
그때, 가브리엘이 미카엘의 뒤통수를 후려치고는 우리엘을 끌고 가며 말했다.
[그만 징징거려. 무슨 애■끼도 아니고 말이야. 옆에서 봐줄 테니까 어서 요리나 하셔요.]
미카엘의 주변에서 서늘한 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이미 일을 저지른 이상, 그런 반항은 귀엽게 느껴질 뿐이었다.
질질 끌려가는 우리엘은 그와중에도 미카엘에게 얄미운 제스쳐를 보내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고 난리 치는 미카엘의 리엑션 또한 봐줄만 했다.
[저 ■발■이...]
그렇게 주방으로 질질 끌려온 우리엘이 안절부절 못하며 말했다.
[가브리엘... 나 요리할 줄 모르는데...]
이미 우리엘이 요리를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은 가브리엘 또한 알고 있었다. 다른 대천사들은 어떻게라도 할 테지만, 이 금발의 대천사는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에 가브리엘이 데리고 있던 것이기도 하니깐.
[걱정하지 마. 내가 도와줄 테니까.]
도와준다는 말에 감격한 것인지 우리엘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브리엘은 그런 우리엘의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재료를 살펴보았다.
[일단 필요한 게 버터랑 소금이 필요하고······ 아 그래. 우리엘, 혹시 라파엘한테 가서 설탕 좀… 우리엘?]
주변을 둘러본 가브리엘이었지만, 우리엘은 보이지 않았다.
.
.
.
가브리엘은 투덜거리며 라파엘이 담당하고 있는 구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발… 이런 거까지 내가 해야되는 거냐고...]
그렇게 도착한 건물의 문을 열자, 무언가가 가브리엘에게 날아왔다.
퍽!
무방비하고도 갑작스럽게 공격을 받은 가브리엘은 인상을 찌푸리며 날아온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뭐야, ■발... 면이잖아?]
근데 갑자기 스파게티 면이 날아올 일은 없을 터. 가브리엘은 고개를 들어 대천사들을 바라보았다.
[라파엘! 이...이거 부글부글 끓는데…?!]
다 익은 스파게티 면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서 집게로 휘적이고만 있는 라구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러니깐 음식들이 날아다니지.
[잘 봐봐. 라파엘. 에이스가 뭔지 보여줄게.]
의기양양하게 미트볼을 굽고 있는 카마엘. 거의다 완성 된 것인지, 미트볼 위에 소스를 뿌리기 시작했다.
근데… 저건 미트볼 소스가 아니라 스파게티 소스일텐데?
[왁, ■발! 어떡하냐, 라파엘?]
그리고 그들 사이에 서서 머리를 헝클며 답답해하고 있는 라파엘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정상적인 애들을 데려가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별 다를 건 없었나 보다.
그냥 설탕만 빌리려고 왔던 가브리엘은 오히려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되어 기뻐하고 있었다.
일단 저기 공중 부양 하는 면들이랑 온갖 소스를 부어 넣고 있는 카마엘… 참으로 진풍경이다.
바쁘게 움직이면서 두 대천사를 지도해주고 있는 라파엘이 입구에서 웃고있는 가브리엘을 보고는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이내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님… 걔네들은 어쩌고 온거임...?]
가브리엘은 재빠르게 위엄을 되찾고는 라파엘에게 말했다.
[어? 다른 건 아니고, 설탕좀 빌리려······ 왜 그러는데?]
라파엘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 가는 것이 보였다. 항상 평온하던 그 라파엘의 표정이 말이다.
[그러면 그 두 녀석을 두고 왔다는 거야…?]
이 녀석이 웬일로 본래 쓰던 그 이상한 인터넷 말투도 안 쓰고 정색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두 녀석? 뭔 두 녀석을 말하는 거지? 하고 고민하고 있던 찰나,
가브리엘은 깨달았다.
[■됐다.]
자신이 두고 온 두 사람이 누군지.
*
5분 전.
이날만을 위해 <에덴>의 삼엄한 경비를 무시하고 가져온 앞치마를 단단히 맨 우리엘이 기뻐하며 돌아오고 있었다.
물론, 굳이 앞치마 하나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었지만…
[뭐, 이쁘면 되는 거지!]
그렇게 폴짝이며 돌아온 주방에는, 자신의 도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저기 대천사인지 의심되는 존재 하나.
[야. 가브리엘 어디갔냐.]
새우의 머리를 톡, 따고 있던 미카엘이 대충 얼버무렸다.
[니 ■이 안 와서 간 거잖아. 그리고 그 이상한 앞치마는 뭐냐?]
그 말을 들은 우리엘의 얼굴이 점점 빨개지기 시작했다.
[뭐...뭐라고?]
우리엘은 자신의 앞치마를 꽉 쥐고는 울먹이고 있었다.
[흐끅…이...이거… 내가 얼마나… 아끼는 앞치마인데...]
갑자기 우는 우리엘의 모습에 어쩔줄 몰라하는 미카엘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미친■아! 갑자기 왜 우는데!]
[으아아아앙…!]
「“잠깐만. 우리엘께서 우셨다고요?”」
.
.
.
.
*
[응. 진짜 울었다니깐.]
의심스럽게 가브리엘을 바라보았지만, 가브리엘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무리 봐도 우리엘이 울 거 같이 생기진 않았단 말이지. 우리엘이 착하긴 한데... 그래도 한때는 악마들을 학살하고 다녔다는 그 악명 높은 대천사이다.
쿠과과광!
굉음이 들리는 곳을 바라보자, 귀여운 앞치마를 하고선 오븐과 씨름을 하고 있는 우리엘이 보였다.
[아니, ■발. 왜 이거 작동을 안하는건데!]
음, 전혀. 절대로 저 앞치마 하나 때문에 울거 같지 않다. 무슨 『대천사의 소중한 앞치마를 뺏길 수는 없어!』와 같은 이야기인가. 그래도 멸살법보단 재밌는 이야기일 거 같은데.
“근데, 가브리엘께서는 그때 라파엘과 함께 계셨던 거 아닙니까?”
칫, 하고 싸늘한 표정을 지은 가브리엘이 말했다.
[이래서 눈치 빠른 녀석은 싫다니깐. 이참에 우리엘의 이미지 좀 바꾸려고 했는데.]
역시 우리엘의 악우(惡友)답다. 우리엘의 이미지를 깎으려고 하다니.
“그정도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상상력이라면 수영이와 맞먹겠는데요.”
한수영이 이 말을 들었더라면 난리를 쳤을게 분명하다.
가브리엘이 헝클어진 자신의 백발을 정리하면서, 다시 이야기를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뭐래. 암튼,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
.
.
.
*
[야. 가브리엘 어디 갔냐.]
단단히 요리할 준비를 해온 우리엘이 미카엘에게 물었다.
새우의 머리를 톡, 하며 따고 있던 미카엘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발.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니 ■이 안 와서 간 거 아니야?]
[뭐, 니 ■?]
우리엘이 격을 방출하자, 미카엘이 힘겹게 따둔 새우들이 공중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소중한 노력물이 날아가는 것을 보자, 미카엘은 이성의 끈이 끊어진 듯이 우리엘을 향해 깊은 분노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발... 해보자는 거냐?]
미카엘이 검을 꺼내고 우리엘을 바라보자, 우리엘 또한 검을 꺼내들며 피식 웃었다.
[원하시는 대로.]
쉬이이잉ㅡ!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카엘의 검이 우리엘의 머리를 스쳤다. 본래의 힘을 쓰지 않았음에도 건물의 벽을 뚫어버릴 정도의 힘.
본래라면 그 힘에 어떤 천사들이라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정상이었다. 미카엘의 순수한 전투 능력을 따라갈 성좌는 몇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카엘이 간과했던 사실이 있었으니,
[초장부터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거지?]
그의 상대인 우리엘 또한, 훗날 서기관의 자리를 이을 강자였다는 것이다.
우리엘은 봐주지 않겠다는 듯이 검에 [지옥염화]를 두르고는 미카엘을 향해 내질렀다.
파아아앙ㅡ!
귀가 찢어질듯한 굉음과 함께, 하나의 불기둥을 만들어낸 [지옥염화]가 미카엘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발!]
미카엘의 마지막 외침을 끝으로, 그의 자리에는 [지옥염화]가 지나가며 만들어낸 자욱한 연기만이 가득했다.
‘이정도면 자기 분수를 알았겠지?’하고 검을 거둔 우리엘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쿵!
[아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무언가에 머리를 박았다.
[아으… 이게 뭐지…?]
아픈 머리를 우러만지며 우리엘이 검을 꺼내고는 앞을 찔러보았다.
탕! 과 같은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막히는 검날. 우리엘은 온 힘을 다해 검을 내질러보았다.
쩌저적.
검이 무언가를 관통하자, 이내 그녀를 막고 있던 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밝은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는 벽. 우리엘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저지먼트 필드(Judgement field)].
미카엘의 주력 능력이자, ‘타락’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공능.
우리엘은 급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자욱했던 연기가 사라지자,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미카엘의 모습이 보였다.
[마왕, ‘타락한 천사들의 왕’이 킬킬거립니다.]
[네 ■은 그걸로 될거라고 생각했냐?]
미카엘은 다시 한번 타천사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검 또한 검게 물들이고는 우리엘을 향해 겨두며 말했다.
[서기관도 없는데 진심으로 해보자고.]
우리엘이 자신의 검을 꽉 쥐자, 눈 부신 빛이 그녀를 감쌌다. 그리고 그 빛 사이에서 우리엘은 고오한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재밌을 거 같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서서히 눈을 뜹니다.]
빛이 사라지자 검은 원피스가 아닌, <에덴>의 제복을 입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엘이 나타났다.
우리엘 또한 상징체가 아닌, 진체로 미카엘에게 맡서기로 한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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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별일 없길 빌어야지. 것보다, 설탕 좀 줘봐.]
라파엘은 라구엘이 벌여놓은 사태를 수습하느라 바쁜지 말 없이 찬장을 가리켰다.
참 바쁘게도 사네. 라고 생각한 가브리엘은 찬장을 열어 설탕을 발견하고는 필요한 양만큼 덜어내었다.
[좋아… 이거면 되겠지?]
설탕을 들고 개운한 마음으로 돌아가려던 가브리엘 앞에 요피엘이 나타났다. 평소와는 다르게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 요피엘의 모습.
[FM의 근본께서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단단하게 무장했냐? 뭐 ‘하르마게돈’이라도 일어났어?]
장난스러운 태도의 가브리엘과는 다르게, 요피엘은 비장한 표정을 짓고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곧 있으면 알게 될거다.]
도대체 무슨 일을 말하는 건지 물어보려던 찰나,
콰아아앙ㅡ!
불기둥이 지나가며 그들이 있던 건물의 벽을 뚫었다.
[■발! 죽어! 죽으라고!]
그리고 그 벽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우리엘이 보였고,
[좀 ■져라! ■■아!]
그 공격을 받아내고 있는 미카엘의 모습이 보였다.
가브리엘은 품 속에 설탕을 들쳐맨 상태로 그렇게 얼어붙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때, 미카엘의 공격을 힘겹게 받아내던 우리엘이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다들 숙여라!]
요피엘의 외침에 재빠르게 숙인 라파엘과 그의 그룹들은 다행히 날아오던 우리엘을 피해내었다.
우리엘이 쓸고나간 자리에는 허공을 부유하는 스파게티 면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기상천외한 미트볼이 날아가고 있었다.
[■발… 쟤네 뭐하는 거야?!]
머리에 스파게티 면을 뒤집어쓴 라구엘이 휘둥그레진 눈동자를 돌리며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그리곤 멀뚱멀뚱 가브리엘을 쳐다보았다.
[날 왜 보는데.]
물론, 가브리엘도 무슨 상황인지는 자세히 몰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순응하고 있던 미카엘과 우리엘이 폭주하고 있다니.
[저거 어떡함? 지금 서기관도 없는데.]
서기관은 지금 <에덴>에 없는 상황. 그렇다면 저 메타트론을 이을 수 있는 두 대천사들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때, 요피엘이 그들의 앞으로 나서곤 말했다.
[내가 처리하지.]
가브리엘은 오늘따라 귀찮은 녀석이었던 요피엘이 빛나 보였다. 서기관이 마음 놓고 자리를 비울 수 있는 또 다른 이유. 그것이 바로 요피엘 덕분이기도 하였으니깐.
[우리엘, 미카엘! 둘 다 거기까지!]
[성좌, ‘붉은 코스모스의 지휘관’이 격을 방출합니다!]
요피엘의 503 군단이 대치 상태의 두 대천사를 포위했다. 순간적으로 멈칫한 둘을 놓치지 않고, 요피엘은 [선악의 구속구]를 발동시켜 미카엘을 구속했다.
우리엘은 검을 집어넣고는, 진체가 아닌 상징체로 바꾸며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였다. 하지만 미카엘은 [선악의 구속구]를 풀어내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점점 미카엘의 저항이 거세지자, 가브리엘은 요피엘의 힘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서 빨리 도와라! 언제까지 이 녀석을 붙잡아둘 수는 없다!]
저 구속이 풀리면 미카엘을 막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가브리엘은 재빨리 자신의 성유물인 ‘편애의 천칭’을 소환시키고는 미카엘에게 겨두고 말했다.
[가만히 있어 ■■■야. ■지기 싫으면.]
*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성좌 ‘타락의 구원자’를 노려봅니다.]
[성좌, ‘타락의 구원자’가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를 노려봅니다.]
두 대천사는 아이처럼 두 손을 번쩍 들고는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그 둘을 보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 둘다 무슨 일인지 똑똑히 말해.]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엘과 미카엘은 서로를 가리켰다.
[아니, 이 ■■가······!]
[이 미친■이······]
쾅!
가브리엘은 ‘편애의 천칭’을 바닥에 내리꽂고, 푸른색 안광을 밝히고는 살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둘 다 ■쳐!]
그런 가브리엘의 태도에 놀란 우리엘은 울먹이며 궁시렁 거렸다.
[쟤가 먼저 그랬는데...]
이 둘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면서 고민하고 있던 가브리엘은 웅성이는 소리에 옆을 돌아보았다.
[이거 어떡하냐.]
대천사들의 싸움으로 인해 엎질러진 음식들을 보며 라구엘과 카마엘이 고민하고 있었다.
[서기관도 조금 있으면 돌아오지 않냐?]
[아마도...?]
그리고, 그들 옆에서 부서진 건물의 벽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고 있던 라파엘이 중얼거렸다.
[■발 인생...]
라파엘은 대천사 생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상태였다. 다른 것도 아닌, 저 손을 들고 있는 두 대천사라는 작자들 때문에 말이다.
라파엘은 터덜터덜 주방으로 가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가브리엘에게로 와 말했다.
[이쪽 주방의 재료들은 다 못 쓰게 됨. 아마도,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건 칠리새우랑 크리스마스 쿠키 밖에 없을듯.]
[진심으로? 단 한 개도 없다고?]
크리스마스를 단 두 음식으로만 보내야 한다니. 이건 서기관뿐만 아니라 다른 천사들까지 충분히 난리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미카엘이 목을 가담으더니, 모두를 바라보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아까 새우들도 다 날아갔어...]
그 말에 3초간 정적이 일어나더니, 가브리엘은 죽일 듯이 ‘편애의 천칭’을 뽑아 들고는 미카엘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성좌, ‘물병자리에 핀 백합’이 성좌 ‘타락의 구원자’을 향해 격노합니다!]
요피엘과 카마엘, 라구엘은 겨우 폭주하는 가브리엘을 막아내었다.
[진정해, 가브리엘!]
[■발 좀!]
[마음을 다스려라!]
[놔봐 ■발! 저 ■■■를 죽여둬야지 내 마음이 편하겠다!]
그 분노가 얼마나 강한지, 가브리엘이 뿜어대는 격이 건물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건물의 진동을 듣고 놀란 미카엘이 자신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덜그럭거리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야, 야! 아무리 그래도 죽이는 거 까진 아니지!]
[■쳐!]
겁 먹은 미카엘의 처절한 목소리가 <에덴>에 퍼져갔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던 라파엘은 한숨을 쉬며 우리엘에게 한탄했다.
[덕분에 에덴이 디저트 가게가 될듯.]
우리의 죄인, 우리엘은 그런 라파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멋쩍은 웃음밖에 없었다.
[헤헤... 미안.]
.
.
.
.
<에덴>의 중심지인 광장.
우람한 나무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장소 아래에서, 대천사들은 반 포기한 마음으로 쿠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반죽이나 모양을 잡는 것과 같은 섬세한 작업은 가브리엘과 라파엘이 담당하였고, 굽는 것과 같은 간단한 작업들은 우리엘과 미카엘이 맡게 되었다.
카마엘과 라구엘은…
[■이이바아알!]
부숴진 건물의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불쌍한 천사들.
그리고 그 일의 주동자, 우리엘과 미카엘은 오븐을 바라보고선 고민하고 있었다.
[이건 어떻게 쓰는거지?]
마음 같아서는 가브리엘에게 물어보고 싶은 우리엘이었지만, 폭발 직전의 가브리엘을 건드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기에 일단 직접 해결하여 보기로 했다.
메뉴얼을 펼쳐본 미카엘이 손가락으로 버튼들을 가리키며 우리엘에게 말했다.
[우선, 오븐에 음식을 집어넣고… 전원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원하는 시간을 설정해주면....]
미카엘이 말하는 대로 해보자 오븐이 작동하더니, 이내 먹음직스러운 쿠키가 완성되었다.
크리스마스 모자를 쓰고 있는 쿠키, 새하얀 <에덴>의 제복을 입고는 천사 링을 띄우고 있는 쿠키.
우리엘은 그 쿠키들을 신기하다는 듯이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었다.
[우와! 이거 진짜 귀엽지 않아?]
미카엘은 그런 우리엘의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마치 ‘저게 아까 나랑 싸웠던 대천사인가...’ 하는 듯이 말이다.
[근데, 우리 이거 다 구워야 하는거야?]
우리엘이 가리킨 곳에는 수많은 양의 반죽된 쿠키들이 보였다.
[굽는데 하루가 다 가겠는데...]
음…하며 고민하고 있던 미카엘이 우리엘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듯이 핑거스냅을 딱! 하고 쳤다.
[야. 우리엘.]
[응?]
[너 성흔이 뭐였지?]
우리엘은 말없이 손에 [지옥염화]를 피워 보였다. 아까 전에도 봤었을 텐데, 뭘 새삼 물어보나.
그러자, 미카엘이 고개를 까딱이며 오븐을 가리켜보았다.
[네 말대로, 저 고철 덩어리로는 너무 오래 걸려.]
미소를 지으며 우리엘의 [지옥염화]를 바라보고 있는 미카엘. 그때서야 우리엘은 미카엘의 속셈을 눈치챘다.
[너 설마ㅡ]
[더 효율이 좋은게 있는데, 굳이 안 쓸 이유는 없잖아?]
우리엘은 진심으로 혐오감이 담긴 표정으로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악마 같은 ■끼. 넌 이게 요리의 용도로 있는거 같냐?]
[아니, ■발아. 생각해봐. 네 ■의 그 장엄한 천국불?]
[지옥염화다.]
[이름 하나 끝내주네. 암튼 그걸로 하면...]
미카엘은 자신의 능력을 써가면서까지 우리엘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그 어떤 사람이 오븐을 냅두고 화염 방사기로 쿠키를 지질 생각을 하겠는가.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그 생각에 동의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오… 일리가 있는데?]
불행하게도, 설득할 상대가 우리엘이었을 뿐이었다.
[그치? 쩌는 아이디어라니깐. 저기 쟤네도 오네. 야! 거기 둘!]
잔해를 다 치우고 오는 라구엘과 카마엘. 미카엘은 음흉한 웃음을 띄며 둘을 불러내었다.
*
[수고가 많군, 가브리엘.]
쿠키를 빚고 있는 가브리엘에게 요피엘이 응원의 말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럴 시간에 좀 거들어주지?]
요피엘은 고개를 저으며, 뒤에서 히히덕 거리고 있는 미카엘과 우리엘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저 녀석들 사이가 너무 좋아보인다.]
저 두 대천사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원수지간이다. 그리고 그 원수지간들이 협업하고 있다면, 무언가를 또 꾸미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쟤네 좀 지켜보던가.]
요피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때마침 라구엘과 카마엘 또한 그들에게 향하는 것이 보였다.
미카엘이 무언갈 설명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워 하는 제스쳐를 표하고 있는 둘이 보였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는 그때, 우리엘에게서 [지옥염화]가 뻗어나갔다.
화르르륵!
[봐봐! 성능 확실하다니깐? 이제 조금만… 어?]
[지옥염화]로 덕분에 쿠키가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화력이 너무 강했는지 새까맣게 타갔다.
그저 소량의 쿠키가 아니었다. 아주 많은, <에덴>에 속해있는 천사들의 양을 뛰어넘는 정도의 쿠키들이 타가고 있는 중이었다.
[야, 미카엘! 이정도면 된거야?]
불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지, 우리엘은 계속해서 [지옥염화]를 방출하고 있었다.
[근데 이거 뭐하는거야?]
[몰라. 미카엘이 뭐 굽는다는 거 같았는데.]
라구엘과 카마엘은 자신들이 어떤 일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모르는 듯 하였다.
[와...]
미카엘은 상황이 이렇게 될거라곤 생각 못했는지, 연이은 감탄사만 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타가는 쿠키들은 경이롭게도 엄청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쿵!
그 순간, 어디선가 둔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엘?]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우리엘은 [지옥염화]을 멈추곤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서기관이 서 있었다.
[응? 서기관 왔구나! 조금만 기다려봐. 이정도면 다 구워졌을...]
그때, 우리엘 앞에 쿠키가 떨어졌다. 아까 보았던 것과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는 쿠키.
아름답게 노란빛을 유지하고 있던 천사 링은 색을 잃고, <에덴>을 대표하는 제복은 곧, 마계에서 팔거 같은 검은 제복이 되어있었다.
우리엘은 그제서야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눈치챈듯 하였다.
[야! 미카...?]
우리엘은 재빨리 팔을 뻗어 미카엘을 낚아채려 하였지만, 그녀의 팔은 오직 허공을 휘적이고 있을 뿐이었다.
메타트론은 깊은 한숨을 쉬며 우리엘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메타트론이 그런 눈빛을 하고 있는 경우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이따가 저좀 보시죠.]
무언가를 단단히 결심 했을 때.
우리엘은 억울한 눈빛으로 라구엘과 카마엘을 바라보았지만, 둘은 어깨를 들썩일 뿐이었다.
굳이 사건에 끼어들었다간 서기관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끼이이이익ㅡ
설상가상으로 무너지는 초대형 십자가. 의도치 않게 신성모독을 일으킨 우리엘은 넋이 나간 모습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 아름다운 크리스마스네.]
급하게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하급 천사들의 모습을 뒤로,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도망가고 있는 미카엘이 보였다.
[■발… 넌 ■졌어...]
다시 한번 전투 준비를 마친 우리엘이 미카엘을 향해 날아갔다.
[미카엘 ■발아아!!!]
*
[그래서 저 ■ 덕분에 라구엘이랑 카마엘이 이거 고치느라 고생했지.]
가브리엘이 뒤에 우람하게 서있던 십자가를 툭툭 건들이며 말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접합부가 무언가로 칭칭 감아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일 때문이었구나.
우리엘의 ‘어린 양 사건’도 그렇고, 까면 깔 수록 계속 나오는게 <에덴>의 이야기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엘께서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가브리엘은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엘은 근신처분 당했고, 미카엘은 죽었다가 살아났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불쌍한 우리엘.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다니.
[것보다, 그 쿠키들 어떻게 되었는지 아냐?]
생각해보니 그 수많은 쿠키들. 그것도 타버린 쿠키들을 처리하려면 여간 고생이 아니었을거다. 심지어 그 새까만 악마처럼 생긴 쿠키를 가져갈 사람이 누…
잠깐, ‘악마처럼 생긴’이라고?
“설마...”
가브리엘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너 같은 애들한테 팔았어.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마계에서 팔고 있었다는 거 같은데...]
73번째 마계에 떨어졌을 때였나? 비슷한 쿠키를 본거 같다. 아일렌이 인기라면서 준 적도 있던 거 같은데.
[뭐, 다른 의미로 성공한거지. 마계까지 뻗어나갈 정도라면.]
[둘이 나 빼고 뭔 얘기해?]
그때. 검댕을 뒤집어쓴 우리엘이 불쑥 우리 둘 사이로 끼어들더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뭔 일을 저질렀으면 새하얀 피부를 다 덮을 정도일까.
가브리엘과 내가 어색하게 쳐다보자, 그 의심은 더욱 깊어져갔다.
[나 뒷담 깠지!]
가브리엘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
[전혀!]
“전혀요.”
우리엘의 의심이 사라질 기미가 없자, 난 재빠르게 화재를 돌렸다.
“근데 손에 그건 뭔가요?”
[아, 이거? 짜잔!]
우리엘이 의자를 가져와 내 옆에 앉더니, 손에 쥐고 있던 쟁반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보이는 쿠키들. 언젠가 우리엘이 만들었던 그 쿠키들과 같았다.
[어때? 어때? 이쁘지!]
기대가 가득찬 눈망울을 반짝이며 바라보는 우리엘의 모습이 보였다.
“잘 만드셨네요.”
[진짜로?]
“네. 정말로요.”
[봤지, 가브리엘! 독자가 나보고 잘 만들었대!]
나한테 칭찬을 들었다는 게 그렇게 기쁜건지, 우리엘이 눈이 날개를 활짝 펼치며 내 품에 안겨들고는 얼굴을 비벼댔다.
‘아공간 코트'가 점점 검댕으로 물들어갔지만, 차마 기뻐하는 우리엘을 말릴 수는 없었다. 뭐, 우리엘이 기쁘다면야.
내가 우리엘을 쓰다듬어주자, 그 모습을 보곤 경악하고 있는 가브리엘이 보였다.
마왕과 <에덴>의 새로운 서기관이 사이좋게 이러고 있다는 것. 가브리엘은 그것이 이해되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발… 둘이 사귀냐?]
“아니요.”
우리엘과 나는 연인 사이가 아니다. 그저 아이돌과 팬 같은 사이란 말이지.
가브리엘의 말을 들은 우리엘이 빼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곤 씨익 웃더니, 다시 내 품에 고개를 파묻었다.
“우...우리엘?”
가브리엘은 자신의 추측이 옳았다는 듯이 피식 웃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오해가 생긴 것 같은데?
“아니, 가브리엘! 그런게 아닙니다!”
[아니긴. 네 품에 있는 ■좀 봐라.]
우리엘이 내 품에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당황하고 있는 내 모습이 재밌었는지, 신나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재미있어요?”
[물론이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걸?]
헤헤, 하고 웃고 있는 우리엘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장난도 참 심하다니깐.
그때, 웃고 있는 우리엘의 머리에 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엘이 눈빛을 반짝이며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정말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지 않아?]
「그 어느 곳보다 장엄하였던 <에덴>은 더이상 없었다는 듯이 <에덴>을 덮어가는 새하얀 눈들.」
난 우리엘의 머리 위에 갈아앉은 눈들을 털어주곤, 웃으며 답해주었다.
「그렇게, 순백(純白)으로 가득차게 된 자리에 새로운 <에덴>이 나타났음에도 바뀌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아름답네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모두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것. 오래전부터 <에덴>이 추구해왔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우리엘은 흐뭇하게 웃으며 나지막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독자야.]
ㅡ
*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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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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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엘이 구운 쿠키를 우물우물 먹고 있던 가브리엘이 말했다.
[근데 생각보다 잘 만들었네? 요리도 못하던 애가 말이야.]
순간, 내 품에서 움찔거린 우리엘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것이 보였다.
[무...물론이지! 이 우리엘을 뭘로 보는거야!]
그렇게 말하는 우리엘의 눈동자는 가브리엘이 아닌, 주방을 향해 있었다.
뭘 보는거지? 하고 시선을 따라가자, 수많은 양의 쿠키가 보였다. 물론, 그게 일반적인 쿠키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엘. 저거 다 타버린거ㅡ 업.”
우리엘이 급하게 내 입에 쿠키를 집어넣었다. 우리엘을 바라보니 고개를 강력히 젓고 있었다. 마치 가브리엘에게 들키면 안된다는 듯이.
이렇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알았어요. 말 안할게요.”
내 말에 감동을 받은 듯, 우리엘은 다시 내 품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에덴>은 변했어도, 우리엘은 변하지 않았나보다.
나는 장난스럽게 우리엘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번엔 다행히도 십자가는 안 태우셨네요.”
내 말을 들은 우리엘의 얼굴이 붉게 변하고 있었다. 흑역사를 들킨 중2 마냥 말이다.
[그...그게 무슨 소리야!]
“전 다 알고 있어요, 우리엘.”
내가 우리엘을 바라보며 방긋 웃어보이자, 우리엘이 찌뿌둥한 표정을 짓고는 십자가를 툭 건들면서 발뺌을 하고 있었다.
[나...난 그런 적 없거든? 봐봐! 이렇게 밀어도...]
그때, 임시방편으로 고쳐두었던 접합부가 끊어지더니, 십자가가 다시 한번 굉음을 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라라?]
도대체 얼마나 힘을 줘서 밀었길래…
쿠과과과광!
먼지 대신 흩날리는 눈. 그 눈 사이로 무너진 십자가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우리엘.
그런 우리엘을 바라보고 있던 가브리엘이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허. 또 저러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당탕탕 크리스마스 일대기』가 다시 한번 쓰여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독자님들.